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 무슨 두께가 있으랴마는, 박명진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담론에는 분명 <두꺼운 언어와 얇은 언어>(문학과지성 펴냄)가 있다고 했다."언어의 두께는 생각의 두께를 반영한다. 많은 생각을 담은 언어와 이지적 언어는 두꺼워질 수 밖에 없고, 즉각적 감성적 언어는 얇아진다." 두꺼운 언어는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고 융해되어 만들어진 것이어서 함축의미들이 켜켜이 생기고, 얇은 언어는 직접적이고 가벼우며 사고나 성찰이 약하다는 것이다.
■언어의 두께는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에게는 곧 언어의 신화성이다. 대상만을 말하는 생산자 언어는 신화성이 빈약하고, 대상에 대해서 말하는 메타언어에는 신화가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박 교수에 의하면 인터넷 공간에서 만나는 언어 대부분은 얇은 언어들이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담론들 역시 날 것 그대로이다. 생산자의 체험적 시간과 그 순간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욕구의 파생물인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요소들, 억압된 요소들이 왜곡 변형의 형태로 등장한다.
■박명진 교수는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회화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의미전달보다는 감정, 느낌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는 이런 모습은 걸개그림, 대자보, 인터넷그림판 등 우리문화에서도 발견된다. 얇은 언어는 두꺼운 언어로 된 지배적 담론이 권위주의적, 억압적, 허위적일수록 비틀거나, 반발하는 방식(패러디)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얇은 언어는 제도권보다는 운동권, 산업화보다는 민주화, 보수보다는 진보, 전통적 미디어보다는 인터넷미디어에서 횡행한다.
■얇은 언어도 순기능이 있다. 두꺼운 언어가 그 무게 때문에 미처 포착하거나 표현하지 못한 대상과 의미를 놀라운 순발력과 사실적 어감으로 즉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폐적으로 고착되거나 우연성을 잃을 위험이 있는 두꺼운 언어에 자극과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민중화가 홍성담의 박근혜 후보를 풍자한 그림에는 얇은 언어가 가진 최소한의 양식(풍자)과 감성조차 없다. 언어가 아닌 엽기적이고, 모욕적이고, 패륜적 욕설일 뿐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192106092444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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