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3. 15:58

한 사회를,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 나라를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들어 올리는 힘은 '문화의 품질'에서 나온다. 지갑에 돈 좀 있고 먹고 살만하다 해서 사회가 품위 있고 품격 높은 사회로 도약하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기본'이다. 아무도 이 기본의 중요성을 경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존수단의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문화의 품질 개선과 수준 향상이 그것이다. 한가한 얘기가 아니다. 나쁜 문화는 국민의 삶을 지옥에 빠트리고 어른들을 병들게 하며 아이들을 죽인다. 그것은 사회의 암이다. 문화의 품질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무엇보다 '나쁜 문화'를 '좋은 문화'로 바꿔내는 일이다. 나쁜 문화에 주목하고 개혁의 정책수단을 강구하는 일은 이 대선의 계절에 누구도 방기할 수 없는 사회적 요청이다.

나쁜 문화란 어떤 것인가. 한 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우리는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다. 노인 자살률만이 아니다. 초등생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자살 청소년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까지 합치면 우리는 사회병리적 질병에 시달리는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묻지 마' 살인과 폭력, 반사회적 행위 건수도 '남부럽지 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사회적 병리의 원인은 여러 갈래로 진단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사람이 존중되고 사람이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데 우리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싸이코패스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특정의 가치관, 행동, 태도, 정신상태를 부추기고 강화하는 나쁜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 나쁜 문화의 특성은 이해, 공감, 동정의 능력 결손, 극단적 이기주의, 생존과 도생, 성공/성적/성과 등 '3성 제일주의' 같은 것들이다. 이런 특성이 사람들의 가치관과 정신상태를 좌우하는 지배적 문화가 될 때 사회는 병든 사회로 전락한다.

학부모 폭력과 교육폭력도 청소년을 죽이는 나쁜 문화를 대표한다. "반드시 1등 하라"는 엄마의 등살을 견디다 못해 그 엄마를 살해한 청소년 이야기, "네 성적을 보면 굶겨 죽이고 싶지만"이라는 식의 메모를 써놓고 외출한 어떤 엄마의 행동은 학부모 폭력의 극단적 사례다. 성적 떨어졌다 해서 몽둥이로, 심지어 철근으로 아이를 두들겨 패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그 엄마들은 또 그들대로 어떤 명령의 희생자일 때가 많다. "아이 성적을 올리는 것이 너의 임무이고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이것이 남편, 시아버지, 친척들로부터 엄마가 받는 명령이다. 아이 성적이 떨어지면 엄마는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틀린 방향의 학교평가와 교사평가 제도는 교장에서부터 신참 교사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성적 올리는 일에 목줄 걸게 한다.

시장가치와 시장적 기준이 문화를 좌우하는 거의 절대적인 잣대가 되어 있는 것도 지금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나쁜 문화의 한 얼굴이다. 우리 사회는 시장만능주의, 시장제일주의, 시장전체주의에 문화를 내준 지 오래다. 시장논리에 따르면 문화는 팔아먹는 것이고 팔리지 않는 문화는 아무 가치도 없다. 이 시장주의 문화는 가장 창조적인 것, 고품질의 것, 지속적 가치를 지니는 것들을 설 자리 없게 한다. 껍데기가 깊이를 대체하고 유행이 창조성을 고갈시킨다. 사유의 정지(생각하지 않기)와 지성의 사막화가 발생한다. 팔 수 있는 것과 팔 수 없는 것의 구분조차 없어진다. 예술에서부터 출판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경박성과 피상성이 세계를 접수한다.

이런 나쁜 문화를 그대로 두고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는가. 대선 정책 캠프들은 문화라는 것 앞에서 지금처럼 막막해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문화는 그들이 공들여 제도와 관행의 개혁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중대 영역의 하나다.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적 삶의 품질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문화다. 사회의 획기적 업그레이딩이 필요하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621055012173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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