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죄송해요 아빠. 한 남자가 우리를 죽이려 해요…저는 엄마를 사랑하지만 뇌종양과 싸우시는 용감한 아빠를 더 사랑해요… 만약 아빠가 병을 이기지 못하면 저는 천국에서 아빠를 뵐 수 있을 거예요….” 이번에 28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사고로 숨지기 직전 엘리라는 소녀가 남겼다는 편지이다. 가슴 저미는 이 글을 트위터에 올린 사용자는 “끝없이 리트윗을 할 만하다”고 적었다. 순식간에 4000여 명의 팔로어가 몰려들었다.
“사랑해요 엄마…착한 아들이 못 되어서 죄송해요…천국에서 엄마를 사랑할게요.” 이 글을 트위터에 퍼뜨린 사용자는 “무고하게 숨진 어린이가 교실에 살인자가 들어서기 직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찢어진 종이에 연필로 겨우 눌러 쓴 이 편지의 사진은 긴박했던 사고 순간을 그대로 말해 주는 것 같았다.
SNS에 ‘묻지마 가짜 정보’ 범람
그러나 이 모두 가짜였다. 글에 사용된 단어나 표현이 영국식 영어일 뿐 아니라 도저히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참혹한 비극을 가지고 천연덕스럽게 장난질하는 트위터 이용자들의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행위에 분노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광범위하게 긴급 뉴스를 퍼뜨리는 소셜 미디어가 가장 믿지 못할 소식통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소셜 미디어 재앙.’
인류의 삶에 또 하나의 혁명을 가져다준 뉴미디어를 미국인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도처에 있다.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무조건 소셜 미디어로 달려가야만 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거부할 수 없는 소셜 미디어의 힘을 절감하면서도 벌써 그 부작용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인기작가도 법대교수도 동참
허리케인 샌디와 같은 대재앙 때 소셜 미디어가 유포한 가짜 정보는 자연재해보다 더 큰 위험이었다고 한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멀쩡한 병원이 불타고 있다고 하는가 하면 911이 마비되었으니 더는 전화를 걸지 말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자연재해 때 소셜 미디어의 허위 정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소셜 미디어는 미국 정치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만약 버락 오바마가 지면 대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만약 오바마가 지면 밋 롬니를 암살할 것이다.” 온갖 극단적 소문들이 소셜 미디어를 타고 퍼져 나갔다. ‘퓨연구소(Pew Research Center)’는 선거 기간 내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라온 후보자들에 대한 글들 대부분이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퓨연구소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가운데 트위터가 가장 거친 곳이었다. 트위터에 오른 부정적 내용의 양은 페이스북 등 다른 소셜 미디어는 물론이고 신문과 방송 등을 압도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도 소셜 미디어 재앙으로 큰 상처를 입고 혼란을 겪었다. 트위터 공간에서 온갖 허위 사실이 유포되고, 사생활 침해가 저질러졌다. 돈을 받고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여론조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주장에서부터 선거 부정에 개입됐다며 남의 신상명세를 마구 올리고 퍼뜨리는 일까지 패악질은 끊이질 않았다. 여기에는 이른바 인기 작가도 법대 교수도 동참했다.
우리의 인터넷 문화는 거칠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하다. 소셜 미디어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지식도 양심도 정치 목적 앞에서 다 던져 버리고 마구 헛소문을 내지른 뒤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를 보이는 행위와 참혹한 어린아이의 희생을 가지고 장난치는 행위가 무엇이 다른가. 강한 민주주의는 사려 깊고 예의 바르며 시간이 걸리는 다면의 대화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많은 소셜 미디어 이용자가 모르고 있다.
현재 전 세계의 페이스북 이용자는 10억여 명. 페이스북은 한 해 4조 원가량을 벌고 있다. 5억여 명이 이용하는 트위터의 한 해 수입은 1조5000억 원. 2500만 명의 마이스페이스는 1조2000억 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공장 하나 없이 웹 2.0만을 바탕으로 해서 벌어들이는 이들의 수입은 그야말로 천문학적 액수다. 그들의 수입 가운데는 광고 등을 통해 우리나라 이용자들이 가져다주는 돈도 상당할 것이다.
그뿐 아니다. 인터넷 혁명,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난 후 그 발명국인 미국에 지불하는 이용 대가는 실로 적지 않다. 가령 연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등을 구독하기 위해 한 해 수십억 원을 미국에 지불하는 대학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대학이나 연구소, 정부 기관, 기업들이 데이터베이스나 e-저널 구독을 위해 들이는 전체 액수는 해마다 수천억 원에 이를 것이다.
미국인들은 ‘소셜 미디어 재앙’이라고 아우성이지만 똑똑한 젊은이들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엄청난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과연 우리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미국에 큰돈을 벌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로 선거판을 흐리는 싸움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싱가포르의 총리였던 리콴유(李光耀)는 “한 사회의 최상위층 3∼5%만이 인터넷에서 무제한의 언론 자유와 이념 충돌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국민의 능력에 대한 무자비한 폄훼였다. 그의 생각은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사치라는 독재자들의 일반적 경향을 띠고 있다. 리콴유는 그런 생각으로 싱가포르의 언론 자유를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가 다른 나라의 인터넷 상황, 작금의 소셜 미디어 이용 행태를 본다면 자신의 선견지명이 옳았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사려깊고 예의바른 것
리콴유의 발언이 한국의 인터넷, 소셜 미디어 상황을 냉철하게 진단하는 금언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이번 대선을 지켜보면서 심각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언론 자유가 극소수의 전유물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뉴미디어의 발달로 표현의 기회가 확대되고 참여 민주주의가 확산되었을 때 오히려 그 자유를 남용하거나 오용하고 서로 적대시하는 분열과 갈등에 빠져 버렸다. 자유를 지키는 주체는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번 대선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좀 더 성숙한 국민의식이 절실하다는 무거운 숙제를 또 한 번 우리에게 주었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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