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3. 16:44

규제 대상이 된 '프랜차이즈 1등' 기업 어떻게 성장했는진 무관심
파리바게뜨, 본죽, 미스터피자… 부단한 노력과 혁신으로 성공해
자영업자 돕는다는 미명 아래 토종 전문기업 성장을 막아서야

 
레이 크록은 밀크셰이크 기계를 팔러 다니던 영업사원이었다. 그는 맥도널드 형제가 식당에서 쓴다며 밀크셰이크 기계를 한꺼번에 8대나 주문하자 호기심이 발동, 그 식당을 찾아갔다. 그는 맥도널드 형제가 만든 새로운 패스트푸드 만드는 방식에 홀딱 빠져, 맥도널드 형제와 공동 창업을 결심한다. 당시 그는 52세로 남들은 은퇴를 준비할 때였다. 그 후 레이 크룩은 맥도널드 브랜드를 사들여,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키워낸다. 현재 맥도널드는 글로벌 1등 프랜차이즈로 성장, 120개국에 3만3000개가 넘는 매장에서 하루 7000만명이 넘는 고객을 맞고 있다.

만약 레이 크룩과 맥도널드 형제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세계적인 성공은 고사하고, 국내 1등도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1등이란 시기와 질투는 물론 규제의 대상이다.

최근 대선 정국과 경제 불황이 맞물리면서 자영업자 보호를 위한 프랜차이즈 규제 논의가 한창이다. 프랜차이즈는 국내총생산(GDP)의 9%를 차지하고 관련 종사자만 150만명에 달하는 국가 경쟁력의 중추 산업이다. 소비자 열 명 중 여덟 명이 일반 점포보다 프랜차이즈 점포를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나 브랜드가 널리 알려진 상품을 좋아하면서도 프랜차이즈 1등 기업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다.

문제는 어떤 기업이 '얼마나 성장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성장했느냐'이다. 재벌에서 물려받은 자본과 규모의 힘으로 성장했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노력과 부단한 자기 혁신으로 성공을 일구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기업가 정신으로 성장한 전문 기업은 격려해주고, 소비자로부터 존경받는 게 마땅하다.

CJ나 대상 같은 대기업을 제치고 두부시장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풀무원은 설립 때 직원 10명의 영세 기업이었다. 당시는 두부가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었다. 이 때문에 영세업체가 만든 석회두부나 화학응고제 두부 같은 불량 두부가 사회 문제로 거론됐다. 이때 풀무원은 철저한 위생관리로 포장 두부라는 혁신적인 상품을 출시해 성공했다. 파리바게뜨 허영인 회장은 빵의 상태만 봐도 '공장 오븐의 윗불이 뜨겁다. 반죽 발효시간이 좀 길다'는 세밀한 부분까지 집어낸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빵에 미쳐서 작은 동네 빵집을 차려 고려당·태극당·신라명과 같은 선발 주자와 경쟁해 지금의 파리바게뜨를 키웠다. 본죽 김철호 사장은 IMF 당시 무역업을 하다 부도가 나서 숙명여대 앞에서 호떡장사를 했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한국의 죽(粥)을 연구, 현재는 전국에 1300개의 죽 전문 매장을 일궈냈다. MPK 그룹 정우현 회장은 미스터피자라는 토종 브랜드로 피자헛이나 도미노 피자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밀어내고 피자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김선권 사장이 시작한 블랙스미스는 미역국 파스타 같은 한국인 특성에 맞는 메뉴 개발로 외국계 브랜드 일색이던 이탈리안 음식점 시장에서 차별화를 이뤄냈다.

물론 재벌이 압도적인 자본력과 기존 유통망을 무기로 손쉽게 자영업자의 터전을 침범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규제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의 성장 과정은 보지 않고 단순히 크기만 가지고 사업 행태를 비난하는 것은 문제다. 또 자영업자를 돕는다는 미명 아래 토종 전문기업의 성장을 가로막아서도 안 된다.

동반성장이란 중소기업을 영원히 중소기업으로 남게 하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맥도널드처럼 경쟁력 있는 글로벌 전문기업이 탄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누구나 전문성을 가지고 공정하게 노력하면 존경받는 1등이 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주는 것이 강력한 기업가 정신의 촉매제이다.

 

 

 

김영수 조선경제i 대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12/2012111201017.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6:43

내가 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걸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투덜이여서가 아니다. 이 사회가 사람에 대해 무지하고 무도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그렇다. 17살 몽골 아동을 무자비하게 추방한 사건을 접하면서 또 그렇다.

 

이주노동자인 부모와 10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 소년은 어떤 전과도 없고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단지 미등록 이주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조차 접견하지 못한 채 홀로 추방당했다. 경찰과 법무부는 신속한 공조체계를 통해 17살 소년을 수갑 채워 연행하고, 보호소에 감금하고, 다시 수갑을 채운 채 공항에 데리고 가 일반인들의 왕래가 잦은 출국 통로를 지나 비행기 앞에서야 수갑을 풀어줬다. 후에 소년은 당시의 경험을 ‘감옥에 갔다 온 것 같다’는 말로 표현했단다. 유엔아동권리협약 가입국이며 유엔 인권이사국의 지위를 희망한다는 대한민국 정부가 지난 10월 초에 저지른 만행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부끄럽고 가슴이 시리는데 인권단체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비유하자면 분노유발자다. 법무부는 보도자료까지 내며 추방 과정에서 절차적인 문제는 없었다 강변하고,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 관계자는 ‘불법체류자를 발견하면 경찰은 그것이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출입국관리소로 통보하게 돼 있다’고 합을 맞춘다. 환상의 장단이다. 절차적 정당성만 확보된다면 미등록 대상이 갓난아기라도 강제추방을 할 태세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절차적 정당성, 말은 좋다. 그 번드르르한 말 속에 이런 사안에서 꼭 지켜야 할 아동의 인권은 무엇이며, 그들이 어떤 상처를 지니고 이 나라를 떠나게 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조금도 없다. 실제로 법무부는 소년이 몽골로 돌아가 현지에서 부모도 없이 어떻게 생활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알아보려는 어떤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절차적 정당성을 앞세우며 부모와 강제로 격리시켜 아이를 수갑 채워 추방했을 뿐이다.

 

부모가 소위 ‘불법’ 체류자인 외국인이면, 미등록 이주아동이면, 이런 반인권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조차 아무 문제가 안 되는가. 그럴 수는 없다. 추방 과정에서 아동에게 가해지는 벼랑 같은 상처조차 절차적 정당성이란 미명 아래 나 몰라라 한다면 그건 이미 사람이 사는 나라가 아니다.

 

인권단체들의 표현에 의하면 이번 사건은 ‘이 정권의 통치시스템에 큰 구멍이 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호들갑인가. 아니다. 이번 강제추방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음모론의 시각에서 해석할 만한 사건이 아니다.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에서조차 이 나라 행정기관들이 무심하게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일 중 하나다. 그래서 더 두렵고 아득하다.

 

어렵게 몽골 현지 학교에 입학한 소년은 10년간 한국에서 산 탓에 몽골 문자가 서툴러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강제로 부모와 격리된 상태라 정서적으로도 정상일 리 없다. 한국에 남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무기력감과 안타까움은 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한국 정부가 저지른 인권 만행의 결과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영화 제목을 빌려보자. ‘인권도 통역이 필요한가?’ 인권도 국가별로 등록해야 비로소 인권으로 인정해 준다면 그건 이미 인권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강제출국시킨 몽골 아동 김민우(빌궁)군을 즉각 재입국시켜 부모 곁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사는 나라다. 사람에게 무도하고 무지한 사회에는, 단언컨대, 미래가 없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0170.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6:42
세계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의 차기 최고지도자가 사실상 결정됐다. 미국에선 지난 7일 선거를 통해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고, 중국은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내부 토론과 검증을 거쳐 이미 합의한 시진핑 부주석을 곧 차기 당 총서기로 선출할 예정이다. 두 나라는 이렇게 서로 다른 최고지도자 선출 방식을 두고 각각 자신들의 강점을 주장하며 상대방의 제도를 비판한다. 미국은 다당제하의 보통선거만이 민의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중국은 이른바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를 통해 지도부를 선출함으로써 지난 60년간 강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자랑해왔다. 하지만 민주란 관점에서 보면 두 제도 모두 한계가 분명하다.

 

중국 체제의 한계는 보시라이 사태나 원자바오 총리의 부패 추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집단지도체제라곤 하나, 견제와 균형이 없는 1당의 권력독점은 지도층 내부의 암투와 부패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이다. 중국 국민이 지난 30년간 이룩한 경제성장의 과실 대부분을 권력을 등에 업은 약탈자들에게 빼앗겼다고 느끼는 것도 이런 권력독점과 무관하지 않다. 그 결과 중국은 사회주의란 이름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극심한 격차사회로 변모했다. 이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는 거의 5분마다 한 건씩 일어난다는 집단시위로 나타나고 있다. 공산당은 특권화돼 정부 관리 등 엘리트들이 다수를 점하고 중국 인민의 절대다수인 노동자와 농민의 비중은 30%에 지나지 않는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등 28헌장 주도세력이 중국은 말로는 인민민주를 주창하지만, 실제는 당 천하라고 비판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자오쯔양 전 총서기를 위시한 당내 민주파도 당의 권력독점을 폐기하는 정치개혁 없이는 중국 사회는 궤멸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서구 민주국가의 대표를 자임하는 미국의 제도가 그렇다고 나은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의 저자 로널드 드워킨은 “미국 정치는 끔찍한 상태”라고 개탄한다. 양대 정당이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사회 전체를 극렬한 의견대립의 장으로 만들어, 정치가 전쟁처럼 돼버렸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장 직면하고 있는 재정절벽 문제가 단적인 예다. 선거가 민의를 투명하게 반영하지도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자본가 등 이익집단이 그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선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다 보니 1인 1표가 아니라 1달러 1표가 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선, 투표장에 안 나가는 사람은 물론이고 나가는 사람의 상당수조차, ‘정치적 실향민’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다. 기득권에 터잡은 채 대립만 일삼아온 기존 정당과 왜곡된 언론지형 탓에 우리 사회는 극단적으로 분열됐다.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정당은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해내지 못하고, 대립이 아닌 공동선을 갈망하는 대다수 국민은 정치적 실향민 처지가 돼버렸다. 안철수 현상은 바로 이 정치적 실향민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정치적 양극화와 소외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새정치 공동선언을 하기로 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 국민에게 책임지는 정치로 국민을 정치의 주인 자리에 복권시키겠다는 다짐이기 때문이다. 양 진영이 합의한 새정치의 기본원칙은 ‘협력과 상생의 정치’, ‘민의를 올바로 대변하고 민생을 책임지는 삶의 정치’다. 아직 세부안이 다 나오진 않았지만 기본 방향은 옳다.

 

중요한 것은 선언의 기본정신이 단일화를 넘어 대선 이후까지 지속될 국민연대의 튼튼한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려면 단일화 협상 단계부터 양 진영은 작은 이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협력·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혼신을 다해 공정한 규칙을 만들되 어느 쪽도 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또 지더라도 기꺼이 협력함으로써 기어이 삶의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일 때 국민은 감동으로 화답할 것이다.

 

 

권태선 편집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01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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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6:42

집에 들어온 딸이 엄마한테 투덜댄다. “데모 때문에 차 막히고 난리 났어요.” 엄마가 딸에게 핀잔을 주며 말한다.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하니? 여긴 미국이 아냐.” 프랑스 영화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의 한 장면이다. 파업을 하면 불편이 따를 수밖에 없고 파업한다고 불평하는 것은 천박한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나 가능하다는 의미다. 어느 강연에서 하종강 선생이 소개한 이 장면이 불현듯 다시 떠올랐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면서 말이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금요일 하루 총파업에 나섰다. 파업에 참가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조리사, 청소원, 행정보조원 등 전국 3443개 학교 총 1만5897명에 이른다.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뻔하다. “학교급식 중단”, “급식대란, 학생들 빵·김밥 들고 등교”, 심지어 “빵만 먹으니 배고파”라는 제목의 기사도 보인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아이들의 교육 활동에 지장을 주는 파업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엄정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여론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밥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거나 능력이 없어서 비정규직이 되었으면 참고 일할 것이지 욕심부리지 말란다. 교과부, 언론, 그리고 무턱대고 비난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하겠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는 교과부의 태도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 교사와 달리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파업을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파업에 앞서 조정과 조합원 찬반투표 등 필요한 모든 절차를 거쳤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아이들의 교육에 지장을 주는 파업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두루뭉술한 말로 파업을 호도하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파업이 가져오는 불편함에 대해서만 원색적으로 보도한다.

 

이런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중교통의 파업에 대해서는 ‘교통대란’, 화물노동자 파업에 대해서는 ‘물류대란’이라는 표현을 고유명사처럼 사용해왔다. 교과부와 언론의 농간에 넘어가는 사람들은 어떤가. 아이들 밥이 귀한 만큼 그 밥을 지어주는 노동자의 소중함을 이번 기회에 깨달을 수는 없는 노릇인가. 밥하고 청소하고 업무를 보조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능력이 없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학교 비정규직 조리사도 기능직 공무원인 조리사, 소위 정규직 조리사처럼 국가기술자격인 조리사 자격을 따야 한다. 공무원 총정원 제도가 도입되면서 정부가 정규직 조리사를 뽑지 않았을 뿐이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주된 이유에는 ‘교육감 직접고용’과 ‘호봉제 실시’가 있다. 원래 학교 비정규직은 교육감이 선발했다. 지금도 학교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은 교육감이 결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파업에 앞서 고용노동부 역시 단체교섭의 주체는 학교장이 아니라 교육감임을 분명히 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노조법상 사용자로 해석되는 교육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호봉제 실시’는 어떤가. 같은 업무를 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호봉제’의 적용을 받는다. 그래서 근무연수가 늘어감에 따라 이들의 임금도 올라간다. 그러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는 그렇지 않다. 1년 일한 조리보조원과 10년 일한 조리보조원의 임금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불편함을 이유로 파업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비정규직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법으로도 금지되어 있다. 타인을 향해 겨눈 화살은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변호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0177.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6:41

뛰어난 여성은 남성적인 공격성으로 판단되는 게 아니다
힘들 줄 알면서도 옳은 일 실천하는 행동이 여성성의 표상

 

 

대표적인 여성 과학자를 꼽으라 하면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퀴리 부인'의 이름을 들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명성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교과서나 위인 전집에 퀴리 얘기가 자주 언급된 까닭이리라.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레이첼 칼슨'도 이에 못지않은 대표적 여성과학자라 생각된다. 특히 우리가 '여성'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는다면 말이다. 최근에 대선 후보를 둘러싸고 '여성성' 논란이 불거진 시점에서 칼슨 여사의 삶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잘 알려진 바처럼 칼슨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집필한 저자다. 칼슨 여사는 이 책에서 생태계 연구의 중요한 발견 중 하나인 '생물농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람들은 술을 엄청나게 마시지만 병으로 발전할 정도만 아니라면 대부분 몸에 알코올이 남아있지 않다. 그 이유는 술은 물에 녹는 '수용성'이라 몸에서 분해도 되고 땀이나 소변으로 쉽게 배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물에 녹지 않고 지방에만 녹는 '지용성' 물질의 경우에는 생물체 몸 안으로 소량만 들어와도 몸 속 지방에 차곡차곡 쌓이다. 또 생태계에서는 '먹이망'을 통해서 식물플랑크톤은 동물플랑크톤에게, 또 이들은 작은 벌레, 물고기, 큰물고기 등을 거쳐서 새나 더 큰 동물에게 잡아 먹히는 순차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이런 지용성 물질들은 각 먹이 단계에서 계속적으로 농축되기 때문에 먹이망의 위로 올라갈수록 생물들은 고농도 지용성 물질을 먹게 된다. 이런 대표적인 지용성 물질이 농약을 비롯한 대다수의 합성 화학 물질이다. 이 책에서 다룬 DDT라는 화학물질은 원래 해충 방제를 위해 사용한 약이다. 과거 미국에서는 공중에서 비행기를 통한 대규모 살포가 이뤄졌다.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가 없다는 이론과 벌레들은 모두 박멸해야 한다는 공격성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농축을 통해 DDT는 새의 몸에 높은 농도로 쌓이고, 그 부작용으로 새알의 껍질이 얇아져 결국 봄이 되어도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다는 경고를 이 책은 담고 있다.

칼슨 여사는 대학에서 해양생물학 석사학위를 받긴 했지만 이 화학물질을 직접 분석한 과학자는 아니다. 그보다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과학책 집필로 유명해졌다. 그녀의 능력은 어려운 과학적 발견을 대중 특히 가정주부까지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아름답고 강력한 필치로 표현한 점이다. 그보다 더 주목할 점은 그녀가 가난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장했으며, 수많은 병마와 싸우며 자신의 일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또 이 책이 나오면 벌어질 소동을 예상하면서도 인류 전체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이 위험을 꼭 알려야 한다는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예상대로 책이 나오자마자 재벌 화학 회사와 이들의 지원을 받는 과학자들의 공격, 비판 그리고 소송에 시달렸다. 이 비난들 중에는 칼슨이 살충제 사용에 반대하여 벌레가 창궐케 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농업 생산성을 낮추려는 소련의 음모에 따라 책을 집필한 '빨갱이'라는 것도 있었다. 미국에서 50년 전에 있었던 이런 유치한 비난이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세세한 부분의 오류에 대한 계속되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침묵의 봄은 여전히 선진국 대학에서는 현대 환경문제의 이해를 위해 꼭 읽어봐야 할 고전으로 손꼽힌다. 이 책을 통해 환경과 생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혁명적으로 변화했고, 미국 환경청 신설이나 다양한 환경법령의 제정도 이루어 졌다. 어떤 이는 아직도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칼슨 여사의 책 때문에 DDT 생산이 중단되어 아프리카의 말라리아가 번창했고, 이 때문에 죽은 사람의 수가 히틀러가 학살한 사람의 수보다 많다고 말이다. 만일 누군가가 항생제의 오남용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항생제 부족으로 아프리카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되묻고 싶다.

칼슨 여사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출산의 경험도 없었다. 그러나 고아가 된 친척 아이를 양육했으며, 여성성의 상징인 가슴을 수술로 제거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뛰어난 필치로 큰 업적을 남겼다. 뛰어난 여성은 남성적인 공격성이나 생물학적 특성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는 칼슨 여사가 보여준 바와 같이 약자에 대한 이해와 고려, 자연에 대한 경외와 조화, 그리고 힘들 줄 알면서도 옳은 일을 실천하는 행동이 진정한 여성성의 표상일 것이다.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11210235121780.htm

 

 

Posted by 겟업
2013. 1. 3. 16:40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게 일본에 더 유리한가.’

미국 대선을 앞두고 최근 몇 주간 일본 인터넷을 달군 논쟁이다. 오바마 지지가 좀더 많았다. 오바마 취임 초기 미일동맹에 균열이 있었지만 어릴 때 모친과 함께 가마쿠라(鎌倉)를 여행하며 녹차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던 경험을 소개하는 등 친근감을 보인 것도 호감도를 높였다. 롬니는 “잘 모르겠다”는 평가가 많았다. 일본을 언급한 적도 거의 없고 인연도 없다는 것이다. 선거 기간에 그나마 내놓은 발언은 “우리는 일본이 아니다”였다.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처럼 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일본의 기대대로 오바마 대통령은 7일 재선에 성공했지만 일본은 기대보다 근심이 많은 표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과 중남미계, 여성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지지로 당선됐다. 선거 결과 드러난 미국의 이런 정치 지형은 과거사를 부정하고 보수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에 유리할 게 별로 없다. 일본의 한 정치학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만 하더라도 미국이 일본 편을 들어줄 리 없다. 이번에 미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20명, 하원의원 435명 가운데 81명이 여성 의원이다”고 말했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차기 주일 미국대사 유력 후보라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도 일본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그는 일본 정부 인사들이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부정하는 것에 대해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고 지난달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일본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불안감도 읽힌다. 요시자키 다쓰히코(吉崎達彦) 소지쓰종합연구소 부소장은 “미국에서는 이미 대일 문제가 이슈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고 말했다. “얼굴을 익힐 만하면 바뀌는 일본 총리들과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미국이 기대 수준을 대폭 낮췄다는 보도도 나온다. 일본은 오바마 정권 출범 이후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 등 미국의 핵심 이익과 직결되는 각종 협력 사안에서 미국의 불신을 자초해 왔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도 미심쩍어하는 분위기다. 선거 기간 오바마와 롬니 두 후보가 경쟁하듯 중국 때리기에 나섰지만 이는 선거용일 뿐 무게중심은 협력에 가 있다는 게 일본의 관측이다.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미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면서도 영유권에 대해서는 엄정 중립을 선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허용 범위’를 시험하듯 센카쿠 도발을 일상화하고 있다. 일본의 항의는 안중에 없다는 태도다.

일본에서는 미국의 덫에 걸려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은 일본이 (자국의) 품을 떠나지 못하도록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 하나씩 영토분쟁을 남겨뒀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1950년대 옛 소련과 북방영토 2개 섬 반환 협상에 나서자 “그렇다면 오키나와를 포기하라”며 협상을 중단시킨 바 있다.

일본의 불안감은 역설적으로 미국 매달리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동시에 핵무장과 군사력 강화 등 자구책 마련 수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평화헌법을 고치고 군비를 아무리 증강해도 이웃 나라들과의 불신이 남아 있는 한 근본적인 불안은 해소될 수 없다. 국제적으로 갈수록 고립될 뿐이다. 다행히 일본에는 남은 반전(反轉) 카드가 있다. 과거사를 청산하고 아시아의 친구로 돌아오는 것이다.

 

 


배극인 도쿄 특파원

 

 

http://news.donga.com/3/all/20121112/50779086/1

 

 

 

Posted by 겟업
2013. 1. 3. 16:38

덴마크 중도좌파 정부가 비만세를 폐지하기로 했다. 직전 정부는 지난해 10월 1일부터 지방 함량 2.3%를 초과하는 고지방 식품에 대해 포화지방 1kg당 16덴마크크로네(약 3400원)의 비만세를 세계 최초로 부과했다. 국민의 47%가 과(過)체중이고 13%가 비만인 상황에서 고지방 식품에 세금을 부과해 섭취를 줄이려는 의도였다. 국민의 건강도 챙기고 세수도 늘어난다면 꿩 먹고 알 먹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비만세 도입으로 버터 가격은 14.1%, 올리브유는 7.1% 인상됐고 우유 고기 피자 가격도 줄줄이 올랐다. 하루아침에 식습관을 바꿀 수 없었던 국민은 저렴한 식품을 구입하기 위해 독일 국경을 넘었다. 덴마크 식품가게들은 문을 닫고 실업자가 늘어났다.

좋은 의도의 세금이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시장을 왜곡시킨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비만세는 취지는 못 살리고 일자리만 줄인 실패 사례로 남게 됐다. 선의(善意)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사례는 세금 정책에서 많이 나타난다.

1696년 프랑스 루이 14세와의 전쟁자금이 필요했던 영국 윌리엄 3세는 주택 창문에 세금을 부과하는 창문세를 도입했다. 창문이 7개 이상일 경우 개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자 영국 집들은 창문을 하나둘 줄이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창문 없는 집까지 등장했다. 프랑스 창문세는 영국과 달리 창문의 개수가 아닌 폭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프랑스 국민은 폭이 좁은 창문을 만들고 창문을 출입문으로 사용해 세금을 피했다. 창문세는 프랑스 건축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의 개혁군주 표트르 대제도 국고를 충당하기 위해 귀족들이 목숨처럼 아끼는 수염에 세금을 매겼다. 귀족들은 수염을 모두 밀어버렸다. 세금 걷을 욕심에 사회 환경이나 인간 심리를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좌절된 역사적 사례들이다.

덴마크 국민은 정부가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한다. 조세부담률은 47.1%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런 덴마크에서조차 정부가 국민의 식습관을 바꿔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도입한 세금이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 대선후보들은 경쟁적으로 복지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재원마련 방안은 결국 증세(增稅) 카드밖에 없다. 세 후보는 덴마크 비만세 폐지에서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을 얻기 바란다.

Posted by 겟업
2013. 1. 3. 16:35

3일 또 한 사람의 소방관이 숨졌다. 인천 부평소방서 김영수 소방경(54). 불이 난 건물 안에서 실종됐다가 이튿날 새벽 발견됐다. 유독가스를 마셔 의식과 맥박이 멈춘 상태였다. 모친을 간병하다 결혼도 미루던 그는 모친이 돌아가신 후인 지난해 10월에야 결혼한 신혼이었다.

그가 죽은 지 불과 9일. 벌써 잊혀지고 있는 느낌이다. 소방관 순직이 알려질 때마다 요란했다가 금세 사그라지던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반복된다. 이기환 소방방재청장(57)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5층 집무실로 들어서 이 청장과 악수하는 순간, 기자는 그에게서 매캐한 냄새를 느꼈다. 이 청장은 “그럴 리가 없다”며 껄껄 웃었지만 30년 넘게 화재 현장을 지킨 사람의 몸에 화마(火魔)의 냄새가 배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들어 벌써 6명이 숨졌다.

“연평균 6.9명이 죽는다. 아무리 줄이려 해도 안 된다. 작년엔 8명이 순직했다. 경찰관, 군인 순직자가 매년 1, 2명인 것에 비하면 너무 많다. 부상자는 매년 340명 정도나 된다.”

그에게서 듣는 소방관들의 처우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2008년에야 3교대 근무가 시작됐지만(그전에는 24시간 맞교대) 아직도 완전한 3교대를 못하고 있다. 2만4000여 명이 더 필요하다. 소방대 한 팀에 기본적으로 10명, 한 곳에 30명이 필요하다. 현재 평균 21명이 3교대를 하고 있다. 그나마 광역시나 그렇고 도(道) 단위는 15명이 한다. 일이 터지면 17∼20km나 떨어진 다른 지역 대원들을 부를 수밖에 없다. 소방대원 한 명이 담당하는 국민은 1208명이다. 미국(1075명) 프랑스(1029명) 일본(820명) 홍콩(816명)보다 많다. 주당 근무시간도 미국 48시간, 일본 42시간, 우리는 56시간이다. 평균 수명은 58.8세다. 국내 다른 제복 직종보다 3∼4년은 짧다.”

장갑과 함께 탄 대원의 손 보고 펑펑 울어

그의 말이 잠시 멈췄다가 한숨과 함께 이어졌다.

“작년 강원 영월에서 소방관이 순직했는데 그때도 겨우 3명이 출동했다. 물에 떠내려간 아이를 구하겠다고 아버지가 뛰어들려는 것을 말리다 대원이 구하겠다고 들어갔는데 물살이 너무 세 몸에 맨 로프가 끊어져 죽었다. 안전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2월 부산의 한 병원에 들렀다가 그가 펑펑 울었다는 뉴스가 기억나 물었다.

“양손 피부가 벗겨져 괴로워하는 소방관 때문이었다. 안전장갑이 없어 일반 장갑을 끼고 출동했다가 장갑이 타 녹는 바람에 중화상을 입었다. 소방관 근무복이 폴리 계열이라 불이 붙으면 완전히 재가 된다. 국비 402억 원이면 낡은 장비를 교체할 수 있는데…. 우리는 소방업무가 모두 지자체로 이관돼 총 소방예산에서 국고 지원 비중이 1.8%(약 400억 원)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평균 얼만지 아나? 67%다. 고품질 방수 방화복 구비율은 미국의 50% 수준밖에 안 된다. 화재 진압에 필수적인 공기호흡기도 2001년에야 보급됐다. 그래도 1600여 개가 부족하다. 마스크만 쓰고 투입됐던 시절이 10여 년 전이고 호흡기도 한 대를 두 명이 나눠 썼던 시절에 비하면 크게 발전했지만 아직도 장비 부족으로 진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장에 투입된 대원들의 동선이 파악되지 않아 개인 판단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번에 순직한 김 대원도 마지막 교신 때 ‘지하 3층’이라고 답했다는데, 그 건물에는 지하 3층이 없었다. 공포심 때문에 순간적인 착오를 일으킨 것 같다.”

―지난해 9월 미국 CNN머니는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도 연소득 10만 달러(약 1억 원)가 넘는 직업군으로 소방대장, 항공관제사, 원자로관리사 등을 꼽았다. 미 소방대장 평균 연봉은 7만3000달러(약 7900만 원)이다. 이 중에는 12만1000달러(약 1억3000만 원)를 받는 소방대장도 있었다. 우리는 어떤가.

“대부분 대졸 이상으로 현장 경험도 적지 않지만 급여는 미국과 비교할 수가 없다.”

이 청장에게서 받은 소방공무원 봉급표를 보니 9급 소방사 월급이 129만9900원, 미국 소방대장격인 소방정, 소방준감은 230만∼260만 원이었다. 월급 외 현장 근무자들에게 지급되는 생명수당은 출동횟수와 관계없이 월 13만 원(위험수당 5만 원+화재진압수당 8만 원).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투입될 때 지급되는 수당이 연간 156만 원이었다.

―지난해 6월 소방방재청이 3만여 대원의 정신건강을 조사했더니 1452명이 정밀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에선 소방서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심리치료사를 둔다는데….

“끔찍한 화재현장을 겪은 대원 대부분이 ‘살려 달라’는 환청에 시달리고 죽어가는 사망자의 모습이 꿈에 나타난다며 괴로워한다. 자살하는 대원도 있다. 그동안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병력(病歷)이 남는 점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못했는데 작년에야 처음 정신치료비용으로 3억5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총 5억8000만 원 정도는 필요하다.”

이 청장 자신도 우울증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오전 1시에 세탁소에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뛰어들자마자 발밑에 뭉클한 것을 밟았다고 느낀 순간, 사람이 마네킹처럼 벌떡 일어나는 것 아닌가.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지금도 생생하다.”

―처우가 그렇게 안 좋은데 소방관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웃으며) 처음부터 소방관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러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어쩌다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6개월만 지나면 사명감이 생긴다. 사람을 살렸다는 보람이 쌓이면서 ‘숙명’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는 “미국 소방관들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9·11테러’가 났을 때 무너지는 빌딩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는 소방관들에게 사람들이 ‘왜 올라가느냐’고 묻자 ‘내가 아니면 누가 (사람을) 살리겠나. 이것은 나의 숙명’이라고 했다.”

그가 갑자기 책상서랍을 열었다. 철로 만든 둥근 메달이 나왔다. 9·11테러 때 순직한 343명의 소방관을 기리는 추모 메달이었다. 앞에는 ‘343’이란 숫자가, 뒤에는 ‘소방관의 기도’가 씌어 있었다. ‘신의 뜻에 따라 제가 목숨을 잃으면 신의 은총으로 아내와 가족을 돌봐주소서.’

복합재난시대에 맞춰 전담기구 만들어야

실제로 미국 소방관들은 영웅대접을 받는다. 2006년 미국 시카고대 사회총조사에 따르면 소방관 직업만족도(80%)는 성직자(87%)에 이어 2위였다. 삶의 행복지수도 성직자에 이어 2위였다. 우리는 어떨까. 이 청장이 2012년 한국고용정보원이 조사한 직업만족도 자료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747개 직종 중 248위다.”

그는 “돈도 돈이지만 소방관들에 대한 대접이 차가울 때가 많아 서운하다”고 했다.

“일은 많고 사람은 적다 보니 건축물소방검사를 기본 업무에서 빼고 ‘소방특별조사체제’법령에 따라 특별한 경우에만 소방검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5월 5일 9명이 숨진 부산 시크 노래방 화재 사건 때 화재 책임이 평소 소방검사를 안 한 소방청에 있다며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이미 책임소재가 없어졌는데도 화재만 났다 하면 소방청에 떠넘기는 상황이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소방서 하면 불 끄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옛날 얘기다. 119를 이용하는 시민이 연간 2100만 명이다. 화재 진압은 기본이고 이번에 구미 불산 사고 같은 유독물질 사고, 구제역 같은 전염병, 선원 구조, 산악 구조는 물론이고 하수구에 빠진 사람까지 구조한다. 테러가 나도 119로 신고가 들어온다. 과격시위가 벌어질 때에는 구급차에 소방관들이 대기한다. 얼마 전에는 보건복지부 업무였던 응급의료서비스 ‘1339 서비스’까지 넘겨받았다.”

이 청장은 “요즘은 한마디로 복합재난 시대인데 전담기구가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예전엔 불이면 불, 물이면 물 하는 식으로 단순했는데 이제는 대형화 복합화됐다. 그런데 재난전담구조가 없다. 구미 불산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불산이 새고 있다고 119에 처음 신고가 들어왔는데 불산이 뭔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방대원들이 투입됐다. 가스가 계속 누출되니까 방호복을 입고 물을 뿌리며 가라 앉혔는데 확산이 되어버렸다. 사실 소방대원 역할은 ‘현장 진압’에 국한한다. 초동 진압부터 전문가들이 투입되고 재난이 일어난 후에는 사후 관리나 이재민 관리 등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어야 하는데 지방자치단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미국은 모든 재난에 중앙통제기능을 하는 연방국토청이 있고 그 밑에 분야별 집행기구가 있다. 경제규모 10위라고 하지만 재난 대비 수준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소방직 출신의 초대 청장이기도 한 이 청장은 3대가 소방관이다. 부친은 1986년 1월 19일 대구 화재현장에서 유독가스를 마시고 한 달 뒤 순직했다. 부친의 이름은 천안 중앙소방학교 소방충혼탑 306인 위패에 새겨져 있다.

아버지 보고 소방관은 절대 안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늘 새벽에 출근했다. 퇴근할 때는 늘 숯 검댕이 되어 돌아왔다. 무전기를 끼고 살며 시도 때도 없이 비상소집에 불려나가고 휴가도 없이 일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절대 제복은 안 입겠다’고 생각했는데…어쩌다 보니 나도 대를 잇고 있다(그는 1977년 경북 소방관 공채 1기 시험에 합격했다). 아들도 2010년 공채시험을 거쳐 소방관이 돼 강원 원주소방서에서 일하고 있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는 그는 대구 북부소방서장 시절 하수구에 실종된 여학생을 수색하다 세 명의 부하가 죽은 일을 가장 가슴 아픈 일로 꼽았다.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119를 너도나도 쉽게 불러버리면 정작 긴급한 곳에는 못 간다. 작년에는 소방대원이 고양이를 구하다 추락사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너무 쉽게, 예를 들어 문 잠김 해제 같은 작은 일에도 119를 부른다. 미국에서는 소방관이 순직하면 지역 주민들이 탑을 만들어 기린다. 미국만큼은 아니라도 소방관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청사를 나오면서 기자는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야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무상복지 공약을 지키려면 100조 원 이상이 들어간다. 정치란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http://news.donga.com/3/all/20121112/50779125/1

 

 

 

Posted by 겟업
2013. 1. 3. 16:34

올해 말 남쪽에선 지상파 아날로그방송 시대가 완전히 끝난다. 그런데 이 때문에 가장 슬프거나 기쁠 사람은 의외로 북쪽에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은 북한 주민은 NTSC방식의 남쪽 신호를 잡을 수 있는 외국산 TV로 몰래 한국 방송을 시청해왔다. 북한 TV의 절대 다수는 수입산이다. 남쪽의 방송 전파는 육지로는 평양까지, 산이 없는 서해 바다 연안에선 신의주까지 간다. 남쪽 사람들은 디지털TV를 사거나 지금 사용하는 아날로그TV에 정부가 지원하는 수신장비만 달면 문제가 없지만 북한 주민은 이젠 남쪽 방송을 영영 볼 수 없게 된다. 북쪽 주민이 최신 디지털TV나 수신 장비를 구하기는 여의치 않다. 돈도 돈이지만 간첩 색출 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선 이미 지난달 25일로 아날로그방송이 종료되면서 북한 강원도 주민들은 울상이라고 한다. 내년이면 지상파를 통해 한국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곳은 북-중 국경 일대 지역뿐이다. 이곳 주민들도 한국 TV는 직접 볼 순 없지만 중국산 ‘MP4’(한국의 DMB 기기와 유사)나 ‘노텔’(TV 시청이 가능한 소형 노트북)을 몰래 들여와 중국 방송사들이 틀어주는 한국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반면 휴전선 일대에 ‘한류’를 실시간으로 전하던 공포의 남쪽 전파를 남쪽이 알아서 중단해주니 북한 통치자들에게는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 와중에 북한 당국은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짓을 벌이고 있다. 군사분계선 인근 지역 사람들이 TV로 북한 방송만 볼 수 있도록 채널을 강제로 고정해버리는 소동을 벌이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한국 방송을 못 보게 한다면서 TV 채널 변환장치에 봉인도장을 찍거나 납땜을 했고, 심지어 TV 리모컨까지 빼앗아갔다. 그래도 남쪽 TV 맛에 빠진 사람들은 봉인도장이나 납땜을 몰래 다시 뜯어내 한국 방송을 보다가 당국이 검열을 나오면 다시 붙여 처벌을 피해갔다. 그래서인지 북한 당국자들은 지난해부터 전혀 뜯을 수 없는 초강력접착제로 아예 채널을 영구 고정시키고 있다고 한다.

북한 TV 방송체계는 위성으로 쏘는 중앙TV 신호를 각 지역 초단파중계소들이 받아 다시 중계하는 식이다. 지역마다 TV 주파수가 서로 다르다. 채널을 고정시켜 버리면 그 TV는 다른 지역에서는 못 쓴다. 북한에서 TV는 집에서 가장 비싼 재산이다. 어떤 TV가 있느냐에 따라 밖에서 어깨에 힘 좀 줄 수도 있고 기가 죽을 수도 있다. 한국으로 치면 자가용 승용차쯤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귀중한 재산이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바보상자’가 되는 꼴이다.

당연히 주민들이 ‘뿔’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당국도 불만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는지 “김정은 대장의 배려로 앞으로 휴전선 인근 북한 지역에 우선적으로 유선 TV망을 설치해 더 좋은 화질로 조선중앙TV를 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달래고 있다 한다. 하지만 그게 말뿐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올해 3월 한국 지역 신문이 김정일 사진을 사격표적지에 사용했다며 북한이 거세게 반발했을 때 나는 지역의 작은 신문 보도까지 체크하는 북한의 정보력에 놀랐다. 그런데 TV 채널 고정 소동을 보면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방송 종료 광고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 한국 TV는 안 보고 사나? 북한의 대남 담당자들은 인터넷에서 ‘김정일’ ‘김정은’만 검색하나? 그래도 동아일보는 보겠지 싶어 한마디 해주고 싶다.

“어이구, 이 사람들아. 헛고생 그만해. 여긴 아날로그 시대가 사실상 끝났어.”

주성하 국제부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21112/50779140/1

 

 

Posted by 겟업
2013. 1. 3. 16:33

일자리 문제를 취재한 지 10년쯤 됐다. 과연 해법을 찾았을까. 안타깝게도 못했다. 그건 정부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손쉬운 방법이 있긴 하다. 매년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웃겠다.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가당하기나 하냐고. 뉴 노멀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등장한 새 경제질서다. 대표적인 게 저(低)성장과 고(高)실업이다. 그런데 저성장은 그렇다 치고, 마냥 고실업마저 당연시해서는 안 될 일. 다들 경기 대침체를 전망할 때 “내년 봄엔 살아난다”는 제러미 시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의 예측이 있는 것처럼 역발상적 고실업 해법은 없을까.

얼마 전 대기업 CEO의 고민을 들었다. “신입사원 연봉이 너무 높다.” 아닌 게 아니라 그 기업은 웬만한 곳 초봉을 훨씬 능가한다.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올해 4년제 대졸 신입사원 평균연봉은 대기업이 3581만원. 27세 대졸 남자사원 기준으로 상위 10%에 해당하는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순간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신입사원 연봉을 조금이라도 낮춰 그만큼 사람을 더 뽑는다면? 첫 번째 과격 제안이다. 중국 고전과 역사를 맛깔스럽게 강의하는 이중톈(易中天) 교수는 “공산주의의 산(産)은 재산의 산이 아니라 생산의 산”이라고 했다. 이를 취업에 적용해봤다. 연봉을 깎아 사람을 더 뽑는 것. 그것은 재산을 나눠 갖자는 게 아니라 생산활동을 분담하자는 것. 웬 공산주의 방식이냐고? 생각을 확 바꾸지 않고는 해법이 없기에 하는 얘기다.

자, 그럼 이제 기업 반응을 떠볼 차례. 몇몇에 의견을 물었다.

삼성=“뭐라고 답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LG=“직원 사기와 역량을 고려해야 한다. 연봉을 조율해서 채용에 집중하는 건 어렵다.”
롯데=“연봉이 전부는 아니지만 연봉 경쟁력이 있어야 좋은 인재가 온다.”

대체로 부정적이었지만 “사회적 합의가 있고 지속적으로 한다면…”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연봉이 조정되더라도 인원을 늘린다는데 마다할 구직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고액 연봉을 받겠다는 사람은 그런 곳을 찾아가면 될 테고.

질문을 추가했다. “면접 인원이라도 크게 늘린다면.” 대답은 엇갈렸다. “사실 스펙이 천편일률적이다. 업무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겠으나 두 배 늘리는 것을 검토 중.” “기회 보장 측면에서 좋은 방법이나 뽑는 인원을 늘리지 않고는 조삼모사.” 경쟁률 기본이 수백 대 일이다 보니 구직자들은 “면접 기회만이라도 달라”고 하소연한다. 그렇다면 기회를 확 늘려보자. 뽑고 싶은 사람이 더 많아질 테고, 그만큼 채용인원이 늘 수도 있다.

과격 제안 두 번째는 상생자금 활용이다. 처우 때문에 인재가 중소기업에 안 간다는 미스매치 해법으로 요즘 활발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자발적이든 정부가 밀어붙이든 간에 대기업은 협력업체에 수천억원씩 지원한다. 어차피 쏟아붇는 돈이라면 3분의 1 가량 채용에 써 보자. 대기업이 채용을 늘린 뒤 일정 인력을 중소기업에 파견하는 식이다. 파견된 인력은 대기업 봉급으로 중소기업에서 일하게 된다. 그들은 대기업에서는 보지 못하는 중소기업의 장점을 익힐 수 있고, 대기업은 파견 인력을 순환시킴으로써 인재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광야로 보낸 자식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보낸 자식 콩나물이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시인 정채봉의 ‘콩씨네 자녀교육’).

세 번째 과격안은 될성부른 나무 ‘일감 몰아주기’다. 이건 창업을 통한 구직에 해당된다. 위 제안들과는 달리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봐야 한다. 창업은 위험성이 크고 철저히 자기 책임이기 때문이다. 창업 희망자들을 만나 보면 공공기관 창업지원의 가장 큰 문제점이 천편일률적 소액 배분이다. 이래서는 모두 망한다. 과감한 차등이 필요하다. 에인절 투자자가 하는 방식이다.

결국 실업률 해소의 열쇠는 대기업이 갖고 있다. 가뜩이나 장사 안되는 마당에 부담이 된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제시된 방법들은 현재도 대기업이 들이는 비용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발상만 전환하면 된다. impossible(불가능)에 점 하나만 찍으면 I’m possible(가능)이다.

 

 

정선구 산업부장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856064&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3. 16:31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가 추진하는 신당이 일본 정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비례대표 선거 때 어떤 당에 투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시하라 신당'은 9%를 얻어 집권 민주당(10%)과 차이가 거의 없었다. 특히 도쿄권에서는 이시하라 신당이 18%로 민주당(5%)을 압도했다. 이런 조사결과를 토대로 이시하라는 일본유신회와 '우리 모두의 당' 등 제3세력 연합을 결성, 다음 선거에서 중의원 의석 480석 중 100석은 얻을 것이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야당인 자민당이 제1당이 돼도 과반 의석을 얻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이시하라 등의 제3세력이 연립정부에 참여하거나 캐스팅보트를 쥐고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평화헌법 파기론'을 주창하는 이시하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장애인·노인·여성·인종 차별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외국의 일왕(日王) 사죄 요구에 대해서는 "예의가 없다"며 품격(品格) 운운하는 일본이지만 이시하라의 망언에는 너무 관대하다. 8선 의원과 두 차례 장관을 지냈으며 도쿄도지사를 4번 연임한 이시하라는 거의 1년마다 바뀌는 총리보다 어쩌면 더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수십권의 소설이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국민작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예의 바르고 질서 있고 남을 배려하는 일본인과 이시하라의 망언을 용인하는 일본 사회 사이의 괴리(乖離)에 절망하게 된다.

이시하라의 인기를 카리스마 때문으로 해석하는 일본인이 많다.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이 마치 결단력 있는 정치인의 상징처럼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는 3·11 대지진과 관련, '천벌(天罰)'이라는 망언을 한 직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압승했다. 일본 사회는 그에게 망언(妄言) 면죄부라도 부여한 듯하다.

그는 일본 국익에도 치명타를 가했다. 중·일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권을 강화한다며 도쿄도에서 구입을 추진, 일본 정부의 센카쿠 국유화를 촉발시켰다. 센카쿠 국유화는 중국의 반일(反日) 데모와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져 일본 자동차의 판매가 반 토막 나고 중국 수출도 10% 이상 감소했다. 센카쿠 주변 해역에는 중국 감시선이 상주해 일본의 영유권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이시하라의 망언에는 전염성이 있다.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 하시모토 도루 일본유신회 대표 등의 망언이 이어지는 것도 일종의 '이시하라 벤치마킹'이다. 이들은 강력한 일본을 만든다는 명분을 앞세워 망언을 남발하지만, '이상한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자초할 뿐이다. 전범(戰犯)국가 독일이 유럽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역대 정치 지도자들의 과거사 사죄가 밑거름됐다.

일본 국민은 국익을 위해서라도 이시하라의 망언에 단호하게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 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이시하라의 망언에 대한 일본의 상식과 국격(國格)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차학봉 도쿄 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11/20121111014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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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6:28

지난 9일치 <한겨레> 1면에는 ‘미국 대선 흔든 여성의 힘’이라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높았던 늙은 백인 남성들이 퇴조하고, 젊은 여성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몰려간 게 오바마 당선의 배경이라는 내용이다. 한겨레만 유독 이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룬 데에는 편집국장의 이 한마디가 있었다. “내가 딸을 키워보니 여자가 더 우수한 거 같아.”

 

오래전 김선주 선배(바로 그 명칼럼니스트!)한테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일본 고지마섬의 원숭이들은 원래 고구마를 흙이 묻은 채 먹었는데, 한 젊은 암컷이 바닷물에 씻어 먹기 시작했다. 다른 암컷들이 따라 배우더니, 나중에는 섬 전체로 퍼졌다. 그런데도 늙은 수컷들은 끝까지 씻어 먹지 않더라는 것이다. 젊은 암컷의 적응능력과 늙은 수컷의 고집불통을 대비시킨 것이다.

 

여성들의 집단적인 힘이 세상을 바꾼 사례는 많다. 빅토리아 시대에 젊은 남성들이 식민지를 찾아 떠나다 보니, 영국에는 50만명의 ‘잉여 여성’이 생겨났는데, 그 숫자 때문에 여성 재산권, 여성 참정권, 여성의 대학 입학 같은 법이 만들어졌다. 딸이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미국에서는 딸을 둔 하원의원이 낙태를 지지하는 경향이 높고, 딸이 많을수록 투표 전력이 더 진보성향을 띠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에서는 소속 정당을 바꿀 경우, 아들이 하나 있는 부모 중 3분의 2는 우파 쪽으로 이동한 반면, 딸을 하나 둔 부모 가운데 3분의 2는 좌파 쪽으로 움직였다.(맬컴 포츠 <전쟁 유전자>)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다른 여성과 연대하고 소통하며 사회복지를 지지하는 경향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연구 결과다. 아마도 사바나에 살던 선조 여성들이 함께 채집을 하고 자식들을 돌볼 때, 수다를 떨면서 정서적 유대를 형성했던 적응이 유전자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여성이라고 다 평화적이고 진보적인 건 아니다. 이건 어느 외교관한테 들은 얘기인데, 파푸아뉴기니를 가보니 코밑에 수염이 난 원주민 여자들이 제법 되더란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극도로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서로 약탈을 일삼다 보니, 여자들도 전쟁에 나서게 되고 그 결과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수염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생애 자체가 전쟁이었고, ‘불통’ 이미지에 갇힌 박근혜 후보가 ‘여성 대통령’을 주창하는 것은 왠지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지표는 없다. 그러나 이제 변화의 시점이 오지 않았나 싶다.

 

88만원 세대가 다 어렵다지만 특히 여성 청년층의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 청년층보다 훨씬 높다. 옛날에는 시집이라도 갔지만, 요즘은 남자들도 약아서 맞벌이만 찾는다. 설사 어렵게 취직하고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애 키우고 집안일 하느라 직장에서 남자 동기들에게 밀리기 십상이다. 그게 싫으면 ‘독한 것’이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그러니 무슨 구국의 강철대오 같은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엉겁결에 떠밀려 결혼 파업, 출산 파업에 동참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여성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 젊은 여성들에게 걸리는 부하는 그 윗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남자들한테 밀리지 않는 교육을 받았고, 학교 다닐 때 성적은 훨씬 좋았기에 그 박탈감이 더 큰 것이다.

 

일찍이 엥겔스는 ‘인류의 모든 혁명은 여성해방을 동반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가장 응축된 젊은 여성들이 먼저 떨치고 일어섰으면 한다. 미국 대선처럼 모두 다 투표장으로 몰려가 낡은 질서를 뒤엎어보라는 것이다.

 

 

 

김의겸 정치·사회 에디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00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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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6:20

미국 코넬대학 로버트 프랭크 교수의 <경쟁의 종말>에 따르면 2005년 미국 의회는 총 3억2,0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 케치칸과 그라비나 섬의 공항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는 데 책정했다. 당시 케치칸 인구는 9,000명이 안 되었고, 그라비나 섬의 인구는 겨우 50명이었다. 탑승료 6달러짜리 페리호가 15분에서 30분 간격으로 다닌다. 다리가 건설되면 주민들의 삶이 편리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편익에 비해 투입되는 비용이 엄청나다.

누가 봐도 황당한 이 프로젝트가 추진된 이유는 무엇일까. 프랭크 교수는 지역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들의 음흉한 야합으로 파악했다. 어차피 다리 건설 비용은 지역주민이 아닌 국가 전체 납세자들이 떠안을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납세자들은 이런 프로젝트가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다른 주 의원들은 자신들이 제안할 유사한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이런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에 반대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러한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것을 알게 된 국민들이 거세게 반대했고 결국 다리 건설은 무산되었다. 이후 이 프로젝트에는 '갈 곳 없는 다리(Bridge to Nowhere)'라는 이름이 붙여져 포퓰리즘에 영합한 정부의 예산 낭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됐다.

우리도 이러한 경우가 적지 않다. 경남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대표적이다. 거제도가 고향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한 것으로 알려진 거가대교는 건설비용으로 총 1조4,469억원이 투입됐지만 수요 예측이 턱없이 빗나가 지난해에만 경상남도와 부산시가 운영업체에 469억원의 적자보전을 해줬다. 이대로 갈 경우 향후 20년간 1조4,000억원에, 물가상승을 감안키로 한 협약까지 감안하면 6조원 가량을 물어줘야 할 판이란다.

이미 우리나라에 '갈 곳 없는 공항(Airport to Nowhere)'은 수없이 많다. 청주공항을 비롯해 무안공항도 비행기에 태울 사람도 갈 곳도 없다. 지방공항 대부분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지난해 총 560억원의 적자를 냈다. 1,300억원을 투입한 울진공항은 개항도 못한 채 비행교육 훈련센터로 용도를 바꿨고, 전북 김제공항은 감사원 재검토 지시로 2004년부터 공사를 중단, 배추밭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공사비가 4,790억원에 달하는 울릉공항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실시됐다. 울릉도의 숙원사업으로 경북지역 정치인들이 울릉공항 건설의 정당성을 강조해왔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결과 경제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울릉공항을 건설하려면 바다를 일부 매립하지 않을 수 없어 사업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경북도와 울릉군은 한일간 독도영유권 분쟁 등이 계속되는 것을 감안할 때 정부는 경제성 이외의 전략적인 변수도 함께 검토해 달라는 주문이다. 또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이 유치작전을 벌였으나 이명박 정부가 이미 백지화했던 동남권신공항 건설 프로젝트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정치권이 들쑤시려는 분위기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 도대체 공항이 얼마나 더 건설되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설익고 대책 없는 공약들이 난무하고 있다. 한 표라도 끌어 모으려다 보니 으레 무리한 공약이 남발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도가 지나치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연간 의료비상한 100만원 등 한결같이 서민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하지만 실천 가능성은 극히 회의적이다. 100조~200조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 예산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인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이 되고 보자'는 심정으로 예산에 대한 개념 없이 공약에 매달리는 것이 볼썽사납다. 뽑아주고 나서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을 넘어 분노로 돌변하는 것이 국민의 마음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9210336243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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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6:18

공립 초중고교 급식조리원을 비롯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소속 노조원들이 어제 하루 사상 첫 파업을 벌였다. 파업엔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 출정식에 참가한 서울ㆍ경기 노조원 1,000명을 포함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관할에서 조합원 1만5,0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정됐다. 노조원들의 요구는 ▦호봉제 도입 ▦교육감 직접고용 실시 ▦교육공무직 법안 제정 ▦교과부 단체교섭 시작 및 학교비정규직 대책 마련 등이다.

이번 파업엔 급식조리원들이 대거 포함돼 급식차질이 우려됐지만 큰 혼란은 없었다. 전국 9,647개 공립 초중고교 가운데 933곳(9.67%)에서 급식중단 등이 빚어졌지만 심각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이번 일은 문제가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을 경우, 학교 현장의 파행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교육당국의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들의 근로여건은 동일 노동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게 사실이다. 영양사만 해도 올해 비정규직의 초임 연봉은 1,857만원 정도로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영양교사 3,018만원의 62%에 불과했다. 비정규직은 호봉제가 없기 때문에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급여차이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고용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인력관리가 표준화 매뉴얼도 없이 개별 학교 교장에게 맡겨지다 보니 학교의 행정ㆍ예산 사정에 따라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위해 최근 수당 신설 등을 통한 인건비 인상과 직종별ㆍ근무기간별 보수체계 개편, 무기계약직 전환 계획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방적 시책보다 중요한 건 학교 비정규직들이 권익을 주장할 공식 창구가 없다는 점이다. 교육당국은 학교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단체교섭권자는 학교장이 아니라 교육감이라는 노동부의 유권해석 등에도 불구하고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공공부문에서조차 단체교섭 창구가 없다는 건 부당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는 게 옳다고 본다.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92105007607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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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6:15

제18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개막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후진타오 10년 이후 중국을 이끌어갈 지도부가 결정된다. 새 지도부에는 경제사회 개혁이라는 거대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중국 경제의 성장률은 과거 두 자리에서 올해 7%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당장의 위축은 유럽 경제위기에서 오는 해외수요 감소에 주로 기인하지만 거대 중국이 오늘날 안고 있는 경제사회적 문제는 나라의 크기만큼 만만치 않다.

지난 30년간 눈부신 성공을 거둔 중국 성장모델의 핵심은 국가가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제조업투자와 수출증대를 자극하고 직접 자원배분을 주도해 빠른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금리규제를 통한 싼 대출, 노동운동 억제를 통한 저임금,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저환율 등으로 이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패가 조장되고 예금자로부터 차입자로, 근로자로부터 기업으로, 소비자로부터 수출기업으로 엄청난 부와 소득의 이전이 일어났다. 지금 중국의 소득분배는 남미국가들보다 더 악화되어 있다. 인민들의 복지제도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며, 기업과 급속히 늘어나는 신흥부자들에 대한 조세부담률은 매우 낮다. 부동산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졸부들이 양산되어도 재산세·양도소득세는 부과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중국은 사회주의국가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우파적 경제정책을 추진해 온 나라다.

지금 중국이 당면한 큰 과제는 이러한 성장모델을 전환시켜 나가는 것이다. 중국 경제는 국가주도의 양적 성장을 거듭해 오면서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연금·의료 등 복지제도의 미비에 따른 높은 가계저축률, 저금리, 저임금, 저환율 등에 힘입은 막대한 기업이윤과 기업저축으로 국내총저축률이 50%를 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는 커다란 경상수지흑자와 세계경제 불균형의 요인을 제공해 왔다. 중국은 이제 수출로부터 내수확대를 통해 성장동력을 찾아나가야 하나 이러한 성장모델의 전환은 근본적으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자원배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금리·임금·환율의 결정에 있어 시장의 역할을 더 넓혀주어야 한다. 금융과 산업이 보다 상업적 원리에 의해 작동될 수 있도록 국유은행·국유기업의 소유지배구조에 대폭적 개편을 시도해야만 이런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 현재 중국의 국유은행은 전체 대출의 약 85%를 차지하고 주요 기간산업은 모두 국유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이들이 결국 중국경제의 자원배분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은 다시 공산당과 정부관료의 장악하에 놓여 있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매우 실용적이며 점진적인 경제개혁을 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 쉽게 딸 수 있는 과일은 대충 다 따먹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기 위한 중국의 경제개혁은 바로 ‘사회주의체제’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과거 어떤 사회주의체제 국가도 중진국의 함정을 뛰어넘지 못했다. 주민들이 공동소유하고 있는 향리기업들에 대한 재산권의 정립, 호구제도의 개편 등을 통해 그동안 이뤄 온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하며, 국유기업들에 대한 정부 지분을 줄이거나 민영화를 시행해 나가야 한다. 국유기업은 도산의 위험이 없어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 쉬우며 이들에 대한 개혁 없이 경제를 자율화해 나갈 경우 자원배분 왜곡이 오히려 더 심해지고 이들의 부실화가 초래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의 민영화는 바로 사회주의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성공한 모델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도, 일본도 이에 실패했다. 결국 위기를 맞고서야 변화가 일어났다. 30년간의 고속성장을 이루면서 중국에는 이미 폭넓은 기득권세력이 형성됐다. 과거 개혁의 주체세력이었던 당과 정부의 엘리트들은 이제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국유기업의 막대한 자산을 관리하는 권한을 향유하는 기득권세력이 되었다. 이들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민간부문의 신흥부자들이나 국유기업 간부들도 마찬가지다. 개혁의 필요성은 높아지나 개혁의 저항세력은 점점 강해져 온 것이다.

1979년 대처에게 패한 캘러헌 전 영국총리는 “약 30년을 주기로 정치지형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처와 레이건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물결이 세계경제를 주도한 지 대략 30년이 되었고, 세계 곳곳에서는 다시 경제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 중국 경제발전 30년도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이 전환이 서구와 달리 오히려 더 작은 정부, 더 큰 시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득권의 저항을 넘어서야 하는 것은 공통적 과제다. 중국의 새 지도부는 과연 이런 개혁을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인가?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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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6:14

노르웨이 유아용품업체인 스토케의 최고경영자가 8일 한국 지사 설립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최고급 유모차인 익스플로리는 한국에서 전 세계 판매 대수의 13%가 나간다"며 "(한국이) 개별 국가로는 독보적 매출 1위 시장이다"고 했다.

'벤츠 유모차'로 불리는 스토케의 익스플로리는 판매 가격이 169만원이다. 그것도 올 초 "수입 유모차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논란이 일면서 지난 5월 20만원을 내린 가격이다. 그러나 같은 제품이 네덜란드에서 111만원에 판매되는 것이 비하면 여전히 비싼 편이다. 10만~60만원대인 국산 유모차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유모차는 최근 2년간 국내에서 9000대 넘게 팔렸지만 지금도 없어서 못 판다고 할 정도로 잘나간다.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2배를 넘고 신생아 수는 9배나 많은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렸다. 스토케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젊은 엄마들이 지역별 모임을 갖기도 한다. 스토케 유모차를 무슨 신분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고 그래서 더 기를 쓰고 장만하려는 게 요즘 풍토다.

유모차만이 아니다. 유아·아동복, 기저귀, 젖병, 카시트, 침대에다 30만원대 유아용 수입 딸랑이까지 고가(高價) 외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한 자녀 갖기가 일반화하면서 젊은 부부들이 '내 아이만은 최고로 키우겠다'는 허영심에 빠져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명품으로 치장하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까지 지갑을 털고 있다.

통계 수치로 보면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은 선진국에 비해 그다지 심한 편이 아니다. 지니계수는 0.310, 최상위 10% 소득을 최하위 10% 소득으로 나눈 소득 10분위 배율은 10배로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이다. 그런데도 국민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이 훨씬 심한 것으로 느끼고 있다. 이는 상당 부분 우리 사회의 명품 과소비와 관련이 있다. 갓난아이에게 수입 기저귀를 채우고, 수입 젖병을 물리고, 수입 유모차를 태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일부 계층의 과시적 소비가 위화감(違和感)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최고급 유모차 판매 세계 1위라는 것은 우리 사회가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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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6:03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2개국(G2)으로 자리매김한 '차이메리카(중국과 미국)'의 동반 권력 이동은 지구촌에 새로운 정치ㆍ경제ㆍ외교의 전략적 환경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이들 양강 사이에서 향후 치열해질 '차이메리카'의 무한경쟁과 협력관계에 대비한, 보다 치밀하고 내실있는 외교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서로 견제하며 대응하는 구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앞으로 4년간 오바마의 미국은 '아시아 회귀 전략'을 더 가속화하고, 시진핑의 중국은 경제발전을 토대로 외교에서도 '핵심이익'을 확대할 태세다. 한반도는 양국의 이해 충돌이 격하게 부딪칠 전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이나 중국이 여러 측면에서 전략적으로 한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 중국과 동시에 자유무역협정(FTA)체결을 맺거나 추진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또 동북아 안보차원에서 오랜 기간 미국과 끈끈한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경제교류를 통해 중국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곳도 한국뿐이다. 그러나 표면의 파도만 보고 외교 포퓰리즘에 휩쓸려 순간적으로 한쪽만 선택할 경우 결과는'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셈이다.

따라서 양강의 갈등 양상에 휘둘려 어느 한 쪽만을 선택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과 끊임없는 정책 조율, 긴밀한 협력관계 구축 등으로 외교적 포지션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북한 문제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비핵화의 진전과 평화 및 안보 증진을 위한 한미 양국 간 원만한 정책 조율이다. 그러나 새로 들어설 한국 정부가 남북 경색 국면 타개를 위해 미국과의 충분한 조율없이 북한에 물질적 보상을 제공할 경우 한미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지난 4년간 북한의 도발을 경험한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도 북한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북 강경책을 유지할 전망이다. 또한 연말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북한 문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북한 김정은 국방위제1위원장이 김정일 때처럼 북미대화만 고집하며 우리를 '왕따'시킨다면 선택의 여지는 없다. 다만 새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 노력과 관련국과의 치밀한 정책 조율을 통해 남북 경색 국면을 풀 수 있는 상호 신뢰의 소통 채널을 구축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들은 현 정부보다 대북 정책에 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만큼 한미 양국 정부가 차기 정부에서 어떻게 대북 정책 공조를 이끌어 갈지가 주목된다. 무엇보다 대북 문제에 있어 우리의 외교 역량이 강화돼야 미중 간 갈등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시진핑 시대에는 북중관계가 더 긴밀해 질 것이다. 김정은은 아직 중국 지도부와의 대면 접촉이 없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갈구하는 김정은 체제와 개혁ㆍ개방을 유도하려는 시진핑 체제가 향후 상호 공감대를 넓혀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악화된 남북관계 속에서 북한과 황금평ㆍ위화도, 나선 특구의 공동 개발에 나서며 신 북중경협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남북간 경색 국면이 이어져도 북중관계가 긴밀해지는 것은 한중관계에 부정적이지 않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목표인 중국으로서는 홀로 북한을 개혁ㆍ개방으로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남북관계가 호전돼 한중 양국이 의기투합해 북한을 개혁ㆍ개방의 길로 이끌 수 있다면 지난 20년간 경제교류를 통해 이룬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넘어 정치ㆍ안보 분야까지 접점을 넓혀가는 셈이다. 한반도의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창조적 리더십의 지도자를 기대해 본다.

 

장학만 사회부 차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902341324420.htm

 

 

 


 

Posted by 겟업
2013. 1. 3. 16:03

고령화의 저주, 이지메, 원조 교제 활력 잃은 사회…
日 추격해 온 한국 이제 성장 멈추고 악순환 함정 빠진
'일본病' 옮는데 포퓰리즘도 닮나

 

치매 아내를 살해한 서울 문래동 78세 노인 사건을 보며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막막했다. 일본이 먼저 경험한 고령화의 절망적 국면이 결국 우리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케어’는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돼왔다. 병시중에 지친 나머지 배우자나 노(老)부모를 살해하는 ‘간병(看病) 살인’ 역시 끊이질 않고 있다. 문래동 사건은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일본형 ‘고령화의 저주’가 우리에게 옮아왔음을 경고하고 있다.

과거 수십년간 우리는 ‘일본을 배우자’고 외쳤다. 일본이 하는 것을 베끼고 본떠 일본을 넘어서자는 극일(克日) 담론이었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이 장기 침체에 빠지고 시스템의 결함을 드러내자 구호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론’으로 바뀌었다. 지금 우리는 저성장과 침체, 정치 포퓰리즘과 재정 파탄이라는 일본형 실패의 길을 어떻게 피할 것이냐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지난 시절 일본 따라잡기에서 우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짧은 시간 안에 일본과 경제·소득 격차를 줄였고, 어떤 분야에선 일본을 앞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극일 다음에 우리가 맞이한 ‘일본병(病) 피하기’의 국가 과제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일본의 실패를 뒤따라가는지 신기할 정도다.

일본병이란 사회 각 분야의 구조적 모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쇠퇴해 가는 증상이다. 이를테면 저출산은 경제 침체에 따른 청년 실업이 연쇄적으로 파급돼 벌어지는 구조적 문제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저성장이 취업난을 일으키고, 경제적 곤궁이 혼인 기피, 만혼(晩婚)으로 이어져 결국 출산율 저하를 불러오는 증세를 앓아왔다. 지금 우리가 빠져 있는 악순환의 함정이 바로 그렇다.

과거 우리는 외향적·확장지향적이고 역동적 헝그리 정신에 넘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강점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지난 4~6월 성장률은 경제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는 일본형 ‘제로(0) 성장’에 근접해가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기업들은 혁신 본능을 잃어가고, 새로운 기업가는 출현하지 못하며, 청년들은 진취적 도전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활력이 사라지고 성장이 멈추는 순간 그동안 눌렸던 사회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경제만 일본화(化)하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 병리(病理)는 일본의 경험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이지메(집단 괴롭힘)가 학교 왕따로 넘어오고, 원조(援助)교제는 스폰서 사이트로 한국화했다. 고독사(孤獨死)와 무연사(無緣死),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같은 병리 현상의 원조가 일본이다. 젊은 남성들이 유약해지는 현상까지 일본의 이른바 ‘초식남(草食男)’증후군을 빼닮았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이 모든 문제를 주도적으로 돌파해야 할 정치 리더십이 포퓰리즘에 빠진 점이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침체 속에서 일본 정치는 대중에 영합하며 환부(患部)를 덮어왔다. 구조 개혁 대신 돈 풀고 공약을 남발하는 포퓰리즘으로 국가 재정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 정치인들이었다. 지금 우리 정치가 비용 개념 없이 경쟁하는 포퓰리즘 향연의 종착점도 재정 파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일본은 ‘국가의 자살(自殺)’까지 거론되는 단계가 됐다. 고대 로마는 내부적 모순과 중우(衆愚)정치 때문에 스스로 무너졌다. 로마처럼 국가 시스템이 기능 불능에 빠지는 자살의 메커니즘이 일본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 활력을 잃은 나라가 자체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 일본형 국가 자살의 시나리오다. 이것마저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박정훈 부국장 겸 사회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08/2012110803064.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6:02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진정한 친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유명하다 보니 제 리무진 함께 타려는(ride with me in the limo) 사람은 엄청 많아요. 하지만 리무진이 고장 났을(break down) 때 저랑 같이 버스를 타겠다는(take a bus with me) 사람은 친구뿐이죠."

친구는 당신을 속속들이 다 알면서(know you inside out), 그래도 당신을 좋아해주는(still like you) 사람이다. 당신을 위해 자기 일정표에서 시간을 내주는(find time on his calendar) 사람이 아니라 아예 일정표를 들여다보지도 않고(do not consult his calendar) 당신 시간부터 물어보는 사람이다.

미국의 인생상담 전문가(a life coach) 도미니크 베르톨루치는 이런 친구들이 있어야 든든하다고 말한다. 첫째, 당신보다 세상물정과 유행에 더 밝은(be better at keeping up with what's hip) 친구. 이런 친구는 당신 눈을 뜨게 도와준다. 빠져버리기 쉬운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나게(unstick yourself from the rut that's easy to get bogged in)해준다. 그냥 지나쳐 갔을 수도 있는(may have passed you by) 것들을 알게 해 당신 인생을 살지게(enrich your life) 한다.

둘째, 언제든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걸(call at the drop of a hat) 수 있는 친구. 그리고 예고 없이 갑자기 계획을 바꿔도(change plans at short notice) 아무 군소리 없이(without any ifs and buts) 받아주는 친구가 있어야 한다.

셋째, 당신이 본받고 싶은 친구(a friend who you aspire to be). 최상의 당신이 되도록 도전 의식을 북돋우고(challenge you to be the best version of yourself) 모범이 돼준다. 당신의 강점과 약점에 모두(on both your strengths and weaknesses) 보탬이 된다.

넷째, 대단히 솔직한 친구.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하지 않는, 적어도 달콤하게 꾸며(sugarcoat things at the very least) 말하지 않는, 곧이곧대로 말해주는(tell it to you straight)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당신이 책임져야 할 위기에 봉착했거나(get a crisis on your hands) 긴급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찾아갈 수 있는 사람(your go-to)이어야 한다.

다섯째,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아는(know you better than you know yourself) 친구. 여드름이 난 얼굴에 벙거지 머리를 하고(have pimples and a bowl cut) 돌아다니던 시절 친구가 필요하다. 자신 있는 척 허세를 부릴(put on a brave face) 필요가 없는 친구, 당신 집처럼 무조건 당신을 받아주는(accept you unconditionally) 오랜 친구가 있어야 행복하다.

"내가 바뀌면 따라 바뀌고, 고개를 끄덕이면 같이 끄덕이는 친구는 필요 없다. 그건 내 그림자가 훨씬 더 잘한다"(플루타르크·그리스 철학자).

"친구란 다른 사람들은 다 가버리는데(walk out) 거꾸로 나를 향해 들어오는 사람이다"(월터 윈첼·미국 언론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08/20121108029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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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6:01

민주통합당이 대선 투표시간 연장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서 거론하는 것이 “일본이 1998년 투표 마감시간을 2시간 연장한 후 투표율이 10%가량 올랐다”는 주장이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일본에서 투표시간 연장 이후 처음 실시된 2000년 중의원 총선의 투표율은 62.49%. 직전인 1996년 총선의 59.65%보다 2.84%포인트 올랐을 뿐이다. 그나마 2003년 총선에서 투표율이 다시 59.86%로 떨어져 투표율 상승 효과는 사라졌다.

자살과 사망 구별 안한 공지영

물론 2005년과 2009년 총선의 투표율은 각각 67.51%, 69.28%로 크게 올랐다. 그러나 투표시간 연장의 효과가 7년 혹은 11년이 지나 나타났다고 보는 것은 누가 봐도 우습다. 이 경우 투표율 상승은 여야 간에 접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2005년 총선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우정민영화 법안 부결에 분노해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격렬한 쟁점이 형성된 선거였다. 2009년 총선에서는 현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1955년 이래 11개월을 제외하고 줄곧 여당이었던 자민당을 무너뜨렸다.



작가 공지영의 최근작 ‘의자놀이’는 쌍용차 해고사태를 다룬 자칭 르포다. 그러나 르포라는 말이 무색하게 자살자의 수라는 기본적 사실조차 틀린다. 쌍용차 해고자 측에 따르면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중 22명이 사망했고 그중 자살자는 12명이다. 그러나 작가는 “똑같은 원인으로 스물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40쪽)”라고 썼다. 148쪽에서는 더 심각한 혼동도 눈에 띈다. 작가는 “22명의 자살자까지 아무도 유서가 없다”고 하다가 바로 그 다음 문단에서 해고자 심리치료를 해온 정혜신 씨의 말을 인용해 “자살자는 12명”이라고 썼다. 모든 사망자를 자살자로 본 작가의 혼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난해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죽었다고 한 신문이 보도했다. 이 보도가 기정사실화하는 가운데 최 씨가 다니던 대학의 교수였던 소설가 김영하 씨가 ‘최 씨는 아사(餓死)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최 씨의 사인은 영양실조가 아니라 갑상샘기능항진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이었다”며 “최 씨는 재능 있는 작가였으며 어리석고 무책임하게 자존심 하나만으로 버티다 간 무능한 작가가 아니었다”고 썼다. 그러나 최 씨의 죽음을 ‘아사’로 키우고 싶어 한 누리꾼들의 비난이 빗발쳤고 결국 소설가는 인터넷 절필(絶筆)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경찰 조사결과 최 씨의 쪽지에 ‘남는 밥’이란 표현은 없었다.

사실 아닌 말, 대가 치르게 해야


어제 끝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팩트 체커(fact checker·사실 확인 전문가)’가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일은 후보가 사실을 말하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TV토론에서 “공영방송 PBS의 빅버드(어린이 방송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의 주인공 캐릭터)를 좋아하지만 PBS를 계속 지원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는 광고에서 “롬니가 빅버드를 죽여 세금을 부자에게 돌려주려 한다”라고 비난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인기가 높은 세서미 스트리트는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팩트 체커에 의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대선후보와 캠프에서 성명과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곧 후보자 간 TV 토론도 진행될 것이다. 팩트 체크는 언론과 전문가들이 주로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유권자들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 후보를 벌주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누구나 최선을 다해도 틀릴 수 있다. 문제는 틀린 것을 알고도 바로잡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실 여부를 놓고 장난치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송평인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21108/50695822/1

 

 

 

Posted by 겟업
2013. 1. 3. 16:00

필자는 올해 이 난의 첫 칼럼을 레이철 카슨과 토머스 쿤으로 시작했다. 환경과 과학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친 ‘침묵의 봄’과 ‘과학혁명의 구조’가 딱 50년 전인 1962년에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침묵의 봄’은 살충제 DDT가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통해 생명체에 축적되면서 환경에 미칠 수 있는 끔찍한 영향을 경고한 책으로 DDT의 금지라는 정부의 규제를 이끌어 냈고 전 세계적인 환경운동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DDT의 발명자 파울 뮐러는 1948년에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고, 당시 DDT는 마법 같은 과학의 성과로 간주되고 있었다. 카슨이 DDT를 비판하자 이를 만들던 화학회사들은 출판사를 고소하겠다며 엄포를 놓았고, 과학자들 중에서도 카슨이 화학이나 농학을 공부하지 않은 비전문가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렇지만 DDT의 위험을 평가하는 역할을 맡은 미국 대통령 과학자문위원회는 여러 정보를 수합하고 평가한 뒤에 살충제 사용을 제한하는 행동에 즉각 돌입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후 많은 논의 끝에 미 연방정부는 1972년에 DDT를 금지했다.

근거없는 주장으로 사람들 현혹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평가와는 너무나도 다른,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카슨의 ‘침묵의 봄’이 DDT를 금지시킴으로써 아프리카와 같은 저개발국에서 말라리아가 창궐했고, 결과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책은 환경을 구했을지는 모르지만, 과학을 무시한 대가로 사람을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DDT를 부활시키는 것이라고 외친다. 심지어 카슨이 히틀러나 스탈린보다도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선정적인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런 평가에는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DDT를 금지한 것은 미국이었지, 열대 지역의 저개발 국가가 아니었다. 열대 지역의 많은 저개발 국가에서 DDT는 계속 합법적으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DDT의 사용이 전 세계적으로 줄어든 것은 그것을 금지해서가 아니라 그 효용이 떨어졌기 때문인데,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말라리아를 유발하는 모기에게 DDT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DDT를 넓은 지역에 살포해서 모기를 죽이면, 내성을 가진 소수의 모기가 그 다음 해에 번식하고 이때는 DDT를 더 강하게 살포해야 한다. 이렇게 몇 년만 지나면 아무리 강한 살충제를 써도 잘 죽지 않는 모기가 창궐한다. 스리랑카가 말라리아 박멸에 실패한 것은 DDT를 금지해서가 아니라 모기가 내성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카슨 죽이기’의 근원지는 미국이다. 1990년대에 미국의 ‘건전과학진흥연맹’의 스티븐 밀로이는 DDT 금지가 수백만 명을 죽였다는 얘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밀로이와 ‘건전과학진흥연맹’은 담배회사에서 지원을 받아 담배가 폐암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구 온난화를 ‘사기극’이라고 부정하며, 산성비와 오존홀에 대한 과학적 합의를 ‘쓰레기 과학(정크 사이언스)’이라고 비난한다.

카슨을 공격한 과학자 딕시 레이는 오존홀을 부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우파단체인 경쟁기업연구소는 카슨이 틀렸다고 주장한 사람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밀었고, 미국기업연구소는 카슨을 비난한 마이클 크라이턴의 작품을 선전했다. 카슨을 공격하는 또 다른 연구소인 하트랜드연구소는 지구 온난화를 집요하게 공격한다. 이들은 과학기술이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며, 환경이나 건강을 고려한 정부의 규제는 무조건 나쁜 결과를 낳는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침묵의 봄’은 생태계를 무시하고 과학기술을 오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일깨워 줌으로써, 사람들이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만든 ‘혁명적인’ 책이었다. 그녀는 살충제가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주 제한된 얘기만을 했지만, 2005년 의학저널 ‘랜싯’에 나온 한 논문은 DDT가 조산, 저체중아 출산, 유아 사망 등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으며, 2007년에 출판된 다른 논문은 1940, 50년대에 DDT에 노출되었을 여성들의 유방암 발병률이 다른 여성들에 비해 5배 높다는 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연구들은 환경에 미친 피해가 인간에게까지 이를 수 있다는 카슨의 주장이 과학적으로도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균형감 갖고 차분히 따져봐야

‘카슨 죽이기’ 캠페인처럼 근거 없는 엉터리 주장도 ‘과학’의 외피를 쓰고 등장했을 때 그럴듯하게 보이면서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다.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과학’의 이름으로 맹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더 필요한 것은 균형감을 가지고 여러 주장의 근거를 차분하게 따져보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과학적 사고이자 방법이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http://news.donga.com/3/all/20121108/50695929/1

 


 

Posted by 겟업
2013. 1. 3. 16:00

줄리아 길러드 호주 총리가 '아시아 세기의 호주'라는 새 정책문서를 공개했다. 아시아의 부상(浮上)을 인정하고 적극 협력하려는 의지가 담겼다. 케빈 러드 호주 전 총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팍스 퍼시피카(Pax Pacifica·태평양 주도의 평화)'를 언급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해 주기를 주문했다. 그런데 현재 아시아는 영토 논쟁으로 다소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영토 분쟁으로 영혼이 오가는 길이 막혀서는 안 된다"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국경 안에 일국을 가두면 아시아에 주어진 이 기회를 살릴 수 없다. 국경을 넘어 문화가 흘러야 한다.

해외문화홍보 전략 역시 한류(韓流)가 어디로든 흐르도록 돕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문화교류를 통해 동질성을 찾고 공감대를 넓혀가는 일이 중요해졌다. 현재 해외문화홍보원이 31개국에 파견한 문화원장과 홍보관들은 외국 대중들과 문화적 접촉점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으나, 이러한 사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공유와 협력의 시스템이다. 국가 브랜드 관리나 민감한 외교 업무에 있어서도, 관계 기관들이 임무를 분담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한다.

언론을 예로 들어 보자. 연간 400여명의 해외 언론인들이 방한하고 있고, 상주 외신들도 250여명에 이른다. 해외문화홍보원이 내년부터 신설하려는 '외신지원센터'는 한국 보도 관련 원스톱 서비스 제공을 염두에 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사 브리핑을 넘어 다방면의 정보 콘텐츠를 제공해야만 한국의 위상과 가치가 왜곡되지 않고 전달된다는 것이다. 언론 분석, 전문가 설명회, 외신 취재지원 등 다양한 대응 노력은 다방면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아시아 세기의 한국'은 더 많은 책임과 나눔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국제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부국과 빈국의 가교' '평화와 안보의 중심' '미래 녹색환경 협력의 주역' 국가로서 역할을 해 나가야만 한다. 한국에 대한 세계의 평가와 우리의 위상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있다. 그 원동력은 문화의 힘이다. 우리는 이 힘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온 국민이 '대한민국 홍보대사'란 마음가짐으로 교류와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우진영 해외문화 홍보원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07/2012110703439.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5:59

선진국이란 마천루·GNP 아니라 편안함 속 자유롭게 숨 쉬는 곳
대선 공약, 당장 실천 가능하고 소중한 생명과 꿈을 보호해야…
영리하고 부지런한 국민과 함께 미래로 걸어갈 역량 누가 가졌나

 

늦가을 세찬 바람에 낙엽들이 우수수 한쪽으로 쏠려간다. 일사불란(一絲不亂)과 만장일치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하지만 바람의 속도 속에 나뭇잎이 쏠려가는 풍경은 순간 아름답기까지 하여 그 속에 내재한 폭력성도 잊고 한동안 그것을 바라본다.

낙엽 지는 풍경에서 존재나 시간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전제주의를 읽는 것은 머지않아 다가올 대선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한 표(票)가 낙엽처럼 바람에 쏠려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카드섹션과 매스게임을 보며 감탄보다는 그 일사불란함 속에 소중한 개성과 존재 하나하나가 갖는 생명의 경이로움이 매몰되어 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래서 요즘 대선 앞에 일어나는 다소의 소요와 격론을 다양성의 즐거움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대통령의 모습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송년(送年)의 밤' TV에 나와 전국 어린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나이 든 사람, 지혜로운 사람(Old man, Wise man)'이라는 구호를 들고 70세에 대통령에 당선한 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때 우리나라 대통령은 밤 9시면 어김없이 TV 뉴스에 나와 두렵고도 위압적인 목소리로 군대식 명령 언어를 권위적으로 구사했었다. 선진국이란 마천루나 GNP의 수치가 아니라 바로 이런 쉽고 편안함 속에 사람들이 자유로이 숨 쉬며 사는 나라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었다. 가난한 유학생이 부족한 영어로 그날 밤 들었던 대통령의 동화는 지금까지 어느 정치가의 명연설보다도 더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때 마침 옆집에는 베트남전에서 부상당한 참전용사가 살고 있었는데 전담 간병인이 어찌나 세심하게 돌보는지 '한 국가의 자존심을 이렇게도 키워 나가는구나' 하는 것을 또한 절절히 느꼈다. 참담하게 끝난 베트남전의 후유증을 미국은 그렇게 치유 극복하고 그 영예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최근 거듭 발표되는 대선 후보들의 정치 쇄신안이나 선심성 공약 등을 보며 나는 동화를 읽어주던 노(老)대통령과 그 참전용사를 떠올려 보곤 한다.

가장 좋은 공약은 소중한 생명과 꿈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것이 그 근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천을 유기적인 구조로 어떻게 잘 푸느냐 하는 것이 복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 공약들은 거대한 명제나 혁신을 내세우기보다 좀 더 인간의 기본적인 삶에 밀착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가령 나라 위해 싸운 군인, 불 끄다 희생당한 소방관, 범죄와 싸우다 순직한 경찰을 끝까지 돌볼 수 있는 진정 어린 대책과 파랗게 언 시장 상인의 손을 녹여주고 자살을 생각할 만큼 큰 좌절에 빠진 젊은이에게 꿈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음식물에 유해 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포함되기를 바란다.

대학과 학문의 질(質) 저하가 불을 보듯 뻔한데 반값 등록금을 그냥 외쳐선 안 된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우리 인재들이 어떻게 살아남을까를 제시하는 대책이 먼저 있어야 한다. 아직 사회적 타자인 여성 문제도 좀 더 앞선 감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예술을 사랑한다며 애국적인 시 한 편을 외고 이미지를 높이려 하기보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연인을 위한 시를 이해하는 문학적 안목과 대중 앞에 그것을 자신 있게 읊을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면 좋겠다.

언뜻 우리나라는 엉성하고 서툴고 부패의 얼룩이 도처에 묻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정직하고 깊이 있는 삶을 위해 열정을 다하고 있다. 수많은 교사가 최선을 다해 맑은 눈동자들을 키우고 있으며 대학 도서관은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다. 한국은 이제 상당한 에너지를 내부에 지닌 국가가 된 것이다. 늦은 저녁 인문학 특강에 가보면 정말 많은 사람이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있어 '이 사회의 동인(動因)이 바로 여기 있구나'라고 감탄하게 된다. 이미 상당한 성공을 이룬 각계의 전문인들이 상상력과 창의력의 가치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사려 깊은 존재로서의 삶을 성찰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정말 흐뭇하다. 이 나라의 저력은 정치가가 만든 것보다 부지런하고 영리한 국민이 피땀으로 쟁취한 것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 영리하고 부지런한 국민과 함께 미래를 걸어갈, 국민보다 조금 더 영리하고 명민한 역량을 지닌 대통령이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가을바람에 또 한 잎 낙엽이 진다. 저마다 제 빛깔로 이 계절을 풍요롭게 만드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이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게 눈에 들어온다.

 

 

문정희 시인·동국대 석좌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07/2012110701135.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5:59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한문 수업 시간에 배운 고사성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양약고구(良藥苦口) 이어병(利於病), 충언역이(忠言逆耳) 이어행(利於行)'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 진실된 말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롭다는 뜻이다.

요즘 이 고사성어가 특히 다가오는 이유는 왜일까. 아마도 온통 주위에 '쓴 약'이 아니라 '달콤한 약'만 넘치고, 진실된 말보다는 허황된 공약(空約)만 난무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선출직들이 표와 인기만 얻을 수 있다면 유권자에게 온갖 감언이설을 넘어 아양을 떠는 수준이 된 것이 요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선공약 중 포퓰리즘으로 보이는 것도 너무 많다. 세 명의 유력 대선후보가 제시한 복지 분야 주요 공약만 모두 26개라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그 중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공약을 10개 정도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러다 보니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10월 "한국의 어떠한 대선 후보도 한국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방법론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이들 모두 대학 등록금 인하나 복지 확대 등 소소한 문제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국가경영에 관한 거시적이고 웅대한 비전 제시와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 및 고통분담 같은 것은 이야기하지 않고 도리어 지엽적이고 달콤한 공약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권자들이 무책임한 공약에 휘둘리게 되면 그 결과는 냉혹하다는 것이 선진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은 대기업 법인세를 35%까지 올리고, 연 100만유로 이상의 고소득자에게는 세금을 75%까지 부과했지만, 연금수령 연령은 62세에서 60세로 환원시켰다. 정부가 기업들에게는 부담을 주지만 대중의 인기는 얻을 수 있는 포퓰리즘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는 기업들의 신규 투자 축소와 대량감원이다. 결국 프랑스의 실업률은 13년 만에 최고이고, 공공부채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91%까지 늘어났다.

2009년 선거에서 일본 민주당은 소위 '무상복지 공약'으로 정권 교체에 성공했지만, '고속도로 무료화'나 '최저연금제 도입' 같은 공약은 사실 황당한 것이었다. 연금 납부와는 상관없이 은퇴자에게는 누구나 월 최저 7만엔의 연금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의 실현이 도대체 가능하겠는가. 고속도로 무료화는 부분적으로라도 그 시행을 강행했지만, 결국 1조엔이 넘는 비용 때문에 작년에 폐지했다. 소득과 무관하게 중학생 이하 아동에게는 월 2만 6000엔을 지급하겠다는 '아동수당' 공약 역시 예산 부족으로 공약한 금액의 절반인 1만3000엔을 지급하다 결국 소득제한제 카드를 들고 말았다.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넘는 국가 부채 때문에 국제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신용등급을 계속 강등 당하는 일본에서 '무상복지' 공약의 실현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늘어나는 부채로 인해 무상복지 공약을 대부분 포기한 일본 민주당 정부가 도리어 소비세를 5%에서 10%로 인상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아르헨티나를 포퓰리즘 천국으로 만들어 결국 재정적으로 골병을 들게 한 장본인 에바 페론의 묘비에 쓰여 있다는 묘비명 '아르헨티나,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는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노래 제목이다. 하지만,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이 묘비명은 '아르헨티나, 아직도 그녀 때문에 울고 있다'로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당장 유권자들 입에 '쓴 약'이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국가 시스템을 구체적 공약으로 개발해 신념을 갖고 설득하는 대선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올바른 정책이라면 '쓴 소리'도 서슴지 않는 참모를 중용하고, '달콤한 정책'만 권유하는 측근을 멀리하는 대선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 사회 약자의 분노를 교묘하게 악용하지 않는 후보, 이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갈 처방전을 '쓴 약'으로 쓰고자 하는 용기 있는 후보를 기대한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621002924370.htm

 



 

Posted by 겟업
2013. 1. 3. 15:58

한 사회를,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 나라를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들어 올리는 힘은 '문화의 품질'에서 나온다. 지갑에 돈 좀 있고 먹고 살만하다 해서 사회가 품위 있고 품격 높은 사회로 도약하는 것은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기본'이다. 아무도 이 기본의 중요성을 경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존수단의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문화의 품질 개선과 수준 향상이 그것이다. 한가한 얘기가 아니다. 나쁜 문화는 국민의 삶을 지옥에 빠트리고 어른들을 병들게 하며 아이들을 죽인다. 그것은 사회의 암이다. 문화의 품질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무엇보다 '나쁜 문화'를 '좋은 문화'로 바꿔내는 일이다. 나쁜 문화에 주목하고 개혁의 정책수단을 강구하는 일은 이 대선의 계절에 누구도 방기할 수 없는 사회적 요청이다.

나쁜 문화란 어떤 것인가. 한 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우리는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다. 노인 자살률만이 아니다. 초등생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자살 청소년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까지 합치면 우리는 사회병리적 질병에 시달리는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묻지 마' 살인과 폭력, 반사회적 행위 건수도 '남부럽지 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사회적 병리의 원인은 여러 갈래로 진단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사람이 존중되고 사람이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데 우리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싸이코패스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특정의 가치관, 행동, 태도, 정신상태를 부추기고 강화하는 나쁜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 나쁜 문화의 특성은 이해, 공감, 동정의 능력 결손, 극단적 이기주의, 생존과 도생, 성공/성적/성과 등 '3성 제일주의' 같은 것들이다. 이런 특성이 사람들의 가치관과 정신상태를 좌우하는 지배적 문화가 될 때 사회는 병든 사회로 전락한다.

학부모 폭력과 교육폭력도 청소년을 죽이는 나쁜 문화를 대표한다. "반드시 1등 하라"는 엄마의 등살을 견디다 못해 그 엄마를 살해한 청소년 이야기, "네 성적을 보면 굶겨 죽이고 싶지만"이라는 식의 메모를 써놓고 외출한 어떤 엄마의 행동은 학부모 폭력의 극단적 사례다. 성적 떨어졌다 해서 몽둥이로, 심지어 철근으로 아이를 두들겨 패는 엄마들이 적지 않다. 그 엄마들은 또 그들대로 어떤 명령의 희생자일 때가 많다. "아이 성적을 올리는 것이 너의 임무이고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이것이 남편, 시아버지, 친척들로부터 엄마가 받는 명령이다. 아이 성적이 떨어지면 엄마는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틀린 방향의 학교평가와 교사평가 제도는 교장에서부터 신참 교사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성적 올리는 일에 목줄 걸게 한다.

시장가치와 시장적 기준이 문화를 좌우하는 거의 절대적인 잣대가 되어 있는 것도 지금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나쁜 문화의 한 얼굴이다. 우리 사회는 시장만능주의, 시장제일주의, 시장전체주의에 문화를 내준 지 오래다. 시장논리에 따르면 문화는 팔아먹는 것이고 팔리지 않는 문화는 아무 가치도 없다. 이 시장주의 문화는 가장 창조적인 것, 고품질의 것, 지속적 가치를 지니는 것들을 설 자리 없게 한다. 껍데기가 깊이를 대체하고 유행이 창조성을 고갈시킨다. 사유의 정지(생각하지 않기)와 지성의 사막화가 발생한다. 팔 수 있는 것과 팔 수 없는 것의 구분조차 없어진다. 예술에서부터 출판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경박성과 피상성이 세계를 접수한다.

이런 나쁜 문화를 그대로 두고 사회가 어떻게 발전하는가. 대선 정책 캠프들은 문화라는 것 앞에서 지금처럼 막막해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문화는 그들이 공들여 제도와 관행의 개혁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중대 영역의 하나다.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적 삶의 품질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문화다. 사회의 획기적 업그레이딩이 필요하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621055012173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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