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인 1990년 동유럽 국가들은 공동의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유럽공동체(EC) 가입을 원했다. 반세기 동안 소련의 속박을 받던 이 지역 사람들은 유럽 공동의 집에 가입하는 것을 민주주의적 통치와 경제적 번영, 사회적 안정의 보증으로 여겼다.
20년이 지난 뒤 유럽연합(EU) 가입이 그걸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대륙을 뒤흔든 경제위기는 잦아들 기미가 없다. 동유럽 지역은 부패 및 새로운 권위주의와 싸우고 있고, 극단주의적인 편협성이 전 유럽을 괴롭히고 있다.
위기에 처한 것은 유럽의 경제만이 아니다. 유럽이라는 아이디어가 빛을 잃고 있다. 한때 ‘유럽’은 미국을 지배하는 자유시장주의보다 더 평등하고 관용적인 모델로 통했다. 그러나 지금의 유럽은 점점 다른 곳이 되어가고 있다. 동유럽 나라들은 더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그들은 마침내 배타적 클럽에 가입했으나, 그 혜택은 더 이상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유럽에 대한 회의주의가 동유럽 심장부에서 생겨나고 있다. 유럽연합을 만든 초기 핵심국가 국민들까지도 재고를 하는 지경이 됐다.
물론 유럽은 여전히 무언가를 의미한다. 긍정적 측면을 보면, 유럽연합의 새 회원국들은 사회기반시설을 현대화할 자금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회원국 가입 조건은 정치적 기준을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비자 면제부터 무역장벽 완화 등 다른 혜택들도 있다.
그러나 상당히 불리한 점도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과 잠재적 후보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은 거의 모든 정부가 이행하도록 돼 있는 긴축정책이다. 슬로베니아 같은 새 회원국들은 유럽연합의 재정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지출을 삭감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크로아티아 같은 후보국도 동일한 의무가 부여된다. 물론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정부도 모두 인기 없는 긴축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말하자면 유럽연합이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모델과 별로 다르지 않게 됐다.
20년 전 동유럽 국가는 새로운 민주주의적 통치방식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 가입은 이 과정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전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헝가리 극우정당 피데스는 언론을 검열하고 권력을 중앙집중화했으며, 다른 민족을 배제한 채 헝가리 민족의 권리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에 항의했으나 헝가리는 여전히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남아 있다.
전 유럽에 걸쳐 편협성의 부활 현상도 목격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이슬람을 혐오하는 정당들이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런 추세는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유럽은 지금의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고, 그들의 사회적 시장경제로 복귀할 수 있다. 새로운 시민 행동주의는 권위주의 정당에 대한 지지를 극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많은 부분은 유럽의 새 회원국과 회원국 가입의 길목에 있는 크로아티아 같은 나라들에 달려 있다. 1989년부터 시작해 이들 국가의 국민들은 독재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그들은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는 초기의 꿈을 지금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그들은 유럽이라는 아이디어를 긴축·편협성과 다른 무언가를 의미하도록 만드는 걸 도울 수 있다. 그들은 ‘유럽’을 다시 한번 정의·평등·번영을 의미하는 곳으로 바꿀 수 있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71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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