역대 정권의 첫 청와대 경제수석 경제학자→관료 교체가 반복돼
'모양새'가 '민원 처리력'에 밀려 새 경제 진용은 '실행력'이 중요
은행가·기업인도 잘 살펴봐야 국제금융에 정통한 보좌관 필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한 지 넉 달도 안 돼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했다. 쇠고기 광우병 괴담이 촛불 시위로 한창 번질 때였다. 당시 경제수석비서관이던 김중수 현 한국은행 총재도 물러났다. KDI(한국개발연구원) 출신인 김 수석이 왜 쇠고기 파동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비서실장이던 류우익 현 통일부 장관과 함께 정치적 희생물이 됐다. 후임은 경제 관료 출신인 박병원 현 은행연합회 회장이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늘 이런 방식으로 바뀌었다. 김대중 정권 때는 경제학자 출신인 김태동 경제수석이 돌연 물러나고 경제 관료 출신인 강봉균씨(전 민주당 의원)가 들어섰다. 취임한 지 석 달이 채 되기 전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첫 경제수석에 경제학자인 박승 중앙대 교수를 영입했지만 10개월 만에 문희갑 경제기획원 차관(전 대구시장)으로 교체됐다. 김영삼 대통령도 초대 경제수석에는 박재윤 서울대 교수를 임명했다. 그러나 박 수석이 겉돌고 있다는 말이 나돌더니 경제 관료 출신인 한이헌 공정거래위원장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역대 대통령의 첫 번째 청와대 경제수석은 모두 경제학 교수나 연구원 출신이었다. 번듯한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갖춘 인물들이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의 부족한 경제 지식을 감싸줄 '학문적 병풍'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첫 경제수석은 언제나 단명(短命)했다. 박재윤 수석의 재임 20개월이 역대 정권의 초대 경제수석 중 최장수 기록이다. 그리고 그들의 후임은 관료 출신이 맡는 인사 패턴이 매번 반복됐다. 관료 집단에 거부감이 강했던 노무현 대통령마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를 신설해 진보학자인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임명했다가 10개월 만에 관료 출신인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교체했다.
관료 출신 경제수석들은 대체로 권력자와 상대하는 처신술에 능숙하다. 자신이 권력자를 대신해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민첩하게 파악한다. 어떤 통로로 경제 부처나 재계에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해야 할지도 잘 안다. 경제학자 출신이 "그건 앞뒤 논리가 맞지 않습니다"며 3단 논법으로 설명하려고 덤빌 때 공무원 출신은 "그건 경제 논리에 맞지는 않지만 한번 챙겨보겠습니다"며 골칫거리를 깔끔하게 해치운다. 경제 현안에 정치적 해법을 작동시키는 솜씨도 뛰어나다. 경제수석을 지낸 어느 인사는 '대통령 앞에서 할 말, 안 할 말을 잘 가리고 결정이 내려지면 물불 안 가리고 처리하는 능력'을 경제 관료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반면 경제학자 출신은 '눈치 9단'의 순발력을 가졌다고 해도 추진력 결핍증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은 최고 권력자나 실세(實勢)에 밉보인 기업을 적당히 세무조사로 주무르며 골탕을 먹일 줄 모른다. 대통령이 애정을 표시하는 단체에 예산을 늘려주며 체면을 살려주는 기본기도 갖추지 못했다. 그들은 대개 눈치 없이 논리를 따지며 일 처리를 미적거리다 몇 달 만에 경제수석 자리에서 퇴출되고 만다.
역대 정권의 경제수석 인사를 통해 얻어진 진실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첫 경제수석으로 경제학자 출신을 선택하면 경제를 불황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보려고 작심했다는 뜻은 아니다. 대통령의 장식품으로서 모양새를 갖추려고 그런 인물을 선택했다고 보면 된다. 취임 후 몇 달 지나 권력층 내부에서 경제수석에 대한 불평이 커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인사(人事)를 비롯한 실세들의 갖은 민원과 청탁을 경제수석이 순탄하게 처리하지 못한 죄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
인수위 명단이 공개되면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을 맡거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인물 후보군(群)이 떠오를 것이다. 그중 누구는 장관이 되고, 누구는 경제수석으로 기용될 것이다. 이들을 보면 한국 경제의 5년을 얼추 짐작할 만하다.
대통령은 계약기간 5년짜리 시한부 권력자다. 최고 권력자의 경제정책을 이끌어갈 진용은 모양새보다는 실행력을 기준으로 짜되 이론가는 주변에 배치하면 된다. 다만 행동력을 갖춘 집단은 경제 관료만 있는 게 아니라 은행가나 기업인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혹독한 외환 위기를 겪고서도 1년이 더 지난 2009년 12월이 돼서야 국제경제보좌관을 임명했다. 한국이 수출로 그토록 많은 흑자를 내더라도 외환 파동을 거치고 나면 한꺼번에 털어먹는다는 21세기 경제의 기본 이치를 알지 못했다. 외환 위기로 두 번 급소를 얻어맞은 나라는 다음번 금융 위기 때 가장 노리기 쉬운 사냥감이 된다. 국제금융에 정통한 전문가야말로 한국 대통령에게는 항상 곁에 둬야 할 필수품이 됐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늘 이런 방식으로 바뀌었다. 김대중 정권 때는 경제학자 출신인 김태동 경제수석이 돌연 물러나고 경제 관료 출신인 강봉균씨(전 민주당 의원)가 들어섰다. 취임한 지 석 달이 채 되기 전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첫 경제수석에 경제학자인 박승 중앙대 교수를 영입했지만 10개월 만에 문희갑 경제기획원 차관(전 대구시장)으로 교체됐다. 김영삼 대통령도 초대 경제수석에는 박재윤 서울대 교수를 임명했다. 그러나 박 수석이 겉돌고 있다는 말이 나돌더니 경제 관료 출신인 한이헌 공정거래위원장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역대 대통령의 첫 번째 청와대 경제수석은 모두 경제학 교수나 연구원 출신이었다. 번듯한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갖춘 인물들이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의 부족한 경제 지식을 감싸줄 '학문적 병풍'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첫 경제수석은 언제나 단명(短命)했다. 박재윤 수석의 재임 20개월이 역대 정권의 초대 경제수석 중 최장수 기록이다. 그리고 그들의 후임은 관료 출신이 맡는 인사 패턴이 매번 반복됐다. 관료 집단에 거부감이 강했던 노무현 대통령마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청와대 정책실장 자리를 신설해 진보학자인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임명했다가 10개월 만에 관료 출신인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교체했다.
관료 출신 경제수석들은 대체로 권력자와 상대하는 처신술에 능숙하다. 자신이 권력자를 대신해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민첩하게 파악한다. 어떤 통로로 경제 부처나 재계에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해야 할지도 잘 안다. 경제학자 출신이 "그건 앞뒤 논리가 맞지 않습니다"며 3단 논법으로 설명하려고 덤빌 때 공무원 출신은 "그건 경제 논리에 맞지는 않지만 한번 챙겨보겠습니다"며 골칫거리를 깔끔하게 해치운다. 경제 현안에 정치적 해법을 작동시키는 솜씨도 뛰어나다. 경제수석을 지낸 어느 인사는 '대통령 앞에서 할 말, 안 할 말을 잘 가리고 결정이 내려지면 물불 안 가리고 처리하는 능력'을 경제 관료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반면 경제학자 출신은 '눈치 9단'의 순발력을 가졌다고 해도 추진력 결핍증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은 최고 권력자나 실세(實勢)에 밉보인 기업을 적당히 세무조사로 주무르며 골탕을 먹일 줄 모른다. 대통령이 애정을 표시하는 단체에 예산을 늘려주며 체면을 살려주는 기본기도 갖추지 못했다. 그들은 대개 눈치 없이 논리를 따지며 일 처리를 미적거리다 몇 달 만에 경제수석 자리에서 퇴출되고 만다.
역대 정권의 경제수석 인사를 통해 얻어진 진실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첫 경제수석으로 경제학자 출신을 선택하면 경제를 불황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보려고 작심했다는 뜻은 아니다. 대통령의 장식품으로서 모양새를 갖추려고 그런 인물을 선택했다고 보면 된다. 취임 후 몇 달 지나 권력층 내부에서 경제수석에 대한 불평이 커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인사(人事)를 비롯한 실세들의 갖은 민원과 청탁을 경제수석이 순탄하게 처리하지 못한 죄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
인수위 명단이 공개되면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을 맡거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인물 후보군(群)이 떠오를 것이다. 그중 누구는 장관이 되고, 누구는 경제수석으로 기용될 것이다. 이들을 보면 한국 경제의 5년을 얼추 짐작할 만하다.
대통령은 계약기간 5년짜리 시한부 권력자다. 최고 권력자의 경제정책을 이끌어갈 진용은 모양새보다는 실행력을 기준으로 짜되 이론가는 주변에 배치하면 된다. 다만 행동력을 갖춘 집단은 경제 관료만 있는 게 아니라 은행가나 기업인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혹독한 외환 위기를 겪고서도 1년이 더 지난 2009년 12월이 돼서야 국제경제보좌관을 임명했다. 한국이 수출로 그토록 많은 흑자를 내더라도 외환 파동을 거치고 나면 한꺼번에 털어먹는다는 21세기 경제의 기본 이치를 알지 못했다. 외환 위기로 두 번 급소를 얻어맞은 나라는 다음번 금융 위기 때 가장 노리기 쉬운 사냥감이 된다. 국제금융에 정통한 전문가야말로 한국 대통령에게는 항상 곁에 둬야 할 필수품이 됐다.
송희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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