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기획] 1<레미제라블> 필두로 <안나 카레니나> <위대한 개츠비> 등 고전소설 영화 붐… 자본주의 막장서 ‘근대’ 통찰하려는 욕구
마지막 노래가 울려퍼졌다. “사람들의 노래가 들리는가/ 분노한 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이것은 민중의 음악/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리라는 자들의 목소리/ 그들의 심장 뛰는 소리가/ 북소리가 되어 울려퍼질 때/ 이제 곧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테니/ 내일이 오면.”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 8일 만인 2012년 12월26일 밤 12시를 기점으로 관객 수 200만 명을 넘겼다. 1862년 원작 소설이 처음 출간됐을 때부터 일주일 만에 1쇄가 모두 팔리며 독자를 서점 앞에 줄 서게 했다는 작품은, 150년이 지나서도 뮤지컬·연극·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며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레미제라블>을 필두로 2013년은 고전 속 불행한 이들이 스크린에 자주 등장할 참이다. 소재 고갈은 언제나 고전의 귀환을 부르지만 올해 영화로 다시 쓰이는 고전소설들은 유독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그 시절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비극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 많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개봉을 앞두고 있고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는 현재 제작 중이다. 장발장부터 개츠비까지 주인공은 작품 속에서 이미 죽고 사라졌지만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자꾸만 반복하며 무엇을 찾으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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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박된 민중의 삶, 노래 가사 결결이
대사의 대부분이 노래로 전달되는 송스루(Song Through) 전개 방식의 뮤지컬 영화는 국내에서 흥행한 경우가 드물다. 장르적으로 익숙지 않은 관객이 많아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레미제라블>의 흥행은 주목할 만하다. 국내 배급사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 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캣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등 걸출한 뮤지컬을 제작해온 캐머런 매킨토시의 1985년작을 원작으로 한 대작이라는 점, 휴 잭맨, 러셀 크로, 앤 해서웨이, 어맨다 사이프리드 등 화려한 출연진이 흥행의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떠도는 관객들의 평을 살펴보면, 사람들은 프랑스혁명기를 살아가는 <레미제라블>의 비극적 인물들을 보며 강퍅한 우리 현실을 겹쳐 보는 듯하다. 이미 뮤지컬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던 <레미제라블>의 노래가 온라인 음원 사이트 멜론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새삼 다시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결박당한 민중의 삶은 노래 가사 결결이 전달된다.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5년의 징역형을 받고 탈옥을 시도하다 14년의 형을 더 받은 장발장이 감옥에서의 마지막 부역을 마치고 풀려나는 순간 “자유는 내 것이고, 세상은 그대로다/ 바람을 느끼고, 비로소 숨을 쉬네”라고 노래하지만 그를 감시하는 자베르는 “너는 언제나 노예, 여기는 너의 무덤이나 마찬가지”라고 응답한다. 가석방이 된 장발장의 신분증에는 ‘위험 인물’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만들어진 자비 없는 법 앞에서 가난하고 초라한 시민은 무력하다. 장발장은 자신에게 처음으로 따뜻한 음식을 내주고 은촛대를 훔쳐도 눈감아준 주교의 베풂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며 신분증을 찢어버리고 바뀐 이름으로 새 삶을 산다. 공장을 짓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 명성을 얻으며 시장이 된다. 그러나 장발장이 변하는 사이 세상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장발장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강퍅한 현실에서 이런 노래를 부른다. “하루가 끝날 무렵 날은 더욱 추워지고/ 걸친 옷으로는 추위를 버틸 수 없네/ 귀하신 분들 서둘러 길을 떠나고/ 그들은 어린아이의 울음을 듣지 않네/ 겨울은 우릴 죽일 작정으로 맹렬히 다가오고/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네.” 동료들의 오해와 질투로 공장에서 쫓겨나 새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딸을 살릴 돈을 구하려고 성매매 여성이 된 노동자 판틴은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고/ 사랑은 영원하다고/ 신은 자비로울 것이라고 믿었네/ 하지만 잔혹한 현실은 한밤중에 천둥소리를 내며 들이닥쳤네”라고 절규하듯 외친다.
사실주의 문학 대표하는 고전들
자본에 포획되고 가난으로 궁지에 몰리는 2013년의 한국 민중의 현실은 ‘일을 해도 더욱 추워질 뿐’인 영화 속 인물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관객은 19세기 프랑스 시민들의 삶에 지금의 삶을 투영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이렇게 말했다. “들여다보면 영화는 공권력이 민중을 억압하는 시절, 아주 전형적인 근대 시민혁명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부분을 환기해보는 것이 우리에 게 의미 있을 것이다. 특히 대선 정국을 지나온 이 시점에 서 불현듯 다가오는 혁명의 추억, 그걸 보는 심정은 만감 이 교차할 테고, 힘겹게 얻은 자유를 어떻게 다시 번복하 게 된 걸까 하는 슬픔…. (관객은) 시민으로서 혁명군과 의 동일시를 통해 미묘한 카타르시스, 슬픔 등을 느꼈을 것이다.” 덧붙여 “경계에 있는 사람들까지 품을 수 있어 야 시민혁명이다. 우리가 선거를 통해 이뤄야 했던 것이 무엇인가. 시절의 엄중함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반성과 고민이 들게 한 영화”라고 평했다.
문학에서 사실주의가 부각되던 시기는 정치·사회적 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문예사조에서 낭만주의가 점차 쇠퇴하며 당대의 현실 문제를 직접 맞서 고민하는 새로 운 문학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사실주의 문학의 출발이다. 개봉을 앞둔 <위대한 개츠비>(바즈 루어만 감 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캐리 멀리건 주연), <안나 카레 니나>(조 라이트 감독, 키이라 나이틀리·주드 로 주연), 현재 제작 중인 <마담 보바리>의 원작 모두 공교롭게도 19~20세기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고전으로 손꼽 힌다.
세 편의 영화가 소설의 줄거리 중 무엇을 뽑아내 강약 을 조절할지는 개봉 이후 명확히 드러나겠지만 확실한 공통점은 모두 인간 군상을 통해 드러나는 시대의 속성 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에 서 개츠비·데이지·뷰캐넌·윌슨의 사랑과 질투, 오해가 엇갈리는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인들의 삶을 실감 나게 묘사한 장면이다. 피츠제럴 드가 그리는 1920년대 미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이 이뤄 지는 시대다. 주가가 뛰고 기업 이익이 유례없이 증가하 는 가운데, 주인공들은 늘 사치스러운 파티를 열고 값비 싼 차를 몰고 다닌다. 그러나 소설은 이들의 화려한 일상 에 스며든 부패와 타락, 물질적 탐닉에서 비롯한 삶의 공 허함을 놓치지 않는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던 안나는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을 던지고 젊은 장교 브론스키와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톨스토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축으로 결혼과 가족 제도, 계급, 종교 등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구조와 여기서 비롯 된 문제들을 꼼꼼하게 짚어나간다. 150여 명의 등장인 물을 통해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를 관통하던 문제인 농노제의 붕괴, 관료 조직의 부정부패 등을 깊이 있게 묘 사했다. <마담 보바리>에서 주인공 에마는 마을의 시골 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하고, 결혼 전 그려왔던 낭만적 삶과는 거리가 먼 권태로운 결혼 생활에서 새 삶을 갈구 하다가 여러 남자들의 정부가 된다. 이로 인해 생활이 무 너지고 엄청난 빚을 지게 돼 절망에 빠진 에마는 음독 자살을 하고, 샤를은 남은 딸을 거두며 에마가 남긴 빚 을 갚으며 살려고 노력했지만 파산 지경에 이르러 결국 생을 포기한다.
우리가 그동안 얻은 것은 무엇인가
100년이 넘도록 읽히고 수차례 영화화하며 변주되는 고전이지만 요약해보면, 어쩌면 신문의 한 조각에서 봄 직한 이야기들이다. 따져보면 실제 <레미제라블>도 1801 년 프랑스의 한 가난한 농부 피에르 모랭이 빵 한 덩이를 훔쳐 4년의 징역을 받았다는 신문의 단신 기사에서 출발 했다. 바꿔 말해 현실을 가장 세밀하게 반영한 것이 가 장 극적인 문학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영화계는 사실주의 문학을 스크린 에 복기하는 것일까.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이런 흐름 과 관련해 “근대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의 막장을 지나고 있는 지금, 그래서 우 리가 그동안 얻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서 출발해 근본적으로 통찰해보려는 욕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 다. 덧붙인 설명은 이렇다. “동아시아의 경우 민주주의 니 시민사회니 하는 것을 이루려고 애써 살아왔으나 결 국 돌아온 것은 세습 정권이다. 서구에서는 2008년 자기 들이 만든 자본주의라는 구조 안에 결국 갇혀버리고 말 았다. 신념이 무너지고 파국이 임박했다는 것을 느끼고 사람들이 결국 바이블을 찾는 심정이 된 것이다. 그런 점 에서 이 모든 것의 출발이 된 근대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고전을 찾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의 책머리에 이렇게 썼다.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 같은 종류의 책들도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1885년 눈을 감은 작가는 모를 것이다. 시대의 울적함과 삶의 명암을 담은 고전들 이 21세기에 진입하고 한참이 지나고도 여전히 읽히고, 심지어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모든 인물이 나타나 더 크고 견 고하게 세워진 바리케이드에 모여 노래 부르는 마지막 장 면에 눈물 흘리고 용기를 얻는 민중이 이토록 오래 역사 에서 반복된다는 사실도.
신소윤 기자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6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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