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삶'에 해당되는 글 1071건

  1. 2013.01.03 [도정일 칼럼/11월 7일] 한국사회 업그레이딩
  2. 2013.01.03 [과학세상/문길주]베트남 과학기술을 디자인한 한국
  3. 2013.01.03 [김수길 칼럼] 대선에서 지는 확실한 방법
  4. 2013.01.03 [경제초점] '신라면'을 융프라우에서 내려오게 할 수는 없다
  5. 2013.01.03 [조한혜정 칼럼] ‘살림의 생명정치’가 싹트는 밀양을 가다
  6. 2013.01.03 [기고/11월 6일] 에너지 위기를 간과한다면
  7. 2013.01.03 [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12>“시대는 변하는데 의사는 왜 안 변하나요?”
  8. 2013.01.03 [송호근 칼럼] ‘때림의 철학’이 없다면
  9. 2013.01.03 [조선데스크] 일자리를 위한 聯政
  10. 2013.01.03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스마트 기기와 콘텐츠 홍수 속의 괴로움
  11. 2013.01.03 [데스크 칼럼/11월 5일] 나로호, 그 불편한 진실들
  12. 2013.01.03 [김순덕 칼럼]흑묘백묘보다 못한 여통남통령
  13. 2013.01.03 [광화문에서/김상훈]‘책임의료’가 필요하다
  14. 2013.01.03 [특파원 칼럼/정미경]배울 것 많은 ‘범생이’ 미국 대선
  15. 2013.01.03 [노트북을 열며] 영화인구 1억 시대의 그늘
  16. 2013.01.03 [분수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몸은, 다 명품이다 뜯어고쳐 훼손하지 마라
  17. 2013.01.03 [발언대] 한국 과학수사도 R&D가 필요하다
  18. 2013.01.03 [2030 잠금해제/ 조윤호] 저 위에 사람이 있다
  19. 2013.01.03 [기고/11월 3일] 아랍에미리트의 아크부대
  20. 2013.01.03 [문화칼럼/강우란]여성 임원을 꿈꾸시나요
2013. 1. 3. 15:58

한 사회를,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 나라를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들어 올리는 힘은 '문화의 품질'에서 나온다. 지갑에 돈 좀 있고 먹고 살만하다 해서 사회가 품위 있고 품격 높은 사회로 도약하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기본'이다. 아무도 이 기본의 중요성을 경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존수단의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문화의 품질 개선과 수준 향상이 그것이다. 한가한 얘기가 아니다. 나쁜 문화는 국민의 삶을 지옥에 빠트리고 어른들을 병들게 하며 아이들을 죽인다. 그것은 사회의 암이다. 문화의 품질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무엇보다 '나쁜 문화'를 '좋은 문화'로 바꿔내는 일이다. 나쁜 문화에 주목하고 개혁의 정책수단을 강구하는 일은 이 대선의 계절에 누구도 방기할 수 없는 사회적 요청이다.

나쁜 문화란 어떤 것인가. 한 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우리는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다. 노인 자살률만이 아니다. 초등생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자살 청소년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까지 합치면 우리는 사회병리적 질병에 시달리는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묻지 마' 살인과 폭력, 반사회적 행위 건수도 '남부럽지 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사회적 병리의 원인은 여러 갈래로 진단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사람이 존중되고 사람이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데 우리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싸이코패스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특정의 가치관, 행동, 태도, 정신상태를 부추기고 강화하는 나쁜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 나쁜 문화의 특성은 이해, 공감, 동정의 능력 결손, 극단적 이기주의, 생존과 도생, 성공/성적/성과 등 '3성 제일주의' 같은 것들이다. 이런 특성이 사람들의 가치관과 정신상태를 좌우하는 지배적 문화가 될 때 사회는 병든 사회로 전락한다.

학부모 폭력과 교육폭력도 청소년을 죽이는 나쁜 문화를 대표한다. "반드시 1등 하라"는 엄마의 등살을 견디다 못해 그 엄마를 살해한 청소년 이야기, "네 성적을 보면 굶겨 죽이고 싶지만"이라는 식의 메모를 써놓고 외출한 어떤 엄마의 행동은 학부모 폭력의 극단적 사례다. 성적 떨어졌다 해서 몽둥이로, 심지어 철근으로 아이를 두들겨 패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그 엄마들은 또 그들대로 어떤 명령의 희생자일 때가 많다. "아이 성적을 올리는 것이 너의 임무이고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이것이 남편, 시아버지, 친척들로부터 엄마가 받는 명령이다. 아이 성적이 떨어지면 엄마는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틀린 방향의 학교평가와 교사평가 제도는 교장에서부터 신참 교사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성적 올리는 일에 목줄 걸게 한다.

시장가치와 시장적 기준이 문화를 좌우하는 거의 절대적인 잣대가 되어 있는 것도 지금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나쁜 문화의 한 얼굴이다. 우리 사회는 시장만능주의, 시장제일주의, 시장전체주의에 문화를 내준 지 오래다. 시장논리에 따르면 문화는 팔아먹는 것이고 팔리지 않는 문화는 아무 가치도 없다. 이 시장주의 문화는 가장 창조적인 것, 고품질의 것, 지속적 가치를 지니는 것들을 설 자리 없게 한다. 껍데기가 깊이를 대체하고 유행이 창조성을 고갈시킨다. 사유의 정지(생각하지 않기)와 지성의 사막화가 발생한다. 팔 수 있는 것과 팔 수 없는 것의 구분조차 없어진다. 예술에서부터 출판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경박성과 피상성이 세계를 접수한다.

이런 나쁜 문화를 그대로 두고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는가. 대선 정책 캠프들은 문화라는 것 앞에서 지금처럼 막막해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문화는 그들이 공들여 제도와 관행의 개혁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중대 영역의 하나다.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적 삶의 품질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문화다. 사회의 획기적 업그레이딩이 필요하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6210550121730.htm

 



 

Posted by 겟업
2013. 1. 3. 15:57

지난달 29일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역사에 새 이정표가 새겨진 날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베트남 과학기술부가 하노이에 KIST를 모델로 한 과학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기 때문이다.

이번 협정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KIST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한 베트남 정부가 3월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을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전 세계 과학기술사를 통틀어 한 나라가 다른 나라 국가연구소 설립 운영 모델을 제공해준 예는 극히 드물다. 더구나 1966년 미국 정부의 지원 아래 미 바텔 연구소 도움을 받아 설립된 KIST가 반세기 만에 발전 역사와 노하우를 후발국에 전수하는 것은 공적개발원조(ODA)의 가장 이상적인 선순환 사례라고 생각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과학기술 발전을 근간으로 세계의 선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반도체, 이동통신, TV, 자동차, 선박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며 많은 개도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어 왔다. 많은 선진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ODA 사업을 진행하지만 개도국들은 유독 한국의 성장과 발전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아시아 최빈국의 궁핍한 현실을 단기간에 타개해낸 우리의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의 노하우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 때문에 우리가 개도국에 주는 희망의 원조는 선진국의 경제적 원조와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과거 KIST 설립을 지원했던 바텔 연구소장 셔우드 포셋 박사는 “KIST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발전되어 가는 것을 보면 참으로 흐뭇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국가연구소를 벤치마킹했지만 그들의 운영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단위연구실제와 연구원가제도 등 KIST만의 독특한 운영방식을 도입하여 스스로의 발전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KIST의 도움을 받는 베트남을 비롯한 많은 개도국 역시 그들 실정에 맞는 연구소 설립과 운영을 위한 나름의 방안을 모색해야겠지만 KIST라는 롤 모델을 통해 과학기술의 자립 기반을 체계적으로 구축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베트남 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이 남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KIST가 그동안 추진해왔던 과학나눔 운동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KIST는 우리가 받은 혜택과 노하우를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과학 나눔 운동을 계획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연봉 1% 기부 운동을 전개해 왔다. 이 운동으로 우리 과학계는 물론 개도국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희망의 과학 나눔을 펼쳐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인도네시아에 바이오에탄올 생산설비를 구축했고, 지난 10년간 운영해온 ‘국제 R&D 아카데미(IRDA)’는 개도국 과학인재 양성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IRDA를 통해 지난 10년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등 21개국에서 147명의 석·박사 연구자가 배출됐다. IRDA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학생들은 대부분 정부와 연구기관, 대학에 몸담아 국가 간 과학기술 협력의 창구가 되고 있다. 그동안 개도국의 농촌개발, 교량건설 등 물질적 공조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우리나라의 ODA 사업을 인재양성, 과학기술,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전환해 본질적인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다.

베트남은 새로 설립될 연구소의 명칭을 ‘베트남의 KIST’라는 뜻에서 ‘V-KIST’로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머지않아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 KIST가 그대로 옮겨간 베트남에서 희망의 과학기술 ODA가 만든 따뜻한 결실을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문길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http://news.donga.com/3/all/20121107/50669038/1

 


 

Posted by 겟업
2013. 1. 3. 15:56

“저는 반값 대학등록금 공약을 철회하겠습니다.”

이런 대선 후보가 나온다면 판세는 어찌 될까. 젊은 층의 표를 잃어 패할까, 나이 든 학부모들의 표도 잃을까.

“저는 우리 국민 절반에게 시민권을 찾아드리겠습니다. 늙었을 때, 실직했을 때 우리 국민의 절반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시민의 기본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그들은 비(非)시민입니다. 저는 그분들께 시민권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이런 대선 후보가 나온다면 또 어찌 될까. 국민 절반의 표를 확보해 이길까, 다 늙게 마련이고 실직할지도 모를 젊은 층의 표까지 끌어갈까.

이 두 후보는 사실 한 후보다.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이런 말도 할 것이다.

“대학생 여러분들도 진정한 시민이라면 제 말씀에 섭섭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곧 일자리를 구해야 하고, 실직할지도 모르며, 나이 듭니다.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곧 여러분들의 어려움이 됩니다. 대통령 후보로서 저는 호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값 등록금보다 급한 곳이 너무 많습니다.”

줄여서 다가가려면 이런 말도 가능할 것이다.

“등록금 절반보다 국민 절반이 먼저입니다.”

반값 등록금은 대선 후보 모두가 내건 공약이다. 반면에 ‘국민 절반’은 어느 누구도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대학답지 않은 대학, 대학생답지 않은 대학생, 노는 일자리 놓아둔 채 자기 일자리 없다고 아우성인 대졸이 등록금보다 더 심각한 문제지만 ‘국민 절반’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바로 국민연금·고용보험·건강보험 문제다.

늙어 수입이 없을 때, 실직했을 때, 나든 가족이든 중병에 걸렸을 때 국가가 도움을 주는 것이 이른바 보편적 복지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주춧돌이요 대들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늙어서 타는 연금이 거의 있으나 마나 한 푼돈 연금이고, 그 푼돈이나마 타지도 못할 처지에 놓인 사람(연금보험도 못 붓는 사람)이 거의 절반쯤 된다. 푼돈이나마 타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푼돈일까. 연금 붓는 사람들 평균을 내보면 23년 동안 부어 매달 55만원을 받게 되는데, 이는 노인 부부 최소생활비(매달 185만원, 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연금을 연금이라 부를 수 없는 ‘홍길동 연금’인 것이다.

실직할 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고용보험은 더 심각하다.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34%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고용보험에 들었다 실직했을 때 실업급여를 받는다 해도 벌던 돈의 절반만, 그것도 길어야 8달 동안만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한 달에 100만원까지가 한도다. 이러니 대부분의 실직자가 자영업의 늪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자영업자들의 몰락이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건강보험은 그나마 낫다. 그러나 나든 가족이든 큰 병에 걸리면 정말 큰일 나는 건강보험에는 아직도 구멍이 많다. 간병인 문제도 다들 한두 번쯤 겪었을 터이고, 은퇴 후 집 한 채, 차 한 대 있을 뿐 버는 돈이 없는데 황당한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처지에 몰린 사람도 많다.

자, 이제 정리해 보자.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 보자.

무릇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며 표를 받으려면 이렇게 이야기해야 옳다.

“반값 등록금만이 아니라 무상급식 공약도 저는 철회하겠습니다.”

“그보다 더 급한 일은 노인·실직자·장애우·병자·빈곤아동을 국가가 돕는 일입니다.”

“이런 급한 불을 끄는 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갑니다. 그 돈은 세금·연금보험·건강보험 등을 더 거둬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간 적게 내고 적게 받는 식으로 국민연금·고용보험·건강보험을 꾸려왔습니다만, 이제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들 더 많이 부담하고 어려운 사람들도 다 함께 도움을 받는 식으로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있는 사람들이 더 냅시다. 그리고 모두 다 조금씩이라도 내야 합니다.”

“보험료 거두는 일은 국세청에 맡겨 소득 기준으로 거두겠습니다.”

이런 대선 후보는 보수든 진보든 왜 나오지 않을까.

표가 안 된다고? 유권자를 우습게 보는 소리다. 진정성을 갖고 쉬운 말로 호소하고 설득해 보라. 그게 실력이고 차별화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여기선 이 소리, 저기선 저 소리 하지 말고. 알 듯 모를 듯한 얘기에다 다들 비슷한 소리 늘어놓으며 정치공학에만 몰두하지 말고.

 



김수길 주필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810738&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3. 15:55

해발 수천m '유럽의 지붕' 오르려 열차표 사면 '신라면컵 쿠폰' 줘
올 중국 매출 증가율 40% 넘어… 우리 맛으로 경쟁해 일군 결실…
'안전 이상 무' 밝혀진 리콜 사태, 國益에 큰 손실 미친 사례 될 것

농심 유종석 부사장의 37년 직장생활은 라면 외길 인생이다. 1970년대 중반 입사 당시 국내 식품업계는 기술도 자본도 없던 때였지만 그는 라면 제조와 판매의 한길만 걸어왔다. 몇년 전 유럽여행을 떠난 아들의 국제전화 한 통은 그의 인생에서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아빠! 제가 지금 스위스 알프스 융프라우에 와 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신라면컵을 팔아요. 서울 맛 그대로예요." 그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함께 기뻐했다. "아들이 비로소 아버지 회사와 한국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된 것 같아서였지요."

해발 수천m '유럽의 지붕'인 융프라우는 산악열차로 2시간가량 올라간다. 컵라면이 팔리는 곳은 정상 전망대 상점이다. 열차 티켓을 사면 신라면컵 무료 쿠폰을 준다. 공짜는 여기까지다. 뜨거운 물은 4프랑, 젓가락은 1.5프랑으로 우리 돈 6500원을 더 내야 한다. 온갖 피부색의 지구인들이 하얀 만년설을 배경으로 신라면, 육개장 사발면의 면발을 훅훅 불어가며 후루룩 먹는다. 이곳에서는 요즘도 매일 1000개가 넘게 팔린다.

농심 상하이(上海)공장은 1996년 가동을 시작했다. '14억 중국인이 농심 신(辛)라면의 매운맛에 푹 빠지게 하겠다'는 목표를 실천 중이다. 지난 8월 현지에서 만난 조인현 농심 중국총대표는 "중국 진출 15~16년 만에 중국인들이 비로소 신라면 맛을 알기 시작했다"며 기뻐했다.

느끼한 맛에 익숙한 그들에게 매콤한 맛을 전달하는 과정은 힘들었다. '더운물 부어 훌훌 마시는 것'에 익숙하던 그들에게 '라면 맛은 팔팔 끓여 조리할 때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고생 끝에 보람이다. 올해 중국 내 매출 증가율은 40%가 넘는다. 중국 현지에서 가장 인기있는 대만계 캉스푸(康師傅)의 최고가 라면은 2.2위안이지만, 농심 신라면은 3.5위안으로 50%나 비싸다.

전 세계 80여 개국에 수출되는 농심라면은 우리 맛으로 승부해 일군 의미 있는 결실이다. "미국에서는 미국 라면, 중국에서는 중국 라면, 일본에서는 일본 라면으로 맛을 현지화했다면 농심라면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 할 정도로 맛에 관한 한 농심은 고집불통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식품위생 관리 잣대는 엄격하다. 미국은 농무부·FDA·세관이, 영국과 유럽 국가들은 WTO·EU 검역 규정을 철저하게 밟는다. 호주는 연방정부 소속 검역원이 초기 검사 후 이상이 있다고 판단하면 이후 일체의 실험·방제 비용을 수입업자와 제조사가 부담해야 한다.

농심은 1965년 9월 창립했다. 이미 삼양라면·풍년라면 등 7개 선발주자가 버티고 있었다. "창업 초창기 우리의 발길은 선발주자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도시) 변두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윤은 박하고 가격 규제도 심해 한때 존망의 기로에 서기도 했습니다."(창업자 신춘호, '농심 40년사') 농심의 기업사는 국내에서조차 변두리를 맴돌다, 품질 승부 끝에 세계 80여 개국에 우리 맛으로 진출한 성공스토리다.

농심은 최근 '발암물질(벤조피렌)' 파동으로 국내외에서 리콜사태를 겪고 있다. 경제적 손실을 떠나 이미지 타격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소비자들이 불안감을 느낀다면 정부는 당연히 리콜을 유도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밝힌 만큼 이번 사태는 정부가 소중한 글로벌 식품기업의 이미지를 손상했고, 궁극적으로 국익(國益)에 큰 손실을 끼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와 소비자 모두 글로벌 식품기업 하나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우리 스스로 농심을 융프라우에서 내려오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광회 산업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06/2012110602852.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5:53
지난 주말 경남 밀양에 다녀왔다. 765㎸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농성장은 천혜의 아름다운 산세를 뽐내는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잘린 소나무 밑동 주변에는 주민들이 시공사 쪽 헬리콥터와 벌인 힘겨운 사투의 흔적이 남아 있고, 노란 깃발들이 따뜻한 볕을 쬐며 펄럭이고 있었다. “핵발전소를 더 짓지 않으면 만들지 않아도 될 초고압 송전탑” “밀양 송전탑-우린 반댈세” “펑펑 써대지 않고 아껴 쓴다면” “우리는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 한 마을 어귀의 “우리 마을에 강도가 들었다!”라는 문구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곳 주민들 중에는 은퇴자나 한창 일할 나이에 암이 걸려 여기서 평화로운 제2의 삶을 시작한 분도 적지 않았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이 소시민들은 이번 일로 그야말로 난데없는 습격을 받았고, 그래서 모두가 정치적 생태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자신을 위해, 그리고 후대를 위해 핵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결심이 대단했다. 귀경길에 핵발전소 유치를 강행하려던 삼척시장의 주민소환이 투표율 25.9%로 무산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추방’ ‘배제’ ‘강제’와 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이 현장들이 바로 최근 인문사회학계의 핵심 주제가 되고 있는 ‘죽임의 생명정치’가 벌어지는 곳 아닌가!

 

핵발전소, 정말 더 짓는 것 외에 방안이 없을까? 핵산업은 사실상 1960년대에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것이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라는 것에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유파동(오일쇼크)과 오존층 파괴로 환경문제가 대두되는 틈에 클린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핵발전 사업은 다시 일어났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를 겪으면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핵에너지 산업은 엄청난 홍보와 로비로 위기를 넘겼다. 일본 후쿠시마 참사 이후 다시 “핵 없는 세상”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 독일은 2022년까지 핵발전소 100% 폐쇄라는 대국민 협약을 대대적인 공개 티브이토론을 통해 이루어냈다. 핵발전이 초래할 본질적인 안전성 문제뿐 아니라 십만년을 보관해야 하는 폐기물 문제로 ‘세대 간 형평성’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스위스는 2034년까지 폐쇄를 결정했고 핀란드는 추가 건설 계획을 포기했다. 이탈리아도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이들 국가는 모두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나라들이다. 그 나라 국민들은 ‘무한 성장’을 전제로 한 ‘근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돈은 덜 벌어도 행복하게 어우러져 살아갈 후기 근대적 삶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국민 1인당 전기 소비량이 유럽과 일본보다 월등히 높은 한국은 왜 이렇게 잠잠할까?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기를 원한다면 본격적으로 재생에너지 장단기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미 원전 의존도가 너무 높아져 버렸다거나 원전 수출로 외화를 벌어야 한다는 등의 패배주의와 패권주의적 변명으로 이를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일본도 지난달 재생에너지 생산과 에너지 유통 효율화 등을 두고 에너지 장기계획을 내놓았다. 중국은 이미 솔라패널 대량수출을 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풍력, 태양광과 태양열 에너지와 유통에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당장 모든 것을 중단하자는 것이 아니다. 방향을 정하자는 것이며, 국민과 국가와 기업이 협약을 맺자는 말이다. 위험한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국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몰아내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에너지 문제를 풀 해법은 나와 있다. 에너지를 적게 쓰고 에너지원을 제대로 전환해 내면 된다. 솔직하고 진지하게 모여 앉으면 모두 잘 풀 수 있는 문제다. 밀양 농성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활기에 차 있었다. 함께 싸우며 시대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의 생명공학’을 간파하고 ‘살림의 생명정치’로 나아가는 길을 내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말한다. “고마 요대로 살고 싶다!” 그냥 이대로 살기 위해 결단을 할 때다. 지금 교수들 사이에 탈핵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지성의 상아탑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9287.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3:05

사람은 누구나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미래에 다가가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TV나 신문지상을 통해 다양한 지구촌 위기가 보도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에너지, 환경 그리고 경제 금융의 3대 위기는 더 나은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우리가 꿈꾸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3대 위기를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와 경제 금융 문제에 비해 정작 이러한 위기의 핵심인 에너지 위기의 심각성은 크게 다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선도해 온 빌 게이츠 및 국제 금융 및 경제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제프리 삭스 콜롬비아대 교수 등은 에너지 문제의 해결이야 말로 현존하는 위기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이자 핵심적인 사항임을 강조하며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통해 환경 문제 및 경제 금융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에서 물러나 전 지구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게이츠는 인류애를 바탕으로 모든 지구촌인이 행복하게 사는 미래를 꿈꾸며 특히, 아프리카 지역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많은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은 비위생적인 환경과 오염된 식수 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한데,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면 이 모든 문제들이 말끔히 해결이 된다는 사실은 게이츠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아프리카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에너지는 환경의 파수꾼으로 다양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경제 금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산업의 성장이 필수적이다.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하다. 에너지의 공급 없이는 물품의 제조, 운송 및 공급이 불가하며, 생산의 효율성도 높일 수 없다. 점점 자동화되는 산업 시스템 및 우리의 삶도 에너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전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가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던 이유도 바로 여기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네 삶의 핵심이 되는 에너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는 에너지 소비량의 97%를 수입해서 사용하는 전세계 에너지 자원 빈국 중 하나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국가이지만, 그 어느 나라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풍족한 에너지 소비를 통해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전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저렴한 전기요금이 국가 성장의 핵심으로 인정받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익숙한 것의 중요성을 깨닫기란 실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당연하듯 누리는 에너지, 특히 전기의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국가적 차원에서 핵심적인 것인지를 좀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따져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당연하게 누리는 이러한 혜택이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부러워하는 세계 최고의 에너지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 모두가 에너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위한 다양한 국가적 사업을 지지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지역사회는 국가의 미래, 지역의 미래와 경쟁력 창출을 위해 에너지 사업을 활용하고, 주민의 적극적 지지하에 선진 에너지 도시를 만들고 국가는 이러한 지역을 세계 일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다각적 방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선순환적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대선 주자들 역시 에너지 문제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안과 정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주길 바라는 바이다.

 

 



장순흥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521005824060.htm

 

 

Posted by 겟업
2013. 1. 3. 13:03

그동안 칼럼을 읽은 독자들에게서 e메일이나 전화를 많이 받았다. 심신이 지친 환자를 위로할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환자나 보호자가 꽤 있었다. 그런데 말투가 다소 시비조였다. 가슴에 맺힌 사연들이 풀리지 않은 탓이라 생각했다.

이 중 몇 명의 길고 긴 하소연을 요약하면, 텔레비전에도 소개되는 이른바 명의(名醫)를 찾아가 가족이 치료를 받을 때 삭막한 분위기에 너무 깊은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방송에 나왔을 때의 명의의 표정과 진찰실에서 마주친 그의 얼굴이 딴판이어서 이게 뭐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며 어리둥절했고, 막상 치료에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을 때 의사는 시원한 답변 한번 없이 컴퓨터 모니터에 얼굴을 묻고 있는 풍경에 질렸단다. “아니, 의사가 왜 그리 무표정해요? 꼭 컴퓨터만 보는 로봇 같아요”라는 항의성 문장을 읽어 내려갈 때쯤 나는 몸이 더워지는 것을 느낀다.

데이터 체크하며 환자얼굴 안봐



10여 일 전에 남편을 떠나보낸 50대 여성의 e메일 문장에는 분노가 배어 있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의사는 왜 변하지 않나요. 환자의 목소리도 반영되어야 하지 않나요. 어찌해서 의사들은 자기들 판단대로 수술하고 또 수술해야 되나요. 사람이 실험용 쥐인가요?” 성별이 분명치 않은 다른 독자의 짤막한 글은 이렇게 되어 있다. “수술을 많이 해야 명의로 가는 길이 됩니까?”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이름난 의사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온몸의 신경이 쪼그라드는 초긴장성 신경위축증이 있다. 그런 병명이 실제 있는지 없는지 나는 모른다. 내 증상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단어를 나열한 것뿐이다. 생전의 아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닐 때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아내에게서 전염되었다.

아내는 이름 있는 종양내과 의사의 진찰을 받을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하루 전부터 잠을 설치고 다음 날 아침에는 식사도 거른 채 병원을 찾았다. 구토증상이 나타날까 걱정해서였다. 환자가 진찰실에 들어가거나 나가거나 상관없이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는 주치의의 고정된 자세와 석고상 같은 얼굴, 미동도 하지 않는 눈동자를 보면서 아내와 나는 몸이 굳어졌다. 심판대에 앉은 죄수의 심정이 그럴지도 모른다. 의사는 각종 검사 데이터를 체크하더니 “이제 여기는 더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무슨 말씀인가요?” 내가 물었다. 주치의는 “자세한 것은 다른 의사가 설명해 드립니다. 간호사, 다음 환자 들어오라고 해”라며 우리와의 대화를 원천 차단했다. 나는 환자 대기실에 앉아 있는 다른 환자 가족이 이 주치의에 대해 일종의 공포증을 안고 있음을 일찍부터 감지해 온 터였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 맘대로 주치의를 바꿀 자유가 없었다. 아내는 그날 그 병실에서 사실상 말기 선고를 받은 셈이다. 그때 그 의사는 오로지 “이제 오실 필요 없습니다”라는 가장 원시적이며 투박한 말로 임무를 끝냈다. 그처럼 비인간적인 어투가 환자를 마주하는 의사의 일상적 대화로 나올 수 있다는 현실이 무서웠다. 진찰실을 나서자마자 아내가 헛구역질을 시작하면서 나는 잠시 분노를 잊어버렸다.

무표정한 모습 보면 온몸이 굳어져

그때 다른 환자 가족의 동정 어린 시선이 아내에게 쏠렸다. 지금도 나는 세상을 떠난 아내가 꿈에서 나를 불러 왜 그런 의사를 찾아갔느냐고 물어보면 엎드려 사죄하고 또 사죄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내는 그것만은 묻는 일이 없었다. 한참 후 어느 날 그 병원의 고위 간부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의사들의 권위와 무표정한 얼굴을 화제에 올린 적이 있었다. 물어보나 마나 현재의 의료체계에서 오는 환자 피로증을 예로 들며 답변을 얼버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3분 진료’라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환자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마음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의과대에서부터 인문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세상에는 좋은 의사도 많지만 이상한 의사도 많다. 환자를 사람으로 대접하는 인간성 교육이 더 뿌리내릴 수는 없을까.

환자에게 권력이나 명예가 있으면 의사의 대접이 다를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그것 역시 오해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한 전직 장관에게서 말기 환자인 가족의 한 사람을 명의에게 데리고 가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사람의 추천을 받아 주치의를 결정하고 난 뒤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경과에 대한 설명이 늘 모호해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가족 면담도 한 차례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또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연락을 받았다.

환자가 단연코 수술을 거부하겠다고 버틸수록 아버지인 전직 장관은 가슴이 탔다. 거기에다 주치의의 무뚝뚝한 표정을 이겨 내느라 감정 억제가 힘들었다. 결국 그는 의사를 내치고 환자인 가족의 뜻을 존중했다.

나는 2008년 7월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호스피스 관련 토론회에 잠시 참석했던 당시 국회의장의 축사도 잊지 못한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불필요한 수술을 몇 차례 했던 의사에 대한 불신을 털어놓았다. 결과적으로 아들인 자신이 어머니를 너무 괴롭혔다는 자책감을 감추지 않았다.

로봇같은 의사는 의료기술자일뿐

병원에서 어떤 의사의 진찰을 받는 게 좋은가를 묻는 독자들의 e메일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결코 명의만을 찾지는 마세요. 기술만으로 명의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잠시라도 마음을 열어 주는 의사를 찾아보세요. 제가 보호자라면 환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환자의 고통을 이해해 주는 의사를 찾아가겠습니다. 그런 의사인지 아닌지는 진찰실을 드나드는 다른 환자들의 얼굴을 보고 곧장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데 2∼3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 짧은 시간을 투자할 여유조차 없고 능력도 없는 의사는 명의가 아닙니다. 로봇처럼 시술하는 그냥 의료 기술자는 명의가 될 수 없지요.”

 


최철주 칼럼니스트

 

 

http://news.donga.com/3/all/20121106/50643594/1

 

 

 

Posted by 겟업
2013. 1. 3. 13:01

서슬 퍼런 특검의 칼날이 정권 말기의 청와대를 정조준하고 있는 저간의 상황은 조금 안쓰럽다. 안쓰러운 마음도 달랠 겸 약간의 공치사를 하자면 이렇다. 대통령의 자격 중 중요한 게 외교인데, 대북정책을 뺀다면 MB는 그런대로 외교를 잘했다. 이른바 단독 플레이 외교다. CEO 사업수완과 쾌활한 성격이 외교무대에서도 잘 통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감동시키기도 했고, 정상급 회의를 몇 차례 따왔다. 말이 되든 말든 쏴대는 콩글리시로 정상회담 파티장을 비좁다고 다녔으니 그 활동량을 감당할 외국 정상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이라면 뭔가 해낼 거라는 기대감이 높아졌고, 덩달아 국제적 위상도 상승했다. 예기치 않았던 수확이었다.

어쨌든 경륜이란 중요하다. ‘나는 가수다’의 노래 고수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는 적어도 10년이 훨씬 넘는 수련기간을 보냈다. 그래도 하나같이 떨리고 가끔 실수도 한다. 노래 실력이 비슷해도 청중을 열광시키는 사람은 따로 있다. 청중이 원하는 걸 아는 사람, 감성 흐름에 강약을 넣을 줄 아는 사람이다. 국민가수 조용필의 팁에 따르면 ‘때려줄 때를 아는’ 사람 말이다. 그건 무대 경력과 체험에서 나온다. 그 체험이 쌓여 공연철학, 가창(歌唱)철학으로 진화한다. 올 대선의 분위기가 여태 썰렁한 것은 매혹이 없어서다. 내키지 않지만 어쨌든 삼자택일을 해야 할 판이다.

문재인 후보만큼 ‘때림의 철학’이 엇박자를 내는 사람도 드물다. 모범생 외모와 말투에 쏟아내는 건 멘붕스쿨의 극단 처방들이니 언제 열광해야 할지 헷갈린다. 거기에 단일화에 목매는 ‘동백아가씨’ 스타일이 좀 걸린다. 그런 그를 ‘그리움에 지치고 울다 지치게’ 하는 국민 대타 안철수 후보, 뭔가 때려주면 좋겠는데 그의 사전엔 ‘때림’이란 단어가 없다. 추임새도 없다. 그저 ‘국민들께 물어봐야겠죠~’다. ‘물어봐라, 물어봐, 얼른!’ 개콘 허경환이라면 이렇게 외쳤을 터인데, ‘물어보기’를 공약 1조에 내건 후보가 지지율 고공행진을 하는 것이 희한하다. 구태 정당 혐오증이 그만큼 깊은 탓이다. 감동시킬 스토리가 가장 풍부한 박근혜 후보는 ‘자기 울타리’만 때리고 있으니 보는 심정이 딱하다. 역사와 경륜을 합친 엄청난 자원으로도 드라마틱한 공연무대를 만들지 못한다. ‘갈 데까지 가볼까’를 열창하는 싸이의 무대를 보면 감을 잡을 만도 한데 말이다.

때림이 없는 정책공약 다발에서 통째로 빠진 것이 외교다. 경제, 통합, 외교가 대통령의 삼부인(三符印)이라면, 외교는 삼분의 일이고 또 한국의 사활을 좌우하는 영역이다. 지난달 18일, 한국이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피선되었을 때 후보들은 아무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 녹색기후기금(GCF) 본부를 한국에 유치하자 언론매체는 잽싸게 3800억원이라는 경제효과에 우선 주목했는데 그걸 한반도 미래구상과 연결해 따끔히 지적하는 후보는 없었다. 경륜이 없어서다. 김숙 유엔대사는 190개국 표심을 사느라 1년여를 뛰었다. ‘개도국과 선진국 간 교량역할을 해야 할 한국이 공간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게 그의 소감이었다. ‘공간 확보’- 이게 한국 외교의 큰 방향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얼마 전 감동적인 국회연설을 했다. “유엔과 한국: 함께 이루는 인류의 꿈”-얼마나 ‘때리는’ 비전인가. 이건 세계 국가들이 한국을 부러워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 현장감독 체험기다. 우리로선 성에 차진 않지만 빈곤, 교육, 인권, 온난화 등에서 우등생인 ‘한국의 이야기’를 ‘세계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건 사무총장의 몫이다. 그렇다면 후보들의 몫은? 세계가 한국에 거는 희망과 기대를 우리의 미래 이야기에 접목하는 것, 선진국과 개도국 간 교량을 구축해 ‘세계적 연대’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뭘 내놓고 계신가, 후보들은? 유엔은 고사하고 국제회의에 한번쯤은 가보시긴 하셨나? 그나마 박근혜 후보가 어제 신뢰·균형외교를 내놨다. 원칙일 뿐 냉철한 글로벌 구상에는 못 미친다.

중국이야 권력이 닫혔으니 그렇다 치고, 일본이 점점 소국화하는 것은 언제부턴가 외교경륜이 전혀 없는 파벌 좌장이 내각총리로 추대된 탓이다. 대국외교의 좌표를 잃었다. 최근의 총리 아소 다로, 간 나오토는 물론 현 총리인 노다 요시히코 모두 재무상 출신이다. 아프리카, 중동, 남미에서 일본의 위상을 어떻게 정립할지, 돈을 세계 어디에 써야 자국의 연성권력(soft power)이 커질지 지도력을 기르지 못했다. 한국의 청년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는 이때, 혹시 중동을 돌아본 후보가 있는지? 북한 실상을 직접 목격한 후보가 있는지?

오늘도 정책팀이 건네준 공약집을 들고 동분서주하는 세 후보, ‘때림의 철학’이 배어 나오는 감동 공연은 아니더라도 배신은 때리지 않을 거라는, 초겨울 나목처럼 꿋꿋한 인고(忍苦)의 예감이라도 전해줄 수 있으실는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799310&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3. 12:58

조준희 기업은행장과 함께 그의 첫 근무지였던 서울 청계5가점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지점은 30년 전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달라진 것은 옛날엔 직원이 30명 넘게 북적거렸는데, 지금은 10여명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ATM(현금자동입출금기) 등 전산화와 자동화가 은행 지점의 인력 수요를 3분의 1로 줄인 것이다. 20년 전 시중은행들은 채용 시즌 때면 대졸자를 1000명 이상 채용했지만, 요즘은 기껏해야 200명 정도다. 그런데 은행들의 몸집은 20년 전보다 10배 이상 커졌다. 시선을 제조업 쪽으로 돌리면 일자리 사정은 더 기가 막히다. 공장의 해외 이전 등으로 최근 20년 사이 제조업에서 1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고용 없는 성장'이 굳어지면서 GDP(국내총생산)가 1% 성장할 때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 수는 2000년대 초반엔 9만개였는데, 지금은 4만개로 떨어졌다. 임기 중 새 일자리를 300만개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성적표가 117만개에 그친 것은 이런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다시 대선 시즌이 돌아와서 각 후보가 일자리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대학 창업기지 건설(박근혜 후보), 비정규직 비율 50% 축소(문재인 후보),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안철수 후보)…. 다 좋은 말인데 총론뿐이라 공허하다. 어디서, 어떻게, 무슨 돈으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건지 각론이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일자리 공약만은 이대로 가선 곤란하다.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경제 민주화와 사회 양극화의 해법은 결국 일자리 창출에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어디서 만들어 낼 것인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교육·의료·관광·음식숙박·이·미용 등 서비스 분야의 새 시장 창출이 첫째고, 정규직 근로자들의 양보를 전제로 한 일자리 나누기가 둘째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서비스업 비중은 60%로 미국(79%) 독일(72%) 등 선진국보다 훨씬 낮다.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우리 경제와 관련해 밖에 내놓기 창피한 통계는 모조리 서비스 분야와 관련돼 있다"고 할 정도다.

서비스 산업의 열악한 사정은 역설적으로 이 분야가 일자리 개척의 미답지(未踏地)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답은 이미 나와 있는데 실행이 안 되는 것이다. 정규직 근로자를 기반으로 하는 노조, 영리(營利) 병원 설립에 대한 의사 집단의 저항, 서비스 고급화를 차별의 제도화로 여기는 반(反)부자 정서 등이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애물은 정치 영역이 해결해야 하고, 이를 돌파할 정치적 추진력은 새 권력이 등장한 정권 초기에만 기대할 수 있다. 각 후보 진영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이념적 스펙트럼이 비슷해 일자리 정책의 큰 밑그림에 대한 합의가 가능해 보인다. 누가 정권을 잡든 일자리 정책만은 여야가 공조해 정권 초기에 강력히 밀어붙이자는 합의를 해놓는 것은 어떨까. 일자리 정책 공조는 집권 후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줄 것이기에 세 후보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다.

 

 

김홍수 경제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05/2012110502634.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2:55

며칠 전 인근 애플스토어에 나가 새로 나온 아이패드 미니를 만져보았다. 예전보다 크기만 작아지고 새로운 혁신은 그리 없다고 느낀 제품이지만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것은 분명해 보였다. 아이패드 미니는 올해 미국에 홍수처럼 쏟아져나온 태블릿 컴퓨터들의 대미를 장식하는 제품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서피스 태블릿, 윈도폰, 구글의 넥서스 시리즈, 아마존의 킨들 시리즈,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 등 전세계를 뒤덮어가는 첨단기기의 행진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나는 인터넷업계에서 일하기도 하거니와 첨단기기를 사서 직접 써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기에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면 일부러 무리해서라도 사서 써보는 편이다. 그런 나도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나오는 스마트 기기의 융단폭격에 피곤을 느끼고 있다. 사서 쓴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첨단기기도 금세 구형으로 전락하는 세상이다. 게다가 이미 집에 있는 티브이, 랩톱컴퓨터, 태블릿컴퓨터, 스마트폰까지 해서 스크린이 10개가 훨씬 넘는다. 그러다 보니 4명의 가족이 대화 없이 각자 자기만의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편리하게 소비하는 콘텐츠도 실은 피로를 가중시킨다. 앱만 실행하면 공짜이거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볼 수 있는 영화·드라마가 사방에 널려 있다. 사놓고 읽지도 못하는 전자책이 내 스마트 기기 속에 잔뜩 들어 있다. 엄청난 양의 신문·방송 뉴스도 터치 몇 번이면 스마트 기기로 다 볼 수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인들이 추천해주는 좋은 정보는 얼마나 많은가. 꼭 읽어봐야겠다고 별마크를 해놓았다가 못 읽고 그냥 넘어가는 글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읽고 싶어서 사놓은 좋은 책들도 끈기를 갖고 읽지 못하고 중단해버린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마음속에 부담으로 남는다. “시간이 없는 것이 한”이라는 말을 되뇐다. 이처럼 나는 정보의 풍요 속에서 생활하며 오히려 깊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정보 편식자가 돼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곤 한다.

 

예전엔 이런 고민이 없었다. 콘텐츠가 희소했기 때문이다. 20여년 전을 돌이켜보면 아침마다 구독하던 조간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유롭게 읽었다. 신문광고에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고 동네서점에 들렀는데 마침 없어서 주인아저씨에게 주문해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구매한 책을 아껴서 음미하며 읽곤 했다. 티브이에서 주말의 명화 시간에 보고 싶은 영화를 할 때에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가 온 가족이 꼼짝 않고 집중해서 봤다. 기다리던 가수의 레코드판이 나오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워크맨으로 닳아빠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처럼 콘텐츠를 귀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터치 한번이면 책, 신문, 잡지, 영화, 음악 등 온갖 콘텐츠가 순식간에 내 손안에 들어오는 시대가 됐다. 빌 게이츠가 ‘당신 손가락 위의 정보’가 세상을 바꾼다고 20여년 전 설파했던 세상이 눈앞에 있다. 내가 꿈꾸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가끔은 좀 피곤하다. 꼭 이렇게 많은 정보가 필요한가? 너무 지나치게 편리해진 것이 아닌가? 스마트폰은커녕 휴대폰도 없던 세상에서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는가?

 

스마트 기기와 디지털 콘텐츠의 홍수 속에 앞으로 더욱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될 듯싶다. 평소 모바일혁명의 찬미자인 나도 가끔은 정보의 유통이 적고 느린 세상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괴롭다.

 

 

 

임정욱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9079.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2:54

나로호(KSLV-1) 소식을 접할 때마다 속이 답답하다. 시원하게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가 우주로켓 분야에서 지진아 취급을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스마트폰으로 애플과 맞장을 뜨고, 자동차로 미국과 일본의 잘 나가는 회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는 산업기술 강국이 어찌하여 로켓 기술에서는 하늘만 바라보며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가. 조만간 3차 발사 시도를 앞두고 초비상 상태에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이지만 한국형발사체 개발을 앞당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로호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들춰보자.

먼저 정부와 언론이 나로호를 우리나라 첫 우주발사체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적절치 않다. 물론 순수 독자기술로 우주로켓을 쏘아 올린 나라는 독일뿐이고 미국 일본 등도 엔진을 수입해서 썼다고 하지만 핵심기술인 1단 로켓 엔진을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완제품으로 구매해서 사용한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또 엔진을 만들지 않는 것과 못 만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때문에 자국의 영토에서, 자국 로켓으로, 자체 제작한 인공위성을 우주에 쏘아 올린 위성 자력발사 국가 그룹인 스페이스 클럽 가입 운운도 무의미한 얘기이다.

다음은 액체 엔진 기술 이전에 관해 러시아와 맺은 계약 경위와 내용이다. 정부는 러시아와 체결한 2004년 한러 간 우주개발협력 협정과 2006년 우주기술보호협정(TSA) 문서에는 애초부터 엔진 기술 이전 조항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당초 러시아와 공동개발하기로 했으나 러시아 측이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위반 논란에 휩싸이자 TSA 체결을 요구했고 우리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독자 액체 엔진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관계자의 발언 등을 종합해 보면 정부가 엔진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러시아와 구체적인 협력 규모와 범위에 대한 부분을 합의하지 않은 채 러시아가 기술 이전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한 것 같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나로호 2차 실패 때도 그랬지만 3차 발사연기 원인 조사 작업도 우리 손을 떠날 수밖에 없다. 고무링 파손 조사 결과가 오늘 나온다지만 조사과정에서 배제된 우리로서는 그 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3차 발사 시도에 실패하면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미룰 가능성이 농후하다. 모든 걸 틀어쥐고 있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번 발사 실패 책임을 자인하면 국제적 망신을 살 것이고 결국 우주산업 시장에서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로켓 발사에 계속 실패한 나라의 우주기술을 누가 믿고, 또 구입하겠는가.

끝으로 이번 발사에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발사 성공의 의미는 러시아가 개발한 시험 엔진이 무사히 임무를 다한 후 우리가 제작한 2단 로켓의 작동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정도이다. 성공했다고 우쭐할 것도 없지만 실패했다고 낙담할 일도 아니다. 어차피 그 핵심기술은 우리 것이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그동안 나로호 발사 시도를 통해 발사 운영체제와 과정을 얼마나 터득했는가 이다.

나로호 발사 성패와 상관없이 한국형발사체는 추진해야 한다. 팽창하는 우주산업 시장(2011년 기준 2,898억달러)에 참여하고 우주공간 확보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우리 발사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로켓 기술은 우리의 안보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분야이다. 정부는 나로호에 10년 동안 약 8,500억 원을 쏟아 부었지만 아직 기술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북한이 개발한 로켓 은하2, 3호에 비하면 10년 이상 뒤쳐져 있다. 정부는 2021년까지 1조 5,000억 원을 들여 한국형발사체를 개발할 계획이다. 하늘 길을 빨리 열려면 그동안 실수와 실패부터 되돌아보면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꾸준히 투자하는 수밖에 없다.

 

 


최진환 문화부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420340011870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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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2:51

남성에게 “여자 같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다. 말하는 쪽도 대개 비난하기 위해 던지는 폭탄이고, 듣는 쪽도 모욕으로 받아들여야 ‘생물학적 남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결혼시장을 제외하고는 여성에게 “남자 같다”는 말은 칭찬이다. 이해되지 않는다면 직장 옆자리 여성동료에게 한번 말해보시라. 남자처럼 씩씩하게 일 잘한다는 평가로 알아들을 것이다. 양성평등 시대에 이게 웬 불공평이냐고 외친대도 소용없다. 그게 요즘 통념이다.

그럼 박근혜가 남자란 말인가?



박근혜 대선후보를 둘러싼 여성대통령 논쟁은 국민의 눈높이를 못 따라가는 정치권의 후진성을 드러낸다. 9월 주간동아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71.1%가 “대통령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고 답했다. 특히 박근혜 지지자들은 박근혜가 여자라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으로 본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박근혜를 두고 야권에서 “여성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 코미디다. 이미 답이 공개된 문제를 놓고 정치권이 소모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논지이탈 역공법에 능한 노무현 전 대통령 같으면 “그럼 박근혜가 여자가 아니란 말입니까?” 이 한마디로 종결지었을 터다.

시작은 박근혜가 먼저였다. 지난주 “여성대통령 탄생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이자 정치쇄신”이라며 여성리더십을 강조했다. 두 번 다 여성들이 모인 행사였다. 그런데서 남성리더십을 강조한다면 더 웃기는 일이다.

어쩌면 박근혜로선 “실은 저도 여자거든요” 하고 커밍아웃할 기회를 찾았을지 모른다. 국정운영 능력은 인정되지만 정수장학회 처리 등에서 굳어진 불통의 이미지 때문이다. 투쟁적 이미지의 김대중이 1997년 대선후보 때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고 홍보했던 전략과 비슷하다.

여기에 남자들이 딱 걸려들었다. 남자답지 못하게 “박근혜가 여성의 사회진출과 정계진출을 위해 뭘 했나”처럼 대통령과 여권운동협회장을 혼동하는 듯한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생물학적으론 여성이지만 사회정치적인 여성은 아니다”까지 뻗쳤다. 심지어 “생식기만 여성”이라고 발언한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언론이 왜곡했다”고 엉뚱한 데 화살을 돌렸다.

민주통합당 여성위원회는 더 나갔다. “박근혜는 여성대통령의 덕목인 평등 평화지향성 반부패 탈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후보”라는 거다. 진보진영의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말 같다. 세계화나 경제정책에서 수구 좌파적이라고 비판받던 노 정권 사람들보다 야권의 페미니스트는 더 먼 과거에 있는 모양이다.

여자든 남자든 능력으로 말하라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모성을 요란하게 내세운 공화당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은 반(反)여성적이라는 공격이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빗발쳤다. 진짜 진보가 뭔지 아는 페미니스트 작가 나오미 울프가 그들에게 한 말은 우리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20년 전이나 다름없이 평등 환경 같은 좌파적 이슈만 강조하고, 여성의 성취와 책임을 중시하는 우파적 페미니즘을 외면하는 건 수백만 여성들을 배척하는 일”이라는 거다.

여성의 힘으로 여성대통령을 만들자고 강조하는 새누리당도 시대착오적이긴 마찬가지다. 2007년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로 나와 “새 역사를 쓰려면 특히 여성들이 여성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외쳤던 세골렌 루아얄은 오히려 여성들에게 역풍을 맞았다. 여자니까 여자후보를 뽑으라는 건 여성의 지성에 대한 모독이라는 차가운 평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자임을 꼭꼭 감추는 게 좋은 전략도 아니라는 게 여성 정치인의 딜레마다. 힐러리 클린턴처럼 유능하면 독선적이라고 욕을 먹고, 여자답게 협조 잘하면 무능하다고 욕먹는다는 연구결과가 너무나 많다. 남자라면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라고 평가될 덕목이 여자에게는 독선으로 평가 절하되기 십상이라는 거다. 페미니스트한테는 물론이고 남자들한테도 ‘저년’ 수준의 욕설까지 들었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있어 영국은 그래도 되살아날 수 있었다.

결국 관건은 후보의 가치관과 비전, 그리고 능력이다. 국민은 이미 대통령이 여자든 남자든 일만 잘하면 된다고 보고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 경지인데 정치권만 여성대통령(女統)이냐 남성대통령(男統)이냐 논쟁하는 건 시간낭비다.

화합과 소통 같은 ‘소프트 리더십’이 강조되는 시대, 남자고 여자고 여성다운 감성을 지니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만을 위하겠다는 후보는 결혼 전 남편들의 맹세처럼 가볍다. “나야말로 친여성적 후보”라고 강조하는 것도 남자답지 못하다.

무엇보다 툭하면 눈물을 짜는 모습부터 거둬주기 바란다. 남자의 눈물은 정말 중요할 때, 그것도 유능한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한 다음에만 감동을 주는 법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21104/50618150/1

Posted by 겟업
2013. 1. 3. 12:51
공짜 좋아하면 머리가 벗어진다는 말이 있다. 탈모 환자라면 펄쩍 뛸 노릇이다. 머리 빠지는 것만 해도 속이 타는데, 공짜 좋아한다는 누명까지 썼으니 안 그렇겠는가.

공짜를 얻으려고 머리를 굴리다 보니 탈모가 된다며 억지로 ‘의학적’ 해석을 붙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람은 모두 탈모 환자가 돼야 할 듯하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인터넷 콘텐츠 유료화가 대한민국만큼 어려운 나라도 없잖은가.

실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진실에 더 가깝지만 공짜의 유혹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대가 없이 혜택을 준다는 ‘무상(無償)’이란 단어가 달콤한 이유다. 무상의료 또한 마찬가지다.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시민단체들은 건강보험료를 1인당 월 1만1000원만 더 내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면 연간 14조1000억 원이 더 걷히고, 건강보험 보장성(혜택)은 90% 수준까지 올라가며 환자가 실제 부담할 진료비는 연간 100만 원 이내가 된단다.

이 계산대로라면 사실상 무상의료가 실현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9, 2010년 건강보험 보장성을 비교한 결과 64.0%에서 62.7%로 떨어졌다. 보험료를 올리고 국가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보장성은 후퇴했다. 정부의 80% 공약은 요원하다. 이런 상황이니 무상의료 방안은 끌림을 넘어 매력에 가깝다.

다만 진정 무상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보험료를 지금보다 30% 더 걷는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원리다. 유상(有償)이다. 건강보험 지속성을 위해 보험료를 더 걷어야 한다는 기존 주장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기업에 추가로 4조4000억 원을 더 내도록 하는 조건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보험료의 절반을 회사 측이 부담한다. 대기업이야 가능하다 쳐도 영세한 중소기업이 이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게다가 정부 지원금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도 보장성이 90%까지 오른다니,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재정을 확보한다 치자. 그러나 90%라는 이 수치가 보장될까.

의료소비 증가율은 아주 가파르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노인들은 외래 진료비의 30%, 입원 진료비의 20%만 부담한다. 진료비가 1만5000원 이하이면 1500원만 낸다. 찜질방 비용보다 물리치료실이 더 싸다. 그러니 병원으로 몰린다. 의료쇼핑이란 단어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지난해 감기 환자에게만 건보재정에서 2조8504억 원이 지출됐다. 암 환자 94만4414명에게 지급된 돈은 3조6496억 원이다. 2008년 기준으로 1인당 13회 진료를 받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6.9회)보다 2배 정도 많다.

감기만 걸려도 일단 병원부터 가고, 약부터 챙겨먹는 의료소비 행태가 바뀌지 않으면 14조 원이 아니라 20조 원을 확보해도 건보재정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이념 공세가 아니다. 필자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중산층과 마찬가지로 무상의료를 간절하게 바란다. 그러나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과연 소득에 따라 합당한 보험료를 내고 있는지, 의사와 약부터 찾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 필요한 것은 의료소비 행태를 바로잡는 ‘책임의료’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21104/50618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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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2:50

 

“우리 지역에서는 카지노가 최대 관심사예요.”

인근 메릴랜드 주에 사는 미국 친구에게 이번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공화당 후보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난데없이 카지노 얘기를 들고 나왔다. 그는 “오바마-롬니보다 대선 때 함께 치르는 주민투표의 최대 이슈인 카지노 개설 문제를 놓고 메릴랜드가 시끌시끌하다”고 했다. 요즘 기자가 사는 곳에서도 TV 선거광고의 대부분은 이 카지노 이슈를 다루고 있다.

내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대통령과 연방의회 상하원 의원을 뽑는다. 이와 함께 주민투표도 진행된다. 주민투표는 각 지역의 핵심 이슈에 대해 주민들이 찬반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다. 올해 대선에서는 38개 주에서 176개 이슈에 대해 주민투표가 이뤄진다. ‘질의(Question) 1’ ‘제안(Proposition) 2’ 등의 형태로 각 지역이 당면한 핵심 이슈들이 투표에 부쳐진다. 카지노 개설, 세율 조정, 채권 발행 등 지역 재정과 관련된 이슈들이 대부분이다.



메릴랜드에서 카지노 이슈는 ‘질의 7’로 통한다. 현재 5개가 있는 카지노를 1개 더 개설하느냐, 슬롯머신과 함께 룰렛, 블랙잭 등으로 도박 종류를 확대하느냐가 관건이다. 메릴랜드에서는 카지노 문제를 놓고 수많은 공청회가 열렸다. 카지노가 핵심 이슈가 된 것은 교육문제와 연계되면서부터. 카지노로 인해 세수가 늘어나면 교육에 투자될 것이라는 찬성파와 카지노가 오히려 교육에 악영향만 미칠 것이라는 반대파가 팽팽히 맞서면서 ‘질의 7’은 메릴랜드뿐 아니라 비슷한 카지노 문제를 안고 있는 인근 주들에서도 올 대선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해 중반부터 시작된 미국 대선 과정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국민들이 선거를 바라보는 관점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 국민들은 정책과 이슈 중심으로, 지역적 관점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경향이 높다. 대선과 함께 지역의 핵심 사안을 다루는 주민투표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이슈를 공부해서 투표장에 가고 어느 후보가 내가 사는 지역을 더 발전시킬지 고민해서 한 표를 던진다. 후보 개인의 인물 평가와 과거 행적 공방, 거대 비전에 치중하는 한국 대선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한국 대선이 인물 중심적, 중앙 집권적이라면 미국 대선은 이슈 중심적, 지방 분권적으로 진행된다. 또 한국 대선이 과거 지향적이라면 미국 대선은 현재 또는 미래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도 막바지에 달하면서 후보에 대한 공격과 비방이 많이 늘기는 했다. 그 주범으로는 TV 선거광고가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TV 광고를 통한 네거티브 선거전마저도 정책 공방 중심으로 진행된다. 대선 TV 토론이 끝나면 후보들은 언론의 ‘팩트 체킹’ 심판대에 오른다. 토론 때 후보들의 공약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 언론은 치밀한 검증을 가해 사실과 어긋나거나 부풀려진 내용을 공개한다. 후보들은 토론 자체보다 언론의 팩트 체킹을 더 무서워한다.

상호 비방과 음모론 등이 판치는 흥미진진한 한국 선거판을 보다가 미국 대선을 보면 다소 무미건조하고 극적인 요소가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선거 중의 선거인 미국 대선 현장을 1년 넘게 지켜본 관전평은 우리보다 훨씬 내실 있고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 역사와 선거 문화가 다른 한국과 미국의 대선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일 실시되는 미국 대선이 43일 후에 열리는 한국 대선에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한국 정치권과 국민 모두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정미경 워싱턴 특파원

 

 

http://news.donga.com/3/all/20121105/50619453/1

Posted by 겟업
2013. 1. 3. 12:50

1960년대 말 미국 디트로이트의 허름한 클럽 ‘하수구’. 훗날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등을 키워낸 세계적인 프로듀서 마이크 시어도어가 한 뮤지션을 찾아간다. 한 구석에서 객석을 등진 채 노래하는 남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목소리였다. 외모는 부랑아 같았다.

멕시코계 미국인 시스토 로드리게스는 그렇게 ‘콜드 팩트’(1970년) 등 두 장의 앨범을 냈다. 공장도시 디트로이트의 암울한 삶과 현실을 시적인 가사와 소울풀한 멜로디에 담았다. “크리스마스 2주 전 일자리를 잃고 시궁창의 예수에게 말했더니 교황은 그의 알 바 아니라고 하네”(‘cause’) 같은 노래였다. 시어도어는 “밥 딜런보다 훌륭하다”며 성공을 확신했지만 결과는 참패. 그는 그렇게 잊혀진 무명가수가 됐다.

이런 그의 음악이 197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전해졌다. 극심한 인종차별과 권위주의적 통제 속에서 기성질서에 맞서는 가사가 폭발적 반향을 일으켰다. 정부는 금지곡으로 지정했지만, 그의 음악이 저항의 아이콘이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시위 현장마다 그의 노래가 울려퍼졌고, 수백만 장 음반이 팔려나갔다. 반면 그의 신상은 미스터리였다. 공연 중 관객 앞에서 자살했다는 루머만 무성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가 철폐된 90년대 어느 날, 로드리게스의 열혈팬 두 사람이 그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 수퍼스타일 줄 알았는데 막상 미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전무했다. 가사를 단서로 추적했고, 인터넷에 광고를 올렸다. 그리고 그가 살아 있다는 기적 같은 사실에 함성을 질렀다.

마침내 98년 56세의 로드리게스는 남아공 팬들 앞에 섰다. “남아공에선 엘비스보다 당신이 더 유명하다”는 말을 믿지 못했지만, 수만 명의 관객이 그의 이름을 외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에 목이 메었다. 평생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 “나를 살아 있을 수 있게 해줘 감사하다”고 간신히 말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음악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말릴 벤젤룰 감독)에 담겼다.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선보여 심사위원특별상·관객상을 수상했다. 이후 작은 영화제들을 휩쓸었다. 국내에서도 개봉돼 관객을 1만 명가량 넘겼다.

이후 로드리게스는 남아공에서 40여 차례 공연했다. 공연의 모든 수익을 이웃과 나누었고 여전히 디트로이트 집에서 가난한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의 노동자 친구는 “그의 음악은 잘 모르지만, 그는 현자가 분명하다”고 말한다.

현실은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며, 진정한 음악(가)의 길은 무엇인지 일깨우는 다큐멘터리다. 음악이 할 수 있는 기적에 대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이 기적 같은 일을 공유할 극장이 서울에 달랑 8개. 그나마 퐁당퐁당 교차상영이라 영화보기가 기적처럼 힘들다. 일년에 1000만 영화 2편, 스크린 900개 이상 개봉작 6편, 한국 영화인구(한국 영화누적 총관객수) 1억 명 시대의 그늘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788605&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3. 12:49

예쁜 여자 후배가 있었다. 사진과 후배다. 남자 후배들이 ‘여자 좀 소개해줘’ 할 때마다 그녀를 이용했더랬다. 착한 얼굴과 착한 몸매의 그녀를 다들 환호했고 그녀 또한 그런 호감을 즐기는 눈치였고.

하지만 그들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두세 번이 고작이다. 덕분에 난 계속 많은 남자를 바꿔가며 소개해주고 매번 고맙다는 인사도 듣고.

착한 얼굴과 착한 몸매. 처음엔 다들 ‘혹’ 하지만 마음 잡는 역할은 못하는 모양이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겉모습은 그저 포장일 뿐. 소개받은 이성을 포장도 뜯지 않고 거실 한구석에 장식해 놓을 건 아니니 아마도 그녀의 포장 속 내용물이 별로였나 보다.

‘자라’나 ‘유니클로’란 중저가 브랜드가 있다. 유행을 재빨리 분석해 재빨리 만들어 망설임 없이 재빨리 살 수 있게 저가로 파는 회사다. 해마다 나도 몇 개씩 구입한다. 앞선 유행 옷을 싸게 사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값이나 소재나 그런대로 괜찮다. 하지만 다음 해에는 싫증나서 잘 꺼내 입게 되지 않는다.

반면에 몇십 년 동안 모양이 바뀌지 않는 명품이 있다. 첫눈에 ‘혹’하진 않지만 두고두고 손길이 가는. 사람도 두 종류다. 착한 얼굴과 착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계속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미인미남은 아니어도 두고두고 마음이 끌리는 사람.

요즘엔 길거리에 최신 유행을 좇는 중저가 브랜드 얼굴들이 판을 치고 있다. 청담동이나 압구정 거리에 가면 하나같이 ‘쌍꺼풀 눈, 오뚝한 코, 뾰족한 얼굴’이다. 비슷한 얼굴에 옷과 화장까지 비슷해 ‘같은 공장에서 막 출고되어 나온 물건들’ 같다. 지하철이나 길거리나, 심지어는 움직이는 버스 광고까지. ‘유행 따라 고치세요, 고치기 전과 고친 후, 자신감을 드려요.’

자신감? 언청이나 화상이나, 기형인 사람들 경우다. 멀쩡한 얼굴을 뜯어고쳐 생긴 자신감은 조금만 나이 들면 금방 사라진다.

첫인상이 중요해서라고? 이제 사람들의 판단력도 최첨단이다. 포장 속 내용물 알아내는 데 채 30분도 안 걸린다.

중저가 브랜드 오리지널 컨셉트가 ‘싸게 한 해 유행 즐기고 버리기’라 하더라. 명품인 자신을 유행 지나면 버려지는 중저가 브랜드로 취급하지 마라. 성형광고에 나온 수술 전 얼굴도 자꾸 보니 수술 후 얼굴보다 훨씬 낫더라.

태어나면 100년씩은 써야 하는 우리 몸. 그래서 다 명품이다. 언젠가는 명품 백을 유행 따라 모양을 바꿔 끈을 달았더니 싫증나서 조카에게 줘버린 적이 있다. 이는 성형수술 후 자살로 자신을 내버리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간단한 쌍꺼풀이나 코 높임도 아니고, 브이라인을 위한 양악수술은 심장이나 폐 수술만큼이나 위험한 수술이라 하던데. ‘브이라인 에스라인…죽여줘요’의 유행가 가사 속 ‘죽여줘요’가 정말 ‘죽여줘요’인가 보다. 씁쓸하다.



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788600&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3. 12:48

지난여름, 고려대 해부학교실에서 국내 과학수사 요원들에게 지문채취 기법을 강의하던 미국 FBI 교관이 말했다. "지문이 오래돼 쭈글쭈글해지면 더운물에 잠시 넣으십시오. 피부가 탱탱해져 지문 채취하기가 수월해집니다." 과학수사 요원들이 술렁거렸다. "그건 이미 우리가 하고 있는 건데…." 한 경찰서 과학수사팀장이 그 기법은 자기가 2004년 동남아 쓰나미 때 FBI에게 가르쳐준 기법이라고 했다. 일순간 교관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한국 경찰 과학수사가 FBI를 누른 것인가?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부끄러운 우리 경찰 과학수사의 이면이 있다. 우리나라 경찰이 FBI까지 인정한 이런 기법을 제대로 매뉴얼화하지 못한 것이다. 해외에 발표하지도 못했다. FBI는 이 기법을 2007년 국제감식협회 저널에 발표했다. 우리는 그저 우리끼리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사용하는, 소위 '도제식' 기법이었던 셈이었다.

이 지경이 된 가장 큰 원인은 경찰 과학수사에 연구기관이 없다는 점이다. 연구기관이 있었으면 일선경찰이 개발한 현장기법을 연구기관에서 전문화, 이론화시켜서 해외에 발표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날마다 절도사건 감식하기 바쁜 일선 과학수사요원들이 현장기법을 개발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이를 승화시키지 못한 제도적 결함을 오랫동안 방치해 왔다. 현장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로 연구개발해야 할 것은 지금도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연구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행정안전부 소속이다.

11월 4일은 과학수사의 날이었다.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경찰에서 감식을 시작한 날이다. 당시 국과수 업무는 경찰에 소속되어 있었고 1955년 국과수가 창설되면서 내무부로 옮겼다. 국과수가 경찰과 같은 울타리에 있었다면 현장형 연구개발로 과학수사 발전을 크게 앞당겼을 것이다. 대한민국 경찰 과학수사에 연구기관이 없다는 것은 전쟁에서 총 쏘는 사람만 있지, 총 개발하는 브레인이 없다는 것과 같다. 한국 경찰 과학수사에 뇌가 없는 비극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박영진 경찰청 과학수사센터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04/2012110401374.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2:42

나는 사회에 불만이 많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이나 몇몇 친구들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바꿀 수 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냥 참으라는 말을 참 어렵게도 하시네요”라며 발끈했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야 이 말이 굉장히 슬픈 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많은 이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관심과 냉소의 벽을 뚫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현대차 울산공장의 송전탑에 두 명의 노동자가 올라가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당한 최병승과 현대차 비정규지회 사무국장 천의봉이 송전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현대차가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라는 것이다. “2년 이상 근무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에 해당하므로 현대차의 정규직”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현대차가 책임지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법을 지키라’는 당연한 말을 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이 추운 날 송전탑에 몸을 묶은 채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자본의 부당한 횡포와 이 횡포를 방관하는 국가에 저항하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야만 했다. 사측의 부당해고에 저항하기 위해 기륭전자의 노동자들은 철탑에 올라야 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도 표준운임제와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기 위해 철탑에 올라야 했다. 사측의 부당해고에 맞서 한진중공업의 해고노동자 김진숙도 크레인에 올라야 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랐고, 굶다 쓰러졌으며 몸에 시너를 끼얹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누군가가 목숨을 걸어야 그 사람을 한번쯤 쳐다보는 사회다. 아니, 여전히 그런 이들 앞에서 경영상의 위기나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들먹이고 ‘기업이 살아야, 국가경제가 살아야 니들도 살지’라고 말하는 사회다.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들과 정당들이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한다. 법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 재벌과 대기업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서로 소리친다. 그렇게 자신 있거든 있는 법도 무시하고, 대법원 판결도 무시하는 현대차한테 본때를 보여주길 바란다. 대선주자들은 하나같이 대기업과 재벌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게 자신 있거든 현대차부터 엄벌에 처하길 바란다.

 

대선주자들이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은 채 대선공약으로 비정규직 철폐, 경제민주화, 복지를 내세운다면 이는 결국 ‘네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세상을 바꿔’의 다른 버전이 아닌가? 대통령 시켜주면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은 훌륭한 인품과 결단력을 지닌 누군가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만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누군가가 굳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않아도, 아래에 있는 우리들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다. 노동자들은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송전탑에, 크레인에, 철탑에 올랐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분신 투쟁에 대해 ‘죽음으로 말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나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정말 그 시대가 끝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높은 자리에 오르고 있다. 저 위에 사람이 있다. 자리 말고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을 보자. 그리고 노동자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야만 하는 이 시대를 이만 끝내자.

 

 

조윤호 대학생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8917.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2:41

사막 여행이 많았던 아랍에는 “먼 길을 떠나기전 동반할 친구를 선택하라”는 속담이 있다.

한국과 아랍에미리트(UAE) 양국관계는 활발한 정상간의 교류 및 깊은 신뢰 관계를 토대로 짧은 기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대표적 사례이다. 걸프국가 최초의 원전 착공 등을 계기로 ‘형제의 나라’로 거듭난 양국관계는 중동국가 최초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선언 및 연이은 유전개발 참여 성사, 보건ㆍ의료, 교육, 문화 협력 심화 등으로 아시아와 중동국가간의 대표적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양국 관계의 심화 발전은 국방분야까지 협력의 지평이 확대 되어 2010년 5월 한국을 방문한 UAE 모하메드 왕세자는 우리 정부에 파병을 강력히 요청했고, 정부는 국회 승인을 거쳐 지난해 1월 최초로 UAE에 아크부대 150명을 파병했다.

아크부대(아크는 아랍어로 형제라는 의미)는 기존 분쟁지역 파병과는 달리 최초로 훈련과 협력을 목적으로 해외에 파병한 부대로서, 성과 또한 기존의 파병부대와는 사뭇 다르게 나타났다.

우리군의 우수성과 모범적인 기율을 바탕으로한 체계적인 UAE군 훈련시스템 구축 지원 활동은 UAE 왕세자와 총참모장으로부터 “체력이나 정신력은 한국군이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아크부대의 지속적인 파병을 강력하게 요청받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전 UAE를 방문한 국회 국정감사반은 아크부대를 격려차 찾아가 훈련상황을 찍은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모두들 그 자랑스러움에 눈물이 핑 도는 감동을 느꼈다고 한결같은 고백을 했었다. 사실 필자도 아크부대를 방문할 때 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에 그러한 감정이 과거 우리 파병부대가 전쟁이나 테러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미안한 감정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라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해외에 있을때 외국인들로부터 우리나라 제품이 세계 최고라는 평가라는 말을 들을때 느끼는 뭉클한 감동과 비슷한 것이다.

아크부대 주둔이 한-UAE 양국관계 발전의 중요한 바로미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외에도 파병 초기에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성과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자주 바뀌는 기상여건과 훈련장 부족, 늘어나는 민원 등으로 갈수록 실전훈련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는 UAE에서는 고공 강하 등 다양한 훈련을 고강도로 실시할 수 있어 국내에서 5년동안 실시해야 할 훈련량을 UAE에서는 단 6개월만에 해낼 수 있어 우리군 자체의 전투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 부대가 외국에서 ‘단기집중 연수’를 받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UAE는 최근 제2의 중동붐을 타고 재외국민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UAE만 해도 중동지역 최대인 9,00여명이, 그리고 중동지역 전체로는 약 2만명 정도의 재외국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크부대의 존재는 그 자체로 UAE는 물론 전체 중동지역 우리국민들에게도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최근 UAE를 중심으로한 중동지역에서도 한류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K팝스타의 공연장이 만석을 이루고, 자발적인 친한 팬클럽이 조성되는 등 한국의 문화 위상이 크게 높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아크부대 또한 우리군의 우수성을 통한 한국의 이미지 제고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한국전문가를 키우기 위해 매년 젊은 UAE대학생, 차세대 지도자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유스 앰버서더’ 프로그램을 직접 관장하고 있는 모하메드 UAE 왕세자는 “UAE와 한국은 10년, 20년이 아니라 100년, 200년을 바라볼 관계”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속에서 지금과 같은 경이로운 성장을 이룬 저력을 가진 나라로서 UAE와 함께 그 경험과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아크로 거듭나고 있다.

 

권태균 주아랍에미리트 대사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221020124060.htm

 


 

Posted by 겟업
2013. 1. 3. 12:40

한국 기업에서 여성 상사 시대가 한순간에 찾아온 것은 아니다. 1960, 70년대엔 저임 여공 시대가 있었고 1980년대엔 서무 여사원의 시대가 있었다. 1990년대에 절대 다수 대졸 남성에 섞여 입사한 ‘외로운 여성 공채’ 시대가 열렸다. 직장 내 여성 상사는 이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성 임원의 시대는 언제 열릴까.

여성 상사가 부하들과 함께 과업을 수행하는 일을 한다면 여성 임원은 조직에 필요한 과제를 고민하고, 그것을 추진할 방법을 생각해 내며,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일을 한다. 또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상사가 관리자라면, 임원은 리더다. 여성 임원은 직접 조직 내 의사결정에 참여해 조직의 윤곽을 바꿔 놓기 때문에 여성 임원들이 포진해 있는 기업은 밖에서 봐도 멋있다. 여성 상사는 ‘유능한’ 여성이지만 여성 임원은 ‘성공한’ 여성이다. 여성 상사는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되지만 임원은 사회적 롤 모델이 되므로 여성 임원은 존재 자체가 대(對)사회적 메시지이다.

성공한 여성은 많지만 여성 임원이 별로 눈에 안 띄는 이유는 뭘까? 아직 시간이 안 됐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임원이 되려면, 최소 입사 20년은 걸리는데 한국 기업에서는 이제 막 내부 승진 여성 임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고용노동부는 2010년 현재 종업원 1000명 이상인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이 6.5%라고 추정한다. 수치로는 미미할지 몰라도 여성 임원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로는 충분하다. 조사 대상 기업 중 여성 임원이 1명도 없는 경우가 63.5%나 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나머지 기업에서의 여성 임원 비중은 10%를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여성 임원 40%가 마케팅 분야 종사

여성 임원 비율은 2020년 최대 20%까지 갈 수 있다. 첨단을 지향하는 기업들에서는 8년 후면 여성 임원이 30% 또는 그 이상을 차지할 것이다. 여성 임원은 여전히 소수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편안한 소수(comfortable minority)’가 될 것이다.

기업 간 차등이 있듯이 분야 간에도 차등이 있어, 여성 친화적인 분야가 있는가 하면 남성만의 철옹성도 있다. 굳이 애써서 후자를 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성장하는 분야, 남성과의 차별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여성들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성 임원들이 주로 포진해 있는 분야는 마케팅, 고객서비스, 교육, 연구개발(R&D)이다. 여성 임원의 약 40%가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최고 여성 임원은 모두 이 분야 전문가이다. 교육이나 커뮤니케이션 분야도 두드러진다.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도 교육통이다. 최근엔 디자이너가 임원으로 승진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향후 여성들에게 전망이 밝은 분야가 R&D이다. 여성의 고학력화 및 이공계 진출 경향과 함께 더 많이 눈에 띌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비해 영업의 경우, 여성들의 활약이 덜하다. 아이디어 추진보다는 판매 조직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조직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에게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영업은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욕심내는 임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험대이니만큼 적극적인 도전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전문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여성 임원에게 전문성은 약이자 독이다. 한 우물만 파고 있으면 큰 숲을 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남성들은 부서를 옮기라는 ‘조직의 명령’에 군말 없이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당장 전문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어도 길게 볼 때 멀티 플레이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IBM 등 해외 선진 기업은 임원 후보를 고를 때, 전문성은 기본이고 도전적 업무, 글로벌 경험, 핵심 업무 수행 경험을 본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는 것은 그 순간의 부담감은 있겠지만 그 이상의 보상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여성 임원의 가장 큰 약점으로 네트워크 능력이 지적된다.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네트워크 구축은 활동 반경이나 시간 투자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공정하게 대하며, 성심껏 일관되게 도와주는 것이 열쇠이다.

전문성은 藥이자 毒… 영업도 해봐야

일하는 여성들에게 최대 난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인데 임원이 되고 나면 늘 머릿속에 맴돌았던 ‘일 포기’ 카드를 던질 개연성은 크게 떨어진다. 이전보다 일에 더 몰입해야 하고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책임감과 일을 갑작스레 그만두었을 때의 파급효과가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 임원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를 극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고질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슈퍼우먼이 아니면서 슈퍼우먼 행세를 해야 하는 여성, 상사일 때만 해도 스스럼없이 불만과 고충을 나누던 동료들마저 곁에 없는 외로운 리더 자리에서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여성이 바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여성들인 것이다.

강우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http://news.donga.com/3/all/20121103/50589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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