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들이 읽는 책은 그들이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말해 준다. 그래서 최근 중국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신임 상무위원들이 돌려 읽었다는 한 권의 책은 놀라움을 준다. 그 책은 다름 아닌 프랑스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알렉시 드 토크빌의 ‘구체제와 프랑스 혁명’이다.
왜 중국의 새 지도부는 혁명에 대한 외국의 고전을 돌려본 것일까. 답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프랑스 혁명이 부르봉 왕가를 끝냈듯이, 이들은 중국 공산당을 위협할 수 있는 급박한 위기를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의 징후는 이미 숨길 수 없는 상태다. 중국의 자본 유출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중국 백만장자의 절반이 중국을 떠나고 싶어 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의 열망이 커지는 가운데 시진핑(習近平)은 중국 정치개혁과 자유주의의 아이콘이었던 후야오방(胡耀邦)의 아들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향후 중국이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은 터무니없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새로운 동향을 보면, 눈에 띄진 않지만 중국 공산당과 시민사회 사이에서 힘의 균형 축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한 비즈니스맨, 존경받는 학자, 저널리스트, 유명한 작가와 영향력 있는 블로거 등의 출현은 이 같은 경향 중 하나다. 중국 공산당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지금까지 사회 엘리트들을 당에 끌어들이는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최근 후수리(胡舒立·비즈니스 잡지 창립자) 판스이(潘石屹·부동산 개발업자) 위젠룽(于建嶸·학자 겸 사회운동가) 우징롄(吳敬璉·경제학자) 한한(韓寒·유명 블로거)과 리청펑(李承鵬·작가) 등 성공한 이들은 당에 소속되지 않은 채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덕분에 이들은 사회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영웅이 되고 있다. 수천만 명의 웨이보 팔로어가 이들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중국 공산당은 분명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공산당의 도덕적 권위뿐 아니라 정치권력의 독점도 무너질 위험에 처해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공산당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면서 야기됐다. 물론 중국 공산당의 불투명성이나 진실을 호도하는 행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련의 사건이 일어남에 따라 당에 대한 일말의 신뢰까지 사라졌다. 한 예로, 중국에서는 2008년 오염된 아기 이유식이 유통됐다. 중국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언론통제를 했고 결국 많은 유아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중국인들이 정부 당국을 더욱 의심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신뢰를 잃은 체제에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만일 중국 공산당이 대항 세력이 응집하는 것을 분산시키고 조직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독재는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 공산당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사실상 조직화된 반대 세력의 움직임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중국 사회학자들은 폭동과 집단시위, 파업이 10년 전에 비해 네 배나 늘었다고 추정한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자의 확산은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제 분노한 시위대에게 밀리고 있다. 지난해 광둥(廣東) 성 우칸(烏坎)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 다롄(大連)과 스팡(什n) 치둥(啓東)에서 일어난 환경 관련 시위는 중국 정부의 패배를 보여준 사례다.
더이상 공포정치를 유지할 수 없다면 중국의 새 지도자들은 당의 미래에 위협을 느낄 것이다. 침묵의 정치혁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이러한 징후에 주의를 기울일지, 프랑스 군주제처럼 혁명에서 살아남지 못할 방식을 유지하려고 할지 궁금하다.
민신페이 미국 클레어몬트 매케나대 행정학 교수
http://news.donga.com/3/all/20121117/50909078/1
'교양있는삶 > As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트북을 열며] 중국 정치에 자꾸 눈이 가는 이유 (0) | 2013.01.04 |
---|---|
[한겨레 프리즘] G2의 품격 / 이형섭 (0) | 2013.01.04 |
[시론] 무역 파트너 1위는 중국, 2위는? (0) | 2013.01.04 |
[권태선 칼럼] 새정치선언과 민주주의의 성숙 (0) | 2013.01.03 |
[특파원 칼럼/배극인]美 대선결과와 일본의 반전카드 (0) | 2013.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