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영화를 찾은 관객 수가 어제 1억 명을 넘어섰다. 인구 대비 1명당 평균 2편을 관람한 셈이다. 200%에 이르는 자국영화 관람 비율은 영국(99%) 프랑스(35%)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9월 베니스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김기덕 감독의 쾌거와 더불어 역대 최고의 흥행으로 한국 영화의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1000만 관객을 넘어선 블록버스터가 두 편이나 나왔다. ‘건축학 개론’ ‘부러진 화살’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300만∼400만 관객을 기록한 흥행작들도 시장을 받쳐줘 이 같은 선전(善戰)이 가능했다. 성공의 공식에 안주하지 않고 소재와 장르를 개척해 관객층을 10, 20대에서 30, 40대까지 넓힌 것도 소득이다.
과거 한국 영화계는 수입영화에 의지해 연명했다. 관객들은 할리우드 영화라면 무조건 믿고 찾았다. 이제 상황은 역전됐다. 자국 영화에 대한 신뢰가 커지면서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 영화를 피해 개봉하려고 눈치를 볼 정도다. 국산 영화는 재능 있는 인재들이 모여 경쟁력 있는 영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유통배급 시장의 산업적 구조가 탄탄해지면서 비약의 계기를 맞았다.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앞서 2006년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의 축소를 결정했을 때 영화계는 ‘문화주권의 상실’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개방으로 잃는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다. 1988년 외화 직배의 빗장을 풀었을 때도 한국 영화는 다 죽을 것이란 예측이 빗나갔듯이 시장 개방을 맞아 영화계는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노력했다. 그 결실이 오늘의 대기록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영화 1억 명 시대는 스크린 독과점, 다양성의 위축, 흥행 양극화 같은 그늘도 남겼다. 지난주 민병훈 감독은 평단(評壇)에서 호평 받은 영화 ‘터치’의 조기종영을 결정했다. 상영관을 확보 못해 다른 영화와 번갈아 상영하는 현실에 대한 반발이었다. 대기업의 투자 유통 배급력이 강화되면서 잘되는 영화들이 극장을 싹쓸이해 저예산 영화를 잡아먹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독립영화들은 개봉 첫 주부터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상영되는 식이어서 관객을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축배를 들기 전에 대중의 사랑을 어떻게 지속시킬지 정부와 영화계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실험정신과 창의성을 앞세운 작고 알찬 영화들이 시장에서 살아남도록 상생과 공존의 토양을 갖출 때 한국 주류영화의 체질도 튼튼해진다. 영화 몇 편의 성공으로 산업을 견인하는 방식은 오래가기 힘들다.
http://news.donga.com/3/all/20121121/509931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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