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코넬대학 로버트 프랭크 교수의 <경쟁의 종말>에 따르면 2005년 미국 의회는 총 3억2,0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알래스카의 작은 마을 케치칸과 그라비나 섬의 공항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는 데 책정했다. 당시 케치칸 인구는 9,000명이 안 되었고, 그라비나 섬의 인구는 겨우 50명이었다. 탑승료 6달러짜리 페리호가 15분에서 30분 간격으로 다닌다. 다리가 건설되면 주민들의 삶이 편리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편익에 비해 투입되는 비용이 엄청나다.
누가 봐도 황당한 이 프로젝트가 추진된 이유는 무엇일까. 프랭크 교수는 지역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들의 음흉한 야합으로 파악했다. 어차피 다리 건설 비용은 지역주민이 아닌 국가 전체 납세자들이 떠안을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납세자들은 이런 프로젝트가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다른 주 의원들은 자신들이 제안할 유사한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이런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에 반대하지 않았다. 뒤늦게 이러한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것을 알게 된 국민들이 거세게 반대했고 결국 다리 건설은 무산되었다. 이후 이 프로젝트에는 '갈 곳 없는 다리(Bridge to Nowhere)'라는 이름이 붙여져 포퓰리즘에 영합한 정부의 예산 낭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표현이 됐다.
우리도 이러한 경우가 적지 않다. 경남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가 대표적이다. 거제도가 고향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한 것으로 알려진 거가대교는 건설비용으로 총 1조4,469억원이 투입됐지만 수요 예측이 턱없이 빗나가 지난해에만 경상남도와 부산시가 운영업체에 469억원의 적자보전을 해줬다. 이대로 갈 경우 향후 20년간 1조4,000억원에, 물가상승을 감안키로 한 협약까지 감안하면 6조원 가량을 물어줘야 할 판이란다.
이미 우리나라에 '갈 곳 없는 공항(Airport to Nowhere)'은 수없이 많다. 청주공항을 비롯해 무안공항도 비행기에 태울 사람도 갈 곳도 없다. 지방공항 대부분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지난해 총 560억원의 적자를 냈다. 1,300억원을 투입한 울진공항은 개항도 못한 채 비행교육 훈련센터로 용도를 바꿨고, 전북 김제공항은 감사원 재검토 지시로 2004년부터 공사를 중단, 배추밭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공사비가 4,790억원에 달하는 울릉공항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실시됐다. 울릉도의 숙원사업으로 경북지역 정치인들이 울릉공항 건설의 정당성을 강조해왔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조사결과 경제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울릉공항을 건설하려면 바다를 일부 매립하지 않을 수 없어 사업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경북도와 울릉군은 한일간 독도영유권 분쟁 등이 계속되는 것을 감안할 때 정부는 경제성 이외의 전략적인 변수도 함께 검토해 달라는 주문이다. 또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이 유치작전을 벌였으나 이명박 정부가 이미 백지화했던 동남권신공항 건설 프로젝트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정치권이 들쑤시려는 분위기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 도대체 공항이 얼마나 더 건설되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설익고 대책 없는 공약들이 난무하고 있다. 한 표라도 끌어 모으려다 보니 으레 무리한 공약이 남발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도가 지나치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연간 의료비상한 100만원 등 한결같이 서민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하지만 실천 가능성은 극히 회의적이다. 100조~200조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 예산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 정치인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이 되고 보자'는 심정으로 예산에 대한 개념 없이 공약에 매달리는 것이 볼썽사납다. 뽑아주고 나서 기대에 못 미치면 실망을 넘어 분노로 돌변하는 것이 국민의 마음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9210336243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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