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발사체 나로호(KSLV-1)가 작은 고무 링(ring) 하나에 발목이 잡혀 발사가 미뤄지고 있다. 현재 상황에선 3차 발사의 새 ‘점지일’이 다음 달 중순 이후가 될 것 같다. 고무 링은 발사체에 주입하는 헬륨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동전 크기보다 약간 크다. 금방 갈아 끼우면 될 듯 보였다. 기술진이 27일부터 정밀검사를 하고 있는데 정밀점검과 발사 절차 등을 종합해보니 간단한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작은 고무 링의 이면에는 나로호 발사가 러시아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기술 약소국의 서러움이 투영돼 있다. 동전 크기만 한 링 하나도 우리 기술진이 주도적으로 갈아 끼울 권한이 없는 사실이다. 1단 로켓의 뭐가 잘못됐는지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2002년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맺은 나로호 공동 개발 계약서에 1단 로켓은 우리가 손도 대지 못하도록 규정한 게 족쇄가 됐다. 러시아는 기술유출을 이유로 그런 조항을 주장했고, 관련 기술이 없는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예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불평등 조항은 1, 2차 발사 실패 원인 분석 때도 우리 연구진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2008년 1차 발사 때 실패 원인을 분석하려니 러시아가 발사체 비행 기록을 넘겨주지 않았다. 2009년 2차 시도에서 공중 폭발했을 때도 제주도 앞 공해상에 추락한 잔해조차 수거할 수 없었다. 실패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에도 러시아의 일방적인 주장을 대부분 수용하거나 의존했다. 그러자 “한국은 러시아의 ‘봉’이다” “한국 과학자들은 허수아비다”라는 쓴소리가 나왔다.
우리나라가 나로호에 10여 년간 들인 돈은 총 8500억원이 넘는다. 나로우주센터 건설비 3314억원, 나로호 개발비 5205억원(러시아의 1단 로켓 값 약 2000억원 포함) 등이다. 모두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다. 우리 땅에서, 우리 기술로, 우리가 쏘아 올려 세계 열 번째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하자는 국민 염원이 담겨 있다. 우주 선진국들이 연간 수조원을 우주 개발에 쏟아붓는 점을 감안하면 예산도 더 늘려야 한다.
지금 우리 연구진에게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오기다. 특히 러시아에 지불한 2000억원의 수업료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1단 로켓 기술을 곁눈질할 수밖에 없게 만든 한·러 우주기술보호협정은 우리의 기술력이 열세여서 벌어진 일이다. 15만 개가 넘는 나로호 부품 중 3만여 개는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이다. 발사는 성공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과에 관계없이 우주 기술 약소국의 서러움을 씻을 수 있는 독자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것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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