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3. 16:43

내가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걸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투덜이여서가 아니다. 이 사회가 사람에 대해 무지하고 무도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그렇다. 17살 몽골 아동을 무자비하게 추방한 사건을 접하면서 또 그렇다.

 

이주노동자인 부모와 10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 소년은 어떤 전과도 없고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단지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조차 접견하지 못한 채 홀로 추방당했다. 경찰과 법무부는 신속한 공조체계를 통해 17살 소년을 수갑 채워 연행하고, 보호소에 감금하고, 다시 수갑을 채운 채 공항에 데리고 가 일반인들의 왕래가 잦은 출국 통로를 지나 비행기 앞에서야 수갑을 풀어줬다. 후에 소년은 당시의 경험을 ‘감옥에 갔다 온 것 같다’는 말로 표현했단다. 유엔아동권리협약 가입국이며 유엔 인권이사국의 지위를 희망한다는 대한민국 정부가 지난 10월 초에 저지른 만행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부끄럽고 가슴이 시리는데 인권단체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비유하자면 분노유발자다. 법무부는 보도자료까지 내며 추방 과정에서 절차적인 문제는 없었다 강변하고,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불법체류자를 발견하면 경찰은 그것이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출입국관리소로 통보하게 돼 있다’고 합을 맞춘다. 환상의 장단이다. 절차적 정당성만 확보된다면 미등록 대상이 갓난아기라도 강제추방을 할 태세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절차적 정당성, 말은 좋다. 그 번드르르한 말 속에 이런 사안에서 꼭 지켜야 할 아동의 인권은 무엇이며, 그들이 어떤 상처를 지니고 이 나라를 떠나게 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조금도 없다. 실제로 법무부는 소년이 몽골로 돌아가 현지에서 부모도 없이 어떻게 생활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알아보려는 어떤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절차적 정당성을 앞세우며 부모와 강제로 격리시켜 아이를 수갑 채워 추방했을 뿐이다.

 

부모가 소위 ‘불법’ 체류자인 외국인이면, 미등록 이주아동이면, 이런 반인권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조차 아무 문제가 안 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추방 과정에서 아동에게 가해지는 벼랑 같은 상처조차 절차적 정당성이란 미명 아래 나 몰라라 한다면 그건 이미 사람이 사는 나라가 아니다.

 

인권단체들의 표현에 의하면 이번 사건은 ‘이 정권의 통치시스템에 큰 구멍이 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호들갑인가. 아니다. 이번 강제추방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음모론의 시각에서 해석할 만한 사건이 아니다.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에서조차 이 나라 행정기관들이 무심하게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일 중 하나다. 그래서 더 두렵고 아득하다.

 

어렵게 몽골 현지 학교에 입학한 소년은 10년간 한국에서 산 탓에 몽골 문자가 서툴러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강제로 부모와 격리된 상태라 정서적으로도 정상일 리 없다. 한국에 남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무기력감과 안타까움은 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한국 정부가 저지른 인권 만행의 결과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영화 제목을 빌려보자. ‘인권도 통역이 필요한가?’ 인권도 국가별로 등록해야 비로소 인권으로 인정해 준다면 그건 이미 인권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강제출국시킨 몽골 아동 김민우(빌궁)군을 즉각 재입국시켜 부모 곁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사는 나라다. 사람에게 무도하고 무지한 사회에는, 단언컨대, 미래가 없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01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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