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임이나 회식 자리에서 흔히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되는 거야? 언론계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어?" 대답은 "그걸 알면 여기 이러고 있겠니?"다. 이어 "언론계라고 생각이 다 같은 줄 알아? 내가 무슨 언론계 대표도 아니고…"라고 덧붙인다.
대선이 50일도 남지 않았는데 대진표가 불투명한 터에 여론조사 결과까지 정반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국민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승부가 뻔해 보였던 5년 전과는 딴판이다. 진영논리가 강고한 사람들은 이미 지지후보를 결정하고 요지부동 상태로 들어갔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주변 사람들의 견해를 듣고 싶어 한다. 지지 후보를 결정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떠보고 싶은 심리는 같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누가 당선돼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책임한 말 같지만 누가 되든 역사적 정치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유력 후보 3명은 지금 연일 새로운 정책과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데, 큰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는 만능인간인 것처럼 약속을 하고 다니는 게 불안하다.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이 최근 세 후보의 노동공약에 대해 "새로운 내용이 없고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지만, 그의 말대로 세 후보의 공약은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라고만 할 뿐 젖이든 죽이든 미음이든 주게 하는 대안이 없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정직하게 말하며 국민들의 동참과 노력을 호소하는 사람은 이번에도 없다.
그런데도 세 후보 중 누가 당선되든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명운이 결정적으로 달라질 정도의 나라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의 주요 국가로 커버렸고, 어느 한 개인이 농단과 전횡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허약하지도 않다. 원조를 받아가며 근근이 살아온 나라가 이제는 원조를 줄 뿐 아니라 정치외교와 경제 분야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 됐다.
이 시점에 검토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덜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4년 중임제와 지방분권 강화를 골자로 한 개헌논의가 다시 활발해진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초대 이승만부터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까지 역사의 고비마다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의식했든 못했든 그 시대의 의미에 맞는 위상에 충실했다. 우리는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등을 어느 나라보다 더 빨리 압축적으로 이루어냈다.
이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문화라고 본다. 문화화라는 말이 있을 수 있다면 나라의 고급화, 국민의 성숙을 목표로 문화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성장을 말하지 않고 분배만 추구하느냐고 후보들을 윽박지르는 분위기가 있지만, 우리에게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숙이다. 성장을 추구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성장도 그냥 성장이 아니라 성숙한 성장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대통령은 개발경제시대의 리더로서 앞장 서거나 십자가를 진 구국의 영웅이 되려고 애써서는 안 된다. 역사적 세계적 업적을 남기려 하는 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협치의 우두머리로서 각 부문의 갈등을 관리하고 조화를 꾀하는 마지막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문화적 활동이나 유머와 여유로 국민을 안심시키고 행복감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나와 있는 후보들 중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아쉽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문화적이기는커녕 이번에도 대선은 과거를 들춰내 흠집내기와 공직 먹이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밀한 상대적 비교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임철순 논설고문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12102348194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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