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수용소는 2차 대전 당시 650만 유대인을 한줌의 연기로 날린 상징적 건물이다. 폴란드 오스비에침 마을소재의 관광지로 아우슈비츠는 그 마을의 영어식 발음. 집채더미처럼 쌓인 안경테, 곳간마다 그득한 유대여인들의 머리다발, 검디검은 독가스실의 콘크리트 벽은 수용소 '관광'을 마친지 20수년이 넘는 이 시점까지도 악몽으로 되살아나는 장면들이다.
그림에 그토록 소질을 보여, 비엔나 숲 속을 곧잘 스케치하던 눈 큰 소년 아돌프 히틀러를 무엇이 그토록 바꿔 놓았단 말인가. 히틀러의 생모가 남편과 사별 후 유대인 간부(姦夫)를 갖게 됐고, 따라서 매일 밤낮으로 어머니와 뒹구는 유대인 사내한테 히틀러가 독을 품던 시기를 바로 이때부터로 기산(起算)하는 분석도 있다. 히틀러의 생모 클라라가 남편 알로이스 히틀러와 일찍 사별한 것은 틀림없다. 아들 히틀러의 나이 열네 살 때다.
클라라는 남편과 22세나 나이 차가 있는데다, 실은 남편의 사촌여동생이었다. 그녀가 사촌 오빠와 남녀관계를 맺은 것은 오빠의 둘째 처가 병이 들어 죽기 직전으로, 둘 관계는 그런 의미에서 불륜관계였다. 아돌프는 그런 범죄가운데 잉태한 아이였다. 아돌프의 청소년기는 이런 반유대정서 속에서 자아를 굳혀간다. 히틀러는 나중에 쓴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유대인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수 천 수만의 순수 독일 피를 이어 받은 소녀들이 이 역겨운 안짱다리 유대사생아들의 배 밑에 깔려있는 악몽에 시달렸다."
이런 표현은 당시 유행하던 반 유대정서와 히틀러 개인의 성적강박관념의 합작으로 볼 수 있다.
아우슈비츠를 돌아보고 10여년 지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관람하면서 나는 거듭 봤다. 저벅대던 나치대원들의 군화소리, 군견들의 울부짖음 속에 섬뜩하게 다가서는 미래의 재앙과 그 그림자를 분명히 본 것이다. 신통력이나 영험(靈驗)없이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작품, 그런 의미에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아우슈비츠를 먼저 '관광'후 관람해야 진가를 느낄 영화였다고 영화평을 쓰고 싶다.
그리고 가장 경악했던 일은, 그런 목불인견의 만행이 자행되는 와중에도 수용소 한켠의 별채에서 나치장교들은(영화에서처럼) 관현악을 즐겼다는 점이다. 죄악과 문명의 공존…그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웠던 것이다.
죄악은 평범이나 정상과도 공존한다. 그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에힐 다이누라는 생존자의 이야기다. 1961년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했던 부총통 아이히만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다이누도 증인으로 참석했다. 그런데 재판장에서 다이누가 흐느껴 울다가 실신하고 만다. 사람들은 그가 수용소에서 체험한 죽음의 공포 때문이려니 짐작했으나 며칠 후 다이누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이유는 너무 놀라운 것이었다.
"저는 아이히만이 악마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그가 너무 평범한 한 남자로 음악 좋아하고, 손자 손녀의 재롱을 즐기고, 저처럼 황혼의 강가 산책을 좋아하고…. 이런 평범한 인간 속에 650만 명의 생명을 죽이는 악마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겁니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을 생각할 때 너무 두렵고 절망적인 마음이 들어 쓰러진 것입니다."
범죄는 의술과도 공존한다. "나는 온화하고 자비롭다." 지난 16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유고전범재판정에 선 피고 라도반 카라지치 전 스르프스카 공화국 대통령(67)의 자기변호다. 그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8,000명의 무슬림 주민을 죽인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의 주범이다.
"전쟁을 피하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다"는 이 전직 정신과 의사의 시술(施術)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범죄의 이 가공(可恐)할 양면성이여…. 나는 그게 두려운 것이다.
김승웅 언론인·전 한국일보 파리특파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192101521157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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