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정치 참여율은 종종 민주주의의 척도로 사용된다. 여성의 사회 및 정계 진출에 제약이 있는 나라일수록 민주주의의 질이 낮다. 여성이 사회 및 정계에 진출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정치 수준은 높아지고 부패율은 가파르게 낮아진다. 여성 유권자의 투표 참여율이 남성에 비해 더 높고, 여성 의원 비율, 여성 장관 비율 등에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하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덴마크, 스웨덴은 <이코노미스트>에서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에서 1위부터 4위까지 차지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2011년 발표한 부패지수의 경우에 덴마크와 핀란드는 공동 2위, 스웨덴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여성에게 실질적인 정치권력이 주어질 때 민주주의의 질이 높아지고, 정치적 부패가 낮아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여성의 비권력적 행태와 가치지향성에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덜 폭력적이다. 폭력을 사용하기 전에 우선 대화와 타협을 시도한다. 어차피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정치판에서 여성이 폭력을 휘두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둘째로,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덜 권력지향적이다. 남성 의원들에게 인기있는 국방, 외교, 재정, 과학기술에 비해 여성 의원들은 주로 교육, 환경, 복지 등의 재생산적인 분야에 관심이 더 많다. 그만큼 여성이 많이 참여하는 정치는 훨씬 더 생활정치를 지향한다. 무엇보다 가정과 자녀가 있는 여성 정치인일수록 낮에 업무 일정을 끝내길 원하기 때문에 부패할 확률이 낮다. 늦은 음주 문화가 폭력과 정치부패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높을수록 정치가 깨끗해질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이 사회의 주류에 편입되는 양성평등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는 정당공천과 선거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정당공천에서 일정 비율, 즉 30%에서 50%까지를 여성에게 할당하고 비례대표의 경우도 당선 가능성이 있는 순위에, 예를 들어 여성 비율 40%를 실천하도록 선거법을 바꾸면 된다.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로 바꾸면서 균형적 여성공천을 의무화하는 방법도 효과적이다. 또 하나는 양성평등사회를 근본적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가정교육, 탁아소, 학교교육 등을 통해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한 양성평등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 핀란드에서는 양성평등사회를 만들기 위해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사범대 개혁, 교육대 개혁을 통해 예비 선생님들에게 양성평등적 교과목과 교수법을 배우게 해 학교에 투입한 결과 지금은 학생 양성평등 인식도 및 국가 전체 양성평등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대통령 후보들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양성평등사회 실현을 위한 심각한 고민을 한 흔적이 어느 후보에게도 보이질 않는다. 선거 후 바로 시작될 정부조직에 대한 구상에서도 여성가족부 존치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 전 부처에 걸쳐 양성평등 정책이 사회의 주류화 목표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 조치, 그리고 관리를 위해서는 강력한 여성부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부 장관이 대통령으로부터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 북유럽은 1980년대부터 여성정책 업무를 부총리 혹은 총리실 소속 특별위원장에게 맡겨 이들이 실질적으로 양성정책을 총괄지휘하도록 해왔다. 이런 결과 3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양성평등국가를 이루었다.
현대 국가의 국력은 국민의 반인 여성에게서 나온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 산업생산력이 올라가면 국력도 함께 커진다. 국력은 민주주의의 질, 그리고 부패수준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성이 정치로 더 많이 뛰어들어야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수준이 올라가고 부패 수준이 획기적으로 낮아진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연혁 쇠데르퇴른대학 정치학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11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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