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에게 “여자 같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다. 말하는 쪽도 대개 비난하기 위해 던지는 폭탄이고, 듣는 쪽도 모욕으로 받아들여야 ‘생물학적 남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결혼시장을 제외하고는 여성에게 “남자 같다”는 말은 칭찬이다. 이해되지 않는다면 직장 옆자리 여성동료에게 한번 말해보시라. 남자처럼 씩씩하게 일 잘한다는 평가로 알아들을 것이다. 양성평등 시대에 이게 웬 불공평이냐고 외친대도 소용없다. 그게 요즘 통념이다.
그럼 박근혜가 남자란 말인가?
박근혜 대선후보를 둘러싼 여성대통령 논쟁은 국민의 눈높이를 못 따라가는 정치권의 후진성을 드러낸다. 9월 주간동아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71.1%가 “대통령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고 답했다. 특히 박근혜 지지자들은 박근혜가 여자라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으로 본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박근혜를 두고 야권에서 “여성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 코미디다. 이미 답이 공개된 문제를 놓고 정치권이 소모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논지이탈 역공법에 능한 노무현 전 대통령 같으면 “그럼 박근혜가 여자가 아니란 말입니까?” 이 한마디로 종결지었을 터다.
시작은 박근혜가 먼저였다. 지난주 “여성대통령 탄생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이자 정치쇄신”이라며 여성리더십을 강조했다. 두 번 다 여성들이 모인 행사였다. 그런데서 남성리더십을 강조한다면 더 웃기는 일이다.
어쩌면 박근혜로선 “실은 저도 여자거든요” 하고 커밍아웃할 기회를 찾았을지 모른다. 국정운영 능력은 인정되지만 정수장학회 처리 등에서 굳어진 불통의 이미지 때문이다. 투쟁적 이미지의 김대중이 1997년 대선후보 때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고 홍보했던 전략과 비슷하다.
여기에 남자들이 딱 걸려들었다. 남자답지 못하게 “박근혜가 여성의 사회진출과 정계진출을 위해 뭘 했나”처럼 대통령과 여권운동협회장을 혼동하는 듯한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생물학적으론 여성이지만 사회정치적인 여성은 아니다”까지 뻗쳤다. 심지어 “생식기만 여성”이라고 발언한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언론이 왜곡했다”고 엉뚱한 데 화살을 돌렸다.
민주통합당 여성위원회는 더 나갔다. “박근혜는 여성대통령의 덕목인 평등 평화지향성 반부패 탈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먼 후보”라는 거다. 진보진영의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말 같다. 세계화나 경제정책에서 수구 좌파적이라고 비판받던 노 정권 사람들보다 야권의 페미니스트는 더 먼 과거에 있는 모양이다.
여자든 남자든 능력으로 말하라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모성을 요란하게 내세운 공화당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은 반(反)여성적이라는 공격이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빗발쳤다. 진짜 진보가 뭔지 아는 페미니스트 작가 나오미 울프가 그들에게 한 말은 우리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20년 전이나 다름없이 평등 환경 같은 좌파적 이슈만 강조하고, 여성의 성취와 책임을 중시하는 우파적 페미니즘을 외면하는 건 수백만 여성들을 배척하는 일”이라는 거다.
여성의 힘으로 여성대통령을 만들자고 강조하는 새누리당도 시대착오적이긴 마찬가지다. 2007년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로 나와 “새 역사를 쓰려면 특히 여성들이 여성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외쳤던 세골렌 루아얄은 오히려 여성들에게 역풍을 맞았다. 여자니까 여자후보를 뽑으라는 건 여성의 지성에 대한 모독이라는 차가운 평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자임을 꼭꼭 감추는 게 좋은 전략도 아니라는 게 여성 정치인의 딜레마다. 힐러리 클린턴처럼 유능하면 독선적이라고 욕을 먹고, 여자답게 협조 잘하면 무능하다고 욕먹는다는 연구결과가 너무나 많다. 남자라면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라고 평가될 덕목이 여자에게는 독선으로 평가 절하되기 십상이라는 거다. 페미니스트한테는 물론이고 남자들한테도 ‘저년’ 수준의 욕설까지 들었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있어 영국은 그래도 되살아날 수 있었다.
결국 관건은 후보의 가치관과 비전, 그리고 능력이다. 국민은 이미 대통령이 여자든 남자든 일만 잘하면 된다고 보고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 경지인데 정치권만 여성대통령(女統)이냐 남성대통령(男統)이냐 논쟁하는 건 시간낭비다.
화합과 소통 같은 ‘소프트 리더십’이 강조되는 시대, 남자고 여자고 여성다운 감성을 지니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만을 위하겠다는 후보는 결혼 전 남편들의 맹세처럼 가볍다. “나야말로 친여성적 후보”라고 강조하는 것도 남자답지 못하다.
무엇보다 툭하면 눈물을 짜는 모습부터 거둬주기 바란다. 남자의 눈물은 정말 중요할 때, 그것도 유능한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한 다음에만 감동을 주는 법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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