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4. 11:53
[S라인]메이저리그 아시아 선수에 스민 오리엔탈리즘, 고국에서도 확대재생산 ‘모범 소수자’ ‘열등한 신체’ 환상 넘어 ‘류현진이기 때문에’ 보아야

 

올해까지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류현진(25)은 내년에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을 전망이다. 미국 서부의 명문 구단 LA 다저스는 11월11일 한화에 2573만7737달러33센트를 제시하며 류현진에 대한 독점교섭권을 따냈다. 류현진의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와의 쉽지 않을 연봉 협상이 기다리고 있지만, 류현진이 내년 다저스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은 90% 이상이다.

 

대륙 원정, 아시아인에게 무리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는 1994년 다저스에서 데뷔한 박찬호다. 류현진이 데뷔에 성공한다면 박찬호 이후 13번째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된다. 한국 프로야구를 거친 선수로는 2000년 이상훈(보스턴 레드삭스), 2005년 구대성(뉴욕 메츠)에 이어 세 번째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이라는 기준에서는 류현진이 첫 번째다.

한국 언론이 애용한 박찬호의 별명은 ‘코리아특급’이다. 이 별명에는 유래가 있다. 미국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1994년 3월호에서 톰 버두치 기자는 다저스 스프링캠프에 참가한 박찬호에 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의 제목은 ‘오리엔탈 익스프레스’(Oriental Express)였다. 정확히는 박찬호뿐 아니라 시애틀 매리너스의 일본인 투수 맥 스즈키를 함께 다룬 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박찬호의 이미지는 ‘미지의 선수’였다. 버두치는 당시 논란이 됐던 박찬호의 투구폼에 대해 “누구도 (그의 투구폼을) 손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저 이국적일(foreign) 뿐이다”라고 썼다. 오늘날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를 보는 건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달랐다. 박찬호 이전에 메이저리그에서 뛴 한국인 선수는 없었다. ‘아시아인’으로 범위를 넓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메이저리그의 상식은 ‘아시아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없다’였다. 여기에는 ‘아시아인은 신체적으로 열등하다’는 편견이 깔려 있었다. 박찬호는 185cm, 스즈키는 191cm 장신에 모두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였다. 하지만 체격이 좋은 두 선수에 대해서도 ‘대륙을 오가는 162경기 스케줄은 무리일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메이저리그 구단 프런트에서 일했던 대니얼 김은 “여객기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는 메이저리거에게 일정은 큰 문제가 아니다. 아시아 출신 선수에게 장거리 이동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아직 남아 있는 건 우스운 일”이라고 말한다.

 

인종보다 경제력과 체육정책


미국에서 아시아인은 ‘모범 소수자’(Model Minority)로 불린다. 근면하고, 직업윤리가 투철하며, 미국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의미다. 히스패닉을 제외한 미국 백인의 대학 진학률은 28%다. 반면 한국계는 51%, 중국계는 50%, 일본계는 44%, 대만계는 74%다. 하지만 어떤 종류이든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은 위험하다. 중국계 작가 필립 추는 “나는 중국계 미국인의 학문적·경제적 성취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결국 우리도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누구는 대단하고, 대다수는 평범하며, 일부는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미디어는 우리를 슈퍼맨, 또는 인간 이하의 존재 중 하나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머리 좋은 아시아인’이라는 편견은 ‘하지만 신체적으로는 열등하다’는 또 다른 편견과 쉽게 결합된다. 미국의 아시아계 인구는 4.8%지만 대학 스포츠나 메이저 프로스포츠에서 뛰는 아시아계 선수는 극소수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대다수 아시아계 선수는 자국 프로 및 아마추어 리그에서 뛰다 이적했다. 사회학자 마이클 구라트는 2006년 발표한 논문에서 “아시아계 10대 남성들은 다른 인종집단 못지않게 스포츠를 접한다. 하지만 스포츠 광고에서 아시아계가 등장한 비율은 0.3%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스포츠에서 인종적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성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요인은 아니다.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지역 국가가 올림픽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의 경제력과 체육 정책이다. 인종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동아시아 국가가 올림픽에서 따내는 메달 수가 이를 입증한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데뷔, 그리고 이듬해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가 불러일으킨 ‘노모마니아’는 적어도 메이저리그 투수 포지션에 관한 한 오랜 인종적 편견을 깼다. 하지만 편견은 또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된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도키하루는 1999년 <스포츠와 사회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노모와 또 다른 일본인 투수 이라부 히데키를 미국 언론에서 어떻게 다뤘는지를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노모는 전형적인 ‘모델 마이너리티’로 표현됐다. 반면 높은 기대와 몸값에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이라부에 대한 기사는 ‘아시아인이 침략한다’는 고전적인 황화론 문법을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을 국가와 등치시키는 사고

 

미국 사회의 아시아 선수에 대한 편견이 그 선수의 고국에서 확대재생산된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1999년 박찬호가 LA 에인절스 투수 팀 벨처에게 발차기를 한 사건, 2003년 김병현의 손가락 욕설 사건은 미국 언론이 아닌 한국 언론에서 더 비중 있게 비판됐다. 한국인 선수에게 기대되는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이유였을 것이다. 류현진은 재능이 있고 성실한 선수다. 하지만 내년과 그 이후 류현진이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그가 ‘아시아, 또는 한국 출신 선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류현진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민규 <일간스포츠> 기자

 

 

http://h21.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333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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