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을 만났을 때 그가 물었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아세요?" 나는 현충사를 떠올리며 "충남 아산 아니냐"고 했다. 그는 "그게 아니라 서울, 그것도 도심인 중구 인현동"이라고 했다. 을지로와 충무로 사이다. 그 뒤 나도 여러 사람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 아산이라고 답했고, 더러는 충무(통영), 아니면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이라고 맞힌 이는 거의 없었다.
충무공은 1545년 3월 8일(음력) 한성 건천동에서 출생했다. 지금의 인현동1가 31-2 자리다. 그는 10대 중반에 아산 외가로 갔다가 22세에 돌아왔고, 이후 전시(戰時)를 제외한 생의 대부분을 한성에서 보냈다. 두 차례 백의종군을 결심한 곳도 한성이었다.
'서울 이순신'에 대한 흔적은 1985년 명보극장 앞에 설치된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忠武公 李舜臣 生家址)'라고 쓴 표석이 사실상 전부다. 중구청이 7년 전부터 탄생일에 여기서 다례를 연다. 아산과 통영을 비롯해 그가 흔적을 남긴 전국 곳곳에서 다양하고 규모 큰 행사들이 치러지는 데 비하면 조촐하다. 서울은 600년 고도(古都)답게 숱한 인물이 태어났다. 청계천에서 남산 사이만 해도 허균·임경업·박팽년·윤선도·류성룡·한명회 등의 생가 위치가 확인된 상태다. 하지만 대부분 '죽은 기록'이다.
올해 한국에 온 외국인이 10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5년 동안 평균 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정부는 다음 목표를 2020년 2000만명으로 잡았다. 일본인의 꾸준한 증가, 경제성장에 힘입은 중국인의 급증, 한류(韓流) 인기를 감안하면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관광의 질(質)이다. 한국관광공사 조사를 보면 작년에 관광객의 80% 이상이 서울을 다녀갔다. 주요 방문지 1~3위는 명동(67%), 동대문시장(56%), 남대문시장(46%)이다. 주목적이 쇼핑과 식도락인 것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반면 우리가 외국에 가는 주목적은 자연경관과 명소 탐방이다. 셰익스피어, 에펠, 로미오와 줄리엣, 워싱턴과 링컨, 서태후 등 명소마다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 와서 사람 얘기를 듣고 감동하고 기억하는 외국인은 드물다. 내세울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발굴과 스토리텔링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한국 관광에서 쇼핑과 식도락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한류도 시들해지면 어떻게 될까.
관광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수익은 물론 국가 브랜드와 민족 자긍심 향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를 실현하려면 호텔 객실 증설만큼이나 새로운 관광자원 발굴이 시급하다. 특히 서울 도심에 숨은 역사문화 자원부터 개발할 필요가 있다. 중구를 예로 들면 충무공기념공원, 주자소박물관, 서소문성지 역사문화공원, 혜민서 기념광장 등 15가지 사업을 선정해 관광 명소화(化)를 추진하고 있지만 재원이 부족해 속도를 내기 힘겹다. 새 정부는 할 일이 아주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에도 눈길을 주었으면 한다.
이충일 도시문제 전문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28/20121228022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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