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삶'에 해당되는 글 1071건

  1. 2013.01.01 [세상 읽기] 소외자 인권을 생각하는 따뜻한 복지
  2. 2013.01.01 [삶과 문화/10월 23일] 이상한 것에 익숙해지지 않기
  3. 2013.01.01 [글로벌 아이] 노벨상 전야, 일본의 풍경은
  4. 2013.01.01 [송호근 칼럼] 경제민주화, 대기업-노조 담합이 문제다
  5. 2013.01.01 [이철호의 시시각각] 대선 후보, 애니팡 혁명에 주목하라
  6. 2013.01.01 [태평로] 교과서에 안 나오는 100년 전 역사 이야기
  7. 2013.01.01 [김철중의 생로병사] 시집살이 꾹 참은 착한 며느리는 병 나기 쉽다
  8. 2013.01.01 [특파원 칼럼/10월 22일] 이젠 놀고 싶은 13억 중국인
  9. 2013.01.01 [노트북을 열며] 반값 등록금보다는 무료 직업훈련비
  10. 2012.12.26 [서소문 포럼] 하나의 사건 두 개의 만남
  11. 2012.12.26 [한겨레 프리즘/ 이형섭] 민주정치는 우월한가
  12. 2012.12.26 [토요에세이/10월 20일] 범죄의 가공할 양면성
  13. 2012.12.26 [메아리/10월 20일] 안철수의 실험 '정당이 싫다'
  14. 2012.12.26 [대학생 칼럼] 페이스북! 너는 지금 무슨 생각 하니?
  15. 2012.12.26 [중앙시평] 사회 운영체계의 전반적 개혁 있어야
  16. 2012.12.26 [기고] '과학기술 韓流'의 출현을 고대하며
  17. 2012.12.26 [분수대] 인류 최고의 천재들은 문화적 창조력 발휘한 르네상스형 인간이라는데
  18. 2012.12.26 [양선희의 시시각각] 여전히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19. 2012.12.26 [삶과 문화/10월 18일] '사실여부 계기판'이 필요해
  20. 2012.12.26 [와카미야의 東京小考]천황이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
2013. 1. 1. 13:48

첫눈이 하얗게 덮인 캠퍼스를 뒤로하고 강의실로 들어선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제일 앞에 장애 학생이 앉아 있다. 계단식 강의실이라 휠체어를 탄 이 학생은 항상 맨 앞줄에 앉는다. 필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사정을 알기에 수업 하루 전 강의 내용을 미리 보내주고, 그래서 학생은 수업을 쉽게 소화하는 모습이다.

청각장애를 지닌 학생을 위해선 두 명의 수화통역자가 교대로 강의 중 앞에 나와 수화를 한다. 그 학생은 화상으로 보이는 내 강의노트 자료와 수화통역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진지하게 수업을 듣고 있다. 세미나 시간에도 이 두 수화통역자는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며 그 학생이 토론에 참가하도록 도와준다. 스웨덴어에 능숙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선 ‘언어정비소’라는 제도를 도입해 논문 쓰기, 문법 등에 도움을 준다. 단체 발표, 논문 제출, 토론 위주로 진행되는 강의를 따라가려면 언어가 필수적이므로 적응이 덜 된 이민자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2011년 스웨덴 대학행정처의 통계자료를 보면, 스웨덴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중 장애 학생의 비율은 전체 학생의 12%에 이른다고 한다. 전국 대학 학생복지 서비스과에는 장애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지원전담 상담원이 배치되어 있다. 이 직원의 업무는 장애 학생들이 학업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한 행정지원을 해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난독증 학생들을 위해선 담당 교수에게 필기시험 기간 연장 등의 배려와 강의 노트 사전제공 등을 요청한다. 필기시험도 일반 학생들보다 1주일 정도 시간을 더 할애해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행정지원을 해준다. 난독증 학생들의 경우 사전 허가를 받기만 하면 필기시험 당일 시험장에 비치된 특수 컴퓨터로 시험을 볼 수 있게 한다. 물론 수화통역 서비스, 장애인 보조, 특수차량이나 교재 구입 등은 학기 중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가에서 지원해 준다.

우리 사회에도 경제적 능력이 없거나 외관상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관심과 냉대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따뜻한 복지는 이런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데서 출발한다. 그늘에 있는 사람들이 양지로 나올 수 있게 인도해 주는 장치다. 복지가 없다면 그들은 그 그늘에서 사회를 한탄하며 일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 사회일수록 그들이 영원한 낙오자로 떨어지게 수수방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사회일수록 사회의 갈등과 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젠 우리 자신도 언제든지 그런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외국에 나가면 바로 자신이 언어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멀쩡히 학교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화재를 당해 화상을 입거나 하면 바로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자식이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 음지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국민, 우리의 가족이라는 인식이 절실한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선 복지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지만, 사회에서 소외받고 신음하며 냉대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정책은 어느 후보도 아직 구체적으로 내놓질 못하고 있다. 큰 틀에서 약속만 하지 말고,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통합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인권, 한국에서 새 삶을 위해 찾아온 이주민을 위한 따뜻한 배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불우아동들을 위한 따뜻한 복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복지는 장기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사회공학 사업이다.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 주는 일이다. 복지에 충실할수록 민주주의가 더 성숙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연혁 쇠데르퇴른대학 정치학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78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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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 13:36

1946년 9월28일 가로명제정위원회가 구성되어 서울 지명에서 '왜색'(倭色)을 지우는 작업이 시작됐다. 위원회는 일본식 지명인 마치(町)를 모두 동(洞)으로 바꾸고 일본인의 이름을 땄거나 식민통치와 관련해 특별한 상징성을 지녔던 지명에는 우리 역사상의 위인들 이름과 시호를 붙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 일본인 거주민의 중심지였던 혼마치는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가 되었고, 중국인들이 많이 살았던 고카네초오는 살수대첩을 이끈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의 이름을 따서 을지로가 되었다. 경복궁 남쪽 거리에는 세종 같은 좋은 지도자가 거듭 나오라는 기원을 담아 세종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20여년이 지난 1967년엔 정권 제2인자였던 김종필을 회장으로 하여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 위원회는 장소의 역사성을 고려하여 세종대왕 동상은 세종로에, 충무공 동상은 충무로에, 을지문덕 동상은 을지로에 각각 세우기로 계획했다. 그런데 동상 제막을 앞두고 갑작스레 계획이 변경되었다. 서울의 중심이자 나라의 중심인 세종로에는 무인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 군 출신 통치자에게 더 어울린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탓에 세종대왕 동상은 아무 연고도 없는 덕수궁으로 밀려났고, 지명과 동상의 연계를 고집할 이유도 없어졌다. 당시 세종로에 충무공 동상을 세우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많았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이 이상한 상징의 중첩에 익숙해졌다.

그로부터 다시 40여 년이 흐른 뒤, 세종로에 광장을 조성하기로 한 서울시는 충무공 동상 이전을 검토했다. 그런데 압도적 다수의 시민들이 이에 반대했다. 이미 세종로가 충무공으로 표상되는 '이상한' 현상에 익숙해졌기에, 변화를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종대왕 동상을 충무공 뒤에 세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아주 '이상'하다. 청계광장 쯤에서 경복궁 쪽을 바라보면 궐 밖 어정쩡한 곳에 앉아 있는 세종대왕을 충무공이 호위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이 이상한 모양새에도 익숙해 질 것이다.

1967년 서울시는 한강 변에 새 제방을 쌓고 그 위에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새 제방과 이전 제방 사이에 생긴 땅을 택지로 조성해 팔면 막대한 건설 경비를 조달할 수 있다고 판단한 서울시와 정부는 68년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본격적인 한강변 개발에 나섰다. 이와 함께 공유수면 매립 사업도 벌어졌다. 한강 변 얕은 곳을 매립하여 택지를 조성한 이 사업에 따라 강변에 아파트만 빼곡히 들어서고 육지와 강이 완전히 분리되었다. 서울에 처음 온 외국인들은 아파트밖에 안 보이는 이상한 강변 경관에 놀라움을 표하지만, 요즘 서울 사람들은 강변 제방 바로 옆에 아파트가 있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88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후 경기장 건설과 불량주택 밀집 지역의 합동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건설자재가 부족에 직면하자, 전두환 대통령은 서울시장에게 한강의 골재와 고수부지 활용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한강 전역에서 모래와 자갈이 사라졌고, 잠실과 신곡에 각각 수중보가 건설되어 물의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했다. 강변 모래톱도 다 없어지고 그 대신 둔치에 잔디광장과 체육시설이 만들어졌다. 지금 한강은 강바닥도 물도 강변 환경도 '정상적'인 강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한강을 '정상 상태'로 되돌리자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 받기 십상이다.

권위주의 통치와 압축성장은 이 사회 곳곳에 이상한 경관, 현상, 관행, 시설들을 남겨 놓았고, 대다수 국민들은 그 이상한 것들에 이미 익숙해있다.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 진영에서 이런 저런 약속들을 하고 있는데 모두가 일반 국민들 듣기 좋은 이야기들뿐이다. 정치 지도자가 국민의 쓴 소리를 듣지 않는 것도 문제이나, 국민이 쓴 소리 하는 정치인을 배척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국민들 스스로 특이한 역사 진행 경로에서 형성된 이상한 자기 모습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후손에게 정상적인 나라를 물려줄 수 없다.



전우용 역사학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22210235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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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 13:32

노벨상 주간이 지나갔다. 8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15일 경제학상까지 6개 분야 시상자가 발표됐다.

도쿄 특파원으로 바라보는 노벨상 주간은 한국에서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한국에선 그저 딴 세상 얘기처럼 지나쳐 버렸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오늘은 후보가 누구야” “오늘도 탈 수 있을까”라며 매일매일 기대감에 부푼다. 그들에겐 하루하루가 드라마이자 올림픽 결승전이다.

노벨상 주간 일본 한 민영 방송사의 취재 계획서를 우연히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오후 6시30분 생리의학상 발표가 예정됐던 8일, 이 방송사 사회부 기자들의 취재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뇌연구 분야 최고 권위자인 이화학연구소의 이토 마사오 교수가 수상할 경우에는 연구실에서 회견이 예정돼 있고, fMRI(기능성 자기공명장치)를 개발한 오가와 세이지 박사가 수상하면 가마쿠라시 자택의 현관 앞에서 취재가 가능하니 집 부근에서 대기해야 한다. 콜레스테롤 억제제를 개발한 엔도 아키라 교수가 수상하면 도쿄 농공대 본부 건물에서 오후 7시15분부터 기자회견이 있고,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수상 가능성도 있으니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생리의학상에만 네 명에 달하는 후보자들에게 취재기자와 카메라 기자가 모두 따라붙었다. 결국 축포는 교토에서 터졌고, iPS(유도만능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업적으로 야마나카 교수가 영예의 주인공이 됐다. 일본엔 19번째 노벨상 수상이자 과학상에서만 16번째였다. 일본 전체가 떠나갈 듯 환호했다.

물리학상이 발표된 9일도, 화학상이 발표된 10일도 마찬가지였다. 물리학상엔 중성미자 관측에 성공한 스즈키 아쓰토 교수 등 세 명의 일본인이 유력 후보에 포함됐다. 10일엔 산화 티타늄의 광촉매 반응을 연구한 후지시마 아키라 교수의 수상 가능성에 일본 열도가 숨을 죽였다.

11일 문학상이 기대됐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이 무산되면서 올해 일본인 수상자는 야마나카 교수 한 명으로 마무리됐다. 1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일본의 노벨상 축제도 그렇게 끝났다. “오늘은 일본인 수상자가 없었다”며 아쉬움을 전하는 언론의 보도를 보면 “오늘은 아쉽게 금메달이 나오지 않았다”는 한국의 올림픽 보도가 떠올랐다.

도쿄 특파원에게 “일본의 노벨상 비결을 취재하라”는 지시만큼 부담스러운 것도 별로 없다. 과거 수상자나 문부과학성 관료들을 취재해도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중요하다” “선배 수상자가 자극하고 후배들이 정진하는 연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과학자를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모범답안들만 돌아온다. 하긴 기본에 충실한 것 외에 노벨상으로 가는 지름길이 따로 있겠는가.

축구 한·일전 패배보다 더 배가 아파야 하는데 요즘엔 그런 분함을 느끼는 사람들조차 줄어드는 것 같아 더욱 걱정스럽다.




서승욱 도쿄특파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666581&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1. 13:30

"경제민주화가 뭐예요?” 아침 식탁에서 명랑세대의 대학생 딸이 묻는다. ‘글쎄…’ 잔잔한 바다에 삼각파도가 몰아치듯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10초, 간결명료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기성세대 아빠가 망설이는 동안 화제는 벌써 저만치 달아난다. 실패다. 줄임말과 단문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신세대 일원에게 위키피디아식 설명도 번거롭다. 중간고사 벼락치기에 정신없는 딸은 ‘경제민주화란 말이야’로 시작하는 아빠의 진지함을 뿌리치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대상을 지정했더라면 답은 5초 안에 나왔을 것이다. 재래시장, 골목상인들에겐 ‘대규모 유통기업의 확장을 막는 것’이 그것이다. 생계가 막막한 건설 잡역부들에겐 주택경기 활성화와 함께 쏟아지는 잡일이 경제민주화다. 농어민들은? MB정부가 과감하게 취소해 버린 비료, 농자재 보조금, 저리 영농자금을 재개하는 것, 빈 배로 귀항해도 호구지책은 걱정 안 해도 되고, 태풍에 망가진 양식장을 값싸게 보수하는 일, 그런 것들이다. 생업전선에 선 사람들은 당장이 더 급하다. 청년들에겐 부모 기대에 근접하는 좋은 일자리, 실직자는 재취업, 퇴직이 닥친 700만 베이비부머들에겐 가방 들고 나갈 수 있는 작은 사무실, 그게 경제민주화에 투영된 서민들의 바람이다. 뭐 그리 거창한 개념이 필요한 게 아니다. 양극화의 원인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지식인 담론은 당장의 생계 걱정과 별 관계가 없다.

그런데 대선 주자들과 캠프 브레인들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극약처방으로 수렴시켰다. 이른바 ‘재벌 때리기’다. 5년마다 한 차례씩 치도곤을 치렀던 재벌들이 어지간히 맷집을 길러왔건만 이번만큼은 사정이 좀 다르다. 국민들은 선명하게 알아차렸다. 100대 대기업의 총매출액이 100만 개 중소기업을 합한 것보다 더 크고,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4대 재벌의 비중이 50%를 넘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감 몰아주기, 납품가 후려치기, 기술·인재 빼가기 같은 착취성 관행이 중견기업을 괴롭혔으니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노무현 정권 때 재벌 군기잡기에 실패한 민주통합당이 독전대를 다시 규합해 보국안민의 깃발을 올린 이유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으리’-재벌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 구국의 선약임을 만방에 고한 것이다. 그 여파가 거셌던가, 경제계의 생리를 조금 맛본 안철수 후보가 우물쭈물 따라 나서더니 재벌개혁위원회, 계열분리명령제 같은 극단 처방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어떡하지?’- 지난 총선에서 경제민주화로 재미를 본 새누리당은 수위조절에 고민 중이다. 길 건너 식당에서 매일 특선메뉴를 쏟아내는 판에 새누리당 주방장 김종인은 새 요리를 개발하느라 정신이 오락가락할 것이다.

‘재벌 때리기’에 온 힘이 모아지는 마당에 재벌 모임인 전경련의 반응은 조금 생뚱맞다. ‘경제민주화 같은 개념은 없다’는 원론식 대응, ‘성장동력이 훼손되면 서민들만 피해 본다’는 식의 위협성 발언이 국민정서 달래기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경제학 공식으로 국민을 달래기는 이미 글렀다. 쓸데없이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기 전에 자발적 혁신 프로그램을 내놓는 적극적 동참 의지가 필요하다.

대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 정책 제1조에 써야 할 문구가 있다. ‘대기업-노조 담합구조를 폐기하는 것’이 그것이다. 양극화의 또 다른 주범은 숨어 있다. 경제민주화는 생산시장과 노동시장에서 독점세력을 규제하는 것이다. 생산시장의 독점 주역이 대기업임은 잘 알려져 있지만, 노동시장은 강성노조가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려져 있다. 특히 민주노총 중심의 독점이 하청기업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에 고착시켰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지적하는 사람은 없다. 그걸 규탄하는 정치인은 정치생명이 끝장날 위험에 처한다. 그러나 거두절미하고 5초 안에 말하면, 민주노총은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공의 적’이다.

 왜냐고? 민주노총 출범 이후 16년 동안 강성노조는 노동자들의 일사불란한 정치세력화를 위해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이다. 경쟁력 있는 사업장을 규합해 민노당을 중앙무대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도부 몇몇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대기업 노조원들이 잔업을 독점했고, 해고 불가, 임금 인상이란 온갖 특혜를 누리는 동안 하청 기업 비정규직은 삭풍이 몰아치는 들판으로 내몰렸다. 대량해고와 구조조정 때 그들은 노조원들의 희생양이 됐다. 재벌기업주와 결성한 단단한 담합구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800만 비정규직을 딛고 세웠던 민노당을 주사파에 헌납했다. 그리고 재벌 때리기로 일관되는 경제민주화 논쟁의 뒤편에서 결말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 공분을 낚아채기 위해. 담합구조가 버티는 한 양극화·비정규직 해소를 위한 어떤 정책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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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1. 1. 13:28

우리 논설위원실 여직원의 별명은 ‘애니팡 처녀’다. 간단히 30만 점을 넘긴다. 애니팡의 박용후 이사는 “우리 직원 30명의 점수도 고작 17만~20만 점”이라며 “하트를 교환할 빵빵한 인맥에다 콤보가 높을 때 폭탄을 뻥뻥 터뜨려야 30만 점이 된다”고 부러워했다. 40대 후반의 대학 동아리 여자 후배는 ID를 ‘애니팡 부인’으로 바꿨다. ‘마지막 게임의 추억’을 남기고자 손댄 애니팡에 꽂혀버린 것이다. 사방팔방에 하트를 구걸하느라 굽실거리고, 스마트폰 LCD 필름도 고급으로 바꾸었다. “보는 눈이 많아야 한다”는 충고에 남편까지 끌어들였지만 좀체 10만 점을 넘지 못한다.

애니팡이 국민 게임으로 우뚝 섰다. 간단한 게임방법과 귀여운 캐릭터로 불과 석 달 만에 가입자 2000만 명을 끌어 모았다. 동시 접속자 300만 명이 하루 평균 한 시간씩 머무는 전국구 놀이터가 됐다. 슬그머니 얌체족까지 생겨났다. 컴퓨터에 자동수행 프로그램을 몰래 설치해 마우스 조작 몇 번으로 100만 점 이상의 고득점을 간단히 올린다. 요즘 애니팡이 업그레이드를 할 때마다 얌체족 퇴치에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다.

애니팡은 1분 게임을 하고, 다시 하트가 형성될 때까지 8분을 기다려야 한다. 애니팡의 박 이사는 “게임 중독을 막고, 쉴 동안 하트 교환으로 우정을 북돋우자는 매우 인간적인 원칙”이라 자랑했다. 하지만 은근한 경쟁심리에다 ‘빨리빨리’의 DNA에는 8분 휴식이 너무 길다. 하트를 동냥하며 마냥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어렵다. 결국 100원을 내고 하트를 사고 만다. 이런 하트 판매가 하루 평균 2억원에서 지난주엔 3억5000만원까지 치솟았다. 한마디로 대박이다. 덩달아 자릿세를 떼는 카카오톡도 신이 났다. 카카오톡의 이수진 팀장은 “그동안 무료 문자가 돈 먹는 하마였는데 이제야 한숨을 돌린다”며 반색했다.

빛이 밝으면 그늘도 짙다. 반대편의 포털 사이트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포털 강자인 네이버는 재빨리 스마트폰 앱을 선보여 구글을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컴퓨터에 비해 스마트폰 화면이 너무 작아 돈 되는 검색광고를 우겨 넣기 어려운 게 문제다. 웹은 검색이 대세지만 스마트폰 세상은 커뮤니케이션이 중심이다. 인터넷 환경이 컴퓨터에서 모바일로 빠르게 옮겨가는 흐름은 포털엔 재앙이다. 돈줄인 검색광고가 언제 폭삭 주저앉을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눈여겨 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드래곤 플라이트’다. 게임의 집중도와 아이템 구매 빈도가 압도적이다. 가입자는 애니팡보다 적지만 하루 매출액이 5억원을 넘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1인 회사인 넥스트플로어의 김민규 대표가 혼자 이 게임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 SNS 게임은 대개 개발자가 매출액의 절반을 독차지하는 구조다. 지금의 추세가 1년간 지속된다면 김 대표는 혼자서 웬만한 중견기업 뺨치는 영업이익을 남기게 된다.

 그렇다고 이 세 업체의 성공 스토리가 세계를 휩쓸지는 의문이다. 이들이 틈새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문자메시지에 비싼 돈을 받는 통신회사들 때문이었다. 이에 비해 미국 통신업체들은 데이터 사용량을 중심으로 요금 체계를 바꿨다.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는 것도 위기의 하나다. 시가총액 10조원을 넘보던 SNS 게임 최강자 ‘징가’는 올 들어 주가가 70%나 폭락했다. 그 유명한 페이스북도 “모바일 전략에서 몇 가지 실수를 했다”며 고해성사를 했다.

 그럼에도 국내 신생 모바일 업체들의 도전은 거침이 없다. 카카오톡과 애니팡은 “문자메시지가 공짜라서, 또 게임만 하느라 찾는 게 아니라 이제는 SNS가 하나의 문화가 됐다”고 자신했다. 모바일 플랫폼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 비즈니스 기회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다. 요즘 대선 후보들의 일자리와 복지, 경제민주화 공약이 화려하다. 하지만 새롭게 떠오르는 모바일 분야에서 배웠으면 한다. 대기업보다 강한 중소기업과 좋은 일자리는 정부가 아니라, 참신한 아이디어와 끊임없는 도전정신이 만든다는 사실을….



이철호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666580&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1. 13:27

섬 두고 대립하는 中·日 패권싸움 청일전쟁과 비슷… 自衛 능력 없이
'중립'만 믿은 조선 험난한 국제정세 지금 대선 주자들 어떻게 헤쳐갈까


일본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직후 중국과 일본이 충돌 직전까지 갔을 때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우리 영토에서 반보(半步)도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차기 일본 총리로 유력한 아베 자민당 총재는 "1㎜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120년 전 한반도 운명을 결정짓고 동아시아를 뒤흔든 청일전쟁 전야(前夜)도 이랬을 것이다. 청일전쟁은 동학농민혁명 발발을 빌미로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했던 중국과 일본이 서로 상대방에게 한발씩 물러나라고 티격태격하다가 불붙은 전쟁이었다.

베이징대의 한 동아시아 전문가는 댜오위다오 분쟁을 "장기판의 졸(卒)과 같다"고 했다. 겉보기에는 작은 섬을 둘러싼 싸움 같지만 그 뒤에는 동아시아 정치라는 큰 판이 있다는 것이다. 청일전쟁도 바탕에는 한반도 지배를 둘러싼 중·일 간 패권싸움이 있었다.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는 것인가. 그때는 신흥(新興) 일본이 먼저 도발하고 중국이 몰리는 입장이더니 지금은 대국(大國)으로 떠오른 중국이 일본을 닦아세우는 모양새다.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뒤이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해 한국을 속국(屬國)으로 만들었다. 당시 '조선'이란 나라는 열강들이 한반도 운명을 놓고 벌인 장기판의 판세를 얼마나 읽고 있었던가.

독도 문제로 한·일 관계가 한창 험악했던 달포 전 '세계 속 한국근대사'라는 책이 서점에 나왔다. 여기에 러일전쟁 무렵 방한한 영국 기자 맥켄지와 조선 조정의 실력자인 탁지부 대신 이용익이 나누는 대화가 나온다. 맥켄지가 "조선이 멸망하지 않으려면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자 이용익이 대꾸한다. "미국·유럽 등과 조약을 맺고 있고 그들이 독립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맥켄지가 다시 말한다. "아니 모르시오? 힘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조약은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당신들이 그 조약들을 지키도록 하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오." 그런데도 이용익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중립이라는 걸 천명했고, 우리의 중립을 존중하라고 당부했소."

러일전쟁 때 일본 전쟁 비용의 60%는 영국의 로스차일드, 미국의 JP모간 같은 국제 금융자본이 일본이 발행한 전쟁 국채를 매입해서 댄 것이었다. 이 나라들이 전쟁에서 누구 편을 들지는 뻔한 일이었다. 열강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판을 짜고 있는데 조선의 위정자들만 이를 모르고 '조약' '중립' 운운했던 것이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 전사자는 8400명, 청군(淸軍) 전사자는 3만5000명이었다. 그런데 조선군 병력은 모두 합해 400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왕비가 궁 안에서 외국군에 시해당하자 임금이 살기 위해 이곳저곳 외국 공사관을 기웃거렸던 게 당시 조선이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굳어갈 무렵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무장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적(敵)을 단 한 대라도 때릴 능력이 없는 나라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를 아무런 이익 없이 도울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경제력이나 국가적 위상이 120년 전 조선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동아시아 판세도 당시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래도 교과서에 안 나오는 100여년 전 역사 이야기가 자꾸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대선 주자들에게서 중국의 굴기로 출렁대는 동아시아의 험난한 파도 속에서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고 갈지에 대해 우선 듣고 싶다.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우리의 과거와 오늘을 세계사의 큰 틀에서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22/20121022027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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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 13:26

성공 지향적인 급한 성격은 심장 관상동맥 질환 많아
억울한 일 잘 참는 성향이면 암 발생 확률 높아질 위험
제 성질이 자기 질병 유발… 병 키우며 사는지 돌아봐야


한국 드라마에서 공분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단골 장면이 있다. 모진 시어머니의 고된 시집 생활을 견디는 착한 며느리, 남편의 바람까지 참아내는 순한 아내라는 설정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런 주인공이 암(癌)에 걸려 세상을 마치는 대목까지 나오면, 시청자들의 분개와 안타까움은 극에 달한다. 뻔한 스토리이지만 매번 짠하다. 그런데 이런 도식은 나름대로 의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당하고도 참는 성격은 암 발생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성격과 질병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학 연구는 활발히 이뤄져 왔다. 미국의 저명한 심장 전문의 하워드 프리드먼은 어느 날 자신의 환자 대기실 소파 천이 다른 과의 대기실보다 유독 빨리 닳고 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환자들의 행태를 유심히 살펴보니, 심장병 환자들은 느긋하게 소파에 깊숙이 기대어 앉지 않았다. 다들 소파 끝에 걸터앉아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새였다. 양손은 팔걸이를 움켜쥐고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듯한 태세였다. 좌불안석(坐不安席)의 모습이었다.

그는 심근경색을 일으키는 관상동맥 질환자들의 성격을 분석해보니, 많은 사람이 타입 A였다는 결과를 내놨다. 사람의 성격은 크게 A·B·C의 3가지 타입으로 나눈다. A형은 소유욕이 강하고, 성공 지향적이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초조해한다. 매사에 의심과 불만이 많다. 적개심을 잘 표출하고 참을성이 적다. 이들은 모든 일을 경쟁적으로 보고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으면 불안하다. 항상 데드라인(dead line)에 자신을 몰아넣는다. 하지만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에너지가 왕성해서 많은 성취를 이룬다. 목표가 뚜렷하고 승리욕이 강한 탓이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 중에는 타입 A가 많다.

이들에게 심장병이 많은 이유는 성격 자체가 혈압을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분노와 적개심을 느낄 때,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 쏟아져나와 혈압을 올리고 혈관 안쪽 벽을 상처 낸다. 그것이 일상처럼 반복되고 거기에 비만·동맥경화·흡연 등 심혈관 질환 위험요소까지 겹치면 증폭 효과로 심장병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이는 여러 나라 연구에서 일관되게 나온다. '호통 회장님'이 "아이고! 혈압이야" 하며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장면은 나름 일리 있는 설정이다. 이들에게는 하루 세 번 식후(食後) 30분, 법정 스님의 '무소유' 읽기가 심장약이다.

그와 정반대 성격이 타입 C다. 항상 잘 참는 순응형이다. 남에게 착하다는 말을 들으려 하고,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자주 의식한다. 우울감이 바탕에 깔렸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담아둔다. 사회적으로는 공손하고 정중하다. 우리나라에 많은 유형이다. 점쟁이가 손님에게 다짜고짜 "당신, 내성적인 성격이구먼!"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어떻게 알았느냐"고 좋아한단다.

타입 C는 암 발생 위험이 큰 것으로 나온다.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불만 표출이 적고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아무 소리 않고 잘 견디는 타입 C에서 암 발생이 많았다. 피부암 두께도 더 두꺼웠다. 또 암 치료를 해도 재발이 많았다. 지나치게 억제된 감정이 면역 기능을 떨어뜨렸다는 분석이다. 우리 몸에서는 하루에도 몇 개씩 암세포가 생기지만, 면역세포가 순찰기능을 하며 암세포를 잡아먹기에 암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적 스트레스의 축적으로 면역세포의 활성이 떨어지면 암 발생 위험이 커진다. 이들에게는 감정 표출이 항암효과를 갖는다.

타입 B는 천하태평 유형이다. 항상 느긋하고 급한 게 없다. 남의 일보다는 자기 것에 몰두한다. 성취보다는 취미에 관심이 많다. 경쟁에서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간 개념도 적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성격이다. 이런 사람들이 정치하면 나라가 망한다. 하지만 이들은 창의적이고, 사색을 즐긴다. 대개 시인·음악가·화가 등 예술에 종사한다. 급한 게 없는 이들이 심장병에 걸릴 위험은 타입 A보다 4~5배 낮다. 그러나 자신의 기분에 너무 관대한 탓일까. 타입 B에게는 조증(躁症)과 우울증이 교대로 나타나는 조울증이 많다.

우리는 왜 아플까? 아플 짓을 했으니까 아픈 것은 아닐까. 많은 질병이 삶의 파생물이다. 정신은 몸을 바꾸고, 몸의 병은 마음을 바꾼다. 요즘 힐링 서적들이 베스트셀러를 독차지한다. 그만큼 우리가 치열하게 갈등하고 서로 부딪치는 '질병 생산 시대'를 살고 있다는 방증일 게다. 자신이 질병 발생의 핑계거리를 만들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 나는 100% 타입 B이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의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22/20121022029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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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 13:25

최근 중국에선 '노는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5월 1일 노동절 연휴를 일주일로 늘릴 것인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다. 중국은 설(음력 1월 1일)과 국경절(양력 10월 1일)뿐 아니라 노동절에도 일주일 연휴를 즐겼다. 하지만 2007년말 법정공휴일을 조정하며 노동절을 하루만 쉬기로 한 뒤 노동절 연휴가 사라졌다. 그런데 이를 다시 부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 투표에선 이미 90%에 가까운 이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주요 언론들도 이 문제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5년 만에 노동절 일주일 연휴의 부활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최근 8일간의 추석ㆍ국경절 연휴가 낳은 긍정적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9월 30일부터 10월 7일까지 사상 최장 연휴기간에 13억명이 넘는 중국인은 내수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낙타들의 과로사다. 낙타 등에 올라 사막을 건너는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간쑤(甘肅)성 둔황(敦惶)의 밍사산(鳴沙山) 웨야취안(月牙泉)에선 낙타들이 연휴 기간 매일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시달린 탓에 그만 이틀 연속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평소에는 낙타가 관광객을 기다렸는데 연휴 때에는 사람들이 낙타를 타려고 대기해야 했다. 오악(五岳) 중 하나인 산시(陝西)성의 화산(華山)에선 등산객 수만명이 정상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 케이블카가 고장 났고 등산로도 깎아지를 듯이 험해 오도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연휴 기간 중국의 관광 관련 총수입은 무려 1,800억위안(약 31조8,000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상시화로 수출이 꺾이며 내수 활성화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중국은 연휴의 경제학에 크게 고무돼있다. 이번 연휴기간 고속도로에서 통행료를 받지 않은 것도 이를 염두에 둔 조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 변화는 그 동안 휴식보단 일을 하는데 더 비중을 두었던 중국인들이 이젠 놀고 싶어하기 시작했다는데 있다. 이번 연휴 기간 중국 주요 관광지가 아수라장이 된 것은 현실이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 크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원을 초과한 인파가 몰리며 황금연휴는 사실상 고생연휴가 돼버렸다. 주요 관광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2~4시간 줄을 서는 것이 예사였다. 주목할 것은 이런 살인적인 불편도 13억여명의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누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 연휴에 나타난 중국 내수의 잠재력과 이젠 놀고자 하는 중국인의 욕망은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국내 관광에서 생고생을 한 중국인이 점차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연휴 기간 중국인이 전세계를 돌며 명품을 사들이는데 쓴 돈이 무려 480억위안(약 8조5,300억원)에 이른다는 게 세계명품협회의 설명이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도 10만명, 이들이 쓴 돈은 2억달러(약 2,2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가 준비만 더 잘한다면 이 숫자는 5배 아니 10배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釣魚島ㆍ일본명 센카쿠) 분쟁으로 한국은 가만히 있어도 중국 관광객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현장에서 느끼는 중국인의 반일 감정은 상상 이상이다. 중국의 한 저가 항공사가 반일 감정으로 일본행 비행기표가 안 팔리자 1엔(약 14원)짜리 표를 내놨다가 '나라를 팔아먹는 상술'이란 비판에 결국 사과까지 했을 정도이다. 한 중국인 친구는 만날 때마다 "반일 감정으로 이제 한국이 돈방석에 앉을 것"이라고 부러워한다. 

시장과 기회가 한꺼번에 우리에게 왔다. 수요는 큰데 공급은 없다. 논란중인 노동절 연휴까지 부활하면 중국인은 매년 세 차례나 대거 한국으로 몰려들 것이다. 과로사한 낙타의 운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212102458490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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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 13:18

‘반값’은 달콤하다. 여기 착한 빵집 주인이 있다. 그가 어느 날 빵값을 절반으로 낮췄다. 배고파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결단이다. 소비자들은 환호했다. 빵을 살 수 없었던 사람도 빵을 쥘 수 있게 됐다. 기존 고객들은 구입량을 늘렸다. 빵집 주인은 빵이 더 팔린다며 웃었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은 반값의 황홀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런 매력,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안 사도 될 빵을 사는 소비자가 생겼다. 두 개면 충분한데 값이 싸다는 유혹에 넘어가 빵을 더 샀다. 다 먹지 못한다. 남는 건 쓰레기통 신세다. 파는 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치 않다. 빵이 더 팔리긴 했지만 장사는 밑져서다. 이 상태가 지속하면 파산하게 된다. 결국 착한 결단은 오래갈 수 없다.

이제 빵을 대학 등록금으로 바꿔 보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치솟는 등록금의 문제를 모르는 바 아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은 좌절한다. 설령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 등록금 걱정 않고 공부에 매진하는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과 출발선부터 다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는 착한 정책을 편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부작용이 속출할 거다. 정부가 사립대에 등록금을 낮추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대신 나랏돈을 써서 부족분을 메워줘야 한다. 여기서 불공평이 생긴다. 대학 문을 연 학생들만 세금 혜택을 받는다. 진학을 포기한 친구들의 몫은 없다. 이건 작은 불공평을 해소한다면서 더 큰 불공평을 양산하는 꼴이다. 이러니 너도 나도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나선다. 올해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71.3%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어 ‘88만원 세대’로 전락하는 학생이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는 ‘반값 등록금’ 공약을 똑같이 내세웠다. 이런 포퓰리즘 공약, 언짢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한다. 반값 등록금을 위해 쓰려는 국민의 세금을 ‘청년 직업훈련비’에 사용하라. 제빵 명인이나 용접 장인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청년도 많다. 이들이 돈 걱정 안 하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국민 세금을 제대로, 그리고 공평하게 쓰는 방식이다.


화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주인공은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해 온갖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제빵 고수로 우뚝 섰다. 만약 청년들이 체계적인 직업훈련을 받는다면 굳이 시련과 역경 겪지 않아도 탁월한 김탁구로 성장할 것이다. 나는 납세자가 낸 세금을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공짜 직업훈련비’에 쓰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다. 대학생의 등록금 부담은 장학금 같은 교육 인프라를 확대해 덜어주는 게 맞다.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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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2. 12. 26. 12:11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사건을 만나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나쁜 사건이라고 나쁜 결과를 낳는 건 아닙니다. 예기치 못한 만남이 교착된 삶을 돌파하고, 짧은 만남에서 말 한마디가 좋은 운명으로 이끌곤 합니다.

압달라 다르(64·아래 인물 사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주 서울을 방문했는데 『가장 위대한 도전-생명을 구하는 과학, 연구소에서 마을로(The grandest challenge: taking life-saving science from lab to village)』의 저자입니다. 다르 박사는 아랍인의 피가 흐르는 탄자니아 출신의 외과의사로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간다·영국에서 공부한 콩팥이식 수술의 권위자였는데 어느 날 지구 인구의 90%를 위협하는, 고대(古代) 질병들과 싸우는 전사로 삶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압달라 다르

 

 

다르 박사의 인생전환은 49세 때 있었던 사건 때문입니다. 선진국 의과대학 교수로 야심만만한 삶을 영위하던 중 탄자니아 시골 늪지 마을로 시집갔던 누나가 말라리아 모기에 물려 나흘 만에 죽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동부 아프리카의 후진적인 의료환경에서 말라리아 사망자는 한 해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다르는 “누나가 런던이나 뉴욕 혹은 토론토에 살았다면 70대 후반이나 80대까지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세계 인구의 90%가 사는 빈국 중 하나인 탄자니아 같은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50대에 죽은 것이다”라는 성찰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콩팥수술 의사를 청산하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들어가 빈국의 질병퇴치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문제의식이 선명했기 때문일까요. 1990년대 말부터 개발이 본격화된 생명과학·유전공학을 고대의 질병과 싸우는 무기로 쓰자는, 당시로서는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돈이 안 되는 일 아닌가? 상업적인 생명과학 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WHO 같은 공중보건의료계조차 ‘모기한테 무슨 유전공학이냐’는 부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삶의 교착은 예기치 못한 만남에서 풀립니다. 2002년 네이처지(誌)에 정성스럽게 쓴 그의 논문을 보고 빌게이츠-멀린다 재단이 찾아옵니다.

재단은 다르에게 5000억원이 투입되는 ‘생명과학혁명을 이용한 질병퇴치 사업’의 프로그램을 짜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르의 꿈은 빌 게이츠 부부의 조건 없는 돈과 만나면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세계의 모기 세력은 급속히 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모기의 식욕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조작해 말라리아균에 대한 식욕을 감퇴시켜 보자’와 같은 기발한 상상력을 풍부한 연구자금을 사용해 현실화한 겁니다. 제가 다르 박사에게 빌 게이츠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는 “빌 게이츠는 엔지니어식으로 사고한다. 문제풀이 방식으로 재단의 목적을 이뤄 나간다. 스티브 잡스는 비즈니스에서 빌 게이츠와 경쟁관계였지만 인간의 선행이란 측면에서 게이츠만 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라고 말하더군요. <10월 17일 인터뷰>

다르 박사에겐 또 하나의 위대한 만남이 있었다고 합니다. 청소년 시절 국비장학금을 건네주던 탄자니아 교육부 장관이 예언처럼 자신을 이끌어갔다고 합니다.

다르는 고등학교 졸업 뒤 의과대학이 있는 우간다로 유학가게 됐는데 ‘장학금 받고 귀국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걱정했다고 합니다. 장관은 웃으면서 “걱정 마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봐라. 설사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너는 탄자니아를 위해 살아갈 것이다”라고 답했다는군요. 다르 교수는 이 말이 평생 마음의 나침반이 되었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의 나침반은 남쪽 나라 탄자니아를 향해 있었다고 합니다. 인재에 대한 투자는 이처럼 믿고 맡겨야 되는 것 아닐까요.

수십 년 고국에 가지 못한 안타까움은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으로 최근 몇 년 동안 1년에 다섯 번도 넘게 탄자니아를 찾는 걸로 해소됐다고 합니다. 다르 박사가 서울에 온 건 선진국 한국이 세계의 빈국 마을에 이전할 생명과학기술, 혹은 일반과학기술이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또 다른 전환적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전영기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654734&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2:09

모든 면에서 뛰어난 ‘철인’이 이끄는 전제정치가 더 뛰어난가, 턱도 없는 사람이 당선될 수도 있지만 민의를 모아 이끄는 민주정치가 더 뛰어난가.

 

일본 공상과학(SF)소설의 걸작 <은하영웅전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머나먼 미래, 다른 우주로 거주공간을 옮긴 인류는 다시 전제정치 시대로 접어든다. 하지만 일부 민주주의자들은 탈출해 공화정 동맹국가를 세운다. 시간이 흘러 두 체제의 부작용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시기에 각 체제에는 한 명씩의 걸출한 군인이 등장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처지는 확연하게 다르다. 제국군의 라인하르트는 ‘황제 후궁의 동생’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마음껏 전략·전술을 펼칠 수 있지만, 동맹군의 양웬리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의 견제 속에 늘 “군인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며 전투에는 이기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하는 길을 걷다가 결국 비명에 간다.

 

어찌보면 유치할 수도 있는 공상과학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은 다음달 초 동시에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뽑는 두 개의 세계 최강대국(G2), 미국과 중국의 상황을 보면서 이 소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1월8일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를 여는 중국의 차기 지도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시진핑 부주석으로 확정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공산당 내 3대 파벌 간 조정의 결과로 차세대 중국 지도부는 이미 인선이 완료됐고 별다른 혼란 없이 현재의 정책기조를 이어갈 것이다.

 

중국은 2008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3000달러를 넘어섰다. 대부분의 독재국가에서 민주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기준선이다. 한국 역시 1987년 이 고개를 넘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부패 문제에 대한 공박은 있을지언정,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학계에서는 이를 공산당이 당내 민주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체제를 개량해온 덕분으로 분석한다. 중국 최고지도층은 장쩌민(상하이방), 후진타오(공청단), 시진핑(태자당)을 거치며 비록 당내에서지만 일종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왔다. 일종의 ‘공산당 철인정치’로 진화한 셈이다. 곧바로 민주정치로 체제를 변환한 러시아가 사실상 블라디미르 푸틴 독재 상태로 되돌아가 혼란이 계속되는 것과 비교하면 이런 차이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11월6일 대선을 치르는 미국의 경우는 판세가 완전히 안갯속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대 밋 롬니 공화당 후보 중 누가 미국의 조타수가 될지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큰 변화는 없겠지만 롬니가 당선된다면 미국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짐작이 쉽지 않다. 롬니가 텔레비전 토론에서의 ‘한방’ 덕분에 미국 대통령으로 결국 당선되는 것 또한 민의의 일부겠지만 최선의 결과라고 하기는 힘들 듯하다. 공화당은 최근 성폭행을 포함한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고 동성 간의 결혼도 인정하지 않는 강령을 통과시켰다. ‘다양성’을 말살하려고 하는 공화당의 집권이 ‘역사의 진전’일 수는 없다.

 

사실 처음에 한 질문은 우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민주정치가 더 뛰어난 체제다. 하지만 그 전제조건은 ‘깨어 있는 시민’이다. <은하영웅전설>에서 양웬리는 “민중을 해칠 수 있는 권리는 민중 자신만이 가진다”며 민주정치를 옹호하면서도 “정치는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보복하는 법”이라며 그 부정적인 면을 숨기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선도 이제 채 두 달이 남지 않았다.

 

 

 

이형섭 국제부 기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67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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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2:08

아우슈비츠수용소는 2차 대전 당시 650만 유대인을 한줌의 연기로 날린 상징적 건물이다. 폴란드 오스비에침 마을소재의 관광지로 아우슈비츠는 그 마을의 영어식 발음. 집채더미처럼 쌓인 안경테, 곳간마다 그득한 유대여인들의 머리다발, 검디검은 독가스실의 콘크리트 벽은 수용소 '관광'을 마친지 20수년이 넘는 이 시점까지도 악몽으로 되살아나는 장면들이다.

그림에 그토록 소질을 보여, 비엔나 숲 속을 곧잘 스케치하던 눈 큰 소년 아돌프 히틀러를 무엇이 그토록 바꿔 놓았단 말인가. 히틀러의 생모가 남편과 사별 후 유대인 간부(姦夫)를 갖게 됐고, 따라서 매일 밤낮으로 어머니와 뒹구는 유대인 사내한테 히틀러가 독을 품던 시기를 바로 이때부터로 기산(起算)하는 분석도 있다. 히틀러의 생모 클라라가 남편 알로이스 히틀러와 일찍 사별한 것은 틀림없다. 아들 히틀러의 나이 열네 살 때다.

클라라는 남편과 22세나 나이 차가 있는데다, 실은 남편의 사촌여동생이었다. 그녀가 사촌 오빠와 남녀관계를 맺은 것은 오빠의 둘째 처가 병이 들어 죽기 직전으로, 둘 관계는 그런 의미에서 불륜관계였다. 아돌프는 그런 범죄가운데 잉태한 아이였다. 아돌프의 청소년기는 이런 반유대정서 속에서 자아를 굳혀간다. 히틀러는 나중에 쓴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유대인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수 천 수만의 순수 독일 피를 이어 받은 소녀들이 이 역겨운 안짱다리 유대사생아들의 배 밑에 깔려있는 악몽에 시달렸다."

이런 표현은 당시 유행하던 반 유대정서와 히틀러 개인의 성적강박관념의 합작으로 볼 수 있다.

아우슈비츠를 돌아보고 10여년 지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관람하면서 나는 거듭 봤다. 저벅대던 나치대원들의 군화소리, 군견들의 울부짖음 속에 섬뜩하게 다가서는 미래의 재앙과 그 그림자를 분명히 본 것이다. 신통력이나 영험(靈驗)없이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작품, 그런 의미에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아우슈비츠를 먼저 '관광'후 관람해야 진가를 느낄 영화였다고 영화평을 쓰고 싶다.

그리고 가장 경악했던 일은, 그런 목불인견의 만행이 자행되는 와중에도 수용소 한켠의 별채에서 나치장교들은(영화에서처럼) 관현악을 즐겼다는 점이다. 죄악과 문명의 공존…그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웠던 것이다.

죄악은 평범이나 정상과도 공존한다. 그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에힐 다이누라는 생존자의 이야기다. 1961년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했던 부총통 아이히만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다이누도 증인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재판장에서 다이누가 흐느껴 울다가 실신하고 만다. 사람들은 그가 수용소에서 체험한 죽음의 공포 때문이려니 짐작했으나 며칠 후 다이누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이유는 너무 놀라운 것이었다.

"저는 아이히만이 악마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그가 너무 평범한 한 남자로 음악 좋아하고, 손자 손녀의 재롱을 즐기고, 저처럼 황혼의 강가 산책을 좋아하고…. 이런 평범한 인간 속에 650만 명의 생명을 죽이는 악마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겁니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을 생각할 때 너무 두렵고 절망적인 마음이 들어 쓰러진 것입니다."

범죄는 의술과도 공존한다. "나는 온화하고 자비롭다." 지난 16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유고전범재판정에 선 피고 라도반 카라지치 전 스르프스카 공화국 대통령(67)의 자기변호다. 그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8,000명의 무슬림 주민을 죽인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의 주범이다.

"전쟁을 피하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다"는 이 전직 정신과 의사의 시술(施術)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범죄의 이 가공(可恐)할 양면성이여…. 나는 그게 두려운 것이다.

 

 

김승웅 언론인·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192101521157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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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2:07

2004년 9월 미국 정부 초청으로 워싱턴D.C.에서 미국 언론의 저명한 기자들을 만났을 때였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들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냐'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한국의 인터넷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의 눈에는 우리나라 휴대폰 시장의 확장 속도가 엄청나다는 것이 특이하게 비춰진 모양이었다. 또 땅 덩어리가 크다 보니 전화선을 통해 연결하던 미국의 느린 인터넷과는 달리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려있어 '클릭과 동시에 화면이 뜨는' 수준의 한국 빠른 인터넷 환경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그 당시는 '애니콜'로 대변되던 삼성전자 휴대폰은 물론, LG전자와 팬택의 휴대폰이 국내 시장에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을 때였다. 너무도 빠른 휴대폰 시장의 변화로 멀쩡한 휴대폰까지 버리고 새로운 기능이 장착된 휴대폰을 구입하던 시절이었다. 당시만해도 초등학생은 다소 과장이라 할지라도 중학생 정도면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한국의 초등학생도 상당수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당시 미국의 경우 휴대폰은 집안의 가장 정도만 가지고 있을 때였다. 미국의 눈으로 볼 때는 우리가 휴대폰에 대한 일종의 실험실이었던 것이다. 그 삼성전자가 지금은 애플과 세계 휴대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실험실은 정치분야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 요인이 독특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보수언론의 힘을 깨는 인터넷언론의 대두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의 정치와 선거를 주도했던 보수언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언론의 부상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해댔다. 오연호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 신문 '가디언'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을 세계 최초의 '넷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인터넷언론은 수단에 불과했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같은 자발적 참여그룹의 작전 승리였을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 인터넷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수만, 수십만명의 참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선거역사상 혁명적인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는 안철수의 위험한 실험이 시작됐다. 이는 정당정치에 대한 저항적인 실험이다. 이는 어쩌면 세계 역사상 최초의 실험일 수 있다. '과연 정당이 없는 무소속 대통령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정당정치에 익숙한 국민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데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세력조차도 의문을 갖는다. '그 친구가 괜찮은 것 같은데, 당이 없이 어떻게 대통령을 할 수 있겠나'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가 민주당과의 단일화 조건으로 내세운 정치개혁 요소를 보면 무소속출마에 대해 다소 납득이 간다. 국회가 특권을 내려놓고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또 대통령이 하겠다면 여당은 거수기가 되고, 야당은 문 걸어 잠그는 관행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의 목표는 정치권력의 획득이다. 따라서 정당은 정치개혁이나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조직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정당은 일반적(국민적) 이익을 증진시켜야 하지만, 우리 정당의 역사를 볼 때 그들은 자신이나 당의 이익에 너무 충실했다. 더욱이 대부분의 국민이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극히 일부만 당원이고 정당 혐오증을 가진 국민들이 대다수다. 국회에서 최루탄이나 터트리고, 확실하게 통과되는 법안은 국회의원 세비 올리는 것밖에 없다. 따라서 정당의 이익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약이 국민 대다수의 주장을 담았다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당정치의 패러다임이 계속 유효할 것 같지도 않다. 당이 민의를 담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때 대중이 당을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곳이 안철수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19210735243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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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2:06

“나는 불을 끄고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어머니의 말씀에 석봉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페이스북(페북)을 연다.

“울 엄마 지금 떡 써는 중 ㅋ(웃음 표시) 내일 아침 메뉴는 떡국! 근데 아직 과제 안 한 사람 있니. 손(들어)?”

이렇게 글을 올리니 금세 댓글이 달렸다. 석봉은 더는 글씨를 쓰지 않는다. 대신 글을 올린다.

이처럼 요즘은 글을 ‘쓴다’는 술어 대신 글을 ‘올린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북 이용자 수가 10억 명을 돌파한 덕분이다.

“페북 안 한다고? 좀 그렇지 않아?” 얼마 전만 해도 친구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에게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SNS를 하며 서로의 일상을 엿본다. 친한 친구든 이름만 아는 사이든 일단 ‘페친’(페북 친구)만 되면 우리는 관음의 권리에 암묵적인 동의를 한 셈이니까.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내 앞으로 오기로 한 택배가 있는 것처럼 페북에서 친구의 소식을 기다린다.

그런데 여기 글들을 보며 난 친구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페북을 한다고? 여기 글들, 좀 그렇지 않아?” 이 공간에서 우리는 행복한 일상만을 이야기한다. 그렇다 보니 페북을 자주 하면 수명이 단축된다는 농담이 진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잘 꾸민 셀카,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사진, 미국으로 교환학생 간 친구의 소식은 “어때? 나 잘살고 있지?”라고 우리에게 묻는다. 신나고 재미있는 그들의 ‘페북 스타일’에 우리는 습관적으로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한숨 섞인 웃음이다.

나는 행복을 과시하는 ‘페북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글들엔 우리만의 스타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여기에 올리며 행복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보여주기식 ‘페북 스타일’은 소통의 정답이 아니다. 내 일상이 아닌 생각을 페북에서도 말해야 한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페북에서 글쓰기 버튼을 누르면 나오는 메시지다. 그런데 많은 이들의 글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문구는 ‘얼마나 재미있게 살고 계신가요’다. 우리가 오늘 누구와 어디에서 무엇을 먹었나 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생각이다. 친구와 어디서 어떤 영화를 봤는지를 ‘기념’하기보다 그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는 그 ‘기록’이 더 중요하다.

남들의 행복한 글에 주눅 들고 침묵할 필요 역시 없다. 페북의 가이드라인에 쓰여 있는 대로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솔직히 말하면 된다. 어렸을 때 일기를 쓰면서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처럼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서 벗어나자. 대신 눈을 감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자. 어쩌면 ‘페친’들 역시 나의 진짜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솔직 담백한 글이라면 우리 모두 진심으로 ‘좋아요’를 외칠 테니까.



윤주영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3학년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645867&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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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2:05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정치는 그 사회의 거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이 정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 국회의원들이나 정치인들의 면면을 봐도 대부분 우리 사회의 엘리트 출신들이다. 왜 그들이 그 정도의 정치밖에 못하겠는가? 어찌 오늘날의 정치가 그들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재벌 개혁을 말하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날 국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재벌의 문제점들은 그들 혼자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국가 사회가 같이 만들어 온 것이다. 그들이 법 위에 군림했다면 우리의 검찰과 사법부도 잘못된 것이고, 각종 특혜를 누리면서 불공정행위가 묵과되어 왔다면 정책과 제도를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 우리의 정부도 잘못된 것이다. 또 그들에 유리하도록 경쟁의 법칙과 제도가 정해졌다면 이는 정치와 행정뿐 아니라 그들 편에 서서 그런 여론을 조성해온 언론과 학계도 잘못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총체적 접근 없이 어느 한 부문을 바꾸겠다고 아무리 외쳐 봐야 실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과성으로 끝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다. 사회는 유기체와 같은 것이다. 한 부문이 바뀌려면 그와 연관된 부문이 모두 함께 바뀌어 줘야 한다.

우리는 정치제도, 행정조직, 금융감독 등에서 선진국의 좋은 제도들을 도입했으나 이들의 운영방식은 아직 개발연대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금융위나 공정위의 수장은 임기가 있다. 과거 선진국들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이들 기관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꼭 필요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며 우리도 이를 따라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감독기관 수장의 평균 재직기간은 14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주요20개국(G20) 국가들의 평균은 8년을 넘고 있다. 경제장관의 재직기간도 마찬가지다. 1, 2년이 멀다 하고 바뀌고 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재벌의, 시장의 변화를 추진해 낼 수 있겠는가? 심지어 가장 장기적 시각과 접근을 요하는 통일부·교육부 장관도 한 정권 내에서만 수 명씩 바뀌고 있다. 법조계에는 여전히 전관예우가 남아 있다. 전관예우가 있다는 것은 바로 법의 집행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들이 현직을 떠나자마자 가는 곳이 로펌들이고, 이 로펌들의 주요 고객은 모두 대기업들이다. 감독기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금융기관 감사의 절반 이상이 금감원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피감기관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는 아직도 깊숙이 남아 있는 유착과 담합구조가 진정한 경쟁 사회가 되는 것을, 국민들에게 공정한 경쟁 기회를 주는 것을 막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관행, 국가운영방식이 지속되면서 우리 사회의 기득권 계층이 공고해지고, 계층 간 이동성이 줄어들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우리 사회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다.

해방 후 대한민국 역사는 성공의 역사다. 과거 어떤 나라도 정치·경제 면에서 이렇게 빨리 국가의 발전을 이룬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성공이 있을 수 있었던 큰 요인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역동성(dynamism)이었다.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우리 사회 기득권의 담합과 유착구조로 계급이 고착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줄여 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지속발전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하며, 기회가 공정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진정한 경쟁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연줄이나 관계가 아닌, 실력으로 경쟁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이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진정한 경쟁사회가 아님을 보여준다.

노동인구가 줄어들고, 저축률이 떨어짐에 따라 향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유지를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필수다. 이는 각자의 직업에서의 전문성, 직장에서 일하고 경쟁하는 방식, 사회적 합리성이 제고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다. 매 주말이면 예식장에, 주중에는 각종 회식과 장례식장을 찾아 연줄을 다져야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의 인적 자산에 투자할 시간을 선진국 전문직 종사자만큼 가질 수 있겠는가?

이러한 변화들을 위한 국민적 성찰과 움직임이 일어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진정한 선진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없는 사회는 죽어 가는 사회다.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우리 국가·사회가 운영되는 소프트웨어의 전반적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지금 한국이 당면한 중요한 시대적 과제다.

경제 민주화? 우리 사회 전반적 개혁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조윤제 서강대교수·경제학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645848&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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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2:04

몇 년 전 시작된 우리 젊은이들의 K팝 한류(韓流)와 드라마 한류 등 문화 한류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반만년 역사에서 우리 문화가 이렇게 전 세계에 퍼져 나간 적은 없었다. 한국의 국격(國格)을 충분히 높이는 쾌거이다.

필자는 여기서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세계를 놀라게 할 한류 바람을 몰고 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학기술은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므로 이것이 가능하면 우리나라가 세계를 주도할 수 있고, 그 효과는 국가적 위상에 엄청난 기여를 할 것이다. 문화 한류의 성공 요인은 창의적이고 우수한 콘텐츠의 개발, 이를 잘 포장하여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 세계로 전달하는 문화기술과 인프라 기술이 접목됐기 때문이다. 즉 문화 한류의 배경에는 과학기술의 역할도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 한류의 가능성을 생각할 때 우선 우리 기업들의 탁월한 제품기술을 꼽을 수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우수한 기술력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한국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의 제품 기술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계적 기업인 애플과 당당히 겨루고 있는 삼성 휴대폰,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선박·TV·에어컨·철강·자동차 등은 세계인을 놀라게 하고 있다. 또 최근 우리의 의과학 기술이 놀라운 성장을 하여 우리나라로 수술받으러 오는 외국인이 많다. 과학기술 한류의 초기 상황이 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 한류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이미지와 특성이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이 점에서 적당한 것은 '따뜻한' 과학기술 한류이다. 여기서 '따뜻한'의 의미는 기술혁신을 통해 사회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특히 고령인구와 장애인을 보듬는 복지기술의 발전, 환자를 저렴하고 빠르게 치료하는 의료기술의 발전, 개발도상국을 위한 적합기술을 개발하여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이 과학기술 한류의 근본정신이 되어야 한다. 개도국을 도울 때도 완제품이 아니라 완제품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어 더불어 사는 이미지를 주어야 한다.

개도국을 돕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은 과학기술 한류 파급에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ODA 사업에 우리의 과학기술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는 사업을 권장하고, 과학기술 분야의 경력자들을 활용하면 어렵지 않게 과학기술 한류의 저변을 확장할 수 있다.

과학기술 한류는 또 우리의 IT 강점을 살려서, IT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한 융합과학기술 분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간과 사물 공간이 지능을 가지고 상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과학기술의 발전, 고품질 가전제품이나 휴대폰의 개발, 친(親)환경 생태계 보전 개념이 도입된 U-에코 시티의 건설, 친환경 농업기술의 개발 등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기술 한류를 만들 수 있다.

과학기술 한류를 탄생시키고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인재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우주와 자연에 대한 상상력과 도전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과학기술 전시관이나 학습관·박물관 등의 증설이 필요하고, 과학과 수학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로 많이 진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젊은이들이 과학기술 한류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세계를 선도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9/20121019026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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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2:02

역사상 최고의 천재는 누구일까.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2007년 11월 인류 역사를 바꾼 천재 10명을 선정해 순위를 매겼다. 과학자들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2위 셰익스피어, 3위 괴테, 4위 피라미드 설계자들, 5위 미켈란젤로였다. 의외로 문호 괴테와 셰익스피어가 상위권이고, 낯익은 과학자 이름은 뉴턴(6위)·아인슈타인(10위) 정도다. 천재 발명가 에디슨은 순위에 끼지도 못했다.

네이처가 선정 기준으로 삼은 것은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다. 사실 괴테는 문학가이면서 정치가·교육자이자 식물학·해부학·광물학·색채론에 해박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제퍼슨은 변호사·건축가·언어학자·농학자였다. 셰익스피어는 인간과 삶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수많은 인간형(型)을 창조한 원조 심리학자였다. 10명의 천재를 아우르는 키워드를 꼽자면 ‘문화적 창조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박은실(문화예술경영학) 추계예대 교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미래사회 인재를 기르는 교육의 핵심을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보고 있다”며 “사회성·정서능력 등 삶에 필요한 ‘관계역량’은 체험형 문화예술 교육에 크게 좌우된다”고 말한다. 박 교수가 예로 드는 것은 PISA(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가 발표한 올해 청소년 핵심역량지수. 36개국 중 우리나라는 지적 역량에서는 2위였으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은 35위로 바닥권이었다.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나 교육 수준이 아직 중진국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다. 하긴, 대통령선거 후보들 입에서 문화의 ‘문’자(字)조차 들어보기 힘들긴 하다.

오늘 오후 5시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예술나무-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라는 이름의 큰 행사가 열린다. 대한민국예술원·예총·민예총·메세나협의회·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주최하는 행사이니, 진보·보수에 원로·재계 인사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셈이다. 이 자리에서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1천인 선언’이 발표된다. 선언문은 ‘문화예술이 경제생활과 무관한 사치이거나 소수만의 전유물로 여기는 무지와 편견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문화예술에 관한 선언은 1973년 10월의 ‘문예중흥선언’과 2006년 5월의 ‘문화헌장’에 이어 세 번째인 듯하다. 문예중흥선언은 역사적 의미가 크지만 ‘우리는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같은 표현에서 관치(官治) 냄새가 좀 풍긴다. 민간 주도로 만든 13개 항의 문화헌장은 문화예술이 지향해야 할 요소를 거의 다 반영해 노작(勞作)이라 평가할 만하다. 오늘 발표될 선언문은 불과 A4 용지 한 장 분량이다. 하긴 길고 짧음이 문제일까. 실천하기에 달린 것이지. 그나저나 오늘 행사에 대선 후보들 중 과연 몇 분이나 올지 궁금하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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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2:02

우리는 세계에 팔아먹고 살 자산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외국 민간단체들에서 원조받았던 경험도 그런 자산 중 하나다. 이를 깨달은 건 지난주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 선생과 오랜만에 했던 통화에서였다. 선생이 몇 년 전부터 아프리카 남수단에 망고나무를 심어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희망고’라는 비영리 민간단체를 만들어 수시로 바자회도 하고, 매년 수익금을 들고 아프리카에 다녀오곤 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남수단에 방문했을 때,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했더니 한 엄마가 “망고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매년 두 차례씩 열매를 따서 팔아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고 하기에 시작했던 일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심어준 망고나무는 모두 3만 그루. 매년 가다 보니 농업교육과 재봉기술 같은 직업교육을 시키면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복합교육문화센터인 ‘희망고 빌리지’ 조성사업을 벌였다는 얘기도 지난해에 들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한국청소년연맹과 함께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상대로 아프리카 지역의 가난한 주민 돕기 교육과 훈련을 시키려고 계획 중이라고 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세계시민 교육, 가난한 이웃의 자립을 이끄는 리더 교육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가 이런 사업을 시작한 건 과거 ‘원조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어린 시절, 목사였던 선친을 따라 미국인 선교사들의 봉사현장을 보고 자란 영향이라는 것이다.

“이젠 우리나라 사람들도 가난한 나라 주민들의 자립을 도우며 세계에 친구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도움을 받아봤기에 돕는 방법도 알고, 도움을 받았던 나라에 느끼는 고마움도 알기에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산은 또 있다. 우리가 경제개발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하고 이를 회복하느라 애를 먹었던 경험도 알고 보니 자산이었다. 최근 신부남 외교통상부 녹색성장대사를 만났다. 신 대사는 요즘 비영리재단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를 국제기구로 출범시키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GGGI는 개발도상국에 환경을 보전하면서 경제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기구다. 우리나라가 주도해 만든 이 기구를 이미 18개국이 국제기구로 설립하는 협정에 서명했고, 23일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열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국회의 비준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이 기구가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 슬로건에 따라 정부 예비비를 털어 설립됐던 터라 최근 열렸던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총체적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뿐이 아니다. 개도국에 ‘저탄소 녹색성장’ 운운하는 것을 삐딱하게 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삐딱하게 볼 수 있다. 그동안 선진국들의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이 환경문제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지금도 화석연료를 가장 많이 쓰는 건 선진국이다. 그런데 이제 막 경제개발을 시작한 나라들에 저탄소형 환경보호부터 하라니…. 참, 할 말이 아니긴 하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할 일이 있단다. 선진국들이 아무리 개도국에 얘기해 봐야 바늘도 안 들어가는 녹색성장을 한국이 얘기하면 확 먹힌단다. 경제성장 과정에 환경을 훼손함으로써 치러야 했던 대가와 그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가 개도국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개도국들의 경제발전 롤 모델이고, 저개발국들은 지금 ‘새마을 운동’을 배우러 한국으로 향하는 중이다. 그러니 미래형 먹거리가 될 수도 있는 이 자산을 MB가 시작했다고 국회에서 용심을 부릴 일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원조받던 가난의 역사, 비약적인 경제개발의 노하우와 그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까지…. 우리는 반도체·휴대전화·선박 말고도 정말로 세계에 팔 게 많다. 찾아보면 우리의 자산은 더 있을 거다. 이런 틈새시장을 잘 찾아내 좁은 한국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린다면 우리가 뻗어나갈 시장은 무한정 넓어질 거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한번 더 외칠 때가 됐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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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2:00

미국 플로리다의 지역신문인 '템파베이 타임즈'. 이 신문은 자신만의 핵심역량을 찾아내 2009년 언론계 최고 권위의 '퓰리처상'(전국보도부문)을 받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데 성공했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거나 다른 정당의 평판을 망가뜨리기 위해 던지는 발언 하나 하나를 꼼꼼히 분석해 사실과 거짓말을 가려내는 '폴리티팩트' 서비스 덕분이었다.

폴리티팩트는 지역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대통령 후보와 전국무대 정치인의 발언들까지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 서비스 웹사이트에는 정치인 발언의 사실 여부에 따라 자동차 속도계를 닮은 '사실여부 계기판'에 '사실', '거의 사실', '절반만 사실', '거의 거짓', '거짓', '터무니 없음' 이라고 표시해준다. 전 현직 기자와 전문가 수십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은 정치인들의 발언을 24시간 모니터하며 발언의 배경과 관련 통계를 분석하는 등 탐사보도를 방불케 하는 인력과 정보를 동원해 사실 여부를 판정해낸다.

최근 미국 언론은 이러한 '팩트체크'(사실확인) 보도를 중시하는 추세다. 지난주 '타임'지에도 오바마 캠프와 롬니 캠프가 치열한 공방을 펼치며 남발했던 발언을 꼼꼼히 분석한 기사가 실렸다. '우리는 해외인력 아웃소싱의 선구자를 백악관에 들일 수 없다'며 미트 롬니를 공격한 오바마의 발언은 왜곡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롬니가 직접 관여하지 않은 일을 그의 책임으로 떠넘겼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경제 침체 이후 미국은 50만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새로 얻었다'던 오바마의 발언은 알고 보니 2009년 이후 없어진 100만개의 일자리는 쏙 빼놓고 한 말이었다. 당선 되면 1,2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롬니의 호기로운 약속도 알고 보니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이 향후 4년간 창출될 일자리수라고 경제 전문가들이 예측해온 터였다.

이렇듯 발언의 정확성을 체크하는 것 못지않게 얼마나 일관된 입장을 견지했는가도 정치인의 신뢰성에 핵심적인 요소다. 앞서 언급한 '폴리티팩트'의 경우 정치인의 말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바뀌었는지 여부를 '전면 말바꿈', '절반 바꿈', '말바꿈 없음'으로 표시해준다. 독자들에게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이 얼마나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가 숨김없이 까발리는 것이다.

이런 예에 비하면 우리 언론의 현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하다. 일부 언론은 수십년 역사를 자랑하는 '주류 매체'라고 자부하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측의 폭로를 검증하기는커녕 거기에 온갖 억측과 '카더라 통신'으로 살을 붙이고 날개를 달아주기까지 한다. 단지 투표 없이 편하게 금배지를 달았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장에 나가 당이 마련해준 카더라 폭로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어느 국회의원의 모습은 그 내용을 열심히 받아다 대서특필해주는 기자의 모습과 닮았다. 저질스러운 정치판에 잘 어울린다는 면에서.

정도를 걷는 언론사나 그렇지 않은 언론사나 요즘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다고 듣고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의 근본적인 기능이 꾸준히 망가져 왔음을 고려한다면 제 역할을 못하는 언론이 먹고 살기 힘든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느껴진다. 태풍 볼라벤이 북상할 때 창문에 신문을 붙이면서 그 유용성을 처음 느꼈다는 시중의 우스개는 단순한 우스개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우리 언론이 포털 사이트 이용자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기사 제목을 살짝 비틀어 선정성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안 언론의 소비자들은 시간이 흐를 수록 '제대로 된 언론'과 '사이비 언론'의 구분이 모호해짐을 느낀다.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다. 비록 부수나 시청률은 좀 떨어지더라도 '사실여부 계기판'같은 걸로 사람들의 판단에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그런 언론이 우리에겐 정말 필요하다. 그런 계기판 같은 언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여론지도층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이 소비자들에게 색깔 없는 돋보기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는, 작지만 소중한 희망. 미디어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난 그 희망을 결코 버릴 수 없다.

 


김장현 미국 하와이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17210104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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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59

오래된 이야기지만 1984년 9월 전두환 대통령 방일 때 쇼와(昭和) 천황과의 만남을 떠올려 본다.

한국 대통령의 첫 공식방문, 더구나 국빈으로서의 방일이었다. 쇼와 천황은 과거 식민지 지배의 정점에 있었던 만큼 어떤 말로 대통령을 맞을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사죄가 필요하다는 한국의 희망은 잘 알지만, 전후 일본국 헌법에서 천황은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사이의 접점을 찾느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은 머리를 쥐어짰다.

당시 외교 취재를 담당하고 있던 나는 어떤 발언이 나올지 동료들과 그 내용을 추적하고 있었고 ‘유감’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는 확실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말도 아니지만 당시 상황에서, 더구나 천황의 발언이라면 무게감이 달랐다. 아사히신문은 대통령 방일 전날, 과감히 ‘천황이 유감 표명하기로’라고 보도했다.



조마조마하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당일 만찬회 환영사에서 천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이며,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특종이 확인됐다.

한국 대통령 맞을때마다 ‘과거’ 언급

당시 일본으로서는 최대한의 발언이었지만 한국으로서는 어딘지 부족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전 대통령은 답례사에서 “우리 국민과 함께 엄숙한 마음으로 경청했습니다”라고 답했지만 한국 언론에는 ‘부족하다’ ‘애매모호하다’ 등의 불만스러운 평가가 많았다.

그로부터 6년 후 지금 아키히토 천황은 노태우 대통령을 만찬회에서 맞았다. ‘쇼와 천황의 발언보다 일보 진전된 표현을’이라는 한국 측의 강한 요망도 있어 일본 측은 숙고 끝에 발언을 준비했다.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한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당한 괴로움을 생각하며 저는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잘 보면 알 수 있듯이 쇼와 천황이 말한 유감의 뜻보다 마음이 상당히 담겨 있고, 키워드는 ‘통석의 염’이었다.

사실 초안에는 ‘불행한 과거에 가슴 아픈 생각’이라는 조금 다른 표현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방일 조금 전에 이 내용이 일본에서 보도되자 한국의 한 신문이 천황이 ‘가슴 아프게’라는 가요를 연습하고 있는 시사만평을 게재했다. 일본 가라오케에서도 자주 불리던 유명한 노래였지만 이건 곤란하다며 당황한 일본 정부가 재검토에 나서 최종적으로 ‘통석의 염’으로 귀착됐던 것이다.

올해 여름 이명박 대통령이 불만스러운 사례로 거론한 천황의 발언은 이 ‘통석의 염’이었다. 하지만 그전 천황이 맞았던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질문 받고 “나도 국민도 한일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이것으로 일단 결말을 봤다고 생각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답했다. 그랬던 만큼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나도 매우 놀랐다.

천황은 그 후로도 한국 대통령을 맞을 때마다 과거를 언급해왔다. 1994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깊은 슬픔의 마음’을 나타냈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깊은 슬픔은 늘 제 기억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에게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천황의 발언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명확한 사죄의 말은 총리가 그 책임하에 하고 있다.

원래 천황에게는 자유가 없다. 국회 소집과 총리대신 임명이라는 큰 직무가 있지만 이런 것들은 형식상의 권한이다. 일반 국민에게 주어진 직업선택의 자유도 없고, 거주 이전의 자유도, 종교의 자유도 없다. 평화를 강력히 바라는 마음에서 때때로 일본의 과오를 입에 담지만 안보 정책은 말할 수 없다.

지금 천황은 자신의 근본이 한반도에 있다고 스스로 명확히 밝히기도 했고, 한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죄의 자유가 없고, 스스로의 발언을 비판받아도 반론할 자유가 없다. 일본에서 천황 비판이 금기시되고 있는 것은 천황이 신성한 존재여서라기보다 비판에 대해 반론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좋다.

‘반론의 자유’ 없어 표현에 한계

그래도 많은 일본인은 천황과 황후를 경애하고 있다. 많은 부자유와 중압감을 감수하면서도, 예컨대 재해 피해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외국과의 우호를 바라면서 빈객을 진심으로 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천황이 한국 땅을 밟으면, 말로 전달하는 이상의 마음을 한국 여러분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 79세가 되는 노구에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 것인가.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http://news.donga.com/3/all/20121018/50192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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