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2.2%, 내년 성장률은 3.0%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얼마 전 한국은행이 하향 조정한 전망치보다 더 낮은 것이다. 지난 3분기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1.6%에 그쳤다. 과거에도 우리 경제가 이 같은 저성장을 기록한 적이 있으나 당시에는 오일쇼크, 외환위기, 카드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 뚜렷한 계기가 있었다. 지금 상황은 결정적 계기도 없이 서서히 성장이 주저앉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는 이제 저성장 시대로 들어서는 것인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최근 우리 경제의 저성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추세적 성장률 하락이다. 우리 경제는 한창 활기차던 청장년의 시대를 지나 이미 초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 시대 8.7%, 김영삼 시대 7.4%, 김대중 시대 6.0%, 노무현 시대 4.3%, 이명박 시대 3.0%라는 숫자가 이런 추세적 하락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 공급과 투자 증가율이 점점 둔화돼 현재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이미 4% 아래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순환적 요인에 의한 저성장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침체를 지속해 왔다. 미국·유럽에서 위기가 발생한 것은 가계·금융기관·국가의 부채가 과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이들의 부채 감소와 대차대조표 조정이 일어나야 하나 이것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팽창적 재정, 통화정책으로만 위기를 극복하려 했지 근본적 구조조정은 외면함으로써 앞으로 상당기간 부채 조정이 더 지속돼야 하고 따라서 회복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위기 직후 세계경제를 견인했던 중국마저 최근 성장률이 크게 내려앉아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저성장을 면키 어렵게 됐다.
셋째, 세계경제의 구조적 성장률 하락이다. 세계경제의 고성장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분석이 최근 나오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성장에 익숙해 있지만 과거 세계경제는 정체를 지속했던 기간이 훨씬 길었다. 지난 약 200년간의 높은 성장세는 경제사적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예외다. 노스웨스턴대의 로버트 고든 교수는 세계경제가 가장 빠른 성장을 지속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25년간이며 이는 19세기 초 증기기관 발명에 의한 1차 산업혁명보다 전기, 내부연소엔진의 발명, 그리고 상하수도를 실내로 끌어들여온 2차 산업혁명의 효과가 시차를 두고 인간생활에 훨씬 더 큰 변화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 때문이란 분석을 최근 내놓았다. 이에 비해 주로 정보기술(IT) 분야에 국한된 3차 산업혁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약 10년간 생산성과 성장률을 반짝 높였으나 2차 산업혁명의 효과에는 훨씬 못 미친다고 한다. 상하수도 없는 집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페이스북 없이 살 것인지를 물으면서 그는 어느 쪽이 인간생활에 더 큰 폭의 변화를 가져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혁신과 발명의 개척지가 줄어들면서 이제 세계경제의 성장세는 서서히 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내·외부적 요인에 의해 지금과 같은 저성장이 지속된다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양극화, 가계부채 등 내부적 문제가 점차 악화돼 결국 경제사회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큰 과제다. 두 가지 측면에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경제가 잠재성장률 이하로 성장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막아야 한다.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를 일단 부양할 필요가 있다. 지금 여야 대선후보가 모두 복지지출을 늘리겠다고 하니 이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증세를 통해 복지지출을 확대하더라도 재정 승수효과에 의해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보육, 간병, 의료 등 복지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를 늘려 복지전달체계와 소득분배를 개선하게 되면 사회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의 빠른 하락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광범위한 제도적·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 임금체계의 개선, 정년 연장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를 유도해 노동 공급 하락을 막고, 교육 개혁과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려 생산성을 높여나가야 한다.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 지식 수준과 사회적 합리성을 제고해야 한다. 지식은 합리성 위에서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체질과 구조는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 세계경제 환경도 그렇다. 이제 경제정책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복지 확대를 포퓰리즘이라고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얼마나 성장과 분배에 도움이 되도록 설계하는지를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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