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를 얻으려고 머리를 굴리다 보니 탈모가 된다며 억지로 ‘의학적’ 해석을 붙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람은 모두 탈모 환자가 돼야 할 듯하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인터넷 콘텐츠 유료화가 대한민국만큼 어려운 나라도 없잖은가.
실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진실에 더 가깝지만 공짜의 유혹을 외면하기는 어렵다. 대가 없이 혜택을 준다는 ‘무상(無償)’이란 단어가 달콤한 이유다. 무상의료 또한 마찬가지다.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시민단체들은 건강보험료를 1인당 월 1만1000원만 더 내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면 연간 14조1000억 원이 더 걷히고, 건강보험 보장성(혜택)은 90% 수준까지 올라가며 환자가 실제 부담할 진료비는 연간 100만 원 이내가 된단다.
이 계산대로라면 사실상 무상의료가 실현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9, 2010년 건강보험 보장성을 비교한 결과 64.0%에서 62.7%로 떨어졌다. 보험료를 올리고 국가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보장성은 후퇴했다. 정부의 80% 공약은 요원하다. 이런 상황이니 무상의료 방안은 끌림을 넘어 매력에 가깝다.
다만 진정 무상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보험료를 지금보다 30% 더 걷는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원리다. 유상(有償)이다. 건강보험 지속성을 위해 보험료를 더 걷어야 한다는 기존 주장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기업에 추가로 4조4000억 원을 더 내도록 하는 조건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보험료의 절반을 회사 측이 부담한다. 대기업이야 가능하다 쳐도 영세한 중소기업이 이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게다가 정부 지원금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도 보장성이 90%까지 오른다니,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재정을 확보한다 치자. 그러나 90%라는 이 수치가 보장될까.
의료소비 증가율은 아주 가파르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노인들은 외래 진료비의 30%, 입원 진료비의 20%만 부담한다. 진료비가 1만5000원 이하이면 1500원만 낸다. 찜질방 비용보다 물리치료실이 더 싸다. 그러니 병원으로 몰린다. 의료쇼핑이란 단어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지난해 감기 환자에게만 건보재정에서 2조8504억 원이 지출됐다. 암 환자 94만4414명에게 지급된 돈은 3조6496억 원이다. 2008년 기준으로 1인당 13회 진료를 받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6.9회)보다 2배 정도 많다.
감기만 걸려도 일단 병원부터 가고, 약부터 챙겨먹는 의료소비 행태가 바뀌지 않으면 14조 원이 아니라 20조 원을 확보해도 건보재정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이념 공세가 아니다. 필자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중산층과 마찬가지로 무상의료를 간절하게 바란다. 그러나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과연 소득에 따라 합당한 보험료를 내고 있는지, 의사와 약부터 찾고 있는 건 아닌지. 지금 필요한 것은 의료소비 행태를 바로잡는 ‘책임의료’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21104/50618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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