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벽보가 나붙었다. 1번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인데 ‘여성’만 빼면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있고, 2번 ‘사람이 먼저다’는 교통경찰 준칙 같다. 3번 ‘상상하라 코리아연방’은 논술 문제로 딱이다. 벽보는 조금 싱거운데 현수막은 온통 공짜 메뉴다. ‘65세 정년 연장’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고용지원금’ ‘정규직화’ ‘청년고용할당제’, 곧 공짜천국이 도래할 모양이다. ‘사교육비 해소’ ‘중산층을 두 배로’ ‘일자리 혁명’-이제 나올 것은 다 나왔다. 그런데 왜 허전하지? 살림살이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다. 이런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 큰 그림을 보여주질 못해서다.
‘몽땅 해드립니다’를 합창하는 두 후보를 정책 차별성으로 판가름하기에는 조금 어려워졌다. 한 손엔 복지, 다른 손엔 경제민주화를 들고 전장을 누비는 두 후보가 헷갈린다. 차별성이 없는 것은 아니건만 신경 곤두세운 유권자는 별로 없다. 단지 그 외침, “다 해줍니다”에 마음이 얼핏 쏠리고, 각자의 절실한 형편에 와닿는 후보가 누군지를 가려낼 뿐이다. “다 해줍니다”가 호소력을 잃는 듯하자 양 진영은 아예 격투기로 나섰다. 실정(失政) 공방전이다. ‘노정권 실정의 책임자’에 ‘MB실정의 공모자’, 이런 원색적 비난은 아마 곧 ‘친노의 얼굴마담’ ‘유신의 딸’로 맞받아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정당의 품위, 캠페인의 수준이 요만하다.
지난 단일화 TV토론 한 장면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물었다. “시대정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문재인 후보 왈, “복지와 경제민주화지요.” 필자는 그 지점에서 절망했다. 정치철학과 세계관을 멋지게 피력하도록 깔아준 그 절호의 기회를 문재인 후보는 상식적인 답변으로 날려버렸다. 박근혜 후보라고 다를까? 지난 나홀로 토론에서 그는 ‘국민 대통합!’이라고 했다. 상처 치유, 갈등 해결로 협력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그 구호가 복잡한 시대방정식을 풀어낼지는 모르겠다.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수단이고, 국민 대통합이 가치란 점에서 후자가 논리적으론 ‘시대정신’에 근접하기는 한다. ‘시대정신’이란 우리의 처지를 정확히 짚고 미래 목표를 분명히 지정하는 ‘가치개념’과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실천개념’까지를 포함한 것이어야 한다. 어렵기는 하다. 그게 뭘까?
시민민주주의! 이게 나의 답이다. 모든 정권은 민주적 가치를 표방한다. 그런데 실체를 벗겨보면 허점과 얼룩투성이다. 노무현 정권은 운동권의 리더들로 들끓었던 ‘행동가 민주주의’였다. 격앙된 운동권이 장악한 정치판엔 과잉 호르몬이 흘러넘쳤다. 시민단체를 멀찌감치 내쫓았던 MB정권엔 정치도 국민도 없었다. ‘종업원 민주주의’, 국민은 부지런한 오너에게 박수를 쳐야 하는 종업원이었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 목격했던 촛불시위대를 ‘종업원 민주주의’의 오너는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거 뭐지?’
두 후보가 원색적 공방전을 벌이기 전에 자성(自省)부터 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참여라는 아름다운 명분으로 어떻게 시민을 밀어냈는지를, ‘국민을 섬깁니다’라고 맹세한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많은 서민을 성공의 말안장에서 낙마시켰는지를 말이다. 그러니 통치권을 시민권으로 교체하는 ‘시민민주주의’가 답이다. 시민권에는 좌우가 없다. 민주화 25년, 소득격차와 양극화, 이분법적 아집과 격돌로 너덜너덜해진 시민권의 쇄신을 위한 정교한 사회디자인을 내놔야 한다. 국민 대통합,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그 설계도 중심부에 위치할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유럽 노동운동가의 잔잔한 얘기가 감동적이다. 경제가 어려울 땐 십시일반 노동시간을 줄여 해고통지서를 받아든 사람에게 나눠준다. ‘동료가 쫓겨난 작업장에서 마음이 편하겠어요?’ 상식적인 얘기지만 한국에선 이게 안 된다. 시민권의 두 얼굴이 권리와 책임인데, 한국에서는 권리로만 주창했기 때문이다. ‘몽땅 해드립니다!’도 열심히 권리를 편들 뿐 책임질 사람과 일을 지목하지 않는다. 아직 후진정치다. 포퓰리즘을 욕하는 모두가 포퓰리스트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한국은 사회디자인(social design)이 절실한 시대로 진입했다. 여기엔 권리보다 책임을 앞에 두는 시민권이 핵심이다. 예컨대 복지와 경제민주화에서 시민들이 져야 할 책임은 증발됐다. ‘증세와 양보!’ 복지에는 증세가 필수적이고, 경제민주화에는 재벌, 노조, 고소득층의 양보가 우선돼야 한다. 생산시장과 노동시장을 독점하는 집단을 지목해 정치적 양보를 받아내고, 그것으로 혜택받는 집단에게 사회통합에의 헌신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이게 국민 대통합이고, 자발적 타협을 가동하는 시민민주주의다. 권리장전은 책임선언과 같은 말이다. 시민권은 공감과 양보로 진화한다. ‘몽땅 해드립니다!’가 아니라 ‘위험을 나눕시다!’다. 십수 년 전, 그걸 못해 외환위기에 휘청거리지 않았는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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