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삶'에 해당되는 글 1071건

  1. 2013.01.03 [사설/10월 27일] 막말하는 판사들 그냥 넘겨선 안 된다
  2. 2013.01.03 [시론/10월 27일] 국격에 걸맞은 인화의 감동을
  3. 2013.01.03 [대학생 칼럼] 당신의 지성은 차라리 질병입니다
  4. 2013.01.03 [분수대] 얼굴 두껍고 목소리 큰 사람이 좌우하는 TV 토론은 이제 그만
  5. 2013.01.03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동양평화론과 그랜드코리아
  6. 2013.01.03 [서화숙 칼럼/10월 26일] 불이익을 설득할 지도자
  7. 2013.01.03 [조한욱의 서양사람] 아버지의 편지
  8. 2013.01.03 [편집국에서/10월 23일] 웹비디오 시대의 '강남 스타일'
  9. 2013.01.03 [광화문에서/이진구]미래는 바뀔 수 있다
  10. 2013.01.03 [권석천의 시시각각] ‘착한 판사’는 없다
  11. 2013.01.03 [박두식 칼럼] "한국이 세계를 지배한다"는데…
  12. 2013.01.03 [세상 읽기/ 진중권] 알에 갇힌 혁거세?
  13. 2013.01.03 소프트파워 강대국의 힘
  14. 2013.01.03 [세계의 창] 끝나지 않은 유럽 통합의 꿈 / 존 페퍼
  15. 2013.01.03 [기고] 서울시민 복지기준선 의의와 한계
  16. 2013.01.03 [광화문에서/하종대]대선후보들, 외교 ‘나 몰라라’
  17. 2013.01.03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김순덕]진보정의당 대선후보 심상정
  18. 2013.01.03 [취재일기] 나로호 수업료 2000억원의 교훈
  19. 2013.01.03 [사공일의 글로벌 인사이트] 통일준비 해둬야
  20. 2013.01.01 [노트북을 열며] 침체 속 중국 그림자
2013. 1. 3. 12:05

서울 동부지법의 40대 부장판사가 사기ㆍ사문서위조 사건 재판에서 60대 증인을 앞에 두고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고 막말을 했다. 부장판사는 증인이 말을 모호하게 하자 직접 심문에 나섰으나 진술이 여전히 불명확하자 이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증인은 부장판사에게 한 마디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인천지법에선 판사가 이혼소송 중인 여성 원고에게 "입은 터져서 아직도 계속 말이 나와요?"라고 말해 소송 당사자가 법관기피신청을 냈다. 2010년 4월 서울중앙지법의 40대 판사는 69세 원고가 허락을 받지 않고 발언하자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느냐"고 질책했다. 올해 1월 발표된 서울지방변호사회 자료에는 "당신이 알지 내가 알아!" "20년간 맞고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라" "모르면 좀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고 준비서면을 내라" 등 일부 판사들의 부적절한 언사가 소개되기도 했다.

대법원은 판사들의 막말 파문이 빚어질 때마다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한다고 강조했지만 그때뿐이다. 법관 언행 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느니, 모니터링을 강화하느니 했지만 판사들의 오만하고 몰지각한 언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번 재판이 있던 날 바로 그 동부지법에선 법관의 언행개선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고 하니 얼마나 형식적이고 겉치레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사회 각 분야에서 특권의식과 권위의식이 상당히 사라졌으나 유독 사법부만 예외로 남아있다는 지적이 많다. 사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 젊은 판사들이 공부만으로 사법시험을 통과해 인성이 부족하고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개탄하는 선배 판사들도 적지 않다. 막말 판사에 대한 징계 등 강력하고 확실한 제재가 필요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번 파문이 커지자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여론이 들끓으면 징계하겠다고 말하고는 어물쩍 넘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반 시민과 검사, 변호사 등의 의견을 물어 재판과정을 평가하고 이를 법관 연임심사에 반영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262104267607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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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2:04

한동안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에 참여하면서 유럽과 북미의 여러 도시들, 예컨대 뮌헨이나 밴쿠버 등 지구상에서 살기 좋다는 도시들을 돌아본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올림픽에 앞서 아테네, 파리, 로마, 몬트리올 등 올림픽도시들을 두루 돌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숙제까지 살펴보았었다. 그 평가결과에 관계없이 우리는 정말 겁 없이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 문화도시들과 경쟁해 당당한 승리를 따내곤 했다.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유전자라고 할 만한 '겁 모르는 무한도전'의 표징이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라인강의 기적'을 무색하게 한 '한강의 기적' 그 연장선에서 이번에는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유치에 성공했다는 희소식이 날아왔다. 이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단발성 이벤트보다 더 뜻있는 일일수도 있다. 더구나 유엔지원아래 한 해에 1,000억 달러가 넘는 사업을 벌인다고 하니 세계은행이상의 수퍼급 국제기구임에 틀림없다.그 동안 2014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혼선을 빚고 있는 데다 송도 경제자유구역의 썰렁한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던 터에 GCF유치가 그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유치경쟁에서의 승리 이전에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은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놀랄 만큼 높아졌다. 지난 해 G20 정상회의를 지켜본 세계 언론들이 감탄했듯이 우리의 치밀한 외교와 조직능력은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섰으며 지난 8월 런던 하계올림픽 성과가 말해주듯 완전한 톱 레벨의 G5에까지 올랐으니 세계열강과 겨루어 주눅들 이유가 전혀 없다.

이번 GCF비밀투표에서 송도가 독일 본과 스위스 제네바를 따돌렸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국력신장이 큰 작용을 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기후와 에너지라는 지구촌 미래과제를 풀어 가는데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또 하나 기분 좋은 일은 그동안 외교무대에서 곧잘 우리의 발목을 잡곤 했던 중국과 일본이 모처럼 힘을 모아 지원했다는 점이다. 이를 계기로 평화로운 동북아시대를 열어갈 '베세토 협력라인'을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만하다.

세계는 지금 놀란 토끼처럼 휘둥그레 진 눈으로 우리를 바라볼 것이다. 세계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은 지 오랜 인천국제공항에 처음 들어서는 외국인들의 반응도 그러하려니와 K팝 열풍에 이은 강남스타일 돌풍의 진원을 살피며 한국인의 놀라운 문화적 저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할 것이다.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구원의 손길, 동남아시아 오지에 학교를 지어주는 자선행렬을 보면서 6ㆍ25참전국 용사들은 남다른 보람을 느낄 것이다. 빈곤의 바닥을 딛고 일어선 이 모든 현상이 반세기 안에 이루어진 기적임을 그들이 인지하고 있을 터다.

어떤 주역학자나 점성술사들의 말을 빌리면 어떤 알 수 없는 우주의 기운이 한반도에 모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국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것이 땅의 기(氣)든 또는 사람의 맥(脈)이든, 때는 늘 오지 않는다는 진리를 새겨야 한다.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라는 맹자의 왕도론은 아무리 천지의 이익이 있다 해도 인화 곧 '사람의 통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신적 결속과 협력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화합의 걸림돌인 선거열병과 사회분열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말씀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나라를 만들자" 최근엔 어느 외국 언론이 평하기를 "한국은 스포츠의 혼이 국민들의 가슴에 새겨진 나라"라고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새로운 미래를 펼쳐가는 이 시대의 키워드는 오늘의 선거판에서 보는 대립과 반목을 극복하는 통합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는 저마다의 정파적 이해를 초월하여 선진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대과제이기도 하다.

 

 

이태영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1210/h20121026210608915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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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2:01

머리가 비었다, 안 비었다를 정의하는 기준이 지식의 양이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삶의 지혜가 있는 사람도 영어를 못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고, 마이너스 인격에도 주워들은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식과 분별력의 혼합이 ‘지성’인 것으로 생각되면서 많은 사람이 ‘지성인’의 범주에 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알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 물론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평가절하하는 오만이 될 때 지성은 질병이 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주유소에서 잠시 일을 했다. 서울 강남 양재대로변 주유소였는데 하루 종일 외제차들이 심심찮게 드나드는 곳이었다. 외고를 졸업하고 과외가 아닌 막일을 택했던 이유는 내가 살던 곳과 다른 세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타인을 얕보는 지성의 간교함을 봤고, 지성을 이유로 무시당하는 동료들의 먹먹함을 봤다. 입 떡 벌어지게 비싼 차를 몰고 온 사장님은 대뜸 나에게 ‘배운 것도 없는 게’라고 말했다. 주유원이라는 이유로 매일같이 무시당했으나 그 세계를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위선자들의 거짓 지성 앞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직까지도 가끔 그 사장님 생각이 난다. 만일 나를 주유원이 아닌 자제분의 과외선생이나 동료로 만났더라도 그렇게 대했을까.

거짓 지성과 가시적인 품위에 그렇게 학을 떼고, 지성이 꽃을 피울 거라고 생각한 대학에 왔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수에 넘치는 대학에 와서 좋은 점이라고는 지성이 질병이 돼 버린 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것과 밖에서 부모님의 어깨가 움츠러들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엘리트라는 허울을 쓴 이들은 남들에게 ‘세상물정 모르는 책벌레’로 여겨지는지 모르고, 각자의 이상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 이상의 힘을 쏟는다.

영리하고 열정 넘치는 동기들에게 파묻혀 지성이 풍기는 악취에 나의 후각이 마비된 지 4년째.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포부를 품고 무섭게 돌진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땅으로 꺼지고 싶을 만큼의 공포를 느낀다. 더불어 살고 싶다는 사람은 없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사람만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답도 없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지성의 피해자로, 혹은 지성을 빌미로 한 가해자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학원가에는 이른 아침부터 온갖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전철역 계단을 줄 서서 올라가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무엇을 위한 분주함이며 누구를 위한 지성인가. 변화를 갈망하는 자기중심의 지성보다 타인을 세워 주며 함께 사는 지성이 넘쳐나는 사회, 그래서 웃음이 마르지 않을 사회를 감히 꿈꿔 본다.

 


박유진 미국 웰슬리대 미디어학부 4학년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713741&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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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1:59

챔피언과 도전자가 링 위에서 맞붙었다. 공이 울리자마자 도전자는 저돌적인 공격으로 기선 제압에 나섰다. 챔피언은 방어에 급급한 나머지 주먹 한번 제대로 날리지 못했다. 첫 라운드는 챔피언의 완패. 상대를 얕보고 방심한 탓이 컸다. 챔피언은 태도를 확 바꿨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전략으로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 결과 2, 3라운드에선 어느 정도 실점을 만회했다.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가 맞붙은 미국 대선 후보 TV 토론은 주먹 대신 말로 싸운 명승부였다.

토론(debate)의 목적은 자신과 다른 주장을 가진 상대를 논리와 언변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의견 차이를 좁혀 합일점을 찾는 토의(discussion)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토론은 내가 옳다는 신념에서 출발하지만 토의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정에서 성립한다. 토의에는 결론이 있지만 토론에는 결론이 없다. 지켜보는 청중이 우열과 승패를 판정할 뿐이다. 토의와 토론을 혼동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대선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텔레비전마다 정치 토론 프로그램이 줄을 잇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 갑론을박하는 토론자들을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쩌면 그렇게 말들을 잘하는지, 나같이 어눌한 사람으로서는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가끔 “(너도 언론사 논설위원인데) TV 토론 같은 데 안 나가느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다.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답답한 친구들이다. 논설위원이면 다 같은 논설위원인가. TV 토론에 나가는 분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내공을 갖춘 무림(武林)의 고수(高手)들이다. 그런 분들끼리 모여 일합을 겨루는 것이 TV 토론이지, 개나 소나 다 나가면 시청률은 누가 지키나.

논리로 승부하는 토론은 머리싸움이고, 말싸움이고, 기싸움이다. 토론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지적 수준과 성격까지 다 드러난다. 보통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나가기 힘들다. TV 토론에 나온 사람들을 보면 토론하는 쟁점에 관한 한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자신감이 표정과 말투, 눈빛에서 묻어난다.

수많은 시청자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은 그런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상대의 발언 도중에 마구 끼어들고, 사회자가 말려도 계속 떠들 수 있는 것도 자신감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적절한 비유와 사례를 타이밍 맞게 동원하는 순발력, 상대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집요함,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상대를 제압하는 재치도 감탄스럽다.

토론의 첫 계명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열쇠도 거기에 있다.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면서도 수준 높은 논리가 불꽃을 튀기는 멋진 TV 토론을 보고 싶다. 얼굴 두껍고, 목소리 큰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TV 토론은 짜증이 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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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1. 3. 11:51

# 103년 전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쐈다. 그 후 그는 뤼순 감옥에 수감돼 일제의 일방적이고 형식적인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국권회복과 동양평화를 위한 의로운 전쟁을 수행한 전쟁포로이기에 만국공법이 아닌 일본제국법정에서 재판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천명한 후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며 항소마저 포기한 채 『동양평화론』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1910년 3월 15일께다. 안 장군은 당초 서(序), 전감(前鑑), 현상(現狀), 복선(伏線), 문답(問答)의 5편을 저술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제가 서둘러 그해 3월 26일 사형을 집행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았다.

 # 비록 ‘서’와 ‘전감’의 일부만을 쓰는 것에 그친 미완이지만 『동양평화론』과 공판기록 등을 통해 안중근 장군이 생각했던 동양평화의 구상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안에는 놀라운 혜안이 담겼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동양평화회의 개최, 한·중·일 동북아 3국 공동은행의 설립과 공용화폐 발행, 뤼순 등 지역 개방과 공동관리 및 동양 3국의 공동군단 편성 등이다. 오늘의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공동체를 100년 전에 그려낸 그의 혜안이 놀랍지 않은가!

 # 작금의 한·중·일은 크고 작은 긴장과 다툼 속에 있다. 하지만 역사의 큰 눈으로 보면 결국 평화와 공존의 흐름을 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서로에게 이익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래에 나타날 동북아연합 내지 블록에서 한국이 분명하게 살아남고 주도적 위치에 서려면 향후 50년, 아니 100년을 내다보며 무엇보다도 한글을 읽고 쓰는 1억 공동체를 창출해야만 한다. ‘1억 한글공동체’야말로 미래의 동북아 블록화에 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과 대처방안이다. 현재 남한 인구는 5000만 명을 넘어섰지만 북한 인구는 아직 2500만 명을 넘지 못했다. 여기에 해외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모두 포함해도 8000만 명 안팎이다. 하지만 이것을 1억 명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미래의 우리가 존립할 근거다. 1억 명 규모의 공동체적 내수시장을 확보해 놓고 있어야 블록화된 세계에서도 미래의 생존이 가능하다. EU 내에서 아무리 뒤섞여도 각자의 언어와 문화가 살아있기에 여전히 프랑스요, 독일이요, 이탈리아 아닌가. 마찬가지로 미래의 동북아연합 내지 블록에서 우리가 당당히 우리로 존재하려면 ‘1억 한글공동체’가 핵심이다. 그것이 다름아닌 ‘그랜드 코리아’의 실존이고 요체다.

 #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올해 여든일곱 살의 정의채 몬시뇰 신부가 『인류공통문화 지각변동 속의 한국』이란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세 번째 밀레니엄, 즉 2000년대에는 동양, 그중에서도 한국이 선도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듯 썼다. 가장 빈곤했던 식민지에서, 그리고 전쟁으로 초토화된 나라에서 당당한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의 역할이 주목받을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감당해야 할 과제를 ‘따뜻한 자본주의’와 ‘행복한 발전’이란 용어로 압축했다. 깊이 공감한다.

 # 바야흐로 시세(時勢)가 동양(東洋)이다. 한·중·일 3국의 위력과 위세는 경제는 물론 정치·군사·문화 면에서도 EU에 비할 바가 아니고 미국과 러시아마저 넘어선다. 중국은 미국과 자웅을 겨룰 듯한 기세로 나서고 있고 일본 역시 침체됐다고는 하나 그 저력을 무시 못한다. 한국은 지난 60여 년간 바닥치고 일어서 괄목할 만큼 커졌다. 다만 이 변화하는 지형 위에서 어디로, 어떻게 향할지가 문제다. 그 해답의 단초가 놀랍게도 안중근 장군의 100여 년 전 ‘동양평화론’ 안에 있음을 감히 말하고 싶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3인은 짬을 내 『동양평화론』과 공판기록 등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비록 5년 임기지만 향후 50년, 아니 100년을 내다보는 그랜드비전을 마음에 심고 그려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짜 리더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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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1:50

요즘 대기업 취업은 고시 합격에 비유되곤 한다. 지방대학에서는 재학생이 대기업에 취직하면 현수막이 걸릴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경쟁도 세다.

젊은이들이 대기업 취업에 목매는 이유는 중소기업과 임금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올 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5~299인 고용) 상용자의 월평균임금은 263만 8,000원으로 대기업 평균임금 417만5,000원의 63.2%였다. 2000년에만 해도 대기업의 71.3%였으나 차이가 커졌다. 그나마 300명을 고비로 기업을 구분해서 나온 격차가 이 정도이고 1,000명 이상 고용기업과 그 이하 기업, 또는 50대 기업과 나머지 기업을 비교하면 차이는 더 클 것이다. 올 대졸공채의 초임 자체가 월 417만원을 넘어서는 대기업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도 크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6~8월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39만3,000원으로 정규직 246만원의 56.6%였다. 이 격차도 작년보다 커졌다. 심지어 '알바'로 불리는 시간제근로자는 정규직의 24.6%인 60만7,000원을 받았다. 상여금 퇴직금 수당 휴일 같은 혜택까지 감안하면 그야말로 사는 공기가 다르다고 하겠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30%나 된다.

그러니 대기업 정규직의 급행열차를 타려고 청년들은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어렵사리 들어간 기업체에서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하니 과노동에 시달려도 말을 못하고 사회 전체가 짐승 같은 시간을 산다.

고임금을 고수하는 대기업은 고수익을 내야 하고 고수익을 내려면 하청단가와 비정규직 임금 후려치기가 가장 만만하다. 쥐어짜인 하청기업은 재하청기업을 쥐어 짜고 더 임금을 줄인다.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명문대 입학에 목을 매고 명문대 입학에 목을 매면서 사교육 시장이 커지고 사교육 시장의 격차는 소득에 따라 나뉘니 부익부 빈익빈의 차이는 대를 물려간다. 계층간의 이동 사다리마저 사라져버리면 사회는 불만에 가득한 빈곤계층과 지위에서 밀려날까 불안에 떠는 기득권층으로 양분될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난다. 모두 잘 살기 위해 정말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해법은 간단하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이걸 어기는 기업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 된다. 비슷한 땀을 흘리는 이들은 비슷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온 사회가 동의하고 철두철미 지키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데에는 기업 뿐 아니라 노동자들 안에도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만일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의 문제를 제 일로 알고 같이 싸워줬다면 이 문제는 진작에 풀렸을 수도 있다.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고서도 현대자동차가 10개월이 지나도록 지키지 않는 것도 이런 구석을 믿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들은 듣기 좋은 정책을 앞다퉈 던지고 있지만 실상 그 내용은 크게 차이가 없다. 정작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근본에 대한 통찰력과 구체적인 실행력이다. 이윤을 내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함께 사는 방안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업 뿐 아니라 온 사회구성원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온 사회도 기업이나 개인이 과도한 수익을 내는 것을 대단한 업적으로 찬양할 것이 아니라 이익을 독점한 결과는 아닌지 물을 수 있을만큼 성숙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대통령이 필요하다. 기업가들과 어깨동무만 하는 후보는 아예 자격이 없다. 비정규직과 같은 약자들의 현장을 찾는다면 보기는 좋지만 부족하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을 찾아서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길게 보고 멀리 보면서 가진 것을 두루 나누게 할 수 있는 대통령을 기다린다.

 

 

 

서화숙선임기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2520284767800.htm

Posted by 겟업
2013. 1. 3. 11:50

옥중의 아버지는 열세살 외동딸의 생일에 해줄 것이 없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마저 감옥에 있어 더 가여운 딸에게 아버지는 형무소의 높은 담도 가로막을 수 없는, 영혼으로 된 선물을 보냈다. 3년 동안 딸에게 보낸 196통 편지의 내용은 세계사였다. 인도의 독립을 위해 영국에 저항하며 아홉번 감옥에 갔던 네루는 세계사의 물결 속에 흐르는 신성한 임무에 대한 의식을 상기시키려고 딸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단적으로 그 임무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용감하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요구였다.

 

<세계사 편력>이라는 책이 된 그 편지를 쓰기 위해 네루는 자신의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문명의 출발점부터 자신이 살던 시대까지 망라하며 역사를 보는 원대한 안목을 드러냈다. 그는 학교에서 나라별로 역사를 가르치는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겨, 역사의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세계 전체의 역사를 딸에게 설명했다. 그런 논지의 밑바닥에는 인도에서, 그리고 인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억압받는 민중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

 

그는 몽골 제국과 칭기즈칸을 강조하며, 아시아의 위대성을 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 연유로 그 책은 유럽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난 최초의 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서는 일제에 저항한 용감한 여성이라고 말하며 딸에게 “3·1정신을 본받으라”고 권했다. 한마디로 그는 오늘날 역사학의 흐름 가운데 하나인 ‘약자의 눈으로 보는 역사’를 이미 오래전에 실천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런 가르침을 받은 딸 인디라 간디가 총리가 되어 인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일본 장교 출신으로 헌정 파괴를 자행했던 아버지가 억압적으로 강탈한 것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하는 이 땅의 어느 딸에게 <세계사 편력>의 일독을 권한다. 고통받는 민중과 그들의 역사에 대한 성찰은 딴 나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7330.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1:49

놀랍다. 아니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적지 않다. 3개월여 동안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 스타일’광풍 말이다. 요즘 비즈니스맨들은 미국 유럽 아프리카를 막론하고 “말춤을 춰 보라”고 요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난감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고 한다. 독특하고 재미있는 콘텐츠가 유튜브를 타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세계로 확산됐다거나, 불황의 시대에 즐거울 일 없는 지구인들이 말춤의 흥겨움에 빠졌다는 해석 만으로 광풍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끊임 없이 유튜브에 올라 오는 강남스타일 관련 동영상들을 보면 의문이 꼬리를 문다.

유튜브 상에 올라온 강남스타일 관련 동영상은 10만 건이 넘는다. 동영상은 크게 네티즌 반응을 담은 ‘리액션’, 혼자 또는 친구들과 춤을 따라 하는 ‘커버댄스’, 거리 광장 등 특정 장소에 모여 춤을 춘 뒤 흩어지는 ‘플래시몹’, 강남스타일을 모방한 ‘패러디’ 등으로 나뉘는데, 이들을 보면 웹 비디오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우선 음악 소비 방식에 일대 전환이 일고 있다. ‘친구들끼리 비디오를 보며 웃고 떠드는 게 뭐 대단하다고 비디오로 찍어 유튜브에까지 올렸을까’하고 들여다 보면 조회수가 수백 만건에 달해 깜짝 놀라게 된다. 이런 리액션 동영상들은 바이러스처럼 네트워크를 통해 퍼져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확산의 시발점이 됐다. ‘보는 음악’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과 동영상으로 함께 소비하며 공유하는 세대가 등장했다고 봐야 한다.

또 다른 특징은 동영상들이 끊임 없이 ‘진화’한다는 점이다. 플래시몹 동영상들은 서로 경쟁하며 규모가 갈수록 커진다. 이달 초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벌어진 플래시몹에는 무려 9,000여 명이 참가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패러디다. 강남스타일의 일부를 코믹하게 변형한 것에서 출발해 나중에는 음원만 채택했을 뿐 기발한 발상으로 완전히 새롭게 제작한 풍자 비디오들이 등장해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다.

세계적인 지식컨퍼런스인 ‘테드(TED)’의 큐레이터 크리스 앤더슨은 2010년 7월‘웹 비디오가 어떻게 글로벌 혁신을 가속화하는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인터넷이 춤을 진화시킨다”고 말했다. 온라인 상에서 네크워크로 연결된, 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상호 경쟁하면서 각종 춤 기술을 개발하고 서로 학습하며 그 중 가장 잘하는 사람들에게 (조회수나 트위터, 구글 링크, 페이스북 등을 통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준다. 이렇게 누구나 혁신적인 춤으로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욕망을 자극해 춤을 진화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을 춤의 세계로 끌여들여 이른바‘집단에 의해 가속화되는 혁신’의 사이클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의 강정수 박사는 “집단ㆍ빛ㆍ욕망, 이 세가지만 있으면 어떤 웹상의 플랫폼도 작동한다는 게 앤더슨의 설명”이라며 “대표적인 것이 유튜브이고, 그 공간에서 같은 방식으로 수 많은 집단들을 몰입시킨 콘텐츠가 다름 아닌 강남스타일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셈”이라고 말했다.

강남스타일 신드롬은 인터넷 시대에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보여준다. 문자나 메시지 대신 동영상 등을 주고받을 수 있는 3G,4G 시대는 콘텐츠 소비 행태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이것은 뮤직 비디오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일부 선진 기업들은 이미 신기술과 이를 적용하는 시연 동영상을 SNS를 통해 해외 생산공장으로 전파ㆍ공유하고 있는데, 현지 언어로 번역해야 하는 복잡한 문서화 과정이 없어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웹 공간 내 콘텐츠(데이터)의 50%는 동영상이다. 2014년쯤에는 전체의 90%에 달할 전망이라고 한다. 강남스타일과 관련 동영상들은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차원의 변화가 경제 사회는 물론 문화 영역에서까지 일고 있다는 징표이자, 우리가 그런 시대에 본격 진입했음을 가장 떠들썩하게 알려주는 극적인 사례일 것이다.

 

 

박진용 산업부차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2221212424420.htm

Posted by 겟업
2013. 1. 3. 11:46

우리가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아직 저지르지 않은 일을 처벌할 수 있을까. 그것이 100%에 가깝다 하더라도.

우리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얼마만큼이나 확신을 갖고 있을까. 그것이 0%와 다르지 않다 하더라도.

강력 성범죄와 정신질환자들의 ‘묻지 마’ 범죄가 잇따르면서 사회적으로 효과적인 제재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거세(去勢)-화학적 제재이지만-와 격리와 관련된 부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형제가 필요하고, 피해자가 억울하지 않을 정도로 형벌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세나 격리처럼 ‘미래 범죄’를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는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것이 가능성은 높을지언정 아직 일어나지 않은 행위를 선(先)처벌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스스로 원한다면 별문제다).

재범 우려가 높은 성범죄자를 거세하고, 정신질환자를 격리하면 범죄는 확실히 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明暗)이 존재한다. 범죄 감소와 함께 우리가 잃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자율적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예방 시스템 덕분에 살인 범죄율 0%를 달성한 한 도시의 이야기다. 3명의 예지자와 과학을 결합해 살인 발생 전에 범인 이름을 알려주는 시스템. 이 완벽한 결과 앞에 수사관들은 범죄를 아직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체포, 구금하는 데 추호의 거리낌도 없다. 특히 수사반장인 존 앤더턴(톰 크루즈 분)은 여섯 살 아들이 유괴돼 살해당한 후 범죄예방 필요성에 더욱 절대적인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이 미래의 살인범으로 예고돼 쫓기면서 비로소 예고된 살인자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고, 예지자가 본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마지막 순간, 아들의 살인범 앞에 총을 들고 선 존에게 함께 도주한 예지자가 외친다.

“당신은 미래를 알고 있으니 원한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어요.”

효과적으로 범죄를 예방할 방법이 있다면 쓰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이 유혹은 범죄가 더 흉포해지고 빈번할수록, 예방 시스템이 더 효과적일수록 우리의 사고(思考)를 마비시키고 의심의 여지가 없게 만들 것이다. 더욱이 다수의 안전과 평생 한을 안고 살아야 할 유가족을 생각하면 반론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프지만 총을 내리고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통제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점점 더 그 범위를 확산시킬 것이다. 통제가 강할수록 범죄는 줄 것이고, 범죄가 줄수록 그 방식의 유효성을 의심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리 가둬놓고 범죄가 줄었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범죄 가능성이 높은 누군가가 교화(敎化)에 의해 실제로 변할지는 미지수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은 ‘인간은 변화할 수 있으며,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배신당할 때가 더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전쟁과 범죄를 겪으면서도 인류가 거꾸로 가지 않은 것은 ‘사람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 왔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많은 비용이 들어감에도 그들을 교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실제 교화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이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진구 사회부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21024/50338714/1

Posted by 겟업
2013. 1. 3. 11:45

가끔 귀갓길에 서울 서초동을 지날 때면 언덕 위 법원 청사를 바라보곤 합니다. 사건의 홍수 속에 밤늦게까지 남아 재판기록을 펼칠 수밖에 없는 판사들의 고단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일엔 재판을 하느라 휴일에도 사무실에 나와야만 하지요. “판사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그나마 대한민국 법원이 돌아간다.” 한 퇴임 대법관에게서 들은 말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법원 판결에 대해 거센 비난이 일 때마다 판사들이 느낄 당혹감을 이해합니다. 최선을 다해 재판하고 판결했는데 왜 반발을 하는 걸까. 무슨 이유로 판사를 신상털이 하고 보수니, 진보니 하는 특정 진영을 위해 판결했다고 의심하는 걸까. 답답한 심정들일 것입니다.

“그럼, 여론재판을 하라는 거냐”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헌법에 규정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여론에 따라’ 재판하라는 것으로 말입니다. 여론이 판결 하나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에서 재판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왜 여론을 무시하느냐”는 지적과 “너무 여론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지난 4월 경기도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우위안춘(오원춘·42)에 대한 2심 판결이 지난주 나왔습니다. 1심에서 선고됐던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낮춰졌습니다. 감형 이유로 “‘인육 제공 목적으로 범행했다’는 1심 판단의 근거가 약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판사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판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생명을 영원히 박탈하는 사형은 극히 예외적인 형벌로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피해자 수도 중요하다. 최근엔 피해자가 한 명인 살인범에 사형이 확정된 적이 없다. 잔혹하고 엽기적이긴 하지만 사체 훼손은 피해자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방법이 사용된 것과 다르지 않느냐.

피해자 유족과 시민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얼마나 더 끔찍해야 사형을 내리는 것이냐. 인육 제공 목적이 아니라는 판단이 잔인한 살인범의 형량을 감형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피해자가 한 명이라도 그 죄질에 따라 다르게 봐야 한다. 판사들은 “무기징역은 종신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교도소에서 20년 정도 복역하면 가석방으로 나올 수 있지 않느냐.

국민과 판사들의 인식 사이에 큰 괴리가 느껴집니다. 저는 그것을 법 논리와 법 감정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위안춘 판결문을 보면 논리적으로 빈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친절한 각주까지 붙어 있습니다. 다른 강력범죄자에 대한 판결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판례와 법리의 오솔길을 따라갑니다. 다만 결론에 이르면 한결같이 피고인의 불우한 환경, 반성하는 태도, 교화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흉악 범죄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야 할 필요성은 그 뒤에 가려집니다.

아무래도 법정에서 피고인을 직접 대면하고 있으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법관의 양심(良心)’이란 것이 착한 마음, 어진 마음만 뜻하는 건 아니라고 믿습니다. 양심은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법관의 양심엔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키려는 단호한 의지와 악(惡)에 대한 냉정한 분노도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판사들이 격렬한 트위터나 댓글에 상심하지 말고 그 밑에 흐르는 법 감정이 무엇인지 고민해주길 바랍니다. 국민의 법 감정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 결론에 맞지 않는다고 몰아세우는 여론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제 아무리 정교하고 훌륭한 법 논리도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져 있다면 울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제 많은 이들이 판사들에게 묻습니다. 피고인뿐 아니라 피해자 입장에도 서본 뒤 판결을 내리고 있는가. 법원 청사의 스크린도어에 갇혀 거리와 골목의 한숨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아닌가. 그리고 이 물음에 답할 책임은 전국의 2715명 판사 모두에게 있습니다.

 

 

 

권석천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678312&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3. 11:44

우리는 건국 64년 만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최근 한국의 달라진 국제 위상을 실감케 하는 뉴스가 이어져…
그러나 다음 5년의 리더를 뽑는 대선에서 이 이슈는 실종됐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없었던 것같다. 지난 한 주 동안 일어난 일만 봐도 그렇다. 한국은 유엔 안보리(安保理) 비상임이사국이 됐다. 안보리 진출 다음날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1991년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됐다. 건국 43년 만이다. 독립국 지위만 가지면 들어갈 수 있는 유엔에 가입하는 데 우리는 무려 43년이나 걸렸다. 냉전(冷戰)과 남북 분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유엔 가입 21년 만에 유엔을 대표하는 사무총장 재선(再選)에 성공했고,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두 번 선출됐다. GCF는 전 세계 190여개국이 참여하는 국제기구다. 일단 500여명으로 시작되는 사무국 규모로 볼 때 인천 송도가 미국 워싱턴 DC(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뉴욕(유엔), 스위스 제네바(세계무역기구), 프랑스 파리(경제협력개발기구)와 같은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나란히 단상에 오르자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사람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조크를 했다고 한다. 유엔과 세계은행의 수장(首長)을 한국인이 동시에 맡고 있다고 해서 한 말이란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이 조크라 할지라도 '한국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할 만큼 우리의 국제적 지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올가을 세계 3대 신용 평가사인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가 차례로 한국의 신용 등급을 올렸다. 피치는 우리의 신용 등급을 일본보다 높게 매기기도 했다. 1997년 가을 외환 위기가 터졌을 때 3개 평가사는 모두 한국을 '투기 등급'으로 분류했고, 일부 평가사는 우리의 신용 등급을 10단계나 하향 조정했었다. 당시 일본의 신용 등급은 최상위인 트리플 A였다. 우리는 15년 만에 그랬던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일본을 앞서게 된 것이다.

외환 위기 당시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기자는 돈을 빌리기 위해 워싱턴의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전전하던 우리 정부 및 재계 대표단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그때만 해도 미국에서 TV 등 가전제품을 사려고 매장을 찾으면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제품에 가려 삼성과 LG는 찾기도 어려웠다. 현대차는 '싼 차(車)'의 대명사였고, 일본 도요타의 렉서스는 '꿈의 차(車)'라는 극찬 속에 고급차 시장을 휩쓸고 있었다. 그러나 3년 전쯤 들른 워싱턴 DC 인근의 전자 매장에서 소니 TV 앞을 기웃거리자 매장 직원이 "요즘은 삼성·LG 제품이 대세"라는 말을 건네며 다가왔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더 이상 싸구려 취급을 받지 않는다.

지난 몇년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한국을 보는 세계의 눈은 이렇게 달라졌다. 한국은 이제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어느 국제회의를 가도 '한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을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

요즘 대선 지면(紙面)을 만들면서 자주 드는 생각이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가 과연 달라진 한국의 지위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들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 뉴스는 대부분 후보들의 '과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박 후보는 부친의 집권 시절에 관련된 일들, 문 후보는 자신의 보스였던 노무현 정부 시절의 문제, 안 후보는 개인사(史)가 뉴스의 초점이 됐다. 이 자체를 뭐라 하긴 어렵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검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과거 논란에 묻혀 세계의 중심에 선 한국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실종돼 버렸다. 여기에는 세 후보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이들 누구도 이 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이들이 내놓는 각종 정책은 서로 베끼기 경쟁 끝에 변별 불가능한 닮은꼴이 됐고, 이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이 나눠주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박·문·안 세 후보도 다음 대통령의 임기 5년이 '어려운 시절'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대선의 쟁점이 돼야 하지만 누구도 정면으로 이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건국 64년 만에 지금과 같은 국제적 지위를 갖게 됐다. 요즘 세 후보의 모습을 보면 다음 5년이 이런 성취를 까먹는 시간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렵다.

 

 

박두식 정치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23/20121023010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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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1:43

“그분은 세상과 단절된 삶을 너무 오래 살아오셨다.” 박근혜 후보의 기자회견을 보며 지인이 내게 한 말이다. 신문만 보고 살았어도, 정수장학회의 헌납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얘기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사안은 박 후보 자신이 관련된 문제다. 게다가 그는 검증을 앞둔 대통령 후보가 아닌가. 그런 분이 어떻게 이런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실수(?)이기에, 일각에서는 “박 후보가 알아듣게 판결문을 좀더 쉽게 써야 한다”며 농으로 사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게다가 이게 어디 처음이던가? 지난번 인혁당 사건에 관해서도 “두 개의 판결” 운운하며 역사적 문제에 관해 철저한 무지를 드러낸 바 있다. 세상이 다 아는 얘기를 박 후보 혼자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유신 시절에 형성된 박 후보의 이 ‘개인 이데올로기’다. 그는 아예 처음부터 자신이 정치를 하는 목적이 “부모님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라 밝히며 정치에 나섰다. 한마디로 ‘부친이 이룬 업적을 바탕으로 그가 채 이루지 못한 유업을 자신이 대를 이어 완성한다’는 사명의식, 이것이 그가 삶을 사는 이유이자, 동시에 정치를 하는 목적이다.

 

박 후보가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그토록 힘겨워하는 것은 이 허황한 자의식 때문이다. 아버지 박정희는 그의 존재이유 자체이기 때문에, 5·16과 10월 유신을 부정하는 것이 그에게는 곧 자기부정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마지못해 사과를 했지만, 자꾸 강박적으로 사과하기 이전의 스탠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속에 자신을 유폐해 버렸다. 이 정치적 자폐가 특정한 맥락에서 그의 자산이기도 했다. ‘박근혜=박정희’라는 동일시 기제가 1970년대의 고도성장을 그리워하는 보수층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끌어내는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분들이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국민의 전체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사실 박근혜 후보의 리더십은 정상적인 당적 지도력이라 하기 힘들다. 그것은 차라리 아버지와의 동일시 기제에 근거한 개인의 카리스마에 가깝다. 후보에 대한 당적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은 그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새누리당의 박근혜가 아니라, 박근혜의 새누리당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그는 아버지의 후광 속에 살아왔다.

 

경제적으로는 어떤가? 그가 관계한 재단이 얼마나 많은가?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영남대학, 한국문화재단 등에서 이사로 활동한 것이 자연인 박근혜의 거의 유일한 경제활동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가치로 수십억원에 이르는 전두환의 6억, 전두환 정권이 마련해준 것으로 보이는 성북동 자택 등은 정상적 경제활동의 성과가 아니었다.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것은, 박 후보가 사과나 반성은커녕, 피해자인 고 김지태씨를 공격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설사 그가 친일을 하고 부정축재를 했더라도 친일파를 왜 친일파가 단죄하며, 부정축재를 왜 군인이 강탈하나? 법에 따라 적절히 처벌하고, 적법하게 환수할 일이다. 박근혜 후보가 강제헌납이라는, 헌법을 무시한 초법적 조처를 정당화하는 것은, 그가 여전히 5·16이 ‘혁명’이라는 생각을 벗어버리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국민이 기대한 것은 그가 과거를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며, 문제의 해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국민의 소박한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혁거세는 알을 깨고 나와 왕이 되었다. 그 역시 아비의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와야 하나, 알 속이 따뜻해 영 부화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7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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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1:42

▲ 지난 6월 5일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식‘다이아몬드 주빌리’의 마지막날 마차 행차를 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세기의 결혼식을 기억하시나요? 지난해 4월 29일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신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 이 결혼식은 세 가지 이미지를 세계인에 각인시켰다. 오래된 교회, 마차 행진, 버킹엄궁 발코니 키스.
   
   로이터통신은 발코니 키스 사진을 올리며 다음과 같은 사진 설명을 전송했다. ‘29일 결혼식을 마친 윌리엄 왕자와 신부 케이트 미들턴이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키스하고 있다. 이날 결혼식은 전 세계에서 20억명 이상이 TV,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시청했다. 이 행사를 통해 왕실은 전통·품격·애국이라는 영국의 소프트파워를 과시했다. 대내적으로 국민을 통합하고, 대외적으로 국가브랜드 가치를 드높이기도 했다. 신랑·신부는 케임브리지 공작 부부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로이터가 영국의 소프트파워로 표현한 전통·품격·애국을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자. 결혼식이 치러진 웨스트민스터사원은 1000년이 넘은 교회. 왕의 즉위식이 열리는 공간이다. 지하 카타콤에는 영국 왕실의 묘지가 마련되어 있고, ‘시인의 코너’에는 바이런·찰스 디킨스의 묘역이 있다.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버킹엄궁전까지 마차를 타고 국가상징거리(화이트 몰)를 이동하며 시민들과 만났다. 이 황금마차는 110년이 넘은 왕실 마차다.
   
   이번에는 왕세손 윌리엄이 입은 예복을 보자. 윌리엄 왕세손은 영국 육군 보병연대인 ‘아이리스 가드(Irish guard)’ 대위 계급장이 달린 장교복을 예복으로 입었다. 영국 왕실은 군복을 가장 명예로운 복장으로 여긴다. 장교 복장은 품격과 애국을 상징한다.
   
   영국 왕실은 지난 2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즉위 6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다. 영국 왕실의 결혼식, 즉위식 등과 같은 행사는 대표적인 소프트파워 콘텐츠로 꼽힌다.
   
   소프트파워는 군사력으로 상징되는 하드파워(hard power)와 달리 문화·예술·교육·스포츠를 통해 자발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일컫는다. 소프트파워는 1990년 미국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특정 국가의 매력을 상징한다.
   
   영국의 유명 트렌드 잡지 모노클은 2010년부터 소프트파워 국가별 순위를 발표해왔다. 지난 11월 19일 발표된 2012 소프트파워 국가별 순위는 1위 영국, 2위 미국, 3위 독일, 4위 프랑스, 5위 스웨덴, 6위 일본, 7위 덴마크, 8위 스위스, 9위 호주, 10위 캐나다, 11위 한국 순이었다.
   
   2012년 조사에서 영국은 미국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모노클은 영국이 1위를 차지한 이유를 “해외에서 1위를 기록한 22개의 음반, 지난 올림픽에서 획득한 65개의 메달, 여왕 즉위 60주년 행사 등이 영국의 소프트파워를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영국이 해외에서 1위를 기록한 음반 22개란? 이 질문에 답하기 앞서 지난 7월 말 열린 런던올림픽의 개막식 장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 개막식은 개최국이 갖고 있는 소프트파워의 결정체라는 말이 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테이프는 누가 끊을까’ 하는 것은 세계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막상 커튼이 열렸을 때 세계인은 비명을 질렀다.
   
   폴 매카트니가 나와 피아노를 연주하며 ‘헤이 주드’를 부르는 게 아닌가! 폴 매카트니. 007과 함께 영국의 최고 문화상품으로 평가받는 비틀스의 옛 멤버. 2012년은 비틀스 탄생 50주년이 되는 해다. 개막식 총연출자 대니 보일 감독은 영국의 최고 문화상품인 비틀스를 개막식 첫 무대에 등장시킨 것이다.
   
   폐막식은 또 어땠나. 영국은 비틀스 외에도 수많은 대중음악의 전설을 배출했다. 영국은 폐막식에 영국이 배출한 대중음악의 스타들을 전부 올려 세웠다. 퀸, 핑크 플로이드, 오아시스 등 록밴드와 조지 마이클, 애니 레녹스, 팻보이슬림, 스파이스 걸스, 뮤즈 등. ‘해외에서 1위를 기록한 음반 22개’를 설명하는 대표적 아티스트가 아델, 뮤즈,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이다. 아델이 2011년 말 발표한 앨범 ‘21’의 타이틀곡은 ‘롤링 인 더 딥’. 이 앨범은 유럽 차트 1위를 휩쓸었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오랜 기간 1위를 기록했다.
   
   영국의 소프트파워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개막식 총연출자 대니 보일 감독은 셰익스피어 최후의 희곡 ‘템페스트’의 3막 2장에 나오는 캘리번 대사를 연기하게 했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17세기 영국의 대문호 작품을 연기한 사람은 배우 케네스 브래너였다.
   
   비틀스, 퀸, 핑크 플로이드 등은 세계의 10~20대들에게 오래된 느낌을 준다. 대니 보일 감독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을 무대에 세웠다. 그런데 청소년의 우상인 조앤 롤링이 읽은 것은 뜻밖에도 소설 ‘피터 팬’의 시작 부분이었다. ‘피터 팬’은 J M 배리의 작품. 지난 100년간 세계인은 ‘피터 팬’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새로운 세대 역시 ‘피터 팬’에 열광하며 꿈을 키운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런던올림픽 개폐회식은 대중음악과 같은 소프트파워의 위세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영국임을 다시금 증거한 사례”라고 말했다.
   
   
   미국 기후변화 연구비 5000억 넘어
   

▲ 얼음이 녹은 북극에서 카누를 즐기는 관광객. photo 캐나다관광청

소프트파워 2위를 기록한 미국을 보자. 모노클은 미국의 소프트파워 콘텐츠로 리더십과 기후변화 대응을 들었다. 여기서 국제사회에서 보여준 미국의 리더십을 재론하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다. 다만 한 가지 수치만 기억할 필요가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2011년 대외 원조액은 307억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33조7700억원이다. 2011년 연방정부 예산은 3조6000억달러(3906조원)였다. 리더십은 어려운 나라를 도와주는 데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은 기후변화 관련 연구개발비로만 4억8000만달러(5280억원)를 썼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이 누구보다 강하다. 자서전 ‘담대한 희망’에 따르면 공화당과 민주당의 기후변화에 대한 정책 차이로 인해 자신이 민주당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 뒤 연설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국가재정부채, 사회적 불균형,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해로부터 부담을 지거나 위협받지 않는 미국으로 재건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바마 정부는 환경보전 정책과 녹색성장이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친환경적인 입장을 유지한다. 재선에 성공하면서 오바마는 환경·에너지 관련 규제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미국인의 기후변화 인식이 높아진 것을 바탕으로 보다 강력한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웨덴 이케아의 힘
   

▲ 중국 상하이에 있는 이케아 매장. photo 조선일보 DB

독일은 ‘학문과 축구’로 소프트파워 3위, 프랑스는 ‘미술관과 음식’으로 소프트파워 4위, 스웨덴은 ‘실용성과 기능성’으로 소프트파워 5위를 기록했다. 3위와 4위를 차지한 독일과 프랑스의 콘텐츠를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5위를 기록한 스웨덴이다. 모노클은 스웨덴의 소프트파워를 이끄는 대표적 기업으로 이케아(IKEA)를 꼽았다. 이케아는 스웨덴의 다국적 가구기업으로 저가형 가구, 액세서리, 주방용품을 생산 판매한다. 이케아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좋은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에 직접 조립할 수 있는 가구라는 점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느 나라든 이케아는 도심 한가운데 매장을 갖고 있지 않다. 대부분 도시 외곽에 자리 잡아 임대비용을 줄이고 가구를 조립형으로 설계해 저장공간과 물류비용을 절약했다. 조립형 설계는 판매자와 소비자 양쪽에 이득이 된다. 이케아의 조립형 가구는 ‘레디 메이드’ 가구보다 상대적으로 생산 원가가 저렴할 뿐 아니라 부피가 작아 매장공간을 덜 차지한다. 당연히 가구 가격이 레디 메이드 가구보다 저렴해진다. 생산자는 좋은 디자인의 가구를 낮은 가격에 공급하고 소비자는 합리적 가격에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는 윈윈(win win) 효과를 낳는다. 더욱이 이케아 가구는 DIY(Do It Yourself) 흐름과도 맞물려 소비자층을 확대하고 있다. 이케아는 현재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체코·벨기에·러시아·아랍에미리트·터키·중국·일본·한국 등 35개국에 253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이케아는 매년 4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스웨덴은 디자인 강국이다. 2차대전 후 스웨덴 디자인을 이끈 이는 스티그 린드베리. 그는 세라믹 유리, 텍스타일 등에서 탁월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린드베리의 디자인을 제품에 사용해 생활용품을 생산한 업체는 구스타브스베리. 스티그 린드베리의 영향으로 스웨덴 디자인은 꾸미지 않은 듯 꾸민다는 철학이 스며 있다. 실용성과 기능성을 극대화한 디자인이 바로 스웨덴 디자인이다.
   
   일본은 ‘장인정신·패션’으로 소프트파워 6위를 기록했다. 일본은 15위→7위→6위로 꾸준히 소프트파워 순위를 끌어올렸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요식업에서 두드러진다. 일본에서는 3대(代)가 넘는 식당이 수두룩하다. 명문대를 나온 전도유망한 자식이 아버지가 하는 가업을 물려받는 것은 일상화되어 있다.
   
   
   일본 유니클로를 주목하라
   
   교토는 특히 가업을 잇는 오래된 음식점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교토의 소바집‘혼케 오와리야(本家尾張屋)’는 1465년 문을 열었다. 혼케 오와리야는 550년 이상 똑같은 맛을 유지하면서 교토의 최고 명물로 자리 잡았다. 교토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한번은 찾아가는 필수 코스. 혼케 오와리야 같은 곳은 사실 유럽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식당이다.
   
   소프트파워 6위를 기록한 일본에서 눈여겨볼 것은 ‘패션’ 콘텐츠. 지금 세계는 일본 중저가 패션브랜드 ‘유니클로’에 열광하고 있다. 명품이 아닌데도 명품처럼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다. 명품의 본고장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유니클로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디자인 좋고 옷 튼튼하고 값이 저렴하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유니클로로 몰려든다. 유니클로는 세계 유명도시의 핵심 상권에 매장을 여러 개 두고 있다. 서울의 경우, 명동에만 유니클로 매장이 두 개나 된다. 뉴욕 맨해튼의 중심가인 34번가에서도 유니클로는 뉴요커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덴마크는 ‘건축·디자인·방송’으로 7위에 랭크됐다. 건축가들 사이에 덴마크 건축은 일찍부터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디자인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끝난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김형수 CDS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덴마크 건축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자유로운 정신이 그대로 디자인에 구현되었다”면서 “머릿속의 자유로움이 어떤 속박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그대로 디자인에 표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가 네덜란드와 함께 일상 생활에서 마약, 동성애 같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적 풍토를 반영한 결과로 건축가들은 해석한다. 현재 덴마크에서 떠오르는 건축가는 비아케 잉겔스. 코펜하겐에 가면 잉겔스의 건축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계왕국 스위스의 장인들
   

▲ 덴마크 코펜하겐의 VM하우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발코니’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photo 조선일보 DB

스위스는 ‘안정감·전문성’으로 8위, 호주는 ‘친근감’으로 9위를 각각 차지했다. 강소국 스위스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스위스는 냉전시대에도 오랜 세월 자산을 가장 안전하게 비밀리에 맡길 수 있는 곳이라는 명성을 얻어왔다. 스위스의 안정성은 금융자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정치적 안정성, 낮은 법인세율, 영어·독일어·프랑스어 국제어 통용, 쾌적한 생활환경 등은 다국적기업을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작용했다. 1998년부터 야후, 구글, 크래프트푸즈 등 180개 이상의 다국적기업이 스위스에 유럽 본부를 설립했다.
   
   ‘전문성’은 생각할 것도 없이 스위스의 기계식 시계다. 세계의 명품 시계들은 대부분 스위스에서 만들어진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태그호이어, 피아제, 트루비옹, 위블로 등이 대표적 명품 시계다. 스위스는 기계식 시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정밀공업이 발달한 나라다. 우리나라엔 덜 알려졌지만 필라투스사와 루악사는 소형 항공기를 생산하는 업체로 유명하다. 스위스의 4년제 대학진학률은 15% 수준. 스위스에서는 누구나 기술을 익혀 전문성을 갖기만 하면 중산층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시계왕국이라는 명성은 한 분야에서 30~50년을 일한 장인의 땀방울이 모여 만들어졌다.
   
   캐나다는 ‘북극 개발’로 10위를 기록했다. 강대국들은 왜 북극 개발에 관심을 갖나? 바로 지하자원 때문이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세계 자원의 22%가 북극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원유의 13%(900억배럴), 세계 천연가스의 30%(47조㎥)가 북극해 아래에 매장돼 있다고 한다.
   
   북극권에 영토를 갖고 있는 나라는 캐나다, 미국, 러시아,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북극점은 남극대륙과 달리 바다다. 1년 12개월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1996년 미국·캐나다·러시아·덴마크 등 북극권 인접국은 천연자원 독식을 위한 배타적 협의체 북극 평의회(Arctic Council)를 창설했다.
   
   
   한국 10위권 진입하나
   
   이들 나라 중에서 지리적으로 북극권과 가장 근접한 나라는 캐나다. 캐나다는 10개의 주(province)와 3개의 준주(準州·territory)로 이뤄졌다. 캐나다 국토의 40%가 북극권에 포함된다. 유콘·노스웨스트·누나부트 3개 준주는 면적 대부분이 북극권에 속한다.
   
   캐나다는 북극 인접국 중에서 북극 개발에 가장 적극적이다. 캐나다는 북미대륙과 북극해의 대륙붕이 연결됐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해저 탐사에 한창이다. 해양법에 관한 유엔협약 예외조항에 따르면 육지가 바닷속 대륙붕까지 연결된 경우 200해리 이상에서도 해저개발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캐나다는 군사적으로 2013년까지 레졸루트만과 배핀섬에 군사기지를 설치한다는 계획으로 현재 건설 중이다.
   
   북극의 얼음이 녹는 면적이 확장되면서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 관광도 활기를 띠고 있다. 북서항로는 파나마운하가 건설되기 전 유럽인이 인도로 가는 가장 빠른 뱃길을 개척하려고 통과를 시도했던 루트. 아문센을 제외한 모든 탐험가가 얼음에 갇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1990년대 들어 여름철 2~3개월 동안 북서항로를 오가는 크루즈선이 운항되어 매년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2010년 첫 조사에서 19위를 기록했다. 2011년에는 14위로 올라섰고, 이번에 다시 3단계나 도약했다. 콘텐츠로 언급된 것은 ‘기술력·K팝’. 기술력은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스마트폰을 의미하고, K팝은 누구나 아는 대로 ‘강남스타일’로 대표되는 K팝 한류이다. 한국은 소프트파워 면에서도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234100007&ctcd=C06

Posted by 겟업
2013. 1. 3. 11:41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인 1990년 동유럽 국가들은 공동의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유럽공동체(EC) 가입을 원했다. 반세기 동안 소련의 속박을 받던 이 지역 사람들은 유럽 공동의 집에 가입하는 것을 민주주의적 통치와 경제적 번영, 사회적 안정의 보증으로 여겼다.

 

20년이 지난 뒤 유럽연합(EU) 가입이 그걸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대륙을 뒤흔든 경제위기는 잦아들 기미가 없다. 동유럽 지역은 부패 및 새로운 권위주의와 싸우고 있고, 극단주의적인 편협성이 전 유럽을 괴롭히고 있다.

 

위기에 처한 것은 유럽의 경제만이 아니다. 유럽이라는 아이디어가 빛을 잃고 있다. 한때 ‘유럽’은 미국을 지배하는 자유시장주의보다 더 평등하고 관용적인 모델로 통했다. 그러나 지금의 유럽은 점점 다른 곳이 되어가고 있다. 동유럽 나라들은 더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그들은 마침내 배타적 클럽에 가입했으나, 그 혜택은 더 이상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유럽에 대한 회의주의가 동유럽 심장부에서 생겨나고 있다. 유럽연합을 만든 초기 핵심국가 국민들까지도 재고를 하는 지경이 됐다.

 

물론 유럽은 여전히 무언가를 의미한다. 긍정적 측면을 보면, 유럽연합의 새 회원국들은 사회기반시설을 현대화할 자금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회원국 가입 조건은 정치적 기준을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비자 면제부터 무역장벽 완화 등 다른 혜택들도 있다.

 

그러나 상당히 불리한 점도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과 잠재적 후보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은 거의 모든 정부가 이행하도록 돼 있는 긴축정책이다. 슬로베니아 같은 새 회원국들은 유럽연합의 재정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지출을 삭감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크로아티아 같은 후보국도 동일한 의무가 부여된다. 물론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정부도 모두 인기 없는 긴축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말하자면 유럽연합이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모델과 별로 다르지 않게 됐다.

 

20년 전 동유럽 국가는 새로운 민주주의적 통치방식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 가입은 이 과정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전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헝가리 극우정당 피데스는 언론을 검열하고 권력을 중앙집중화했으며, 다른 민족을 배제한 채 헝가리 민족의 권리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에 항의했으나 헝가리는 여전히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남아 있다.

 

전 유럽에 걸쳐 편협성의 부활 현상도 목격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이슬람을 혐오하는 정당들이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런 추세는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유럽은 지금의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고, 그들의 사회적 시장경제로 복귀할 수 있다. 새로운 시민 행동주의는 권위주의 정당에 대한 지지를 극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많은 부분은 유럽의 새 회원국과 회원국 가입의 길목에 있는 크로아티아 같은 나라들에 달려 있다. 1989년부터 시작해 이들 국가의 국민들은 독재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그들은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는 초기의 꿈을 지금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그들은 유럽이라는 아이디어를 긴축·편협성과 다른 무언가를 의미하도록 만드는 걸 도울 수 있다. 그들은 ‘유럽’을 다시 한번 정의·평등·번영을 의미하는 곳으로 바꿀 수 있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7117.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1:40

시장 취임 일성을 무상급식 확대로 시작해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서울시와 산하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이어가던 박원순 시장의 복지행보가 “서울시민 복지기준”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목이 터져라 외쳐도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던 복지확대가 지금 서울시민의 눈앞에서 현실정책이 되고 있다. 한강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띄우고, 서울을 디자인하겠다며 벌여놓은 전시성 토건사업을 위해 쓰이던 눈먼 시민의 세금이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시민을 위한 복지로 되돌아오고 있다.

 

서울시민 복지기준은 시민이 낸 세금이 시민을 위한 복지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줄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복지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은 보수언론의 포퓰리즘 공세도, 4대 강을 치적으로 내세우는 존재감 없는 이명박 정부도, 조직화되지 않은 노동자들과 시민들도,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북한문제도 아니다. 진짜 범인은 수십년 독재정권 동안 켜켜이 쌓인 국가에 대한 국민의 끝도 모를 불신이다.

 

복지국가는 국가에 대한 시민의 신뢰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복지국가는 국민이 부여한 정당성만큼 성장한다. 국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서울시민 복지기준이 주는 의미는 분명하다. 복지기준은 국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복원해 나가는 큰 걸음이 될 것이고, 복원된 신뢰는 한국 사회가 더 큰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다. 일부에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위한 보편적 증세를 주장하지만,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는 증세는 정치적 자살행위이다. 보편적 복지를 할 터이니 증세에 동의해 달라는 말은 국민에게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는 양치기 소년을 믿으라는 것과 같다. 누가 대한민국에서 정부를 신뢰하는가? 누가 대한민국에서 세금이 공정하게 걷히고 있다고 믿나? 아무리 좋은 명분이 있다고 해도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가 추진하는 증세를 기다리는 것은 분노한 국민들의 저항뿐이다. 미국 독립전쟁으로부터 영국 보수당의 인두세 도입과 일본의 소비세 도입에 이르기까지 세금을 둘러싼 근현대사는 국민의 예고된 저항을 반복적으로 확인해주고 있다. 누군가, 언젠가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발을 구르는 사이 쥐구멍에도 볕이 들 것 같다. 서울시민 복지기준이 국민의 불신을 신뢰로 바꾸어나가는 시작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시민 복지기준”의 한계 또한 분명하다. 세출구조 조정으로는 더 큰 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 일부에게 얼마간의 경제적 도움을 주고, 보육비와 주거비의 일부를 지원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서울시의 실험은 서울특별시니까 가능한 일이다. 재정자립도가 10%를 조금 넘는 여타 지방정부에서 세출구조를 조정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성질의 일이 아니다. 결국 결정적 한계는 서울시민 복지기준이 서울특별시라는 아주 특별한 지방정부의 특산품이라는 점과 중산층의 복지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점이다.

 

박원순식 서울시민 복지기준으로는 중산층 시민의 주거불안, 교육불안, 일자리불안, 노후불안, 의료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더 많은 콘크리트가 복지로 복원되어야 하고,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고, 더 많은 국민의 삶을 따뜻하게 보듬어야 한다. 더 큰 복지국가를 위한 현실이 그리 녹록하지 않은 이유이다. 그렇다고 주눅들 이유는 없다. “서울시민 복지기준”이라는 특별한 시작이 2012년 12월 “대한민국 복지기준”이라는 보편적 희망으로 되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대한민국에 “복지”라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7120.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1:39

참으로 답답했다. 2009년 4월 베이징 특파원을 마치고 막 서울로 돌아왔을 때였다. 3년 임기 동안 베이징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했다. 1970년대 서울을 연상케 했던 베이징은 뉴욕을 능가하는 현대도시로 탈바꿈했다. 베이징의 유명한 한인타운 왕징(望京) 역시 10년 전엔 허허벌판이었다.

반면 서울은 특파원으로 가기 전이나 돌아온 뒤나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특히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서울 도심은 예전 그대로였다. 특파원 시절, 5년 전 서울에 갔을 땐 베이징보다 나은 첨단도시로 보였는데 최근에 가 보니 중국의 지방도시와 별로 다를 게 없더라고 말한 한 중국인의 ‘농담 섞인 조소(嘲笑)’가 귓전을 때렸다.

올해 또다시 그걸 느낀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환경이 올해만큼 바뀌는 때도 없다. 다음 달 6일은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고 8일엔 중국의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가 열린다. 일주일쯤 열리는 당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앞으로 10년을 이끌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선출된다. 일본 역시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엔 새 총리가 선출될 것 같다. 세계 1, 2, 3위 경제대국 최고지도자가 줄줄이 바뀌는 것이다.



이에 앞서 러시아는 올해 3월 4일 블라디미르 푸틴을 제6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러시아 역시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9위(약 2조 달러)지만 종합 국력으로 따지면 사실상 4대 강국이다.

한국이 4대 강국에게서 받는 영향은 세계 196개국(실질 독립국 기준) 가운데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중국 러시아 일본은 한국과 국토가 연접(連接)하거나 인접해 있다. 동맹국인 미국은 지리적으론 멀지만 정치 외교에서는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 4국 간 파워시프트(권력 이동)가 가시화되면서 기존 세력질서의 균형과 안정이 크게 흔들린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의 급부상은 동북아의 질서와 안정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 GDP의 7분의 1에 불과했던 중국의 GDP는 올해 미국의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習近平)이 중국을 이끄는 앞으로의 10년 동안 중국의 GDP는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의 최고 패권국은 여전히 미국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렇겠지만 미국은 이미 중국의 협력 없이 세계질서를 이끌어 가기 어려운 상태다. 특히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과 미국은 ‘동등한 힘과 영향력’을 지닌 명실상부한 주요 2개국(G2) 국가로 성장했다. 이제 동북아에서 미국은 적어도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맘대로 내릴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국 대선주자들의 공약 가운데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외교기조나 정책은 찾기 힘들다. 중국의 급부상과 이에 따른 미국의 새 국방전략, 독도 및 이어도 문제, 한반도 급변사태 시 주변국 협력 문제 등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좌우할 것들이지만 대선후보들은 ‘나 몰라라’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중국이 사실상 묵인하고 미국은 핵 기술 유출 방지에만 힘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선후보들은 표 얻기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 문제의 대책부터 내놔야 한다.

하종대 국제부장

 

http://news.donga.com/3/all/20121028/50454477/1

Posted by 겟업
2013. 1. 3. 11:39

“나는 社民主義者이지만 몰락한 사회주의는 우리가 갈 길 아니다”

 

대통령선거 후보 등록일(11월 25∼26일)까지 앞으로 28일.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가 문재인 안철수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창당한 지 8일된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대선후보는 빠져 있다. 그는 “두 사람만 단일화해선 정권교체가 힘들다”며 “심상정이 포함돼야만 국민이 믿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상정 빼고 단일화’는 소용없다는 뜻이냐고 묻자 그는 “소용없는 건 아니지만… 위험하다”며 하하 웃었다.

―진보정의당 대선후보 출마 수락을 한 지도 8일 됐다. 하프마라톤 뛰려고 나오진 않았다고 했는데….

“완주 여부는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한 연대 연합 과정에서 결정될 것이다. 야권후보 단일화 방안을 논의하기 전에 각 후보의 비전 및 정책과 실천에 대한 공통분모가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단일화 논의前비전 등 공통분모 필요

―진보에 가까운 쪽에 설 것인가.

“그건 진보의 역할과 관계가 없다. DJP(김대중-김종필 단일화) 때도 권력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민이 원하는 정치에는 실패했다. 총리 자리를 주고 자리를 나누자는 게 아니라 어떤 정책을 어떻게 실천해서 성공한 정권을 만들겠다는 건지가 중요하다. 두 후보에게 현대차 쌍용차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공동성명과 비례대표 확대 같은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회의도 제안해 놓았다. 이런 내용들이 먼저 합의돼야 각각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신뢰할 것이다.”

―문 후보는 쌍용차를 중국자본에 매각하도록 한 노무현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했다. 그런 사람과 단일화할 수 있나.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의지와 정책에 대한) 분명한 확인이 필요한 거다.”

―안 후보의 정치개혁안에 대해 ‘공부 좀 더 해야 한다’는 식의 비판을 했는데….

“안 후보는 정당정치에 불신을 가진 국민이 불러낸 것이다. 안 후보의 정치개혁 열망도 매우 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국회를 기업처럼 보고 법안을 하루에 몇 개 이상 생산 못한다고 감원하고 해고하는 식이면 결국 권위주의나 소수 엘리트 통치로 갈 수밖에 없다, 정치개혁으로는 번지수가 잘못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단일화) 물밑접촉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물이 아직 안 흐른다.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이 크므로 문이든 안이든 심이든 공동 책임주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책임이 따르는 문제니까 다들 깊은 고민 속에서 결단하지 않겠나.”

지금은 가시가 더 도드라지지만 한때 ‘진보의 붉은 장미’로 불렸던 통진당 이정희 대선후보까지 치면 세 사람의 여성 대선주자가 뛰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여성 리더십이 부각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 교육, 어르신 복지, 새집 증후군 같은 환경 문제처럼 여성들의 과제였던 일들이 이젠 정치의 중심의제가 되지 않았나. 이런 미래지향적 의제들은 진보의 태내(胎內)에서 나온 것들이고, 그래서 최초의 여성대통령은 진보에서 나오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 후보도 야권 단일화의 대상인가.

“유능한 여성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통합진보당을 만들 때도 이 대표를 믿고 결심했다. 국민의 기대와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특정 정파의 틀에 갇힌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다.”

―박 후보에게 ‘대통령이 되려면 역사에 대해 분명하면서도 명쾌한 화답을 하라’고 촉구한 적이 있다. 화답이 됐다고 보는가.

“5·16과 유신에 대한 사과를 보고 잘했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그 후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논란이나 ‘노이즈 마케팅’이다 싶을 만큼 경제민주화를 놓고 몇 번씩 말 바꾸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면서 실망이 컸다. ‘100% 대통령’ 되겠다더니 통합은 뒷전이고 오히려 보수색채 강화에 주력하지 않는가. 국민도 박 후보의 진의가 뭔지 실망할 것 같다.”

―진보(進步)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인데 우파는 진보가 될 수 없다는 말 같다. 심 후보가 말하는 진보란 뭔가.

“진보는 한마디로 하면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다.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하고 당연시되는 것보다 앞서 변화를 말하고 앞장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진보이므로 보수와 대척점을 이룰 때도 있다. 진보의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보정치를 통해 만들고 싶은 사회는 ‘삶이 피어나는 사회’다. 생명의 존귀함이 충만하도록 일할 권리, 노동권을 바로 세우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진보는 얼리 어답터… 앞장서 변화 실천

진보정의당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이룰 것’이라고 천명한 정당이다. 강령에는 ‘누구도 성별, 경제력, 나이, 출신지역, 학력과 학벌, 고용형태 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적극적 정책을 실시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이 느끼는 고통과 피로감이 두 가지다. 하나는 ‘(노력)해도 안 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신랑 신부 스펙도 중요하지 않고 그 아버지가 누구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평가받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그렇지 못하니까 젊은이들이 부모를 원망하고 사회에 대한 원망으로 가고 있다. 또 하나는 ‘모든 짐을 개인이 짊어진다’는 점이다. 외동아들딸이 결혼하면 자기자식뿐 아니라 부모님 네 분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누구나 다 짊어져야 할 짐은 좀 내려놓고, 그걸 사회가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보편적 복지의 개념이다.”

―브라질의 ‘볼사 파밀리아’는 빈곤층에 초점을 맞춘 복지정책이어서 효과가 컸다. 우리도 재원이 한정돼 있으므로 사회안전망 확충 같은 복지 사각지대부터 해소해야 하지 않겠나.

“당연히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하고, 교육 의료 주거에서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우리나라 예산이 300조 원 정도로 제한돼 있는데 어떻게 무상의료도 하고….

“왜왜왜왜(심 후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한돼 있나. 왜 예산이!”

―예산을 어떻게 더 만들겠다는 건가.

“국민이 낸 세금을 놓고, 정책순위를 어떻게 하느냐가 노선 차이고 정당 차이다. 그동안 보수정당이 해온 기준을 정상으로 보는 것은 편향된 시각이다. 우리가 집권하면 예산을 아이들 교육, 무상의료를 위해 우선적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부자감세를 통해 90조 원을 부유층에게 주었고, 4대강 사업으로 30조 원 이상을 써서 국민이 분노했다. 그래서 박 후보조차 복지를 얘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정부가 모든 것을 떠맡을 만큼 유능하다고 보나.

“그게 기득권 세력의 불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일이 자본 간의 경쟁을 조정하는 것이고, 시장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에게 보호망을 만들어 주는 두 가지다. 우리나라는 재벌 독점체제의 불공정 사회를 만드는 데 국가가 역할을 했고, 시장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되레 시장논리를 들이밀었으니 정상화를 해야 한다.”

진보정의당 강령은 ‘궁극적으로 재벌지배 경제체제를 해체한다’, ‘사회적 재분배 강화를 뒷받침해 자산 불평등을 해소한다’고 약속하고 있다. ‘진보정의당이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떠봤다.

집권땐 교육-무상의료에 예산 우선 쓸 것

“진보정당이 고난의 행군을 하는 이유는 유럽의 복지국가를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우리도 그런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좋은 정당을 만들자는 바람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를 하고 있는 유럽형 복지국가들이 대부분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 의미라면 나는 사민주의자(社民主義者)라고 할 수 있다. 사민주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KBS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67%가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들었다.”

―진보정의당이 추구하는 노선이 사회민주주의라고 써도 괜찮은가.

“아직은 아니다. 대선 이후 우리 당의 노선과 운영, 정책에 대해 지식인 사회나 진보진영 전체가 참여하는 토론과정을 거칠 것이다. ‘자산 재분배’를 놓고 사회주의가 아니냐고 질문한 것 같은데 몰락한 현실사회주의 이외에 어떤 사회주의가 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 길은 우리 길이 아닌 게 분명하다.”

―대선공약 1호인 ‘노동자 경영참여 위한 5대 공약’을 보면 세계화에 맞지 않는 해법 같다. 독일이 노사합의로 해고를 자제한다고만 소개했지, 임금 인상도 자제했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보수적인 틀에서 나온 질문이다. 한국 보수가 우물 안 개구리다. 진보가 글로벌하다. 유럽도 노동자 경영참가제도를 채택하는 나라가 생산성도 높다. 기업에 있는 돈을 돌리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내수에 기초한 탄탄한 중소기업을 키우고, 고기술 고단가 고임금으로 가도록 정부가 지원하자는 얘기다.”

진보정의당 창당대회 때 애국가는 왜 안 불렀느냐고 물어봤다.

“오해다. 후보수락 연설 TV중계가 오후 4시에 맞춰져 있어 진행자가 약식으로 국민의례를 진행한 것인데, 나도 강하게 잘못을 지적했다.”

北을 악마化하거나 온정주의로 보면 안돼

―애국가로 상징되는 정체성 때문에 심 후보가 통진당과 갈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편향적 친북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강하게 피력했다. 북한의 세습과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말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에서 형성된 잠정적 특수관계’라고 돼 있다. 다만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한쪽에선 북을 악마화(化)하고 한쪽에선 온정주의적인 태도로 북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데 둘 다 남북 평화와 통일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본다. 남북합의에 기초한 인식 위에서 유능하고 정교한 외교활동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심상정이나 진보는 좋은데 종북(從北)은 싫다는 사람들이 있다. 민노당 일심회 사건도, 통진당 이석기 의원과 관련해서도 ‘해당(害黨)행위’, ‘패권주의’라고만 지적했지 종북을 비판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종북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종북이란 북한 정부나 노동당을 추종한다는 뜻인데 그런 분들은 사법 당국에서 처벌하면 될 것 같다. 사상적으로 말하자면, 북에 대해서 편향적이고 온정적인 입장을 가진 분이 많이 있다. 그런 입장에 대해선 저희가 비판적으로 바로잡아 왔다고 생각한다.”

―현충원 참배 때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묘소도 찾았나.

“현충원 현충탑에 참배했다.”

―함께 노동운동을 하던 남편이 지금은 모 주식회사 부사장으로 인명정보에 나오던데….

“기업인도 경영자도 아니고 그냥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남편과 아들의 격려와 헌신 덕에 어려운 진보정치를 하고 있다.”

―진보정의당은 학력과 학벌 차별을 반대하는데 아들은 재수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이 선택한 것이고, 나는 엄마노릇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아이의 교육과 인생에 대해 발언권이 없다. 대한민국 엄마들은 다 이해할 거다.”

김순덕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21029/50456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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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1:38

우주 발사체 나로호(KSLV-1)가 작은 고무 링(ring) 하나에 발목이 잡혀 발사가 미뤄지고 있다. 현재 상황에선 3차 발사의 새 ‘점지일’이 다음 달 중순 이후가 될 것 같다. 고무 링은 발사체에 주입하는 헬륨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동전 크기보다 약간 크다. 금방 갈아 끼우면 될 듯 보였다. 기술진이 27일부터 정밀검사를 하고 있는데 정밀점검과 발사 절차 등을 종합해보니 간단한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작은 고무 링의 이면에는 나로호 발사가 러시아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기술 약소국의 서러움이 투영돼 있다. 동전 크기만 한 링 하나도 우리 기술진이 주도적으로 갈아 끼울 권한이 없는 사실이다. 1단 로켓의 뭐가 잘못됐는지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2002년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맺은 나로호 공동 개발 계약서에 1단 로켓은 우리가 손도 대지 못하도록 규정한 게 족쇄가 됐다. 러시아는 기술유출을 이유로 그런 조항을 주장했고, 관련 기술이 없는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예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불평등 조항은 1, 2차 발사 실패 원인 분석 때도 우리 연구진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2008년 1차 발사 때 실패 원인을 분석하려니 러시아가 발사체 비행 기록을 넘겨주지 않았다. 2009년 2차 시도에서 공중 폭발했을 때도 제주도 앞 공해상에 추락한 잔해조차 수거할 수 없었다. 실패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에도 러시아의 일방적인 주장을 대부분 수용하거나 의존했다. 그러자 “한국은 러시아의 ‘봉’이다” “한국 과학자들은 허수아비다”라는 쓴소리가 나왔다.

우리나라가 나로호에 10여 년간 들인 돈은 총 8500억원이 넘는다. 나로우주센터 건설비 3314억원, 나로호 개발비 5205억원(러시아의 1단 로켓 값 약 2000억원 포함) 등이다. 모두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다. 우리 땅에서, 우리 기술로, 우리가 쏘아 올려 세계 열 번째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하자는 국민 염원이 담겨 있다. 우주 선진국들이 연간 수조원을 우주 개발에 쏟아붓는 점을 감안하면 예산도 더 늘려야 한다.

지금 우리 연구진에게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오기다. 특히 러시아에 지불한 2000억원의 수업료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1단 로켓 기술을 곁눈질할 수밖에 없게 만든 한·러 우주기술보호협정은 우리의 기술력이 열세여서 벌어진 일이다. 15만 개가 넘는 나로호 부품 중 3만여 개는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이다. 발사는 성공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과에 관계없이 우주 기술 약소국의 서러움을 씻을 수 있는 독자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것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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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1:28

“내 생전에 동·서독의 통일은 이룩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슈미트 전 서독 총리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꼭 2주 전에 어느 사석에서 한 말이다. 그 몇 달 전 서울을 방문했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남북한 통일이 동·서독 통일보다 먼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런데 베를린 장벽은 곧 무너졌고 서독과 동독의 통일 기회가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가 곧장 통독으로 연결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바 있는 독일이 통일되어 더욱 강대해지는 것을 이웃인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구(舊)소련이 원했을 리가 없다. “우리는 독일을 사랑하기에 두 개의 독일은 더욱 좋다”는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동·서독 통일에 대한 반농조의 코멘트는 당시 주변국들의 생각을 잘 말해준다고 하겠다. 또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공개석상에서도 독일의 통일을 반대해왔을 뿐 아니라, 통독 이후에 쓴 글에서 통독을 반대한 자신의 주장은 “확실한 실패였다”고까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주변 여건 속에서 통독에 앞장섰던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는 먼저 통독에 호의적이었던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도움을 얻어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온갖 외교적 노력으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미테랑 대통령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서독의 자랑이었던 마르크화를 포기하고 유럽 단일통화 도입을 약속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과연 우리는 남북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준비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유사시 우리가 당장 감당해야 할 통일비용은 남북한 간 인구비율이나 1인당 소득격차 등을 고려할 때 동·서독의 통일비용보다 월등히 높을 것이 자명하다. 통독 당시 서독과 동독 간의 인구비율은 거의 4대1, 그리고 소득격차는 3대1 정도였다. 현재 남북한의 인구비율은 거의 2대1, 그리고 소득격차는 거의 20대1에 이른다. 따라서 통일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건전성 유지와 금융안정, 그리고 여유 있는 외환관리 등 우리 스스로가 사전에 해두어야 할 일은 아주 많다. 특히 독일의 경험을 거울삼아 새로운 통화체제에 대한 장단기 구상, 급격한 북한주민의 이주에 대한 대비책, 장기투자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북한의 명확한 토지소유권 제도 확립, 북한 주요 국영기업의 존폐에 관한 기준, 그리고 임시 행정체제와 기초적 사회안전망 구축 등 제도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는 철저한 사전준비가 있어야 한다.

지난주에는 통독 당시의 서독 재무차관을 비롯한 독일의 전문가와 전 정책담당자, 그리고 국내외 북한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 ‘통일과 한국경제’란 주제의 국제회의가 있었다. 동 회의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독일 전문가들은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유사시 북한주민 이주문제에 각별한 대비가 있어야 함을 특별히 강조했다. 통독 당시 동독은 전 사회주의 진영에서 가장 높은 국민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약 1년 동안에만 동독 인구의 거의 4%에 해당하는 60여만 명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지금까지 통틀어 170만 명, 즉 동독 인구의 10% 이상이 서독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대빈곤 인구가 대부분인 북한의 현재 사정을 고려할 때 남한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북한주민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특별한 사전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북한 국영기업의 존폐 기준과 근로자 임금수준 설정 등도 이와 관련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독일의 성공한 경험과 실패한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와 함께 또 다른 차원의 중요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외교역량을 확충하고 평소에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신뢰기반을 구축해 두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독일의 경우와 달리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위협적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주요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의 지지와 지원을 확보하는 일은 단순한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남북한 통일을 위한 대전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된 한국이 분단된 한반도보다 동북아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더욱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임을 설득해내야 한다. 이와 아울러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기구에 적극 기여하고 참여함으로써 많은 호의(good will)를 평소에 쌓아두어야 한다. 유사시 이들 기구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단기적 통일충격 완화와 북한경제 재건을 위한 중장기적 노력을 함께 펼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여건과 북한 내부의 변화를 고려할 때, 통일에 대비한 이러한 사전준비는 무엇보다 시급한 국정과제다. 모든 기회는 항상 준비된 자의 몫임을 잊지 말자.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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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1. 1. 14:09

1.6%. 3분기 성장률이다. 위기랄 수밖에 없다. 2차 오일쇼크(1980년), 외환위기(1998년), 세계 금융위기(2008) 등에 이어 또다시 분기 성장률이 2% 아래로 추락했으니 말이다. 설비투자가 준 게 침체의 큰 요인이다. 성장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 대목에서 침체 속 중국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수출 중 1, 2위를 차지하는 품목은 LCD(액정디스플레이)와 반도체다. 대략 20% 정도를 차지한다. 관련 부품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난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해당 기업이 중국에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LG와 삼성이 각각 중국에 LCD공장 건설에 나섰고, 반도체의 경우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도 시안(西安)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다. 시안 공장에는 모두 70억 달러가 투자된다. 공장이 가면 일자리도 넘어가게 마련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2년 전문대졸 이상의 고급 일자리 수만 개를 중국에 빼앗길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완구·섬유·신발 등 임가공 공장의 초기 중국 진출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당시 임가공 업체들은 공장을 옮기는 대신 국내에서 고부가 부품·소재 등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했다. 투자가 수출을 /유발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국 수출의 약 70%가 부품·반제품으로 짜인 이유다. 그 과정에서 산업이 고도화됐다. 그러나 반도체와 LCD의 중국 투자는 국내 유발효과가 적다. 관련 부품 공장도 함께 가겠노라 따라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공동화를 넘어 첨단산업 공동화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보기술(IT) 분야뿐이 아니다. 자동차·기계·철강 등 대부분의 산업에서 우리 기업은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을 찾아 떠나겠다는 기업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게 좋은 기업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우리 스스로를 탓할 뿐이다.

지난 20년 중국은 우리 경제에 ‘축복’과 같은 존재였다. 중국 덕택에 큰 충격 없이 산업 고도화를 이룰 수 있었고, 세계공장 중국은 우리에게 수출 시장을 제공했다. 우리 수출의 약 25%가 중국으로 간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에는 중국에서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적절한 대응이 없다면 중국은 오히려 우리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다. LCD·반도체의 공장 이전에서 위기감을 갖게 되는 이유다.

문제의식이 없는 게 문제다. 앞으로 5년 이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선 대선 후보들은 경제 민주화만 합창할 뿐 중국으로 떠나고 있는 핵심 기업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어떻게 블랙홀 중국에 맞설지에 대한 정부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년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한 축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다. 성장률 1.6%가 던지는 또 다른 경고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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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