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특징을 나타내는 여러 경제·사회지표들을 시계열적으로 놓고 보면 2012년과 2017년의 대선이 엄청난 중요성을 가진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지금부터 10년이야말로 향후 수십년간 한국의 운명을 가를 전환의 시기이고, 그래서 우리는 두 번의 진정한 민주정부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 실패할 경우 예상되는 일들은 이런 것들이다.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 ‘시장에 의한 사회의 포획’은 거의 완결단계에 이를 것이고, 사람들은 무한경쟁에서 매번 승리함으로써 제자리에 있거나 아니면 뒤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고령화로 인해 세금 내는 사람은 줄어들고 부양받을 사람은 늘어나는 인구구조의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약 10년 뒤다. 제대로 된 한국형 복지국가의 틀을 만들 유일한 기회가 지금부터 10년인데, 복지 포퓰리즘으로 나라 망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이 일을 해낼 리는 만무하다. 세대 갈등은 세대 전쟁으로 비화할 것이다. 한국의 2030세대는 심각한 세대 차별을 겪고 있고, 이번 대선에서 세대별 지지후보는 40대를 변곡점으로 해서 뚜렷하게 갈린다. 만약 2030세대의 미래가 50대 이상의 표심에 의해 선택‘당한다면’ 10년 후 그들은 자신들의 우울한 현재를 기어코 선택해주었던 선배들을 힘들여 부양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인 조건들이 지금보다 훨씬 나빠지기 때문에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도 훨씬 적어질 것이다. 한국 사회가 가진 희망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두 번의 진정한 민주정부를 필요로 한다.
진정한 민주정부란 개혁과 진보의 두 바퀴로 굴러가는 정부이다. 개혁이란 투명성과 효율성, 그리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신뢰가 핵심이다. 진보란 다른 무엇보다도 국가가 국민 전체의 삶을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의 뿌리인 노동을 정당하게 대우하고, 언론과 사상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하며,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이 다시 한번 도전하여 공동체에 기여할 기회를 가지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진보이다. 개혁과 진보가 두 개의 바퀴가 되어 굴러가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정권교체가 된다 하더라도 다른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지 않는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진보된 세상을 만들고, 투명하고 효율적인 개혁을 통해 그 달라진 세상에 대한 신뢰를 얻어내고, 그만큼의 신뢰를 자산으로 삼아 또 조금 더 진보된 세상을 만드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어야 비로소 세상이 달라진다. 그래서 개혁과 진보는 함께 가야 하고, 신뢰가 없으면 세상의 진보도 없다.
안철수 현상이 처음 등장할 무렵인 2011년 10월30일치 <한겨레> 보도를 보면 정치세력 선호도에서 한나라당 40.0%, 제3세력 39.3%, 민주당 11.1%라는 결과가 나왔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안철수를 비롯한 제3세력이 민주당보다 훨씬 더 개혁적이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개혁의 내용을 이루는 투명성과 효율성, 그리고 신뢰는 문재인보다 안철수의 자산이다. 집권 경험과 제1야당이라는 제도적 자산은 문재인의 것이다. 안철수의 개혁과 문재인의 제도적 자산이 합쳐질 때 비로소 한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진보의 내용을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실패한다면 희망의 크기가 훨씬 작아진 2017년은 두 사람에게도, 혹은 제3의 후보에게도 한층 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남아있는 유일한 과제이자 유일한 희망은 두 사람의 지지층이 화학적 결합을 완결하는 것이다. 우리는 두 번의 민주정부를 필요로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33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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