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은 달콤하다. 여기 착한 빵집 주인이 있다. 그가 어느 날 빵값을 절반으로 낮췄다. 배고파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결단이다. 소비자들은 환호했다. 빵을 살 수 없었던 사람도 빵을 쥘 수 있게 됐다. 기존 고객들은 구입량을 늘렸다. 빵집 주인은 빵이 더 팔린다며 웃었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은 반값의 황홀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런 매력,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안 사도 될 빵을 사는 소비자가 생겼다. 두 개면 충분한데 값이 싸다는 유혹에 넘어가 빵을 더 샀다. 다 먹지 못한다. 남는 건 쓰레기통 신세다. 파는 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치 않다. 빵이 더 팔리긴 했지만 장사는 밑져서다. 이 상태가 지속하면 파산하게 된다. 결국 착한 결단은 오래갈 수 없다.
이제 빵을 대학 등록금으로 바꿔 보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치솟는 등록금의 문제를 모르는 바 아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은 좌절한다. 설령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 등록금 걱정 않고 공부에 매진하는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과 출발선부터 다르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는 착한 정책을 편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부작용이 속출할 거다. 정부가 사립대에 등록금을 낮추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대신 나랏돈을 써서 부족분을 메워줘야 한다. 여기서 불공평이 생긴다. 대학 문을 연 학생들만 세금 혜택을 받는다. 진학을 포기한 친구들의 몫은 없다. 이건 작은 불공평을 해소한다면서 더 큰 불공평을 양산하는 꼴이다. 이러니 너도 나도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나선다. 올해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71.3%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어 ‘88만원 세대’로 전락하는 학생이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는 ‘반값 등록금’ 공약을 똑같이 내세웠다. 이런 포퓰리즘 공약, 언짢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한다. 반값 등록금을 위해 쓰려는 국민의 세금을 ‘청년 직업훈련비’에 사용하라. 제빵 명인이나 용접 장인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청년도 많다. 이들이 돈 걱정 안 하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국민 세금을 제대로, 그리고 공평하게 쓰는 방식이다.
화제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주인공은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해 온갖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제빵 고수로 우뚝 섰다. 만약 청년들이 체계적인 직업훈련을 받는다면 굳이 시련과 역경 겪지 않아도 탁월한 김탁구로 성장할 것이다. 나는 납세자가 낸 세금을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공짜 직업훈련비’에 쓰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다. 대학생의 등록금 부담은 장학금 같은 교육 인프라를 확대해 덜어주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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