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3. 16:45

요즘 세계에서 제일 핫(hot)한 기업은 애플과 유니클로다. 지난 주말 전 세계 유니클로 매장은 고객들로 넘쳐났다. 3억 장을 팔아 치운 괴력의 ‘히트텍’을 9900원에 할인 판매했기 때문이다. 물건은 동나고 “돈 주고도 살 수 없다”는 아우성이 진동했다. 애플도 온갖 험담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업이다. 3분기 영업이익률 역시 30%가 넘는 위엄을 자랑한다. 유장희 동반성장위원장은 “애플은 동반성장의 모범기업”이라 칭찬했다. 반면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는 “○○동물원”이라 구박받고 있다. 과연 공평한 대접일까.

이미 아이폰을 만드는 중국 폭스콘 공장의 저임금·장시간 노동은 널리 알려져 있다. 1%대의 영업이익률을 견디지 못한 폭스콘이 단가 인상을 요구할 만큼 뿔이 났다. 요즘 일본에는 ‘i팩토리(애플의 납품업체) 저주’가 파다하다. 일본 경제잡지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중견업체 시코는 아이폰용 자동초점 모터를 납품한 뒤 흥분했다. “생산량을 늘리라”는 독촉에 생산라인과 클린룸 증설에 물불을 안 가렸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주문이 싹 사라졌다. 알고 보니 애플이 경쟁사인 알프스전기로 납품선을 바꿔버린 것이다. 시코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잡지는 “일본 열도가 애플색(色)으로 물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소니·샤프·도시바·엘피다까지 애플에 목매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은 “거래 사실조차 알리지 말라”며 하루 단위로 납기를 관리한다. 그러면서 ‘대량 구매’의 수퍼갑(甲) 위치에서 자신이 부르는 납품 가격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더 괜찮은 업체가 눈에 띄면 그쪽으로 옮겨가기 일쑤라 한다. 이 잡지는 “애플의 영업이익은 이런 이익 가로채기의 산물”이라며 “i팩토리들은 생사여탈권을 빼앗긴 채 애플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참고로 삼성전자의 갤럭시S3는 여전히 국산 부품 비중이 80%나 된다.

유니클로의 화려함 뒤에도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히트텍 원단은 도레이가 1만 개의 시제품을 개발한 뒤 유니클로의 입맛에 맞는 걸로 골라 독점공급한다. 중국의 40개 위탁 공장들이 원단을 넘겨받아 옷을 만든다. 생산-유통-판매의 전 과정을 유니클로가 통제하며,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2주 안에 신속하게 모든 공정을 바꾼다. 『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요코다 마쓰오 저)에 따르면 유니클로가 생산하는 5억 벌의 옷 가운데 85%가 중국의 저임금 공장에서 생산된다. “유니클로 생산라인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시골에서 갓 올라온 어린 여성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장 시키는 대로 잘 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일하면 불만을 품을 만큼 근로조건이 형편없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현대차는 어리숙하기 짝이 없다. 미국·중국·브라질 등 9개국 28개 공장에 11~15개의 협력업체를 함께 데리고 나갔다. 남양기술연구소에는 신차 개발 단계부터 협력업체 기술자 수백 명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게스트 엔지니어링’ 제도가 있다. 협력업체의 부품 개발이 더디면 ‘본사 엔지니어 파견’ 제도를 실시한다. 살면 같이 살고, 죽으면 같이 죽는 구조다. 반면 미국의 GM이나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품질-가격’의 온라인 경매로 부품을 구매한다. 상생·협력 개념은 아예 없다.

현재 현대차의 부품 국산화 비중이 97%나 된다. 어느 새 자동차 부품 수출도 완성차 수출액을 웃돌고 있다. 450여 개 1차 협력업체들의 현대차 납품 비중은 50% 밑으로 떨어졌다. 절반 이상의 부품을 GM·도요타차 등에 팔아 치운다는 의미다. 지난 10년간 이들의 시가총액이 10배나 늘어나 한 수 지도해줬던 현대차 직원들이 배가 아픈 표정이다.

어쩌면 삼성·현대차에 ‘동물원’만큼 적절한 비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전 세계가 약육강식의 살벌한 세렝게티 초원이라면 말이다.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 손보기는 분명한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질투와 편견에 기초한 정치적 선동은 금물이다. 그렇게 존경하는 애플과 유니클로에 가서 직접 느껴 보시라. 오히려 우리의 전자·자동차 생태계는 소중하게 가꾸어야 할 대상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현재 한국의 스마트폰과 신차 개발 기간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수준에 올라섰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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