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면에서 뛰어난 ‘철인’이 이끄는 전제정치가 더 뛰어난가, 턱도 없는 사람이 당선될 수도 있지만 민의를 모아 이끄는 민주정치가 더 뛰어난가.
일본 공상과학(SF)소설의 걸작 <은하영웅전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머나먼 미래, 다른 우주로 거주공간을 옮긴 인류는 다시 전제정치 시대로 접어든다. 하지만 일부 민주주의자들은 탈출해 공화정 동맹국가를 세운다. 시간이 흘러 두 체제의 부작용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시기에 각 체제에는 한 명씩의 걸출한 군인이 등장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처지는 확연하게 다르다. 제국군의 라인하르트는 ‘황제 후궁의 동생’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마음껏 전략·전술을 펼칠 수 있지만, 동맹군의 양웬리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의 견제 속에 늘 “군인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며 전투에는 이기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하는 길을 걷다가 결국 비명에 간다.
어찌보면 유치할 수도 있는 공상과학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은 다음달 초 동시에 국가의 최고지도자를 뽑는 두 개의 세계 최강대국(G2), 미국과 중국의 상황을 보면서 이 소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1월8일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를 여는 중국의 차기 지도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시진핑 부주석으로 확정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공산당 내 3대 파벌 간 조정의 결과로 차세대 중국 지도부는 이미 인선이 완료됐고 별다른 혼란 없이 현재의 정책기조를 이어갈 것이다.
중국은 2008년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3000달러를 넘어섰다. 대부분의 독재국가에서 민주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기준선이다. 한국 역시 1987년 이 고개를 넘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부패 문제에 대한 공박은 있을지언정,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학계에서는 이를 공산당이 당내 민주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체제를 개량해온 덕분으로 분석한다. 중국 최고지도층은 장쩌민(상하이방), 후진타오(공청단), 시진핑(태자당)을 거치며 비록 당내에서지만 일종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왔다. 일종의 ‘공산당 철인정치’로 진화한 셈이다. 곧바로 민주정치로 체제를 변환한 러시아가 사실상 블라디미르 푸틴 독재 상태로 되돌아가 혼란이 계속되는 것과 비교하면 이런 차이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11월6일 대선을 치르는 미국의 경우는 판세가 완전히 안갯속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대 밋 롬니 공화당 후보 중 누가 미국의 조타수가 될지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큰 변화는 없겠지만 롬니가 당선된다면 미국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짐작이 쉽지 않다. 롬니가 텔레비전 토론에서의 ‘한방’ 덕분에 미국 대통령으로 결국 당선되는 것 또한 민의의 일부겠지만 최선의 결과라고 하기는 힘들 듯하다. 공화당은 최근 성폭행을 포함한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하고 동성 간의 결혼도 인정하지 않는 강령을 통과시켰다. ‘다양성’을 말살하려고 하는 공화당의 집권이 ‘역사의 진전’일 수는 없다.
사실 처음에 한 질문은 우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민주정치가 더 뛰어난 체제다. 하지만 그 전제조건은 ‘깨어 있는 시민’이다. <은하영웅전설>에서 양웬리는 “민중을 해칠 수 있는 권리는 민중 자신만이 가진다”며 민주정치를 옹호하면서도 “정치는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보복하는 법”이라며 그 부정적인 면을 숨기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선도 이제 채 두 달이 남지 않았다.
이형섭 국제부 기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67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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