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진행한 ‘2012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에 당선된 조혜순씨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2011년 5월 다산콜센터에 입사해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외주업체에서 채용만 하는 줄 알았는데, 교육을 받고 나서야 각 업체 정직원으로 채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산콜센터를 구성하는 3개 업체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시민들에게는 우리가 각 업체 소속임을 밝히면 안 된다.6주간의 교육은 구청·보건소·시청의 업무 내용을 소화하느라 바쁘게 지나갔고, 그 밖에 수도·교통·일반 상담의 내용까지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육에 참가하는 공무원들은 다산콜센터가 생겨 피곤해졌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소연했다. 다산콜센터로 ‘편리하게’ 신고를 하는 덕에 할 일이 많아졌고, 상담원들의 잘못된 안내로 곤란했다는 것이다. 이는 상담원들이 전문 분야 없이 어떤 민원이든 모두 응대해야 하는데다, 업무에 익숙해질 만하면 퇴사하여 그 자리가 ‘신입’들로 채워지기 때문이다.마침 상담석이 비어 몇 사람은 일주일 빨리 투입이 되었으나, 업체에서 노동부에 이미 교육시간으로 신고를 했기 때문에 실제 계약일은 조기 투입과 상관없이 일주일 뒤부터란다. 그나마 다행인 건가. 상담석이 없는 일부 교육자들은 2개월간 가택 대기자라는 이름으로 교육만 받고, 대기 후에 입사하거나 다른 곳에 가기도 하고, 교육만 받고 잘리기도 한다.우리들의 업무는 모두 점수로 평가받고, 그 점수에 따라 급여도 달라진다. 출근시간 20분 전 출석체크, 점심시간 5분~10분 단축, 한달에 한번 있는 업무 테스트를 위한 약 5일간의 업무시간 외 교육, 업체에 따라 한달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 업무시간 30분 전 큐에이(QA)교육 등. 기본급 최저임금 수준에서 콜 수, 시험, QA, 그 밖의 가점과 감점에 따라 5만원씩 추가되어 차등으로 지급되는 성과급을 받는다. 명절 보너스는 3만원짜리 상품권. 업체 정직원인 나는 3만원짜리 상품권으로 구정과 추석을 보낸다. 부모님 돌아가시면 5만원, 생일엔 3만원이나 5천원을 주는 업체도 있다. 육아수당도 보육시설도 없다.출근해서 퇴근까지 모든 순간이점수로 평가돼 급여에 반영된다
힘들어 울면 돌아오는건 조롱뿐그러나 노동조합을 설립한 지 약 2개월 만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자유로운 휴식 보장, 20분 전 출근 아닌 정시 출근, 업무시간 내 교육, 매달 하던 테스트도 분기별로 바뀌었다. 그래서 서울시와 업체에선 업무 여건이 개선되었으니, 화장실 못 간다는 소리 좀 그만하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콜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내 급여가 좌우되기 때문이다.서울시는 전순옥 민주통합당 의원이 참여한 간담회에서 콜센터 노동자들이 자유로운 연차와 병가, 보건휴가를 사용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나 11월21일 목이 아파 12월 연차로 하루를 쉰 상담원이 다음날엔 아예 말이 안 나올 정도가 돼서 병가를 써야 한다고 하니, 병가는 병원 진단서가 있어야 쓸 수 있다고 한다. 온종일 목으로 일하는 상담원들인데, 목이 아파도 병가는 안 된다고 한다.또 민원인에게 시달려 울고 있는 상담원한테 해당 팀장은 “울지 마, 왜 울어. 또 상담 중에 우는데 못 쉬게 한다고 신고할래?” 하고 지나간다. 울고 있는데, 힘이 든다는데…. 서울시는 자기들 소속이 아니니 업체와 협상하라고 하는데, 업체는 힘든 상담원을 이렇게 조롱한다.11월22일 전국버스조합의 파업으로 21일 저녁 6시부터 일한 상담원들은 1시간에 30여콜을 받았다. 귀가 멍하고 머릿속이 윙윙거린다고 하는데도 업체에선 야간 상담원을 추가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서울시는 상담원들이 힘들다고 해서 다른 콜센터를 방문해 보았으나 모두 똑같은 상황이고 오히려 다산콜센터는 임금이 높아 이직률이 낮은 편이라고 한다. 그렇다. 콜센터 노동자는 상황이 다 똑같다. 다들 힘들다. 통신사, 카드사, 보험사, 콜택시 콜센터를 거친 나는 다산콜센터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까지 업무시간 5분 전 대기, 업무 외 교육이 모두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다. 이 모든 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는 줄도 몰랐다. 콜이 많고, 다른 상담원들보다 더 많은 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도 바쁜 시간에는 가지 않아야 하는 걸로 알았다.우리 콜센터 노동자들은 그렇게 바보였다. 아플 때 병가를 써도 되는 건지, 보건 휴가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외주업체 정직원이니 모두들 정직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힘이 들면 퇴직금이 나오는 1년이 지난 뒤에 퇴사하고 또 다른 콜센터로 이직한다. 이렇게 경력이 늘어도 그건 인정받을 수 없는 경력이다. 다시 신입으로 돌아가 교육받고, 수습 거치고, 다시 신입이 된다. 상담원에서 교육강사나 팀장이 되면 상담원보다 일찍 나오고 늦게 퇴근해야 한다. 콜을 안 받는 대신 그들은 상담원들을 관리하며 회사와 상담원들 사이에서 고통받는다. 그것이 상담원들의 미래다.아파서는 안되고 병가도 못썼다
우린 그저 숨만 쉬는 앵무새였다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까지는…대부분이 여성 근로자인 콜센터 상담원들은 어머니이고 아내다. 팀장이나 교육 강사로 관리자가 되더라도 아이를 돌보고, 남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할 시간은 없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상담원들은 돌쟁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허겁지겁 출근하고, 또 허둥지둥 퇴근하여 아이를 찾아온다. 두 돌까지 분리불안 증세가 있는 아이들은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불안해하지 않을 리가 없다. 아이들이 어머니를 제일 필요로 하는 시기인데도 어린이집은커녕 육아수당도 지급되지 않는다. 그것이 콜센터 노동자들의 현실이다.그런데 서울시는 우리가 원래 그런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늘 이렇게 힘들고 바쁘게 일하는데도 서울시는 우리가 160만~180만원을 받기 때문에, 다른 콜센터보다 많은 임금이 주어지므로 이직률이 낮다고 한다. 연평균 4%의 이직률은, 그들이 보기에 당연한 수치인 듯하다. 보통은 세금 빼고 실수령액이 평균 150만원이다. 그러나 주말에 아이를 맡기며 추가 근무하고, 목이 터져라 남들보다 더 많은 콜을 받아야 실수령액이 160만~180만원 정도일 것이다. 내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내 목이 터져라 일한 대가다.11월20일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이 입수한 다산콜센터 상담원 직무스트레스와 정신 심리검사 결과를 한번 보자. 상담원들은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체화(억압된 감정이 통증 등 몸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증상), 강박증, 우울, 적대감 등에서 높은 수치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응답자 중 약 9.3%가 위험군에, 13.7%가 2가지 영역 이상에서 비정상으로 조사됐다. 고객으로부터 욕설과 폭언을 당했다고 답한 직원은 82.3%, 인격모독을 당했다고 답한 직원도 71%에 달했다.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응답한 직원도 20%로 조사됐고, 업무와 관련해 신체적 폭력을 당했거나 당할 뻔했다고 응답한 직원도 1.2%였다.서울시는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의 근무조건 등에 대해 실태 조사를 하고도 정작 결과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다산콜센터 노동자의 강박증과 우울증은 일반인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아 발표하기 어려울 정도의 내용이 나오자 감추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조합 설립 이후, 2주간 30분씩 주어졌던 형식적 심리 상담시간이 1시간으로 늘고, 횟수도 늘어난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업체당 약 150~180명인 우리 상담원들이 한번씩이나마 심리상담을 받으려면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다. 게다가 서울시는 실태 조사 자료를 감춰두고 있으니, 우린 누구를 믿고 일해야 하며,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 걸까. 업체를 위해 콜 수를 늘려야 하는 것인지, 서울 시민들을 위해 정성껏 알아보고 도와줘야 하는 것인지.“서울시에 관한 모든 것은 120 다산콜센터로 문의하세요”라는 말은 결국 “서울시에 관한 모든 것은 위탁업체에 문의하세요”가 되고 만다. 그에 따른 어떤 책임도 서울시는 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구청 직원들이 민원인과 싸우다 지치면 서울시 120으로 전화하라고 했다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위탁업체 직원일 뿐 아무런 힘도 없는데, 도와주고 싶어서 공무원 연결해주면 욕먹고 무시해도 되는 민원을 떠넘긴다는 식의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공연히 추가 콜 수 희생해가며 오지랖 넓은 짓을 했구나 후회하는 일이 반복된다.서울시와 2년에 한번씩 재계약을 해야 하는 업체들은 서울시의 눈치만 살피고, 우리의 점수를 더욱 높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리는 공무원한테 욕먹고, 시민한테 욕먹고, 업체에서 욕먹고. 입사 후 몇 개월간 지켰던 시민을 위한 상담원이라는 내 자부심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보잘것없는, 아무것도 못하는, 말하는 앵무새가 되어 버린 나는, 그래도 노조를 설립하며 희망을 걸어 본다. 삶이 힘들어 허덕이는 시민들을 감싸주고,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그러한 마음의 여유를 우리 모두가 되찾게 되기를. 나 같은 바보 상담원들도 자기의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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