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4. 13:36
지극한 평범함이 누군가에겐 비범의 영역이 되기도 한다. 막내 누이에게 내가 그렇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그에게 내 별명은 ‘백과사전’이다. 지금도 누이의 휴대전화 속 내 이름은 ‘나의 네이버’다. 누이의 궁금한 열정은 쌍용차 문제에서부터 대선 후보, 방송사 파업, 가자지구, 동성애, 심지어 연예인 성형 문제에 이르기까지 숨이 찰 정도다. 질문마다 나는 팩트를 몇 번씩 교차확인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막내 누이의 평범하면서 특별한 이력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그 시절의 많은 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초등학교 졸업 후 14살부터 평화시장에서 미싱사 시다로 일했다. 1970년 재단사 전태일이 분신하던 그 순간에도 그는 평화시장 골방에서 시다로 일하고 있었다. 유난히 지적 호기심이 많은 소녀가 어떻게 그 오랜 세월 자신의 꿈을 골방처럼 꾹꾹 눌러 담고 살았는지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아리다.

 

놀랍게도 그 누이가 올해 초 5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그가 대학에 간 이유는 간단하다. 늘 조마조마한 삶이 싫었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이 남들도 대부분 모르는 일인지 자신만 모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는 것이다. 내가 뭘 모르는지를 알아야 조마조마하게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그의 고백은 짠하다.

 

나로호 발사가 실패했을 경우 궁금증이 많아도 그는 그걸 누구에게 대놓고 물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혼자만 모르는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학생이 된 지금도 그의 질문은 끊이지 않는다. 누이가 요즘 의아하게 생각하는 일 두 가지를 물어왔다. 한 대학의 철학과 교수씩이나 되는 이가 학생들에게 황당한 과제를 내줬다. 보수 논객의 누리집에 실명으로 ‘종북좌익을 진보라 부르는 언론사기 그만하라’는 글을 올릴 것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교수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학생을 도구화하는 작태지만 정작 해당 교수는 지적 트레이닝 과정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그 사안 속에 내포된 황당함과 폭력성을 직감적으론 알겠는데, 교수가 내준 과제를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늦깎이 대학생의 처지에선 소위 종북좌파에 대한 자세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게 누이의 고민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결정적 순간마다 결심의 근거로 내세우는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라는 비장한 멘트도 누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모양이다. 박근혜 후보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누이 같은 이들은 그게 어떤 나라인지 진짜 궁금할 것이다. 나도 그렇다. 박혁거세의 건국신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아버지 박정희가 이룩했다는 산업화된 대한민국을 의미하는 게 틀림없다. 아버지와 자신이 그토록 힘들게 일으켜 세운 나라를 이렇게 거덜내다니,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시절 산업화 역군 중 한 명이었을 막내 누이는 한번도 자신이 그런 주역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외려 많이 배운 이들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는 동안 어린 나이부터 미싱만 돌리느라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늘 부끄러워하며 조마조마한 삶을 살았다.

 

반대 세력에 의해 나라가 무너질까 봐 비분강개하는 철학 교수나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나라는, 막내 누이 같은 이들이 말하는 나라와 같은 나라가 아니지 싶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폭력적이고 권위적이며 배타적인 방법으로 자기들만의 나라를 주장할 리가 없다. 나만 있고, 나만 옳은 나라가 어떻게 100퍼센트 대한민국인가. 진짜, 어떻게 함께해온 나라인데.

 

 

 

이명수 심리기획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35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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