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3. 16:40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게 일본에 더 유리한가.’

미국 대선을 앞두고 최근 몇 주간 일본 인터넷을 달군 논쟁이다. 오바마 지지가 좀더 많았다. 오바마 취임 초기 미일동맹에 균열이 있었지만 어릴 때 모친과 함께 가마쿠라(鎌倉)를 여행하며 녹차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던 경험을 소개하는 등 친근감을 보인 것도 호감도를 높였다. 롬니는 “잘 모르겠다”는 평가가 많았다. 일본을 언급한 적도 거의 없고 인연도 없다는 것이다. 선거 기간에 그나마 내놓은 발언은 “우리는 일본이 아니다”였다.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처럼 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일본의 기대대로 오바마 대통령은 7일 재선에 성공했지만 일본은 기대보다 근심이 많은 표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과 중남미계, 여성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지지로 당선됐다. 선거 결과 드러난 미국의 이런 정치 지형은 과거사를 부정하고 보수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에 유리할 게 별로 없다. 일본의 한 정치학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만 하더라도 미국이 일본 편을 들어줄 리 없다. 이번에 미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20명, 하원의원 435명 가운데 81명이 여성 의원이다”고 말했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차기 주일 미국대사 유력 후보라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도 일본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그는 일본 정부 인사들이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부정하는 것에 대해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고 지난달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일본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불안감도 읽힌다. 요시자키 다쓰히코(吉崎達彦) 소지쓰종합연구소 부소장은 “미국에서는 이미 대일 문제가 이슈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고 말했다. “얼굴을 익힐 만하면 바뀌는 일본 총리들과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미국이 기대 수준을 대폭 낮췄다는 보도도 나온다. 일본은 오바마 정권 출범 이후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 등 미국의 핵심 이익과 직결되는 각종 협력 사안에서 미국의 불신을 자초해 왔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미심쩍어하는 분위기다. 선거 기간 오바마와 롬니 두 후보가 경쟁하듯 중국 때리기에 나섰지만 이는 선거용일 뿐 무게중심은 협력에 가 있다는 게 일본의 관측이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미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면서도 영유권에 대해서는 엄정 중립을 선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허용 범위’를 시험하듯 센카쿠 도발을 일상화하고 있다. 일본의 항의는 안중에 없다는 태도다.

일본에서는 미국의 덫에 걸려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은 일본이 (자국의) 품을 떠나지 못하도록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 하나씩 영토분쟁을 남겨뒀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1950년대 옛 소련과 북방영토 2개 섬 반환 협상에 나서자 “그렇다면 오키나와를 포기하라”며 협상을 중단시킨 바 있다.

일본의 불안감은 역설적으로 미국 매달리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동시에 핵무장과 군사력 강화 등 자구책 마련 수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평화헌법을 고치고 군비를 아무리 증강해도 이웃 나라들과의 불신이 남아 있는 한 근본적인 불안은 해소될 수 없다. 국제적으로 갈수록 고립될 뿐이다. 다행히 일본에는 남은 반전(反轉) 카드가 있다. 과거사를 청산하고 아시아의 친구로 돌아오는 것이다.

 

 


배극인 도쿄 특파원

 

 

http://news.donga.com/3/all/20121112/507790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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