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삶'에 해당되는 글 1071건

  1. 2013.04.03 [아침을 열며/12월 11일] 안철수의 상식과 비상식
  2. 2013.04.03 [특파원 칼럼/이종훈]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는 이유
  3. 2013.04.03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허승호]‘개혁 전도사’ 이석채 KT 회장
  4. 2013.04.03 한류에 목마른 아랍, 그리고 공공외교
  5. 2013.04.03 한국 검찰의 티핑 포인트
  6. 2013.04.03 [강천석 칼럼] 정치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면
  7. 2013.01.04 [기자의 눈/이진영]中 문화유산의 보고 시안, 하이테크와 사랑에 빠지다
  8. 2013.01.04 [세상읽기] 천하를 통치해도 주위 다스리기는 어렵다
  9. 2013.01.04 [김수길 칼럼] 이명박,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까
  10. 2013.01.04 [윤희영의 News English] 나비 효과 : Butterfly effect
  11. 2013.01.04 [동아광장/홍성욱]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을 보여준 나로호
  12. 2013.01.04 [기고/홍석우]글로벌 시대 ‘관계 자산’을 아십니까
  13. 2013.01.04 [송호근 칼럼] 몽땅 해드립니다!
  14. 2013.01.04 [이명수의 사람그물]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15. 2013.01.04 [왜냐면/김동규] 서울시 관악구 서림동
  16. 2013.01.04 [강호정의 애고에코/12월 3일] 경쟁이냐 협력이냐
  17. 2013.01.04 [초대석]대기업의 스크린 독점에 반발 조기종영 선언… 민병훈 ‘터치’ 감독
  18. 2013.01.04 [중앙시평] 땀 흘리지 않고 거두는 열매는 없다
  19. 2013.01.04 [경제초점] 한국 경제 미래, '제2의 최나연'에 달렸다
  20. 2013.01.04 [특파원 칼럼] '일본의 자살'
2013. 4. 3. 14:48

<상식>(Common Sense)'. 1776년 1월 발간된 토머스 페인의 이 한 권의 책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당시 영국의 폭정에 시달리던 식민지 미국은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개전 초기 만해도 미국의 식자층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에 회의적이었다. 세계 최강의 국력을 지닌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란 체념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토머스 페인은 <상식>을 통해 "지금부터 나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 평범한 논의, 그리고 상식을 말하겠다"면서 영국의 군주제는 특권층을 인정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상식에 어긋난다며 미국의 독립과 공화정의 수립을 주창했다. 책이 발간된 지 반년후인 1776년 7월 4일 미국은 독립을 선포했다. 기득권층의 반발을 극복하고 결국 페인의 '상식'이 이긴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년 동안 '안철수 바람'에 큰 홍역을 치렀다. 세상을 이념의 잣대가 아닌 '상식 대 비상식'의 기준으로 본다는 안철수의 말 한마디는 토머스 페인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고도 남았다. 적대적 공존관계 속에서 견고한 기득권의 벽을 치고 있던 기성 정치권이 먼저 손을 들었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민주당은 민주통합당으로 스스로를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됐다.

안철수 현상이 남긴 유산은 크고도 강하다. 정치권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이면서 60년 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패러다임에 혁명적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먼저 재벌을 공격한다. 검찰개혁 또한 거침없이 요구한다. 기득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던 한 축을 흔드니 나머지 축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그동안 하지 못했을까. 우리들 대부분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거리고 투덜대기만 할 뿐이었다. 세상을 '상식 대 비상식', 보다 정확하게는 '상식 대 몰상식'의 잣대로 판단하며 몰상식에 결연하게 맞서지는 못했던 것이다. 국민들에게 당연히 주어진 천부인권의 권리를 잠시 잊었던 것은 아닐까.

'안철수 바람'은 더 이상 나와 내 가족과 나의 노후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낡고 시들고 병든 국가운영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시대적 경고다. 물론 북아프리카의 재스민혁명, 월스트리트를 강타한 어큐파이(occupy) 운동 등 외부적 충격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 내부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안철수란 분화구를 통해 분출된 것이다.

문제는 안철수 본인이 안철수 바람의 진원지인 줄 착각하면서 시작됐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안철수에게 안철수 바람의 독점적 사용권을 허락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안철수는 점점 나르시시즘에 빠졌다. 상식에서 출발했던 안철수가 점점 보통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바로 상식이라는 독선적 모습으로 변질되어갔다.

모든 사람이 한 생각일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공감하는 간(間) 주간적인 상식은 있다. 안철수는 상식을 뛰어넘는 초인적 행보로 일관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상식에 바탕 하여 한 걸음 앞서 나가는 지도자다. 구름 위에서 군림하려드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비극이다. 안철수 본인에게는 물론이고 안철수 바람을 통해서 새로운 변화를 갈망했던 우리에게도 비극이다. 

여드레 후면 대통령선거가 있다.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 중 한 사람이 승리할 것이다. 하지만 혁명적 변화를 통해 판이 뒤집히는 것을 보고자 했던 뜨거운 열망은 싸늘하게 식어만 갈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는 앞 다투어 개혁을 말하고 소통과 민관의 협치를 약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안철수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바람은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가 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2/h2012121021003224370.htm

Posted by 겟업
2013. 4. 3. 14:27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신전 건물의 외벽은 물론이고 내벽 기둥 천장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곳 빠짐없이 촘촘히 새겨진 정교한 상형문자와 화려한 색채의 그림들. 더 놀라운 건 이 신전과 조각들이 조선 왕조가 있었던 수백 년 전도 아닌 무려 3500∼4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지난달 말 방문한 나일 강 룩소르와 아스완 유역에서 아부심벨과 카르나크 신전 등 이집트 문명의 찬란한 유적을 처음 만난 순간의 충격은 형언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놀라운 유적의 한 곳인 에드푸 신전의 외곽 벽 바로 옆 언덕에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보기 힘든 벽돌집들이 있었다. 하루살이를 걱정하는 이집트 서민의 거주지였다. 인류 문명의 기원을 알리는 위대한 유적 바로 옆 허물어져가는 돌집들. 남루한 옷과 찌든 얼굴의 그들은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관광객에게 손을 벌렸다. 도저히 사기 어려운 조악한 기념품을 보여주며 “원 달러”(One dollar·1달러)나 “욍 유로”(Un euro·1유로)를 외쳤다. 함께 갔던 프랑스 관광객들은 “왜 이렇게 피곤하게 하냐” “제발 그만해라”는 말을 짜증스럽게 반복했다.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적이 쏟아져 나온 람세스 왕의 무덤은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 한 분이 의자에 앉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빌려주며 1유로를 요구했다.

누구의 잘못일까. 최첨단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유적을 남긴 선조의 후예들은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 민주혁명의 불꽃이 이집트로 옮겨 붙었을 때 카이로에 취재를 갔던 나는 많은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30년 동안 무바라크 독재하에서 아무 말 없이 살다가 이제 갑자기 일어선 이유가 무엇이냐?” 그들은 답은? 놀라지 마시라. “알라의 뜻이다.” 독재자를 섬기며 살아온 것도, 그를 몰아낸 것도 모두 알라의 뜻이라는 것이다.

선량한 무슬림이지만 과연 이들에게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 ‘아랍의 봄’을 겪은 국가를 취재하며 느낀 것은 명분이야 어쨌든 이들이 봉기를 일으킨 이유의 근저에는 ‘배고픔’이 있었다는 것이다. 혁명의 외양은 시아파와 수니파, 이슬람과 세속주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갈등처럼 포장돼 있었지만 결국 서민의 주린 배가 문제였다. 

그러나 혁명 뒤의 현실은 어떤가. 독재의 자리에 들어선 ‘이슬람’은 자유, 여성 인권, 민주주의, 경제에서 많은 취약점을 노출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새 헌법 선언과 국가를 이슬람식으로 바꾸려는 헌법 초안에 대한 국민투표로 최악의 혼란에 빠진 오늘의 이집트도 그렇다.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은 하늘에서 떨어졌나. 이집트 국민이 그를 지도자로 선택한 게 5개월여 전이다. 

인간은 간사하다. 기다리지도 않는다.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프랑스 국민도 불과 반년 전에 뽑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싫다며 “니콜라 사르코지를 뽑았으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말을 뻔뻔하게 늘어놓는다. 선택의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는 걸 몰랐나. 전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가난의 고통과 굴욕을 당신 세대에서 끝냈다. 인류가 부러워하는 찬란한 유산이 있으면 뭐할 것인가. 정작 오늘을 사는 국민 대다수는 1달러가 없어 하루를 견디기가 힘든데. 대통령 선거가 9일 앞이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가난한 나라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더 절실하게 느낀다. 국민과 나라가 잘사는 게 정말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이종훈 파리 특파원



http://news.donga.com/3/all/20121209/51452294/1

Posted by 겟업
2013. 4. 3. 14:22

몇 년 전까지만 해도 KT는 죽어가던 기업이었다. 전체 이익의 70∼80%를 창출하던 유선전화의 매출이 매년 10%씩 줄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내몰렸다. 휴대전화 자회사 KTF는 1위와 격차가 큰 만년 2등이었다. 새로 시작한 인터넷TV(IPTV) 사업의 앞날도 불투명했다. ‘나는 갑(甲)’이라는 거만함, 무사안일, 무(無)경쟁의 철밥통 풍토가 조직의 바닥에 두껍게 침전돼 있었다. 임원진의 절반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간부들은 가자미눈으로 바깥을 바라봤다. 승진하려면 역량과 성과를 입증하는 것보다 외부의 힘을 동원하는 쪽이 더 확실했기 때문이다.

관료 시절 ‘개혁 전도사’라고 불리던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2009년 1월 KT 회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직후 직원 3만여 명 중 6000명을 내보내는 인력 구조조정부터 시작했다. 인재경영을 내세우며 인사 외풍을 차단했다. 스마트폰을 들여와 스마트혁명의 불을 댕겼고 KTF와의 합병을 통해 유무선 융합을 시도했다.

조직의 변화가 알려지면서 작년부터 국내외에서 각종 상(賞)을 28회(법인 19회, CEO 9회)나 받았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집무실에서 만난 이 회장은 “기업엔 상보다 실체가 중요하다. 실상은 기대에 많이 못 미친다. 사실 ‘뛰어난 기업’이라기보다 경영혁신과 인재경영을 평가받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첫 질문으로 ‘취임 직후 단행한 6000명 구조조정은 너무 가혹하지 않았나’ 하고 물었다. 그는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라는 거대담론으로 대답했다. 


○ 청년실업 해결 위해 노동시장 유연성 높여야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지만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돼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는 선점됐고 진입구가 너무 좁다. 젊은이 중 극소수만 통과한다. 나머지는 ‘을(乙)의 일자리’로 가야 한다.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지 않다. 정년이 되면 생산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밀려 나간다. 미래가 막막하다. 젊은이들이 안 들어오니 회사는 노쇠해진다. 물에 비유하면 순환이 안 되고 썩는다. 해법이 있다. 생산성이 떨어진 사람들이 자리를 비워주고, 젊은이들이 그 자리를 채우는 구도로 바꾸는 것이다. 젊은이 몫이던 ‘을 일자리’를 퇴직자들이 채우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희망을 찾고, 나가는 사람들도 비록 예전 같지는 않지만 생산성에 맞는 대우를 받으며 계속 일할 수 있다. 기업은 경쟁력을 되찾는다. 사회 전체가 ‘위너’가 된다.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 아닌가. 우리는 한국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세대다. 젊은이들이 이런 좌절을 겪으라고 우리가 땀 흘린 것 아니다. 청년들이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고 신나게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이런 구상을 가지고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

청년실업과 관련해 그는 최근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며 “정치권이 뻔히 알면서도 기득권 노조의 조직화된 표를 잃을까봐 눈치만 보고 있다. 이들이 청년 일자리의 적(敵)”이라며 작심하고 정치권을 질타했다. 그는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법과 제도로 풀어야 하지만 안 되고 있다. 그래서 KT 모델을 본 후 ‘저렇게 하면 되겠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결국 법 제도가 따라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후 KT에는 과거보다 6∼7배 많은 청년이 입사한다. 그중 30%는 고졸이다. 퇴직자 6000명 중 2500명은 재취업했다. 

그는 공무원으로 정책적 판단을 할 때 ‘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잣대를 매번 들이대던 사람이다. 요즘 그는 2개의 잣대를 쓴다. 하나는 나라에 도움이 되느냐. 다른 하나는 KT가 돈 버느냐다. 

―이 회장은 경제공무원으로 출발했지만 장관은 정통부에서 했고, 이제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했다.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나.


○ 정보-통신 융합해 새 성장동력 창출할 것

“세상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 아니다. 미래는 스스로 만드는 거다. 현실에 짓눌리지 말고, 스스로 그리는 꿈을 위해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 우리가 출발할 때는 더 암담했다. ‘엽전은 별 수 없다’는 자조(自嘲)가 만연했고 패배주의적 종속이론이 횡행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미래가 열렸다. 현재의 족쇄에 묶이지 말라.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단하지 말고 나름대로 인생설계를 해서 힘들더라도 도전하라. 그러면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젊은이가 있는 자리에서는 항상 이런 얘기를 하고 다닌다.”

―KT는 신입사원 퇴사율이 높은 회사로 알려졌다. 

“어느 회사든 기업문화가 있다. KT의 조직문화가 자유롭고 창의적인 직장생활을 원하는 사람에게 안 맞을 수도 있다. 혹은 ‘아, 내가 이렇게 힘들고 빛 안 나는 일을 하러 왔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중 후자, 즉 기대했던 일이 아니어서 실망했다면 나는 ‘감수하라’고 말한다. 어디든 현장은 고되며 고객을 위해 땀을 흘려야 한다. 문제는 전자, 즉 선배나 조직의 행태에 실망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실인지 최근에는 KT 신입사원의 퇴사율이 이른바 초일류 기업보다 낮다. 퇴사자를 줄이는 수준이 아니라 신입사원이 보람을 느끼고 정열을 불태울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목표다.”

―올해 초 연임해 2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이번 임기의 중점 목표는…. 

“취임 직후엔 죽어가는 기업을 되살리는 게 중요했다. 아직 성공한 건 아니고 돌파구만 열었다. 이번 임기 때는 스마트 혁명, 즉 ICT(정보통신기술) 융합에 의해 새로 태어나려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려 한다. 가상재화(Virtual Goods·전자책 음원 동영상 게임 앱 등 네트워크 위에서 생산 유통 소비되는 디지털 상품)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 이 시장이 형성되면 젊은이들이 취업보다 창업을 많이 할 수 있게 된다. KT는 물론이고 한국이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KT로서는 한국의 ICT 컨버전스 리더가 아니라 글로벌 리더로 재탄생한다.”


○ 제3의 물결은 스마트네트워크 통해 시작

―스마트 혁명의 본질이 뭔가.

“보는 각도에 따라 스마트다, 네트워크다, 컨버전스다 하고 달리 부르지만 결국 동일한 현상이다. 지금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산업과 활동이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IT(정보기술) 혁명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맛보기일 뿐이다. 책상에 앉았을 때만 컴퓨터를 썼고 책상을 떠나면 멀어졌다. 이 때문에 일부는 실망도 했다. 이제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연결된다. 이것이 진짜 혁명이다. 쇼핑 학습 의료 에너지 등 어디까지 확산될지 모른다. 1980년대 앨빈 토플러가 말한 ‘제3의 물결’, 정보화 혁명이 이제 제대로 시작되고 있다. 스마트화는 정보화 혁명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IT라는 말이 일반적이었다. 컨버전스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면서 용어도 정보(Information)와 통신(Communication)을 병기한 ICT로 변화한 것 같다. ICT 산업이 맞은 가장 큰 도전은 뭐라고 보나.

“첫째, 네트워크다. 정보화 진전으로 디바이스(기기) 사용자인터페이스 운영체제(OS) 등은 아주 발전했다. 이 모든 것이 연결돼야 제대로 기능한다. 스마트TV라고 하지만 스마트 네트워크에 연결돼야 스마트하지, 그렇지 않으면 바보상자에 불과하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 스마트그리드도 네트워크 위에 있을 때만 의미를 갖는다. 제3의 물결은 스마트 네트워크를 통해 일어난다. 그래서 네트워크 혁명이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사람들이 잘 못 느낀다. 누가, 얼마나, 어떻게 네트워크를 가꿔야 할지 생각지 않는다. 인프라를 주어진 것으로 보며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한다. 둘째, 보안이다. 네트워크를 잘못 다루면 프라이버시가 무너진다. 예컨대 국방도 ICT로 옮겨갈 텐데 보안이 가능할지가 중요한 과제다. 네트워크의 보안성을 시험해보고 싶어 하는 ‘철없는 천재’가 너무 많지 않나.” 

―네트워크가 너무 잘 깔려 있어 사용자들이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 가장 좋은 것 아닌가. 마치 수돗물이 어떻게 생산되고 운반되며 배분되는지 알 필요 없이 물이 필요하면 그저 수도꼭지를 트는 것처럼….

“그게 오래 못 간다. 당장의 전력 부족 문제를 봐라. 안일하게 생각하다 보니 문제가 왔다. 원하는 대로 쓰기만 해서는 위기에 봉착한다. 네트워크도, 주파수도 마찬가지다. 결코 무한하지 않다. 개발을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LTE(롱텀에볼루션)망 하나 건설하려면 4조 원이 들어간다. 이 투자비가 회수도 안 됐는데 또 다른 망을 건설해야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또 지금 주파수를 맘대로 나눠주면 나중에 쓸 게 없다.” 

이 회장은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디테일에 매우 강하다. 기술적인 내용도 KT 엔지니어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철저하게 공부한다. 그리고 거대담론과 디테일을 교직(交織)해서 조리 있게 설명하는 재주가 있다.

―KT는 작년 2월 BC카드를 인수했다. 금융업을 하겠다는 건가. 

“BC카드는 다른 카드회사와 다르다. 카드 발행은 회원은행이 하고 BC카드는 거래처리만 해준다. 즉 금융-통신의 융합을 통해 회원금융사를 제대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 KT선 충성도 아닌 능력과 됨됨이가 중요

―경제민주화 논의의 핵심에 대기업집단, 이른바 재벌 문제가 있다. 재벌 체제가 문제되자 기아자동차, 유한양행 등의 모델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결국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KT가 있잖나. KT의 경우 매년 경력자를 350명씩 뽑는다. 임원도 40%가 외부 출신이다. 대주주가 있는 회사, 재벌 경제에서는 힘든 일이다. (기업 내에) 충성도가 중요한 섹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KT에는 (재벌식 약점이 없기 때문에) 충성도가 아니라 능력과 됨됨이가 중요하다.”

―KT를 주목하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석채가 떠나면 함께 사그라질 ‘이석채 바람’이 아닌가 궁금해한다. 개혁성과가 정착될 것이라 보나. 

“밖에서 흔들지만 않으면 된다. 믿어 봐라. KT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다. 청년실업과 재벌 문제에서.”

―정보통신부 부활에 찬성하나.

“당연하다. 국무회의에서, 국회에서 전문적 식견과 책임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전담 부처가 있어야 한다. 변화를 내다보고,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얘기하는 부처가 필요하다. 규제도 해야겠지만 대변하고 대비하고 필요할 경우 지원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한국에서 크지 않는 데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부처가 꼭 필요하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에 바라는 게 있다면….

“정치는 기본적으로 현실이지만, 또한 미래를 열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정치를 희화화하는 일이 많은데 정말 우리 정치가 그렇게 불량품이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없다.”



허승호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21210/51453839/1

Posted by 겟업
2013. 4. 3. 14:08

막이 내리자마자 히잡을 쓴 관객들이 무대 위로 몰려들었다. V자형으로 손가락을 펴고서 우리 공연자들을 모델 삼아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 인파가 얽히고 설켜서 북새통을 이룬다. 아프리카 시골에서도 중동의 도시에서도 반응은 마찬가지. 5회째를 맞는 한-아랍 친선 카라반 공연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이번 공연단에 한류 스타가 포함된 것도 아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하나의 '현상' 혹은 '신드롬' 이랄까.

한류 열기는 어딜 가나 뜨겁다. 객석은 이미 동이 났고, 계단을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 갔다. 한국말도 곧잘 한다. "한국 너무 너무 사랑해요, 정말로!" 해맑게 미소 짓는 아랍 여학생이 건네는 인사다. 그들은 한국 것이면 무조건 좋단다. K팝도, 드라마도, 한식도, 그리고 끈끈한 한국인 정이. 한국산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자랑하며, 이제는 한국산 자동차를 갖는게 꿈이란다. 

요즘 '공공외교'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전통적 외교는 정부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가 외국인을 상대로 직접 소통에 나서고 있다. 문화, 예술, 드라마, 스포츠 분야에서의 소프트파워가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민주화, 개방화, 글로벌화,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로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자국 정부든 상대국 정부든 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은 일찍이 국무부에 공공외교 전담조직을 두고 그 예산과 조직을 확대해 왔다. 중국 역시 공공외교를 주요 외교 전략의 하나로 삼고 있다. 각국에 공자학원을 설립하여 중국문화와 중국어 보급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의 공공외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외국인들에게 호감을 주는 나라, 또 방문하고 싶은 나라로서의 매력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컨데 공공외교의 핵심은 외국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몇 가지 방안을 살펴보자.

첫째, 공공외교는 쌍방향 소통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 문화를 전파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번 우리 공연단이 아랍에서 우리 음악과 춤을 소개하는 가운데 간간이 현지 음악을 연주하자 관객의 반응은 더욱 뜨거워졌다. 거듭되는 박수와 앵콜이 공연의 진행을 방해할 정도였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문화를 응원함으로써 우리가 자신들의 문화에 반응해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렇듯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전제가 된 문화교류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

둘째, 한류는 단순히 오감을 즐겁게 하는 차원을 넘어 세계인들 속에 하나의 문화로서 정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지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한류의 거품이 이내 꺼질 것이라는 우려가 기우만은 아니다. 문화란 시간이 지나면 참신성이 떨어져 식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직은 여유가 있다. 전세계 한류 팬클럽이 약 800개, 회원이 약 700만명에 달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뜨기 전 통계이니, 지금은 수 천만 명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한류가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능동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한류공연을 기획하고 주관하는 것 역시 이들 외국인 팬들이 주도해야 할 것이다.

셋째, 공공외교란 국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정부보다는 국민이 앞장서야 자연스럽고 외국인도 쉽게 마음을 연다.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들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또 어렵지도 않다. 스스로 민간외교관이 되어 국내외에서 마주치는 외국인과 마음의 소통을 하면 된다. 

공공외교는 외국인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과정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변해야 한다. 평소에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도록 하여야 한다. 국민이 참다운 모습으로 변화는 과정, 이게 바로 진정한 공공외교다.



마영삼 공공외교대사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1/h20130116151351240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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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3. 14:06

이제는 때가 된 듯하다. 매사 때가 있는 법인데 한국 검찰도 이제 일에 때를 찾은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에는 '3대 성역'이 있다는 말이 떠돌았다. 혹자는 그것을 '재벌, 언론, 검찰'이라고 했고, 혹자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종교, 대학, 검찰'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남은 마지막 성역이라고 했다. 누가 무슨 기준으로 한국사회 3대 성역을 꼽든 검찰은 거기 포함됐다. 검찰이 대단한 조직이라는 현실의 반증이다.

재벌이 성역이라는 걸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한 그것은 당분간은 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경제민주화가 운위되는 현실에서, 또 최근 몇몇 재벌의 사례에서 보듯 오너가 검찰과 법원에 의해 단죄를 받는 상황에서 그 성역도 상당부분 위축된다. 언론이 성역이다? 성역인 척하려는, 성역으로 남아있고 싶어 발버둥치는 언론사가 있을지 모르지만 기자가 언론 현실을 보기에 이건 철지난 소리다. 종교도 이제는 성역에서 벗어나 세속으로 내려오실 때가 됐다. 대학도 더 이상 상아탑이라는 미명이 내홍이나 외풍을 막아주는 무풍지대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안다. 

이렇게 따지면 검찰이야말로 우리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유일의 성역인 셈이다. 설사 재벌 언론 종교 대학이 아직 성역임을 강변하더라도, 그들도 검찰 앞에 서면 한없이 왜소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왜 검찰이 성역이 됐는지를 따져보면 사실 간단한 이유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에 나와 있는 기소독점주의나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그 성스러움의 기본이 됐다. 인신을 구속하고 재판에 넘길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 1,800여명의 엘리트 검사들이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의 관계 하에서 일체불가분의 유기적 통일체로 움직인다는 어마어마한 조직원리다. 한국의 역대 정권이 이런 막강한 검찰을 이용하려 하지 않을 리 만무했다. 정치검찰이니 검찰의 정권 눈치보기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과거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내걸고 평검사들과의 대화라는 자리를 만들어 설전을 벌이다 집중 공격을 받고는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고 말하던 장면은, 성역이 된 한국 검찰의 모습을 역으로 보여준 하나의 삽화였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울 듯했던 검찰의 탈성역화, 일반적인 표현으로 검찰개혁이란 것이 이제는 검찰조직 스스로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사회의 초미의 과제가 됐다. 그 계기는 엉뚱한 데서 생겼다. 서울고검의 부장검사급 검사가 무려 10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평소 검찰과 앙앙불락하던 경찰의 사건 추적으로 불거지고, 서울동부지검에서 수습 중이던 나이 서른살의 검사가 마흔세살의 여성 피의자와 검사실 안에서 사실상 위력으로 성관계를 가진 사건이 잇달아 터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스폰서 검사니 그랜저 검사니 벤츠 검사니 하는 사건이 벌어져도 그저 검사 한두 명의 일탈이려니 하고 꿈쩍도 않던 검찰은 이들 사건 앞에서 입을 열 수 없게 됐다. 이 서울고검 검사는 수사 결과 10여년 동안 임지를 옮겨다닐 때마다 금품과 향응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추문 검사 사건이 불거진 후에는 다른 검사 10명과 14명의 검찰 직원이 피해 여성의 사진을, 아마 호기심에서, 불법 열람한 사실이 드러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검찰이라는 성역 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들이 앞으로는 칼을 들고 뒤로는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우리는 생생하게 목도하게 됐다.

티핑 포인트라는 개념이 아마 지금 한국 검찰에 들어맞지 않을까 싶다. 상황의 균형이 깨지고 단번에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 있는 변수가 생긴 순간,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다. 그 순간은 그냥 오지 않는다. 물이 끓듯 안에서 끓어오르다 마침내 임계점에 달해 폭발하는 순간이다. 한국 검찰은 성역의 내부에서 곪아오다 마침내 '돈 검사'와 '성 검사' 두 명으로 인해 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시기에는 무엇보다 변화에 저항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체질을 바꿔 나가려는, 성역을 깨고 나오려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하종오 부국장 겸 사회부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2/h20121208023659243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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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3. 14:04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게 이제 남은 날은 열하루다. 넉넉잡아도 이백 몇십 시간 후 한 사람은 대통령 당선자, 다른 한 사람은 낙선자로 갈린다. 낙선자는 퇴장이다. 패자부활전은 없다. 대선 주연들만 가차없는 운명을 맞는 게 아니다. 조연(助演)들도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무대 뒤로 사라진다.

문 후보가 낙선하면…. 안철수씨는 그 순간부터 책임 추궁에 쫓긴다. 그를 중심으로 야당이 재편(再編)되리라는 건 순진한 기대다. 문 후보가 당선되면…. 그땐 길이 둘로 나뉜다. 하나는 대통령을 장식하는 '추종적(追從的) 2인자'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과 권력을 다투는 '경쟁적 2인자'의 길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추종적 2인자'는 잠시 반짝하다 빛이 바래면서 태풍의 기억처럼 소멸(消滅)한다. '경쟁적 2인자'로 생존하는 건 선대(先代)로부터 거대한 고정 지지층을 유산으로 받은 박근혜 후보쯤 돼야 누리는 혜택이다. 구름 모였다 흩어지듯 하는 안씨 지지층은 구름 사다리나 한가지다. 이렇게 주연과 조연의 운명이 정해져도 국민 운명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후보들의 미래 설계 한 번 제대로 듣지 못한 채 기표소로 향해야 하는 게 우리 팔자라서다.

일본은 22년 전과 완전히 다른 나라였다. 정치인도 국민도 그때 그 모습이 아니었다. 거기도 선거판이었다. 독도를 되찾겠다며 정부 행사로 '다케시마(竹島)의 날'을 선포하고, 센카쿠열도(중국명·댜오위다오)를 지키겠다는 결사적 자세를 공약으로 내건 자민당이 과반수에 육박하는 제1당이 되리라고 했다. 전직 소설가인 '망언(妄言) 제조기'가 이끄는 당이 제2당, 집권 민주당은 제3당으로 내려앉는다고 했다. 지난 20년간 연평균 성장률 0%를 기록한 장기 불황은 국민을 바꿔놓고, 바뀐 국민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게 무방비(無防備)로 휘둘리고 있었다. 눈덩이 덮치듯 일본을 덮친 초고속 고령화(高齡化) 앞에선 백약(百藥)이 무효라고 했다.

미국의 대표적 일본 옹호론자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일본 현상'을 중국 부상(浮上) 앞에서 갈피를 못 잡는 자신감 상실로 진단했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 수뇌부는 미국의 점진적 쇠퇴와 중국의 급속한 대두를 놓고 불길한 예언만 늘어놓을 뿐 손을 놓아 버렸다. 강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 속에서 기회와 위기의 가능성을 함께 보면서 기회를 활용하고 위기에 대비하는 국가 전략의 새 판을 짤 기회를 놓쳤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을 유식한 학자들은 '자기 실현적 예언(self fulfilling prophecy)'이라고 한다. 꼭 그 케이스다.

내놓는 제품마다 세계 시장을 제패하던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대표 기업들이 요 몇년 해마다 최대 적자(赤字) 기록을 경신하고있다. 일본 경제의 세 가지 비밀 병기(兵器)라던 '종신고용제' '연공서열(年功序列)' '기업별 노동조합'은 혹이 된 지 오래다. 어제 성공했고 오늘 성공하고 있으니 내일도 성공하리라는 성공 신화(神話)의 덫에 걸려 현실을 읽지 못한 탓이다.

우리가 내일의 운명을 염려한다면 일본의 오늘을 직시(直視)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신기록 보유 국가였던 일본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다음, 다음 대통령 무렵 손을 써봤자 이미 늦다. 지금 어느 대선 후보가 고령화 사회의 경종을 울리고 있는가.

20년 전 한국은 소련과 통하고(通蘇) 중국과 새로 벗하며(通中) 김일성으로 하여금 이대로 갇히고 마는(封北) 게 아니냐는 두려움에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미국을 한국 북방(北方) 외교의 최대 협력자로 묶어둘 수 있었다. 군사정권의 때를 벗지 못했다던 노태우 정권 시절의 한국 외교가 이랬다. 그랬던 우리 외교가 북한이 미국과 통하면서(通美) 대한민국을 고립시킬까(封南) 걱정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중국을 움직여 북핵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려면 중국을 열 열쇠를 찾아야 한다. 큰 문이라고 꼭 큰 열쇠로 여는 게 아니다. 외교적 상상력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어느 대선 후보가 이런 한국 외교의 대방략(大方略)을 논하고 있는가.

20년 전 일본 반도체 산업에 황혼이 내리리라고 예측한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일본 반도체 산업이 폐허가 됐다. 우리 기업이 5000만 국민을 먹여 살릴 미래의 쌀 같은 신수종(新樹種) 제품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언제 들은 적이 있는가. 대선 후보 가운데 누가 이런 사태를 앞당겨 근심하고 있는가.

복지를 퍼올린다고 고령화가 멈추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중지한다고 나라의 새 길이 뚫리고, 한·미 FTA를 재협상한다 해서 미래가 환해지는 게 아니다. 일본 국민은 20년 전 '경제는 1류지만 정치는 3류'라고 겸손해했다. 그러나 끝내는 '1류 경제'가 앞 못 보는 '3류 정치'에게 잡혀먹히고 말았다.

오는 19일은 대선 후보 운명만 결정짓는 날이 아니다. 그보다 몇 백배 중한 국민 운명을 국민 손으로 결정짓는 무서운 날이다.


 강천석 주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07/20121207013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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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4. 13:45
중국엔 이런 말이 있다. ‘1만 년의 역사를 보려면 시안(西安), 1000년의 역사는 베이징(北京), 100년의 역사는 상하이(上海), 10년의 역사를 보려면 선전(深(수,천))으로 가라.’ 시안은 좋게 말하면 13개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유구한 역사의 도시, 나쁘게 말하면 진시황의 병마용이나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로 먹고사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는 “시안은 몰락한 귀족, 빛바랜 골동품 같다”고 혹평했다. 삼성이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 사상 최대 규모인 70억 달러(약 7조9100억 원)를 들여 내년 말까지 시안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을 때 기자는 의문이 들었다. 삼성은 왜 과거의 도시로 가려 하는가.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국 신화통신사가 공동 주관한 한중 언론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해 7년 만에 시안을 다시 방문하고는 의문이 풀렸다. 시안은 2000년 시작된 중국의 서부대개발 정책에 따라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시안 하이테크기술산업개발구에는 중국 국내외 기업 1만6000여 개가 입주해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라는 역사성을 살려 ‘디지털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있다. 시안에는 금융, 항공기 제조, 인공위성, 물류, 문화 등 이런저런 개발구가 6개 더 있다.

지난해 시안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3864억 위안(약 67조 원)으로 전년 대비 13.8% 증가했고, 소비시장 규모(1935억 위안)는 5년 전보다 2.4배 이상 성장했다. 시안의 성장 동력은 문화적 자부심과 중국의 3대 대학도시로서의 지적 인프라다. 도시가 활기를 띠자 인력들이 시안으로 몰려들고 있다. 시안자오퉁대를 나와 상하이의 정보기술(IT) 기업에 근무하던 류퉁하이(劉同海·31) 씨도 지난해 5월 시안으로 왔다. 그는 “엔지니어로서 시안은 기회의 땅이다. 게다가 시안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문화적 유산을 가진 곳이다”라고 말했다.


혁신으로 살아나는 시안을 보며 장안(長安·시안의 옛 지명)의 격자형 도시 구조를 본떠 만든 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京都)를 떠올렸다. 교토는 1869년 메이지 유신에 따른 도쿄(東京) 천도 이전까지 일본의 정치 사회 문화 중심지였지만 전통만 먹고사는 박제화된 도시가 아니다. 세계적인 게임회사 닌텐도, 평사원이 노벨상을 받은 시마즈제작소, 종합 전자부품 메이커 교세라 같은 세계적인 강소(强小)기업들이 모여 ‘교토식 경영’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서 ‘교토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서 교토 경영모델의 강점으로 혁신성을 꼽았다. 이는 ‘교토중화사상’이라 표현되는, 교토의 문화적 자부심과 연결돼 있다. 시안 사람들이 보수적이고, ‘베이징 촌놈’ ‘근본 없는 상하이’라고 하듯 교토진(人)들은 도쿄(東京)를 ‘촌놈들 집합체’라고 비웃는다. 그래서 교토는 도쿄를 모방하지 않는다. 결코 남을 따라 하지도, 남이 따라오지도 못할 교토만의 독창적인 기술을 고집하는 것이 요즘 화두인 혁신 경영의 모델이 된 비결이라는 것이다.

보수와 혁신, 가장 중국(일본)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이 공존하는 도시 시안과 교토를 보며 문화유산과 혁신의 마인드가 합쳐질 때 생겨나는 시너지의 폭발력을 생각했다. 첨단의 아이디어는 문화적인 정체성에서 배태된다. 그리고 천년을 이어져 내려온 도시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부단히 움직여야 활력을 가질 수 있다. 이제는 삼성이 시안으로 간 이유를 알 것 같다. -시안에서


이진영 문화부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21204/51313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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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4. 13:43

십 수년 전쯤 일이다. 일본에 갔더니 한 우리 유학생이 말하길 “일본에 유학 온 중국 친구들은 다 뻥쟁이”란다. 이유인즉 중국 유학생들치고 자기 아버지가 고관대작이 아니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 ‘중국 친구들’ 말이 맞겠구나 하는 걸 나중에 홍콩 근무를 하면서 알게 됐다. 많은 홍콩 상인이 중국에 가 사업을 한다. 돈을 쉽게 벌려면 뒤를 봐주는 중국 관리가 있어야 한다.

그 관리를 어떻게 잡을까.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중국 관리의 자녀를 해외로 유학시키고, 비용은 홍콩 상인이 부담하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 관리의 자녀는 사실상 ‘인질’이 된다.

중국 관리의 월급으로 유학 비용을 댈 수는 없다. 2006년 중국 국무원 발표에 따르면 최고 지도자인 국가주석의 월급이 약 3000위안(약 60만원) 정도다. 장학생이 아닌 다음에야 학비 감당을 할 수 없다.

홍콩 상인이 노린 점은 바로 이것이다. 중국 관리로서는 자녀가 유학하는 동안 홍콩 상인의 이런저런 편의를 봐줄 수밖에 없다. ‘관시(關係)’로 포장되는 부패는 이렇게 시작된다.

중국에 나체관리(裸體官員)라는 말이 유행한다. 부정부패로 모은 재산을 갖고 가족과 함께 발가벗고 튀는 관리를 가리킨다. 지난해 중국인민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08년까지 20년간 약 1만8000명의 나체관리가 탄생했다.

이들이 해외로 들고 나간 돈은 8000억 위안.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절반 가까이 된다. 나체관리의 해외 도피는 보통 삼부곡(三部曲)을 거친다. 첫 단계는 해외 시찰이다. 공무를 이용해 해외 출장을 나가서는 어디가 살기 좋은지 살핀다.

두 번째는 가족 이주다. 먼저 자녀를 유학 보내고, 부인은 아이를 돌본다는 핑계로 내보낸다. 그리고 그곳 영주권을 따게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재산 빼돌리기. 해외에 세운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적게 챙긴 이는 동남아로, 많이 먹은 이는 미국·캐나다 등 선진국으로 튄다.

자고로 탐관오리가 문제다. 중국엔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매관매직 풍조가 아직도 남아 있다. 2003년 톈펑산(田鳳山) 국토자원부 부장이 부패 문제로 해임됐다. 혐의 중엔 수백 개의 관직을 판 부정도 포함됐다.

지난해 광둥(廣東)성 우칸(烏坎)촌 시위 때 주민들에게서 나온 말은 우칸촌이 속한 둥하이(東海)진의 당 서기 자리(과장급)가 200만 위안에 거래된다는 것이었다.

매관매직의 역사는 후한(後漢)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기 185년 낙양(洛陽)의 황궁에 큰 불이 났다. 궁을 다시 지으려니 돈이 필요했다. 환관이 꾀를 냈다. 임지로 떠나는 관리에게 돈을 받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현지에서 뒷돈을 챙길 테니 그 일부를 미리 거두자는 계산이었다. 매관매직의 시작이다.

명(明)을 세운 주원장(朱元璋)은 부패를 뿌리째 뽑고자 했다. 탐관오리는 모두 죽이겠노라고 했다. 그런 그도 “아침에 하나를 죽이니, 저녁에 또 생기는구나”라는 탄식을 그치지 못했다.

중화인민공화국도 틈만 나면 부패 척결을 외친다. 지난달 열린 18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부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당도 국가도 망한다(亡黨亡國)’고 경고했다.

새로 출범한 시진핑(習近平) 5세대 지도부의 최대 과제 중 하나다. 지난달 말 중국청년보는 중국 네티즌의 77.8%가 새 지도부의 반부패 활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보도를 내놓았다.

시진핑의 반부패 해법은 무얼까. 답은 왕치산(王岐山)에 있다. 시진핑은 당 내 비리 적발기구인 당 중앙 기율검사위 서기로 왕을 선택했다. 고집 센 왕은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는다. 실력이 있으면 무리를 짓지 않는 법이다.

 왕은 강골 총리였던 ‘주룽지(朱鎔基)의 문하생’으로 불린다. 주룽지는 “100개의 관(棺)을 준비하라. 그중 하나는 내 것”이라며 부패와의 일전을 불사했던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원한을 많이 사 암살 고비만 몇 차례 넘겼다. 그런 무자비하고 화끈한 일처리 스타일을 왕이 쏙 빼닮았다.

 후진타오도 집권 첫해인 2003년 한 해 동안 13명의 장·차관급 인사를 부패 혐의로 단죄했다.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독불장군 왕이 뱀에 물린 팔을 잘라내는 장사단완(壯士斷腕)의 각오로 사정 정국을 연출할 것은 뻔하다.

보시라이(薄熙來) 스캔들로 추락한 민심을 다잡고 갓 출범한 시진핑 체제의 권위 확립을 위해 집권 초기의 대대적 정풍(整風)운동은 필수적이다.

그런 시진핑 앞에 높인 첫 번째 과제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일가의 축재 의혹이다. 미국 언론이 파헤친 걸 중국 당국이 조사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시진핑과 왕치산은 과연 어떤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까.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의 비서였던 톈자잉(田家英)은 “천하를 통치할 수 있었으나 주위 사람을 다스릴 수는 없었다”며 부인 장칭(江靑)을 어쩌지 못한 마오 신세를 개탄한 바 있다.

중국의 사정 정국이 강 건너 불만은 아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중국과 문화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게 우리다. ‘관시’ 찾아나섰다가 자칫 부패에 연루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사정의 칼날은 외국인이라고 해서 결코 무디게 다가오지 않는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078010&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4. 13:42

어느 정치 평론가와 대화를 나누다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될까.”

돌아온 답은 ‘일’이었다. ‘일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리라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가 내놓은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수긍할 만했다. 김영삼-사명, 김대중-비전, 노무현-꿈, 이명박-일.

지금 누가 될까 하는 참에 무슨 평가냐 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를 뽑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대통령을 뽑고 나서 어찌 대하고 평가하고 떠나보내느냐다. 반쪽 대통령, 아니 반쪽도 안 되는 대통령을 뽑아놓고 내내 흔들면 남아날 대통령이 없고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온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고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다.

대선 막바지에 박·문 두 후보 측이 노무현·이명박 두 정권의 실정을 강조하며 반사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은 눈꼴사납다. 두 후보는 그렇게도 미래 비전이 궁한가?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게 고작 노무현·이명박인가?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들이 전직 대통령을 제물로 삼으면 자신도 곧 제물로 전락함을 모르는가? 통합을 이야기하며 분열로 대통령이 되려 하는가?

‘노무현-꿈, 이명박-일’이라고 평가한다 해서 꼭 좋은 소리만은 아니다. 노무현의 ‘꿈’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자의 그것이라고 폄하할 수 있고, 이명박의 ‘일’은 본인만 열심히 밀어붙였지 주변을 돌아보았느냐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의 꿈을 당대에 좌절시킨 사람들은 누구일까. 노무현을 대통령이 아닌 ‘도구’로 간주했던 이념파들이 노무현의 실용주의를 흔든 것은 그의 무덤 앞에서 떳떳한가? 이명박의 일에 대해 후세의 평가가 어찌 나올지 길게 보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당장 금강·영산강가에 서서도 ‘토건 대통령’을 외칠 것인가?

한국 정치는 전 정권에 대한 극단적 부정을 통해 정당성을 구축하는 후진 정치라는 지적이 이미 여럿 있었다. 정당성 부정을 통한 정당성 구축이라는 것인데, 이는 이미 잘 먹히지도 않는다는 것이 올해 총선·대선을 치르며 잘 나타났다. 시민이, 유권자가 더 영특한 것이다.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을 보이면 확 쏠릴 터인데, 그 빈자리를 안철수라는 인물이 채우기에는 아직은 여러모로 역부족임을 다들 보았다.

사명·비전·꿈·일이라는 평가에 대해 나는 토를 달 생각이 별로 없다. 물·불·흙·바람처럼 다 절실하면서도 또 모두 다가 아니다. 대통령은 만병통치하는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고 그러나 다 한몫을 했다. 사실은 정권에 의한 역사의 단절이란 없었다. DJ가 외환위기를 물려받았듯 새 대통령 당선자도 저성장 추세 속에 일자리·복지 욕구를 물려받는다.

어느 대통령이 성장을 내팽개쳤을까. 노무현도 이명박도 다 애를 썼다. 다만 그 성적표를 보면 ‘한국경제성장률 > 세계경제성장률’이란 면에서 이명박 정권이 조금 낫다.

어느 대통령이 복지를 중시하지 않았을까. 노무현도 이명박도 다 애를 썼다. 나라가 복지에 쓴 돈은 매년 늘어났고 그 비중도 매년 높아졌으며, 당연히 이명박 정권의 복지예산 규모나 비중은 역대 최고다.

어느 대통령이 정부 곳간을 지키려 하지 않았을까. 그 누적된 결과로 이명박 정권 때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유독 한국만은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갔다. 대단한 일이다.

어느 대통령이 소득 분배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일자리는 어려워졌지만 꾸준히 복지가 늘어난 결과 이명박 정권 때 소득 분배는 조금 나아졌다.

성장·복지·재정·분배가 세계적 추세 속에서 우리 역대 정권이 노력한 결과였다면, 녹색성장 패러다임을 전 세계에 처음 제시하고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녹색기술센터(GTC)에 이어 녹색기후기금(GCF)을 한국에 유치해 전략·기술·재원의 ‘녹색 트라이앵글’을 구축한 것은 온전히 이명박 정권의 공이다.

정권 초기 쇠고기 촛불 시위가 벌어졌을 때, 동방신기 팬클럽 사이트에서 우연히 붙은 불이 요리·육아 사이트에서 번져 유모차 부대를 불러낸 것을 알았다면. 젊은 주부들이 왜 절망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 알았다면. 그 배후로 괜스레 시민단체를 지목하고 자금줄을 끊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민간인 사찰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면.

4대강 사업을 운하로 시작하지 않았다면. 환경으로 바꾼 뒤에도 수질 개선이 급한 곳부터 하나하나 했더라면.

4대강 대신 보육에 처음부터 집중했더라면.

5년 내내 사람 쓰는 데서 더 좋은 소리를 들었더라면.

여러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 5년 임기를 열심히 마치고 물러나는 대통령이다.

헐뜯고 내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그 예의는 유권자인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존이다.



 

 

 

김수길 주필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077983&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4. 13:40
'나비 효과'란 나비가 날갯짓한(flap its wings) 것이 지구 반대편에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미세한 변화(a subtle change)가 나중 어떤 단계에선 큰 차이를 야기한다는(result in large differences to a later state) 얘기다. 중국 웨이보에 소개된 한 초등학생 글이 나비 효과를 연상케 해 화제가 되고 있다.

"시간이 화살처럼 어느덧 지나간다(steal by like an arrow).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그러지 않으면 점수가 올라가지 않을 것이고, 점수가 오르지 않으면 부모님께 꾸중을 듣게 된다. 꾸중을 들으면 자신감을 잃게 된다(lose self-confidence). 그러면 성적이 더 떨어져 대학에 못 갈 것이다. 대학을 못 가면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없고, 돈을 벌 수 없게(won't be able to make money) 된다.

돈을 못 벌면 세금을 못 낸다. 그러면 나라에서 선생님들 월급 주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들은 교육에 전념하지(devote themselves to teaching) 못 하게 되고 나라 발전이 영향을 받게 된다. 나라가 발전하지 못 하면 야만 인종으로 퇴화되고(degenerate into a barbaric race), 그리되면 미국은 야만적인 중국이 대규모 살인무기를 보유할(have large-scale murderous weapons) 것이라며 전쟁을 일으켜 제3차 세계대전이 촉발될 것이다.

세계대전이 벌어져 힘에 부치게 되면(be beyond their powers) 양국은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다. 핵무기 사용은 지구 환경을 파괴해(destroy the global environment) 대기층에 큰 구멍이 생기고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가 급격히 진행될(drastically escalate) 것이다. 그리되면 남·북극 빙하(the glaciers at both poles)가 녹을 것이고, 빙하가 녹으면 지구의 수위(the global water level)가 높아지고, 그러면 전 인류가 물에 빠져 죽게(drown and die) 될 것이다.

내가 공부하는 것은 전 인류의 생존·안전과 관련돼(relate to the survival and security of the entire human race) 있다. 따라서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남아 있는 며칠을 시험공부에 쏟아부어야(spend the remaining next few days on cramming for the exam) 한다. 내가 점수를 잘 받아야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prevent a tragedy from happening) 수 있다."

이 초등학생 과제물 말미에 담당 교사는 "큰소리로 웃었단다(laugh out loud)"라고 적었다. 외신들의 반응은 달랐다. "어린이는 좀처럼 비꼬아 말하지 않는다(rarely speak ironically). 어린이들이 불쑥 하는 말(off-hand comments)은 잠재의식 차원에서 사회에 배어들고(pervade a society at a subconscious level) 있는 현상을 반영한다. 자신의 행위가 인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 어린이의 생각은 중국인 의식 속에 움트기 시작한 변화를 방증하는(throw a sidelight on a shift coming into bud in Chinese consciousness) 것이다."

 

 

 http://www.theatlantic.com/international/archive/2012/11/why-the-fate-of-humanity-rests-on-a-chinese-middle-schoolers-test-scores/26563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04/2012120402645.html

 

 

 

Posted by 겟업
2013. 1. 4. 13:38

대규모 연구비와 인력이 동원되고 10년이 넘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진행되는 거대 과학기술 프로젝트는 ‘양날의 칼’이다. 이런 프로젝트는 언론의 주목을 받고 국민적 관심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추진하는 전문가 그룹과 연구소, 프로젝트를 기획한 관료, 그리고 이를 지원한 정치인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3차 발사도 실패땐 책임추궁 예상

이명박 대통령은 제1차 발사가 실패한 후에 나로우주센터를 방문해서 연구원을 격려했고, 2차 발사 때에는 정운찬 전 총리가 나로우주센터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발사를 지켜보았다. 최근에 두 번 연기가 됐고 향후 일정도 불투명하지만, 만약에 3차 발사가 성공한다면 그동안의 실패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프로젝트의 주역들은 국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다.



양지가 밝으면 음지는 더 어둡다. 거대 과학기술 프로젝트는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에 받는 비판과 비난이 상대적으로 더 심하다. 지금까지 5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사용한 나로호도 이번 마지막 발사마저 실패한다면 국민들의 실망이 극에 달할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 추궁이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더 나아가서 2021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한국형발사체 개발 계획에도 적신호가 켜질 공산이 크다. 얼마 전에 항공우주연구원의 연구원들이 머리도 감지 않고 손톱도 자르지 않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는데, 아마도 실패에 대한 부담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로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적’이다. 로켓 기술은 미사일 협정 등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이유 때문에 미국이 우리나라에 이전하기를 극도로 꺼리는 기술이다. 게다가 2002년에 본격적으로 우주개발에 뛰어든 우리는 몇 년 내에 발사체를 만든다는 계획을 서둘러 세웠다. 이를 위해서 러시아와 기술개발 협정을 맺었고, 러시아에서 로켓 추진체의 핵심인 하단(제1단) 로켓을 통째로 들여왔다. 우리는 상단(제2단) 로켓을 만들었다. 분리되어 개발된 두 기술이 무리하게 합쳐지다 보니 예기치 못한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했다. 발사가 실패한 뒤에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나로호의 성공이 2조 원의 경제효과를 가진다는 분석은 꼭 황우석 사태 때 줄기세포 연구가 30조 원의 경제효과를 가진다는 얘기를 다시 보는 듯하다. 언론은 하나같이 우주개발의 경제적 효과를 과장해서 선전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한국적’이다.

우주개발 경제적 효과 과장

우주개발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정치적 의미가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지금 로켓을 쏘아올린 ‘스페이스 클럽’ 9개국에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일본 영국 중국만이 아니라 인도 이스라엘 이란이 있다. 나라의 면면을 보면 그저 잘사는 나라만도 아니고, 또 우리보다 과학기술이 뛰어난 나라만 가입한 것도 아니다. 로켓의 종주국이며 과학기술 선진국인 독일이 빠져 있고, 이란과 인도가 들어 있다. 북한도 이에 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핵무기 보유국을 보자.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도 핵보유국임을 감안하면 스페이스 클럽은 핵무기를 가진 나라와 그 명단이 상당히 겹친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국제적으로 의혹의 대상이다. 우리는 지금 북한과 10번째 스페이스 클럽 가입을 두고 경쟁을 하고 있는데, 북한은 올 4월에 광명성 3호 발사에 실패함으로써 선점할 기회를 놓쳤다. 북한의 실패에 대해서도 미국과의 교류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일부러 실패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었을 정도였다.

우리보다 잘살고 과학기술 수준도 높은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스페이스 클럽에 안 들어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하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자적으로 로켓을 발사해서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켰는데, 그 이후 독자 로켓 개발을 중단하고 유럽 10개국이 출자해서 설립한 아리안스페이스사의 상업용 로켓을 이용해서 위성을 발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독자 발사체를 만들기 위해 2조 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하려는 이유는 더 많은 위성을 궤도에 올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훨씬 더 많은 위성을 사용하는 유럽 각국이 상업용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대 과학기술 프로젝트 하나에는 매년 1000억∼20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대학의 실험실에서는 1000만∼2000만 원의 연구비가 없어서 하던 연구가 중단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정치적인 거대 과학도 나름대로의 중요성이 있겠지만, 과학 연구의 꽃은 실험실에서 연구자의 손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벤치 과학(bench science)이다. 이번에 나로호 발사가 조속히 확정되어 성공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염원한다. 그렇지만 그 뒤에 한국형 거대 과학기술 프로젝트의 미래에 대해 더 활발한 공론장이 만들어져 우리의 미래를 위해 우주 로켓이 꼭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토론해 봐야 할 것이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http://news.donga.com/3/all/20121204/51286730/1

 

 

Posted by 겟업
2013. 1. 4. 13:38
중국 산시 성 성도(省都)인 시안의 옛 이름은 장안이다. 1100년간 중국 통일 왕조의 수도였으며 유방과 항우가 자웅을 겨루던 곳이다. 당 현종이 양귀비와 사랑을 나누던 곳도 바로 이곳 시안이다.

최근에는 서부 대개발 정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으며, 베이징 상하이와 함께 중국 3대 교육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시진핑 당 총서기가 젊은 시절 인고의 세월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올해엔 삼성전자가 이곳에 7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키로 해 한국 붐도 일고 있다.

이러한 산시 성 정부와 경제 협력 채널을 구축하기 위해 최근 시안을 공식 방문했다. 대한민국 장관으로서는 최초의 공식 방문이라고 한다. 한 나라 중앙정부가 외국 지방정부와 협력 채널을 구축하는 것은 다소 어색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거대한 국가다. 중서부 진출을 통해 중국의 넓은 내수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10년이 지나도록 별 성과가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중국의 주요 성(省)과 시를 개별적으로 공략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필요성에서 시안을 방문한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사상 처음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했다. 이를 기념해 올해부터 12월 5일을 무역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올해에는 유로존의 경기침체 장기화,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전체 무역 규모가 1조 달러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기업들의 노력 덕분에 올해에도 우리는 무역 1조 달러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순위는 지난해 9위에서 이탈리아를 제치고 8강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험난한 대외 여건과 경기침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선진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 우리 무역을 둘러싼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때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마흔아홉 차례 해외를 순방하며 정상 간 ‘관계자산’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통령 순방을 수행하면서 느낀 점은 이러한 노력이 두고두고 국익으로 연결되리라는 강한 믿음이었다.

장·차관이나 각계 고위급 인사의 해외 방문도 국익 차원에서는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중국 광둥 성 총영사의 말은 이런 점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산시 성 방문 길에 들른 광둥 성에서 그는 나에게 “올해 광둥성을 방문한 첫 번째 대한민국 장관”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은 행정부, 입법부를 종합해 고위직의 연중 해외 방문 일정을 조정합니다. 그 덕분에 너무 소원한 나라가 생기는 것을 예방하고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주요 인사의 해외 방문은 국가 인프라이다. 그런 만큼 고위급의 해외 방문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방문 국가를 다양화해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 쓰일 ‘관계자산’을 정보로 공유하는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국제 협력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도 좋겠다. 세계 각국과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 구체적 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한편, 중국같이 거대한 국가와는 우리 중앙 정부가 그곳의 지방 정부와 적극 협력할 필요가 있다. 경제는 실리이기 때문이다.

무역의 날을 맞아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생각하다 보니 소동파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여산 진면목을 왜 모르는가 했더니 이 몸이 그 산속에 갇혀 있기 때문일세(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불식여산진면목 지연신재차산중).” 산을 보기 위해서는 그 산을 벗어나는 역발상이 국제 협력에도 꼭 필요하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http://news.donga.com/3/all/20121204/51286840/1

 

 

Posted by 겟업
2013. 1. 4. 13:37

대선 벽보가 나붙었다. 1번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인데 ‘여성’만 빼면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있고, 2번 ‘사람이 먼저다’는 교통경찰 준칙 같다. 3번 ‘상상하라 코리아연방’은 논술 문제로 딱이다. 벽보는 조금 싱거운데 현수막은 온통 공짜 메뉴다. ‘65세 정년 연장’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고용지원금’ ‘정규직화’ ‘청년고용할당제’, 곧 공짜천국이 도래할 모양이다. ‘사교육비 해소’ ‘중산층을 두 배로’ ‘일자리 혁명’-이제 나올 것은 다 나왔다. 그런데 왜 허전하지? 살림살이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다. 이런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 큰 그림을 보여주질 못해서다.

‘몽땅 해드립니다’를 합창하는 두 후보를 정책 차별성으로 판가름하기에는 조금 어려워졌다. 한 손엔 복지, 다른 손엔 경제민주화를 들고 전장을 누비는 두 후보가 헷갈린다. 차별성이 없는 것은 아니건만 신경 곤두세운 유권자는 별로 없다. 단지 그 외침, “다 해줍니다”에 마음이 얼핏 쏠리고, 각자의 절실한 형편에 와닿는 후보가 누군지를 가려낼 뿐이다. “다 해줍니다”가 호소력을 잃는 듯하자 양 진영은 아예 격투기로 나섰다. 실정(失政) 공방전이다. ‘노정권 실정의 책임자’에 ‘MB실정의 공모자’, 이런 원색적 비난은 아마 곧 ‘친노의 얼굴마담’ ‘유신의 딸’로 맞받아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정당의 품위, 캠페인의 수준이 요만하다.

 지난 단일화 TV토론 한 장면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물었다. “시대정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재인 후보 왈, “복지와 경제민주화지요.” 필자는 그 지점에서 절망했다. 정치철학과 세계관을 멋지게 피력하도록 깔아준 그 절호의 기회를 문재인 후보는 상식적인 답변으로 날려버렸다. 박근혜 후보라고 다를까? 지난 나홀로 토론에서 그는 ‘국민 대통합!’이라고 했다. 상처 치유, 갈등 해결로 협력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그 구호가 복잡한 시대방정식을 풀어낼지는 모르겠다.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수단이고, 국민 대통합이 가치란 점에서 후자가 논리적으론 ‘시대정신’에 근접하기는 한다. ‘시대정신’이란 우리의 처지를 정확히 짚고 미래 목표를 분명히 지정하는 ‘가치개념’과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실천개념’까지를 포함한 것이어야 한다. 어렵기는 하다. 그게 뭘까?

시민민주주의! 이게 나의 답이다. 모든 정권은 민주적 가치를 표방한다. 그런데 실체를 벗겨보면 허점과 얼룩투성이다. 노무현 정권은 운동권의 리더들로 들끓었던 ‘행동가 민주주의’였다. 격앙된 운동권이 장악한 정치판엔 과잉 호르몬이 흘러넘쳤다. 시민단체를 멀찌감치 내쫓았던 MB정권엔 정치도 국민도 없었다. ‘종업원 민주주의’, 국민은 부지런한 오너에게 박수를 쳐야 하는 종업원이었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목격했던 촛불시위대를 ‘종업원 민주주의’의 오너는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거 뭐지?’

두 후보가 원색적 공방전을 벌이기 전에 자성(自省)부터 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참여라는 아름다운 명분으로 어떻게 시민을 밀어냈는지를, ‘국민을 섬깁니다’라고 맹세한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많은 서민을 성공의 말안장에서 낙마시켰는지를 말이다. 그러니 통치권을 시민권으로 교체하는 ‘시민민주주의’가 답이다. 시민권에는 좌우가 없다. 민주화 25년, 소득격차와 양극화, 이분법적 아집과 격돌로 너덜너덜해진 시민권의 쇄신을 위한 정교한 사회디자인을 내놔야 한다. 국민 대통합,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그 설계도 중심부에 위치할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유럽 노동운동가의 잔잔한 얘기가 감동적이다. 경제가 어려울 땐 십시일반 노동시간을 줄여 해고통지서를 받아든 사람에게 나눠준다. ‘동료가 쫓겨난 작업장에서 마음이 편하겠어요?’ 상식적인 얘기지만 한국에선 이게 안 된다. 시민권의 두 얼굴이 권리와 책임인데, 한국에서는 권리로만 주창했기 때문이다. ‘몽땅 해드립니다!’도 열심히 권리를 편들 뿐 책임질 사람과 일을 지목하지 않는다. 아직 후진정치다. 포퓰리즘을 욕하는 모두가 포퓰리스트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한국은 사회디자인(social design)이 절실한 시대로 진입했다. 여기엔 권리보다 책임을 앞에 두는 시민권이 핵심이다. 예컨대 복지와 경제민주화에서 시민들이 져야 할 책임은 증발됐다. ‘증세와 양보!’ 복지에는 증세가 필수적이고, 경제민주화에는 재벌, 노조, 고소득층의 양보가 우선돼야 한다. 생산시장과 노동시장을 독점하는 집단을 지목해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고, 그것으로 혜택받는 집단에게 사회통합에의 헌신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이게 국민 대통합이고, 자발적 타협을 가동하는 시민민주주의다. 권리장전은 책임선언과 같은 말이다. 시민권은 공감과 양보로 진화한다. ‘몽땅 해드립니다!’가 아니라 ‘위험을 나눕시다!’다. 십수 년 전, 그걸 못해 외환위기에 휘청거리지 않았는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066583&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4. 13:36
지극한 평범함이 누군가에겐 비범의 영역이 되기도 한다. 막내 누이에게 내가 그렇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그에게 내 별명은 ‘백과사전’이다. 지금도 누이의 휴대전화 속 내 이름은 ‘나의 네이버’다. 누이의 궁금한 열정은 쌍용차 문제에서부터 대선 후보, 방송사 파업, 가자지구, 동성애, 심지어 연예인 성형 문제에 이르기까지 숨이 찰 정도다. 질문마다 나는 팩트를 몇 번씩 교차확인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막내 누이의 평범하면서 특별한 이력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그 시절의 많은 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초등학교 졸업 후 14살부터 평화시장에서 미싱사 시다로 일했다. 1970년 재단사 전태일이 분신하던 그 순간에도 그는 평화시장 골방에서 시다로 일하고 있었다. 유난히 지적 호기심이 많은 소녀가 어떻게 그 오랜 세월 자신의 꿈을 골방처럼 꾹꾹 눌러 담고 살았는지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아리다.

 

놀랍게도 그 누이가 올해 초 5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그가 대학에 간 이유는 간단하다. 늘 조마조마한 삶이 싫었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이 남들도 대부분 모르는 일인지 자신만 모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는 것이다. 내가 뭘 모르는지를 알아야 조마조마하게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그의 고백은 짠하다.

 

나로호 발사가 실패했을 경우 궁금증이 많아도 그는 그걸 누구에게 대놓고 물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혼자만 모르는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학생이 된 지금도 그의 질문은 끊이지 않는다. 누이가 요즘 의아하게 생각하는 일 두 가지를 물어왔다. 한 대학의 철학과 교수씩이나 되는 이가 학생들에게 황당한 과제를 내줬다. 보수 논객의 누리집에 실명으로 ‘종북좌익을 진보라 부르는 언론사기 그만하라’는 글을 올릴 것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교수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학생을 도구화하는 작태지만 정작 해당 교수는 지적 트레이닝 과정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 사안 속에 내포된 황당함과 폭력성을 직감적으론 알겠는데, 교수가 내준 과제를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늦깎이 대학생의 처지에선 소위 종북좌파에 대한 자세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게 누이의 고민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결정적 순간마다 결심의 근거로 내세우는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라는 비장한 멘트도 누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모양이다. 박근혜 후보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누이 같은 이들은 그게 어떤 나라인지 진짜 궁금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박혁거세의 건국신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아버지 박정희가 이룩했다는 산업화된 대한민국을 의미하는 게 틀림없다. 아버지와 자신이 그토록 힘들게 일으켜 세운 나라를 이렇게 거덜내다니,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시절 산업화 역군 중 한 명이었을 막내 누이는 한번도 자신이 그런 주역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외려 많이 배운 이들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는 동안 어린 나이부터 미싱만 돌리느라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늘 부끄러워하며 조마조마한 삶을 살았다.

 

반대 세력에 의해 나라가 무너질까 봐 비분강개하는 철학 교수나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나라는, 막내 누이 같은 이들이 말하는 나라와 같은 나라가 아니지 싶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폭력적이고 권위적이며 배타적인 방법으로 자기들만의 나라를 주장할 리가 없다. 나만 있고, 나만 옳은 나라가 어떻게 100퍼센트 대한민국인가. 진짜, 어떻게 함께해온 나라인데.

 

 

 

이명수 심리기획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35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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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4. 13:35

지난해 이맘때부터 지금까지 내 주변에서 세 사람이 목숨을 끊었다. 죽음의 이유는 모두 달랐다. 하지만 자살이 세간의 어느 이야기가 아닌 내 삶에 파고든 현실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는 하나같이 무거웠다.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마지막에 처했던 상황에 감정이입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맞닥뜨린 것은 그들이 느꼈을 고독이었다. 외로운 인간은 죽을 수 있다는 말이 기억났다.

 

‘어느 영구임대아파트의 자살 행렬’이라는, 몇 달 전에 실린 <한겨레> 기사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영구임대아파트’는 그들의 경제적 곤궁을 보여주지만, 가난이 정작 무서운 것은 그것이 가져오는 고독일 것이다. 물론 모든 고독을 경제적 문제로 환원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살아갈 힘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사실은 저마다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면, 고독과 비용이 갖는 그 밀접한 상관관계를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렵다. 내 경우가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나는 만 서른다섯, 미혼의 자영업자다. 거의 매일 혼자 밥 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이 상황이 그렇게 외롭지는 않다. 아이패드가 있고, 시간을 보낼 만한 게임 앱 구매에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한달에 책 서너권을 사서 읽고, 취미에 지출도 하고 있으며, 온종일 제대로 대화 한번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퇴근길 아는 선배의 술집에 들른다. 남들은 이런 생활을 ‘여가’라고 부르지만 내게는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고, 불행히도 그 모든 행동에는 돈이 든다. 내가 고독을 달래려고 지출하는 비용, 여기에 난 ‘고독비용’이란 이름을 붙였다.

 

우리 대다수의 고독비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독은 기본적으로 관계의 문제라 이런 땜질식 비용 지출이 외로움의 근본적 해결방안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가 이미 관계의 형성과 유지에도 상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를 부양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부모를 찾을 수 없고,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부모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재력과 능력은 결혼의 필수 조건이 되어 아파트 전셋값을 마련하지 못한 내 친구는 아직 가정을 꾸리지 못하고 있다. 번듯한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모임을 기피하며 홀로 방 안에 틀어박히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돈은 이미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관계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영구임대아파트의 자살 사건은 관계 유지 비용이 없는 사람들의 고독 문제다. 그들은 가난했고,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다. 일면식조차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이렇게 논하는 것은 불경스런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 사건을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에 동조할 수도 없다. 이 사건을 보며 복지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 복지란 주린 배를 채워달라는 동물적 요구가 아니라, 우리를 외롭지 않게 해달라는 인간으로서의 요구다. 우리가 자살률 수위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은 우리 주변의 고독을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외로움의 고리를 끊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사적 영역의 의무일 수만은 없다. 복지가 우리의 고독에 관심을 가질 때, 이 불편한 한국 사회의 복지 체계가 조금은 더 새롭게 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563566.html

 

 

Posted by 겟업
2013. 1. 4. 13:34

오래 전 영국 유학 시절, 학과 대학원생들과 함께 처음 간 펍에서의 실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은 각자 돈으로 자기 마실 것만 산다고 알고 있던 이 서울 촌놈은 다른 학생이 권한 맥주 한 잔을 얻어먹고는 피곤하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나중에 알게 된 영국의 술 문화에 따르면 각자가 새 술을 주문할 때 잔이 비어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술을 한잔 사는 것이 예의였다. 따로 순서를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서로에게 술을 돌리다 보면, 술자리가 끝나갈 때는 대략 비슷한 정도로 술값을 내게 되는 것이었다. 이러다 보니 약삭빠른 사람들은 술 마시는 속도를 조절해서 남에게 대접만 받고, 자신은 베풀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도 가능하다. 내가 무지해서 했던 행동처럼 말이다.

'현대는 경쟁 사회다'라는 명제에 반론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협력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 손해보고, 경쟁하고 남을 이용해야 성공한다는 주장이 뭔가 불편은 하지만 말이다. 생태계 연구의 기반이 되는 다윈의 진화론은 이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잘 이용된다. 다윈 이론의 근본 아이디어에 따르면 개체들은 변이를 통해서 조금씩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자연선택' 이라는 필터과정을 통해 환경에 잘 적응한 놈들이 자손을 많이 남기게 된다. 다윈의 뒤를 이은 스펜서와 같은 학자는 '적자생존'이라는 좀 더 무서운 용어를 사용했고, 대중들은 이를 '약육강식'이라는 단순한 방식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사회에 위험하게 적용되어 제국의 식민지 침탈이나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는 강한 것이 절대선이고, 이기적인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 믿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과연 협력하며 사는 세상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이나 이상주의자들의 꿈에 지나지 않을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협력과 이타성은 생태계 존재의 필수조건이다. 우리 세포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미토콘드리아도 아주 오래 전에 외부에서 유래한 세포가 우리 세포와 협력해서 안정화 된 것이다. 세포의 문제가 너무 단순해 보인다면, '죄수의 딜레마'로 알려진 게임 이론의 경우를 보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여기 참여한 개개인은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그런데 만일 이 게임이 한번이 아니고 매일매일 벌어지는 일이라면 어떠할 것인가? 반복되는 게임에서는 배신보다는 협력이 더 좋은 전략이다. 생물들은 자기와 가까운 유전자를 가진 친족들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혈연선택이라 부른다. 인간이 유지하는 복잡한 사회체계에서도 협력과 이타성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좋은 평판 그리고 집단을 위한 희생이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생식 성공률을 높인다. 또 인간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어느 생물들도 이루지 못한 정보 공유를 실현하고 있는데, 이런 사회적 활동의 근저에는 협력과 이타적 기작이 내재되어 있다. 오래 전 다윈이 제안했던 진화의 기작은 단순한 경쟁뿐 아니라, 이타적이고 협력하는 개체나 집단의 성공을 고려해야만 성립되는 개념이다.

선거장에 가서 투표하는 행위도 대표적인 이타적인 행동이다. 왜냐하면 귀찮게 투표장에 가는데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내가 던진 한 표가 나에게 주는 단기적 효용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평판을 높게 만드는 행동일 뿐 아니라, 내가 속한 혈연 혹은 집단의 존속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나에게 이익으로 돌아오는 행동이다. 투표소 앞에서 인증샷을 올려 남에게 보이거나, 선거 결과가 개개인에게 큰 영향이 있다는 점을 널리 알리는 것 등이 투표 참여를 증대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인 이유다. 얼마 후 있을 대선 선거장에서 우리 국민들의 높은 이타성을 직접 관찰하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투표장 가는 것은 장기적으로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사회적 협력 행동이다.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2/h20121202210202121780.htm

 

Posted by 겟업
2013. 1. 4. 13:31

민병훈 감독(43)은 자신이 만든 영화 ‘터치’를 지난달 15일, 개봉 일주일 만에 스스로 조기 종영했다. 상영관을 제대로 내주지 않은 대기업 영화관들에 대한 반발의 뜻에서였다. 민 감독은 지난달 8일 ‘터치’가 개봉된 뒤 전국 12개 극장에서 하루 1, 2회 교차 상영되는 것을 확인하고 배급사에 종영을 통보했다. 교차상영이란 다른 영화와 섞어서 띄엄띄엄 상영하는 이른바 ‘퐁당퐁당 상영’을 말한다. 민 감독은 또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불공정 거래 실태를 신고했다.

감독이 자기 손으로 작품을 내린 일은 이례적이어서 영화계도 충격에 빠졌다. 지난달 30일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최민식은 수상 소감으로 “우리는 주류에서 화려한 잔치를 벌이고 있지만 동료 감독 누구는 쓴 소주를 마시며 비통해하고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올해 관객 1000만 명 이상이 든 영화가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두 편이나 나왔고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영화의 최고 호황기라는 말도 들리지만 그만큼 그늘도 깊다. 작은 영화들이 상영관을 잡지 못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이 영화계의 목소리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민 감독을 만났다.

 

 

 

―영화 종영 이후 어떻게 지냈나.

“6년을 준비한 영화다. ‘자식을 내 손으로 죽이고’ 편하게 못 잤다. 하지만 내 자식을 죽여 이슈화해야 다른 자식들이 차별받는 시스템이 바뀔 것 같았다.”

―유준상, 김지영 등 배우들도 많이 섭섭했을 것 같다.

“둘 다 흔쾌히 ‘종영합시다’라고 하더라. 미안하고도 고마웠다. 지영 씨는 마음이 보석 같은 사람이다. 최고의 배우로 만들고 싶었는데 미안하다. 유준상은 동갑내기로 17년 친구 사이다. 드라마 스태프로 일할 때 그도 무명 배우였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모습에 반해 친구가 됐다.”

‘터치’는 민 감독의 4번째 장편이다. 무능한 사격 코치로 알코올의존증 치료를 받고 있는 동식(유준상)과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환자들을 무연고자로 속여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돈을 버는 아내 수원(김지영)의 이야기를 담았다. 생명의 존귀함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인정받아 부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김지영과 유준상 연기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도 따랐다.

―영진위는 어떤 조치를 내렸나.

“(‘터치’를 상영한) 모든 극장들이 불합리하게 상영했다고 봤다. 영진위가 표준상영계약서에 따라 교차상영 일수의 2배 기간의 추가 상영을 하든지, 아니면 부금률(극장과 투자, 배급사 등이 수익을 나누는 비율)을 10% 상향 조정하라고 권고했다. 권고여서 법적 효력은 없다. 극장이 이 권고안을 따르지 않으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할 계획이다.”

영진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9년부터 운영하는 불공정행위 신고센터의 접수 건수는 민 감독의 경우를 포함해 단 3건이다. 감독이나 제작사는 영화계의 ‘슈퍼 갑(甲)’인 극장의 보복이 두려워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별을 받았나.

“‘터치’는 전국 97개 관에서 개봉했지만 이는 대부분 허수(虛數)다. 실제로 50개 관도 안 된다. 충북의 한 소도시 멀티플렉스(복수의 스크린이 있는 상영관)에서는 7관에서 이른 아침에 한 번, 3관에서 오후에 한 번. 1관에서 심야에 한 번 상영됐다. 명목상으로는 3개 관이지만 실제로는 합쳐서 하루 종일 4번도 상영이 안 되는 거다. 서울 강남에서는 2개 관에서 이른 아침과 늦은 밤 한 번씩 상영했다. 인터넷 예매의 경우 대기업이 투자한 대형 영화는 일주일 전 예매가 가능한데 내 영화는 목요일 개봉임에도 화요일 밤에야 열어 줬다. 그러고는 예매율이 낮다며 주말이 지나고 상영관을 더 줄였다.”

―대기업이 투자한 영화가 극장을 다 차지한다는 지적이 있다.

“CGV의 계열사인 CJ E&M이 투자 기획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지금까지 20만 회 가까이 상영됐다. 한 회에 10명만 들어도 200만 관객이다. 전국 2100개 스크린 중 ‘광해’가 1000개 넘게 차지했었다. 영화의 품질보다 공급과 유통이 모든 걸 좌우한다. 대기업이 제작, 배급, 유통까지 수직계열화로 영화계를 독점하고 있다. 멀티플렉스 10개 상영관에 대기업 영화가 7, 8개를 차지하는 형국이다. 프랑스, 일본, 미국 등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경우는 없다. 멀티플렉스의 원래 취지는 관객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다. 영화는 문화 상품이다. 서점에 갔는데 책 하나로 절반이 채워져 있다면 그건 공포영화다.”

프랑스는 극장에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스크린 독점을 규제한다. 멀티플렉스는 한 영화의 프린트(상영 필름 또는 디지털 파일)를 두 벌 이상 보유할 수 없으며,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30%를 초과할 수 없다.

―‘터치’는 지금까지 관객 1만4539명이 들었다. 원래 목표는….

“나는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니다. 제작비가 5억 원 정도 들었다. 20만 명이 목표였다. 15만 명만 들면 배우, 스태프와 파티를 하려고 했다. 약간 어렵지만 의미 있는 이 영화를 볼 만한 사람이 그 정도라고 봤다. 이창동 감독의 ‘시’가 20만 명이다. 차기작은 23만 명, 다음은 28만 명 이렇게 잡았다. 소박한 꿈이었다. 200만 관객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조금만 상생하자는 것이다. 경제계에서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까지 규제하며 작은 가게들을 살리자고 한다. 문화계도 이렇게 하자는 것이다.”

―영화 제작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영화 만들기는 어떤가.

“대기업 투자사의 입맛에 안 맞으면 투자받기가 힘들다. 한국 영화가 단순화되는 이유다. 상업영화는 넘쳐 나지만 좋은 영화는 안 나온다. 똑같은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품질에 자신이 없으니 마케팅비를 엄청나게 쓴다. 50억 원 들인 영화면 광고비가 20억 원이다. 그만큼 스태프의 인건비가 줄어든다.”

―대기업이 영화판에 들어오면서 순기능도 있었다.

“극장이 늘고 영화 편수가 늘어 관객이 증가했다. 나도 이런 점은 고무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문화적 다양성은 크게 위축됐다. 문화는 다양성이 힘이다. 다양한 사상과 이야기가 존립해야 성장도 가능하다. 규모가 큰 영화, 오락영화만 승리하는 구조로는 얼마 못 간다. 한국 영화 전성기라는데 극장에 가면 볼 거 없다고 한숨쉬는 분이 많다.”

―러시아에서 공부한 이력이 특이하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신학대를 나와 신부가 되고 싶었지만 어쩌다 삼수를 했다. 군 제대 뒤 러시아로 영화를 공부하러 갔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영화가 신비로웠다. 당시 공산국가가 무섭기도 했지만 예술의 기초가 잘된 나라라고 생각했다. 음악 미술 무용 영화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더라. 타르콥스키 감독 밑에서 촬영감독을 지낸 바딤 유소프 교수에게 배웠다. 7년간 예술의 풍요를 마음껏 누렸다.”

―당시는 모두 미국, 유럽에서 영화를 공부했는데….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남들과 똑같은 미국, 유럽 유학이 싫었다. 내 데뷔작(‘벌이 날다’)은 타지키스탄에서 찍었다. 세 번째 작품(‘포도나무를 베어라’)은 남들이 어려워하는 종교 영화다. 변방을 떠돌며 도전하는 게 좋다.”

―러시아의 관객과 영화는 어떤가.

“문화적 다양성이 살아 있는 나라다. 러시아 사람도 다 문화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한다. 타르콥스키 영화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지상파에서도 그의 영화를 튼다. 백남준의 미술이 재미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저런 사람도 있네. 뭘 말하는 걸까’라고 의문을 갖고 즐기면 되는 거다. 김기덕 감독은 ‘뭐 저런 영화를 만드느냐’라는 반응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한국 영화 관객은 익숙하지 않은 영화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려워한다. 타르콥스키 영화의 전 세계 누적 관객이 10억 명이다. 벨기에 다르덴 형제 감독 영화도 100개국에 수출돼 1억 명이 봤다.”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

“지금은 1인용 캠코더로 영화를 만드는 시대다. 올해 한국 영화가 400편이 넘는다. 그런데 극장은 한계가 있다. 유통망을 열어 줘야 한다. 마을회관, 기업체 연수원 등 전국 어디에나 영사기가 있다. 이런 시설을 활용하면 독립영화, 작은 영화도 상영할 곳을 찾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얼마 전에 이런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안다. 문제는 실천이다.”

―앞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 것인가.

“물론이다. 나는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다. 벽을 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게 영화는 삶을 치유하고 새 생명을 얻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다음 목표는 아예 내리지도 못하는, ‘절대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오전 1시에도 사람이 꽉꽉 차는 영화를 만들 것이다.”

 

 

 

○ 민병훈 감독 프로필

△1969년 서울 출생 △대일외국어고 졸업
△러시아 국립영화대에서 촬영 전공으로 학사, 석사 학위 취득
△작품 및 수상 경력
―‘벌이 날다’(1998년·이탈리아 토리노 영화제 대상, 그리스 테살로니키 영화제 은상)
―‘괜찮아, 울지마’(2001년·체코 카를로비바리 영화 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 비평가상)
―‘포도나무를 베어라’(2006년·부산국제영화제 PPP 코닥상)
―‘터치’(2012년)

 



민병선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21203/51262683/1

 

 

Posted by 겟업
2013. 1. 4. 13:30

“진리를 찾겠다는 사람은 믿을지언정 진리를 찾았다는 사람은 믿지 말라.”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가 귀 엷은 이들에게 주는 충고다. 누군가 진리를 찾았다고 펄펄 뛰며 좋아하고 있는데 굳이 나서서 핀잔을 주거나 어깃장을 놓을 이유는 없겠다. 지드의 충고는 무언가를 찾았다는 사람들이 자기의 신념을 마치 절대적 진리처럼 우상화하는 오만을 경계하는 뜻일 게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했던가. 비록 무슨 깨침을 얻고 어떤 신념에 이르렀다 한들 그것을 늘 입술에 매달고 다니면서 언제나 어디서나 분별없이 외쳐댄다면, 그 깨침은 얼마나 초라하고 그 신념은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

이성이 늘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공동체와 소통하지 못하는 ‘닫힌 이성’은 그 자체로 비이성적이다. 폐쇄된 성 안에서 저 홀로 고고하게 빛나는 신념은 독선의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 신념은 겸손해야 하고, 이성은 늘 열려 있어야 한다. ‘열린 이성’이란 획일주의에 얽매이지 않는 소통과 다양성의 지혜일 것이다.

획일주의에 휘둘리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파시즘의 불행을 겪게 된다. 파시즘은 처음부터 거칠게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전체주의는 부드러운 이념으로 시작되며, 뜻밖에도 가치 지향적이다. 그 가치가 이성을 짓누를 때 도그마의 그늘이 덮쳐온다. 국민투표로 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아리안 민족의 영광’을 이념으로 내걸고 끔찍한 나치 독재를 펼쳤다. 선거와 투표만으로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지도자의 어떤 신념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는가가 국민의 삶을 좌우한다. 자칫 아리안 민족주의처럼 ‘정신 나간 시대정신’을 선택하는 날에는 끝장을 맞게 된다. 옛적의 일만이 아니다. 이성과 과학의 첨단시대인 21세기에도 여전히 보고 듣고 겪는 일이다.

전기 끊긴 방의 촛불화재로 가난한 할머니와 어린 손자가 목숨을 잃는 현실에서도 부잣집 아이들의 공짜 점심, 공짜 기저귀까지 ‘평등’하게 챙겨주겠다는 무상급식·무상보육, 요람에서 무덤까지 몽땅 국가가 책임지겠다면서 그 재원조달 방안은 우물쩍 넘겨버리는 보편적 복지, 입만 열면 인권을 외치면서 북한 인권운동의 열정을 ‘이상한 짓’이라고 빈정대는 그야말로 이상한 인권의식, 30여 년 전 유신독재에는 지금껏 이를 갈면서 현재진행의 세습독재에는 턱없이 너그러운 청맹과니의 민족주의, 북핵을 제어할 아무런 경륜 없이 입술로만 불러대는 평화의 노래…, ‘평등과 복지’ ‘민족과 평화’의 따뜻한 이념들이 온 사회를 싸늘한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모순의 시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전이 권력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고속열차처럼 질주하고 있다. 『미국 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은 “달리는 열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지만, 열차는 앞으로 달려도 우리의 눈은 좌우 옆과 뒤편까지 두루 살피는 반성과 배려, 소통과 균형의 성찰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떠나온 곳에 남겨둔 애환(哀歡)의 기억들, 스치고 지나쳐온 곳곳에 영글어 가는 숱한 인연들, 그 기억과 인연 속에 생생히 살아 숨쉬는 뭇 생명의 관계성…, 그 소중한 가치들을 깡그리 외면한 채 오직 눈앞만 보고 내달리는 일방통행의 달음질은 삶과 역사에 대한 인식의 빈곤이자 공동체를 불행으로 이끄는 포퓰리즘의 어리석음일 따름이다. 때로는 열차의 속도를 늦추거나, 멈춰서 기다리거나, 방향을 바꿔야 할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선거 캠프마다 폴리페서들로 넘쳐나건만 포퓰리즘의 오류를 꾸짖는 지성의 고뇌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조금만 찬찬히 살펴봐도 금방 허풍으로 드러날 공약들이 무슨 진리나 되는 듯 선거판을 마냥 휘젓는다. 땀 흘리지 않고 열매를 얻게 해준다는 맹랑한 공약(空約)들이.

땀 흘리지 않고 거두는 열매는 없다. 증세 없이 복지 없고, 성장 없이 일자리 없으며, 관용 없이 통합 없고, 안보 없이는 평화도 없다. 진리를 찾았다는 말을 믿지 말라는 지드의 충고가 “정치인들이 펼쳐 보이는 나른한 무지갯빛 환상에 속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이번 대선은 두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상속한 남녀 후보의 대결로 좁혀졌지만, 과거 싸움으로 미래를 그르칠 수는 없다. 달리는 열차 위에서 필요한 것은 분노의 감성이 아니라 냉철한 이성이다. 포용의 여성성과 투지(鬪志)의 남성성, 점진적 개혁과 급진적 변혁, 단계적 균형복지와 전면적 무상복지, 전천후(全天候) 대북정책과 외곬의 햇볕정책, 자유민주 헌정체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 새 시대를 가늠할 역사적 갈림길에서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고민하는 ‘열린 이성’의 선택이 절실히 요망된다.

 


이 우 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055063&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4. 13:27

밤잠 아껴가며 하루 10시간 넘게 연습하는 집념이 글로벌 성공 비결
국제적 경험 쌓은 패기 있는 인재가 나라 먹여 살릴 것… 많이 해외 나가야

 

 

최나연·박인비 같은 프로 골퍼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밤잠을 아껴가며 하루 10시간 넘게 연습한다. 담력을 키우기 위해 한밤중에 공동묘지를 찾아갈 정도다. 이런 집념의 결과로 한국 여성 프로들이 전 세계 골프 대회에서 최고 성적을 거두면서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반면 비슷한 실력의 일본 여자 프로들에게선 헝그리 정신을 찾기 어렵다. 그들은 낯선 미국 땅에서 핫도그를 씹으며, 미니밴에서 잠을 자면서 힘든 투어를 쫓아다니지 않는다. 미국보다 쉬운 일본 시장에 만족한다. 일본 여자 프로들에게 "밖에서 고생하며 돈 벌어오라"고 권하면 손사래를 친다. 대중음악 가수들도 마찬가지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본 가수들이 주도하는 J팝이 대세였다. 지금은 한류(韓流) 아이돌이 일본 가수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찼다. 한국 아이돌은 노래와 공연 기획만 잘하는 게 아니다. 몇 시간씩 자리에 앉아 몰려드는 수천명의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가며 힘든 유학생활을 끝내고, 세계적인 투자은행·컨설팅 그룹·국제기구에 들어가서 활약하는 한국의 젊은 인재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프랑스·이탈리아의 도시는 말할 것도 없이 시골 식당에서 현지 요리를 배우려는 우리 젊은이를 우연히 만나는 일도 다반사다.

서울 압구정동의 스페인 음식점 '알카자데 서울'에는 카를로스 신(한국명 신승환)이라는 젊은 셰프가 있다. 그는 한국에서 배재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초밥집에서 요리사 보조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프랑스의 세계적인 요리학교 코르동 블루에서 정식으로 요리를 배웠고, 이탈리아·호주의 유명 식당에서 경험을 두루 쌓았다. 두바이의 최고급 호텔 식당 요리사를 거쳐 스페인으로 건너가 주방장이 됐던 그는 영어·일어·스페인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프로 요리사다.

이제 한국 경제의 미래는 카를로스 신 같은 글로벌 인재에게 물어봐야 한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은 국제적으로 경험을 쌓은 패기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해외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먹여 살리듯, 도전 정신으로 충만한 그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면서 한국을 먹여 살릴 것이다.

글로벌 인재들은 지금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는 제조업의 빈자리를 메울 가장 중요한 대안이다.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은 앞으로 10년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 미국이 그랬고, 일본도 똑같은 길을 걸었다. 미국은 1980년대부터 대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면서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를 겪었다. 미국의 빈자리를 재빨리 차지했던 일본도 제조업의 주도권을 한국과 중국에 넘겨주고 있다. 우리도 벌써부터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기면서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은 더 국제화하고, 더 개방화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 교역규모 9위에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은행 총재를 배출한 글로벌 인재 수출 국가이다. 또 해외 거주 국민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나라이다. 젊은이들은 물 흐르듯 해외로 나가고, 경제 활력을 지키기 위해 기업이 필요한 해외 인력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가 자신의 꿈을 찾아 해외로 나가야 한다. 그들의 빈자리는 '코리안 드림'을 찾아 입국하는 외국인 근로자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참 활력 있고 똑똑하다. 그들이 전 세계에서 날개를 펴고 도약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김영수 조선경제i 대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02/2012120201545.html

 

 

Posted by 겟업
2013. 1. 4. 13:25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50년의 세계'라는 책을 통해 일본이 전 세계 GDP(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10년 5.8%에서 2050년 1.9%로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인당 GDP는 한국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일본 몰락론의 근거는 기술 경쟁력이나 근로 의욕의 하락이 아니다. 일본은 2011년 1억2700여만명인 인구가 2050년 9700여만명으로 감소한다. 고령화율이 23%에서 40%까지 상승하고 평균 연령이 52.3세로 높아진다. 일할 젊은이는 급감하는데 도움을 받아야 할 은퇴자가 급증하는 노인대국(老人大國)화에 따른 것이다. 20년 경기 침체, 재정 적자의 급증도 고령화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다.

그런 일본에서는 최근 정치적 리더십 부재로 자멸할 것이라는 '일본의 자살'이라는 논문이 화제이다. 1970년대 출판됐던 이 논문은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이유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오는 16일 총선이 다가오지만, 인구 감소 등 위기의 본질에 대해선 논쟁조차 없다. 정치 지도자들은 19세기로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와 제3세력으로 떠오른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지사,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등은 헌법 개정, 군대 보유, 애국 교육 등을 주창하고 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은 선동적 구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군대를 만들어도 군에 갈 젊은이가 없고 공장을 지어도 근로자를 구할 수 없는 게 일본의 미래이다. 아베 총재는 '강한 국토'를 만들겠다며 10년간 200조엔을 투자, 고속도로 등 토목공사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인구 감소로 곰과 다람쥐가 뛰어노는 도로가 속출하는 현실에는 눈감았다.

일본은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출산 확대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쳤지만 모두 실패했다. 개방적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외국인과 함께 사는 방법 외에는 대책이 없는데도 '외국인 혐오증' '배외주의(排外主義)'가 강해지고 있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일자리를 뺏을 것이며 '안전·안심(安全·安心)'의 일본 사회를 범죄로 물들일 것이라는 주장이 만연하고 있다. 중국 영사관 건설 계획에 대해 "동네가 차이나타운화해서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며 반대 운동을 벌인다.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 세금을 낸 재일교포의 소액 정치헌금을 받은 것이 장관 사퇴의 이유가 됐다. 일본 국적의 재일교포 3세인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은 허리케인 피해를 당한 미국에 50만달러를 기부했다가 일부 네티즌으로부터 '매국노(賣國奴)'라는 공격을 받았다.

내부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을 외부에서 적(敵)을 만들어 전가하려는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선동(煽動)이 일반 시민에게 전염됐다는 증거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싸구려 술(극단적 내셔널리즘)에 취해 소동을 벌이면 잠시 현실을 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정치 지도자의 선동은 선거 때 득표(得票)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국가의 미래를 좀먹는다.

 

 

차학봉 도쿄 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2/02/20121202015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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