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미식 여행 상품이 아주 인기다. 그렇다고 고급 식당 순례는 아니다. 제대로 된 향토 음식을 알차게 먹어보는 내용이다. 나가사키 라면 개항의 산물인 짬뽕과 카스텔라, 싯포쿠 요리(중국에서 전래한 원탁 요리)를 즐기는 식이다. 이런 여행은 먹는 이도 기쁘고, 지역도 살찌운다. 사라질 운명에 처한 지역 재료와 음식을 부활시킬 수도 있다. 사투리가 언어생활을 풍요롭게 하듯, 지역 음식은 한식이라는 거대한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가 된다. 제주도가 올레 여행을 통해 고기국수와 몸국 같은 향토 음식에 힘을 얻은 것은 좋은 예다.
얼마 전 대전을 다녀왔다. 역사가 오랜 이 광역시에는 3대를 이어 운영하는 식당도 많다. 갈수록 세련되기만 하는 서울의 식당가에 피곤해진 입맛을 푸근하게 적셔준다. 한 두부 두루치기집에서는 감동스러운 일도 있었다. 진짜 동치미를 내주는 것이었다. 동치미 흉내만 내는 '식초물에 담근 가짜'만 먹어오던 입의 호사였다. 묻어 놓은 독에서 꺼낸 그 톡 쏘는 듯한 발효향이라니. 인심도 넉넉해서 식당 안에는 훈기가 돌았다. 연세 지긋한 멋쟁이 노인들이 파안대소하는 노포(老鋪)는 멋이 넘쳤다. 그 덕에 나도 모르게 막걸리 사발을 연신 비웠다. 생긴 지 오십 년이 넘었다는 칼국수집은 개업 초부터 쓰던 그릇을 진열하고 있었다. 먹을 게 없어서 양으로 해결하던 그때 그 시절의 국수 양푼은 왜 그리 크던지….
돌아오는 대전 역사 앞에는 추억의 가락국수를 팔고 있었고, 시간에 쫓겨 입천장을 홀랑 벗겨가며 먹던 추억에 잠시 눈물겨웠다. 대전까지 고속열차로 불과 사십여 분.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나만의 미식 기차를 탈 참이다. 기다려라, 진짜 동치미여.
박찬일·요리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30/2012103003101.html
'교양있는삶 > 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철순 칼럼/11월 2일] "누가 되는 거야?" (0) | 2013.01.03 |
---|---|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루브르 만화 총서 (0) | 2013.01.03 |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53>전능한 ‘인내의 힘’ (0) | 2013.01.03 |
[시론/10월 27일] 국격에 걸맞은 인화의 감동을 (0) | 2013.01.03 |
[대학생 칼럼] 당신의 지성은 차라리 질병입니다 (0) | 2013.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