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미국 정부 초청으로 워싱턴D.C.에서 미국 언론의 저명한 기자들을 만났을 때였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들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냐'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한국의 인터넷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의 눈에는 우리나라 휴대폰 시장의 확장 속도가 엄청나다는 것이 특이하게 비춰진 모양이었다. 또 땅 덩어리가 크다 보니 전화선을 통해 연결하던 미국의 느린 인터넷과는 달리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려있어 '클릭과 동시에 화면이 뜨는' 수준의 한국 빠른 인터넷 환경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그 당시는 '애니콜'로 대변되던 삼성전자 휴대폰은 물론, LG전자와 팬택의 휴대폰이 국내 시장에서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을 때였다. 너무도 빠른 휴대폰 시장의 변화로 멀쩡한 휴대폰까지 버리고 새로운 기능이 장착된 휴대폰을 구입하던 시절이었다. 당시만해도 초등학생은 다소 과장이라 할지라도 중학생 정도면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한국의 초등학생도 상당수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당시 미국의 경우 휴대폰은 집안의 가장 정도만 가지고 있을 때였다. 미국의 눈으로 볼 때는 우리가 휴대폰에 대한 일종의 실험실이었던 것이다. 그 삼성전자가 지금은 애플과 세계 휴대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실험실은 정치분야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 요인이 독특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보수언론의 힘을 깨는 인터넷언론의 대두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의 정치와 선거를 주도했던 보수언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언론의 부상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해댔다. 오연호가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 신문 '가디언'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을 세계 최초의 '넷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인터넷언론은 수단에 불과했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같은 자발적 참여그룹의 작전 승리였을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 인터넷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수만, 수십만명의 참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선거역사상 혁명적인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는 안철수의 위험한 실험이 시작됐다. 이는 정당정치에 대한 저항적인 실험이다. 이는 어쩌면 세계 역사상 최초의 실험일 수 있다. '과연 정당이 없는 무소속 대통령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정당정치에 익숙한 국민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는데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세력조차도 의문을 갖는다. '그 친구가 괜찮은 것 같은데, 당이 없이 어떻게 대통령을 할 수 있겠나'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가 민주당과의 단일화 조건으로 내세운 정치개혁 요소를 보면 무소속출마에 대해 다소 납득이 간다. 국회가 특권을 내려놓고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또 대통령이 하겠다면 여당은 거수기가 되고, 야당은 문 걸어 잠그는 관행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의 목표는 정치권력의 획득이다. 따라서 정당은 정치개혁이나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조직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정당은 일반적(국민적) 이익을 증진시켜야 하지만, 우리 정당의 역사를 볼 때 그들은 자신이나 당의 이익에 너무 충실했다. 더욱이 대부분의 국민이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극히 일부만 당원이고 정당 혐오증을 가진 국민들이 대다수다. 국회에서 최루탄이나 터트리고, 확실하게 통과되는 법안은 국회의원 세비 올리는 것밖에 없다. 따라서 정당의 이익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약이 국민 대다수의 주장을 담았다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당정치의 패러다임이 계속 유효할 것 같지도 않다. 당이 민의를 담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때 대중이 당을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곳이 안철수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19210735243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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