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반값 대학등록금 공약을 철회하겠습니다.”
이런 대선 후보가 나온다면 판세는 어찌 될까. 젊은 층의 표를 잃어 패할까, 나이 든 학부모들의 표도 잃을까.
“저는 우리 국민 절반에게 시민권을 찾아드리겠습니다. 늙었을 때, 실직했을 때 우리 국민의 절반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시민의 기본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그들은 비(非)시민입니다. 저는 그분들께 시민권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이런 대선 후보가 나온다면 또 어찌 될까. 국민 절반의 표를 확보해 이길까, 다 늙게 마련이고 실직할지도 모를 젊은 층의 표까지 끌어갈까.
이 두 후보는 사실 한 후보다.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이런 말도 할 것이다.
“대학생 여러분들도 진정한 시민이라면 제 말씀에 섭섭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도 곧 일자리를 구해야 하고, 실직할지도 모르며, 나이 듭니다.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곧 여러분들의 어려움이 됩니다. 대통령 후보로서 저는 호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값 등록금보다 급한 곳이 너무 많습니다.”
줄여서 다가가려면 이런 말도 가능할 것이다.
“등록금 절반보다 국민 절반이 먼저입니다.”
반값 등록금은 대선 후보 모두가 내건 공약이다. 반면에 ‘국민 절반’은 어느 누구도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대학답지 않은 대학, 대학생답지 않은 대학생, 노는 일자리 놓아둔 채 자기 일자리 없다고 아우성인 대졸이 등록금보다 더 심각한 문제지만 ‘국민 절반’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바로 국민연금·고용보험·건강보험 문제다.
늙어 수입이 없을 때, 실직했을 때, 나든 가족이든 중병에 걸렸을 때 국가가 도움을 주는 것이 이른바 보편적 복지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주춧돌이요 대들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늙어서 타는 연금이 거의 있으나 마나 한 푼돈 연금이고, 그 푼돈이나마 타지도 못할 처지에 놓인 사람(연금보험도 못 붓는 사람)이 거의 절반쯤 된다. 푼돈이나마 타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푼돈일까. 연금 붓는 사람들 평균을 내보면 23년 동안 부어 매달 55만원을 받게 되는데, 이는 노인 부부 최소생활비(매달 185만원, 보건사회연구원 설문조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연금을 연금이라 부를 수 없는 ‘홍길동 연금’인 것이다.
건강보험은 그나마 낫다. 그러나 나든 가족이든 큰 병에 걸리면 정말 큰일 나는 건강보험에는 아직도 구멍이 많다. 간병인 문제도 다들 한두 번쯤 겪었을 터이고, 은퇴 후 집 한 채, 차 한 대 있을 뿐 버는 돈이 없는데 황당한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처지에 몰린 사람도 많다.
자, 이제 정리해 보자.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 보자.
무릇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며 표를 받으려면 이렇게 이야기해야 옳다.
“반값 등록금만이 아니라 무상급식 공약도 저는 철회하겠습니다.”
“그보다 더 급한 일은 노인·실직자·장애우·병자·빈곤아동을 국가가 돕는 일입니다.”
“이런 급한 불을 끄는 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갑니다. 그 돈은 세금·연금보험·건강보험 등을 더 거둬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간 적게 내고 적게 받는 식으로 국민연금·고용보험·건강보험을 꾸려왔습니다만, 이제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들 더 많이 부담하고 어려운 사람들도 다 함께 도움을 받는 식으로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있는 사람들이 더 냅시다. 그리고 모두 다 조금씩이라도 내야 합니다.”
“보험료 거두는 일은 국세청에 맡겨 소득 기준으로 거두겠습니다.”
이런 대선 후보는 보수든 진보든 왜 나오지 않을까.
표가 안 된다고? 유권자를 우습게 보는 소리다. 진정성을 갖고 쉬운 말로 호소하고 설득해 보라. 그게 실력이고 차별화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여기선 이 소리, 저기선 저 소리 하지 말고. 알 듯 모를 듯한 얘기에다 다들 비슷한 소리 늘어놓으며 정치공학에만 몰두하지 말고.
김수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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