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4. 12:06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심하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얘기다.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집권여당 후보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어린 나이에 청와대에 들어갔던’ 사람이다. 전직 대통령의 딸이다. 품격이 있어야 한다. 그의 입에서 그렇게 강퍅한 표현이 나올 줄은 몰랐다.

“안철수 후보가 구태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 구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짧은 두 마디지만,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지지층의 틈을 벌리려는 정략적 의도가 번뜩인다. 불과 이틀 전 방송기자클럽 토론에서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 “현실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을 하는데 해결책은 국민들께 물어봐야 한다고만 한다. 민생위기와 세계경제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이제는 안철수가 쓰러졌으니 문재인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한 태도 변화는 그렇다고 치자. 문재인 후보는 이제 박근혜 후보의 경쟁자다. 12월19일 둘 중 한 사람이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서로 품위를 지키며 예우해야 한다. 포용과 아량은 보수의 기본 덕목이다. 더구나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구태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집권 전인데도 박근혜 후보와 가까운 인사들이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거나 기소되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안철수 후보의 좌절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저를 포함해 기존 정치인들이 잘못해서 나타난 것이 안철수 현상이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겸허히 수용하겠다. 앞으로 문재인 후보와 당당하게 정책 대결을 펼치겠다.”

 

오히려 문재인 후보가 그와 비슷한 말을 했다. 25일 후보등록 기자회견에서다.

“이제 박근혜 후보님과 일대일 맞대결 구도가 됐는데 정말 정정당당하게 좀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말씀을 드린다.”

누가 보수 정당의 후보인지 헷갈린다. 박근혜 후보는 도대체 왜 그렇게 살벌한 것일까? 새누리당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온화한 겉모습과 달리 가슴속 한켠에는 적의가 가득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감사에 익숙하지 않다. 특히 자신과 가족, 측근들에 대한 비판이나 공격을 참지 못한다. 일종의 피해망상증이다. 보좌진이나 친박 인사들도 일단 ‘내 편’이라고 판단되면 무조건 감싼다. ‘의리가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라는 표현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박근혜 후보가 읍참마속을 한 일이 있던가? 없다. 나이가 12살이나 많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꿇어앉히기 위해 ‘부하’ 9명을 데리고 출동한 ‘조폭 누님’ 같은 행태도 그런 증상의 일종일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재벌 로비’ 발언으로 발끈했다고 한다. 권력자의 피해망상은 독선으로 표출된다.

 

옛날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바로 그랬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조금치도 인정하지 못했다. 야당을 적으로 대했고 빨갱이로 몰았다. 권위에 도전한 여당 국회의원들조차 중앙정보부를 시켜서 두들겨팼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긴 할까? 장관들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얘기를 꺼낼 수 있을까? 걱정이다.

 

그래도 박근혜 후보 개인의 자질은 이명박 대통령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다. 박근혜 후보는 그 나름대로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다.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공과 사를 구분할 줄도 아는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은 혼자 할 수 없다. 박근혜 후보의 진짜 문제는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괜찮은 사람들이 이명박 후보 쪽에 줄을 섰다. 지금 박근혜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괜찮지 않은’ 사람들이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리와 권력에 대한 욕심에 눈이 번들거린다. 공인 의식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이 사람들이 정권 실세가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말 걱정이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23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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