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4. 02:23

베이징총국 사무실에서 차로 1~2분만 가면 사회주의 시절 베이징의 전형적인 주택가가 나온다. 주셴차오(酒仙橋)라고 서민들 동네다. 2차선 도로 양쪽엔 60년 넘은 밑동 굵은 가로수들이 마을의 연륜을 보여준다. 허름한 5층짜리 아파트들이지만 잘 가꾸고 살아 나름 운치도 있다. JTBC의 한족 카메라맨은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로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신기해한다. 좁아서 차가 다니기 어려운 길이 많아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이고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느린 편이어서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다가오는 박물관 같은 동네다. 이런 곳을 고층의 주상복합아파트들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재개발 광풍 앞에 삭제되고 있는 사회주의를 보는 느낌이다.

20년 가까이 베이징에서 활동한 798예술특구의 ‘포스 갤러리’ 이동임 대표는 80년대 처음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편하고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고 아련한 기억을 더듬는다. 식용유표·쌀표·돼지고기표를 들고 서너 시간씩 줄을 서서 배급을 받았지만 없이 사는 것을 비교당하지 않는 균일한 사회였다. 이 대표는 사람들 표정에 넉넉한 인심이 흐르는 게 좋아 이곳이 낯선 땅 같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말에 무릎을 쳤다. 94년 베이징에서 연수를 할 때만 해도 어쩐지 우리나라 70년대 느낌이 들어 푸근했던 기억이 새록했다. 하지만 개혁·개방 30년간 광속으로 변하는 사회, 부동산 폭등과 고물가에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의 충격으로 그런 표정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 소득불평등 수준이 청조 말 태평천국의 난 때와 비슷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생이 팍팍해졌다.

지난 20년간 초고속 성장으로 중국에 돈벌이의 광풍이 일었다. 남다른 기회 포착 능력을 연줄과 엮어 부자가 된 사람들이 쏟아졌다. 느닷없는 경쟁 시스템에 낯설어하던 사람들은 ‘눈이 빨개지는 병(紅眼病)’에 걸려 질투심을 불태웠다. 국가와 인민공사가 책임지던 의료와 노후복지 등 사회 안전망이 급속히 해체됐다. 이젠 그 부담을 기업이 떠맡고 있다. 요즘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며 팔목 비틀듯이 외자기업들도 돈을 더 풀라고 볶아댄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의 CSR 담당자들은 연말이 다가오면 어떻게 표나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포장할까 머리를 싸맨다고 한다.

민간 기업을 닦달한다고 구멍 난 복지시스템을 메울 수는 없는 일이다. 기업을 통한 복지를 하려면 몸통인 14만5000개 국유기업부터 손대야 한다. 저금리 대출과 세제·정책 지원 등 각종 특혜를 독식하면서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중국의 국유기업 개혁이 먼저다. 이를 통해 시장이 기업하기 좋은 생태계로 바뀌게 되면 고용을 통한 복지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국유기업 수술은 중국 경제에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도 청신호다. 수술대 앞에선 시진핑(習近平)에게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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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