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3. 11:39

참으로 답답했다. 2009년 4월 베이징 특파원을 마치고 막 서울로 돌아왔을 때였다. 3년 임기 동안 베이징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했다. 1970년대 서울을 연상케 했던 베이징은 뉴욕을 능가하는 현대도시로 탈바꿈했다. 베이징의 유명한 한인타운 왕징(望京) 역시 10년 전엔 허허벌판이었다.

반면 서울은 특파원으로 가기 전이나 돌아온 뒤나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특히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서울 도심은 예전 그대로였다. 특파원 시절, 5년 전 서울에 갔을 땐 베이징보다 나은 첨단도시로 보였는데 최근에 가 보니 중국의 지방도시와 별로 다를 게 없더라고 말한 한 중국인의 ‘농담 섞인 조소(嘲笑)’가 귓전을 때렸다.

올해 또다시 그걸 느낀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환경이 올해만큼 바뀌는 때도 없다. 다음 달 6일은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고 8일엔 중국의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가 열린다. 일주일쯤 열리는 당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앞으로 10년을 이끌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선출된다. 일본 역시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엔 새 총리가 선출될 것 같다. 세계 1, 2, 3위 경제대국 최고지도자가 줄줄이 바뀌는 것이다.



이에 앞서 러시아는 올해 3월 4일 블라디미르 푸틴을 제6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러시아 역시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9위(약 2조 달러)지만 종합 국력으로 따지면 사실상 4대 강국이다.

한국이 4대 강국에게서 받는 영향은 세계 196개국(실질 독립국 기준) 가운데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중국 러시아 일본은 한국과 국토가 연접(連接)하거나 인접해 있다. 동맹국인 미국은 지리적으론 멀지만 정치 외교에서는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 4국 간 파워시프트(권력 이동)가 가시화되면서 기존 세력질서의 균형과 안정이 크게 흔들린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의 급부상은 동북아의 질서와 안정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 GDP의 7분의 1에 불과했던 중국의 GDP는 올해 미국의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習近平)이 중국을 이끄는 앞으로의 10년 동안 중국의 GDP는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의 최고 패권국은 여전히 미국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렇겠지만 미국은 이미 중국의 협력 없이 세계질서를 이끌어 가기 어려운 상태다. 특히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과 미국은 ‘동등한 힘과 영향력’을 지닌 명실상부한 주요 2개국(G2) 국가로 성장했다. 이제 동북아에서 미국은 적어도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맘대로 내릴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국 대선주자들의 공약 가운데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외교기조나 정책은 찾기 힘들다. 중국의 급부상과 이에 따른 미국의 새 국방전략, 독도 및 이어도 문제, 한반도 급변사태 시 주변국 협력 문제 등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좌우할 것들이지만 대선후보들은 ‘나 몰라라’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중국이 사실상 묵인하고 미국은 핵 기술 유출 방지에만 힘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선후보들은 표 얻기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 문제의 대책부터 내놔야 한다.

하종대 국제부장

 

http://news.donga.com/3/all/20121028/50454477/1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