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국인이 회사에서 부총경리(우리나라로 치면 부사장)로 승진하고 신이 나서 아내에게 자랑을 했다. 아내는 기뻐하면서도 “그런데 요즘에는 부총경리가 너무 많아요. 내가 다니는 슈퍼마켓에도 봉지를 나눠주는 부총경리가 있어요”라는 말로 남편의 김을 뺐다. 화난 남편은 그럴 리가 없다며 그 슈퍼마켓에 전화를 해서 ‘봉지 담당 부총경리’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전화기 저편에서 “비닐봉지를 나눠주는 부총경리 말씀이십니까, 종이봉지를 나눠주는 부총경리 말씀이십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중국 우스갯소리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리’라는 것은 늘어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공산당 18차 당대회에서 중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가 원래 9개에서 7개로 줄어든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애초 7개로 다시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장쩌민 등 ‘올드보이’들이 총출동해 자리다툼을 벌이면서 9개로 유지될 수도 있다는 막판 분석이 쏟아지던 참이었다. 하지만 15일 신임 상무위원 기자회견장에는 시진핑을 선두로 단 7명만이 등장했다. 새로 선출된 상무위원 분포를 보면 공산당 내 3대 파벌 중 태자당이 3석, 상하이방이 2석, 공청단이 2석을 차지했다. 상하이방과 공청단은 1석씩 더 달라고 떼를 쓰고 싶었을 것이다. ‘내 새끼들’에게 한자리씩 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온갖 막후작업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리는 예정대로, 예상된 사람에게 갔다.
후진타오의 군사위원회 주석직 이양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후진타오가 자리를 넘겨주지 않고 막후에서 더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더라도 뒤에서 욕할 사람은 많지 않던 터였다. 그 또한 국가주석직에 오른 10년 전에 2년간이나 장쩌민이 군사위 주석 자리를 유지하던 것을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후진타오는 깔끔하게 시진핑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존경받는 원로로 남는 길을 택했다.
예상외로 오바마의 낙승으로 끝난 미국 대선에서도 곱씹어볼 만한 장면이 많다. 무엇보다 ‘꼴통’의 퇴조가 눈에 띈다. 밋 롬니의 패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티파티 계열의 보수 정치인인 폴 라이언을 부통령 후보로 뽑은 것이 결정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상·하원 선거에서도 여러 꼴통들이 퇴장했다.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도 신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는 말로 구설에 오른 공화당의 리처드 머독이 대표적이다. 첫 동성애자 상원의원인 태미 볼드윈, 온라인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기는 열혈 게이머 콜린 러호비치의 상원의원 당선 등도 미국에 부는 새로운 변화를 짐작게 한다. 젊은 여성과 유색인종의 높은 투표율을 보면 이제 ‘수구꼴통’들이 미국의 대권을 잡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비록 대선 때문에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지만 같은 날 진행된 주민투표에서 워싱턴주, 메인주 등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것도 큰 진전이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중국, 이른바 G2는 내부적으로 잠재해 있는 수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이번 권력교체 시기에 전세계에 ‘한 수’를 보여줬다. 이들이 세계의 패권을 놓고 다툴 수 있는 저력의 근원 말이다. 그것은 바로 합의와 승복, 그리고 변화다.
한국 대선이 이제 꼭 한달 남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에서 우리는 과연 한 수를 보여줬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도처에 꼼수와 아마추어리즘만 판친다. 말을 조변석개로 갈아치우는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권의 단일화 협상은 순간순간이 살얼음판이라 조마조마해서 못 보겠다. 우리도 이제 뭔가 자랑할 만한 한 수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형섭 국제부 기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11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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