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4. 11:21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죽은 북한의 김정일만큼 세계를 들었다 놨다 했던 인물도 흔치 않다. 드디어 대한민국에서 김정일에 비견됨 직한 정치인이 탄생한 것 같다.

“제가 영국에 있을 때 김정일이 원하는 게 뭔지만 알면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가 다 풀린다고 했다.”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민주통합당 전순옥 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주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단일화 협상중단 선언 뒤에 한 말이다. 안철수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며 “(김정일과) 똑같다”고도 했다.


親盧민주당 뒤흔든 ‘벼랑 끝 정치’

권력이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 권력을 얻고 유지하고 행사하는 언행이 정치라면, 지금 안철수의 정치력을 능가하는 사람은 없다. 어제 민주당은 안철수 측이 암시적으로 요구한 ‘충치’를 뽑아내는 것을 넘어서 지도부 총사퇴를 결의했다. 안철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12명의 예비후보 중 직업을 ‘정치인’으로 적은 유일한 사람답게 자신이 원하던 대로 민주당을 쇄신시킨 셈이다.

꼭 두 달 전 그는 출마선언에서 “이번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남은 생을 정치인으로 살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비(非)정치인으로 살았고, 대선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터다. 하지만 안철수는 정계에만 안 들어갔을 뿐, 2009년 ‘무릎팍도사’ 출연이나 ‘청춘콘서트’ 진행 전부터 이미 뼛속까지 정치인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권력은 불가피하고, 권력을 잘 다룰수록 더 나은 친구나 연인, 심지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권력의 법칙’을 쓴 로버트 그린은 강조했다. 이 법칙이 맞는다면 권력에 무관심한 척하면서 자신의 도덕성과 경건한 언동, 정의감을 과시하는 사람이야말로 권력게임의 고수다. 특히 권력게임에 능숙해지기 위해선 인간 심리를 꿰뚫어봐야 한다는 대목에선 아무리 도리질을 쳐도 안·철·수 세 글자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소설을 읽어도 줄거리가 아닌 주인공들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관심을 쏟는 사람이다. ‘금삼의 피’를 읽으면서도 왕인데 왜 불행할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왜 화를 내지? 생각하면서 이해하려고 애쓰다보니 “어떤 사람이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권력 획득의 가장 핵심적 열쇠가 사람들의 감춰진 동기를 파악하는 건데 안철수는 여기에 능했던 거다.

그린은 권력의 법칙을 48가지나 나열했지만 안철수에게는 압축성장의 나라, 21세기 융합스타일답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자신을 재창조해 지지를 얻어라. 고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권력과 연극의 관계를 처음 간파한 정치인이라면, 안철수는 권력과 예능프로의 관계를 처음 간파한 정치인이다. ‘말없이 입대’해 가족보다 일을 더 중시했고 ‘무상 주식배분’으로 나눔을 실천했으며 ‘1천만 달러 매각제의 거절’로 나라와 민족을 구했다는 내용은 팩트(fact·사실)와 상관없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아름다운 단일화’ 약발 있나

둘째, 메시아 전략. 16∼17세기 유럽의 만병통치약 장사치들은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속이기도 쉽다는 걸 알았다. 뭔가 위대하고 변혁적인 개념과 모호한 약속을 섞어 자극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는 열광했다. “현재의 복합적 문제를 푸는 데는 융합적인 사고와 수평적 리더십과 디지털 마인드가 필요하다. 내가 해온 일이 그런 일이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안철수의 말은 “내가 만병통치약을 들고 온 메시아다” 같은 환청으로 들린다.

셋째는 내가 돌린 카드로 게임하게 만드는 선택권 통제법칙이다. 민주당에서 후보단일화 없이는 정권 탈환도 없다고 믿는 한, 안철수가 어떤 패를 돌리든 민주당은 받을 수밖에 없다. 이를 너무 잘 아는 안철수는 불리하다 싶을 때마다 전격적 제안을 하고 ‘내가 하면 상식, 남이 하면 비상식’이라고 주장하며 국민 아닌 희망이 궁한 ‘궁민(窮民)’을 주문처럼 외쳤다. 대통령선거가 한 달 앞, 당초 약속했던 단일후보 확정이 일주일 앞이 된 지금 안철수는 원하던 것을 모두 가진 모습이다.

다만 마지막 권력의 법칙으로 ‘승리의 저주’라는 게 있다는 점은 기록해놔야 할 것 같다. 성공을 가져다준 그 법칙으로 계속 달려가면 벼랑 끝에서 고꾸라질 수 있다는 법칙 말이다.

한때 신선하게 다가왔던 안철수 현상도 그의 오만과 겹치면서 정치 피로증을 일으키는 분위기다. 안철수가 말한 새 정치, 말끝마다 되뇌던 ‘궁민이 이기는 단일화’가 결국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대통령병이었던가.

그가 비난했던 ‘수십 년 동안 정치 경제 시스템을 장악하고 소수 기득권의 편만 들던 낡은 체제’에서 안철수와 민주당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도 의문이다. 그들이 어떤 단일화를 해도 이젠 아름답게 보기 힘들다는 ‘궁민’의 심리까지 안철수가 그 노련한 정치기교로 달래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21119/509401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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