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5. 02:50

칠 년 전 외국 공항에서 ‘끄덕 인형’ 한 쌍을 샀다. 작은 투명 플라스틱 상자 안에서 꼬마 닌자(忍者)가 쉼 없이 머리를 끄덕인다. 신기하게도 건전지나 전기 공급 없이 작동하는데 그 비밀은 태양전지에 있다. 집광판이 빛에너지를 동작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녀석은 일본에서 탄생해 전 세계로 퍼진 ‘노호혼’ 인형이다. 일본말 노호혼, 유유자적이나 빈둥빈둥 정도로 해석된다. 우울증 해소용 인형이라는데 ‘괜찮아, 괜찮아…’ 하며 끄덕이는 것 같다.

인간을 빛으로 조종할 수 있을까. 그리스·로마 시대의 철학자들은 시각을 눈총의 산물로 봤다. 눈에서 광선이 나가 상대를 판별하고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생각은 로봇영화에나 남아 있다. 눈은 빛의 발사기관이 아니라 수용기관이며, 눈총 염력 같은 건 없다는 명제는 상식에 가깝다. 그런데 상식이 새 정부에서 뒤집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대통령이 레이저눈총으로 끄덕맨을 양산한다는 괴담이설(怪談異說)이다.

대통령의 레이저발사 설은 과거 출입기자 사이에서 종종 제기됐다. 한 종합지 기자의 증언이다. “2011년 1월, 국회 ‘근혜천사’ 바자회. 대통령(당시 전 대표)은 격려사에서 ‘복지 논의가 많은데 왜 모든 것을 돈으로만 보는지 안타깝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심’이라고 언급했다. 복지 논쟁이 증세로 비화하는 데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행사장을 나온 대통령에게 ‘복지에 돈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 어떤 맥락인가요’라고 물었다가 레이저눈총을 맞았다. 대통령은 민첩한 속도로 돌아서서 ‘한국말 모르세요’라고 했다. ‘I don’t know Korean.’ 이렇게 대응할까 했는데, 눈총에 당황해 실기했다.”

요즘 정부 개편과 공직 인선 등을 두고 레이저눈총 설이 다시 부상했다. 대통령의 모습은 평소 단아하다. “가끔 입으로 웃지만 눈으로 쏘아보는 표정을 할 때, 정말 살벌하다”(여당 당직자)는 경험담처럼 대통령 앞에 가면 주눅이 들어 지시만 받아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야당은 불통(不通) 이미지를 눈빛으로 형상화하려 한다. 몇몇 신문도 눈빛이 강하게 나온 대통령 사진을 골라 1면에 배치한다.

레이저는 단색 파장에 강한 직진성을 갖는다. 레이저눈총은 지시형 리더십의 비유인 것이다. 리더십 유형 중 어느 것도 좋고 나쁜 것은 없다. 구성원이나 환경에 따라 스타일을 달리한다. 계획대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할 때, 리더와 부하의 능력 차이가 클 때 지시형 리더십은 힘을 발휘한다. 반면에 부하의 자발성과 조직의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는 약점이 있다. 새 정부처럼 창조경제·미래창조사회를 국정 화두로 삼았을 때 더욱 우려되는 지도 유형이다.

창조의 정의는 백인백색이다. 변이·적응·지속에 근거한 가치지향적 변화라고 정의한다면 그 리더는 새 판을 벌일 줄 아는 상상력, 판을 잘 유지해가는 조정능력, 저항을 무릅쓰고 새 판의 변이를 택하는 결단력을 보여줘야 한다. 상상과 조정, 결단은 혼자 고뇌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지시와 위임, 이성과 감성, 용기와 배려가 씨줄·날줄로 짜여야 가능하다.

 창조형 리더십이 복합유형이라면 그 리더는 문화의 교차로에 서 있는 게 좋다. 대통령은 그 조건을 갖춘 인물이다. 남성·문과 중심 정치판의 이공계 여성, 보수당의 복지·행복 주창자였다. 숫자·돈·현실보다 인간 의지를 더 믿던 정치인이다. 당선 이후에는 지시형 리더십만 부각된다. 장점을 못 살리고 있다. 진실과 상관없이 대통령이 레이저눈총을 자주 쏜다고 믿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대통령의 직진 광선이 가슴에 꽂힐수록 고위 공직자는 끄덕 인형, 유유자적 인형, 빈둥빈둥 인형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것이 지시형 리더십이 오래 유지됐을 때의 운명이다. 혹시 대통령이 눈총을 가졌다면 빨리 이를 여러 파장을 받아들이는 렌즈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공직자, 자체발광 정책이 나온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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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5. 02:31

프랑스의 프랑스 문화원, 독일의 괴테 인스티투트, 스페인의 세르반테스 문화원 등 선진국들이 운영하는 문화원 활동을 눈여겨보면 그들의 문화 국력을 가늠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도 해외에 문화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주요 선진국 수도에만 위치하고 있다. 운영에 많은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터키에 이어 헝가리에도 문화원이 설치된다고 하니 반갑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원의 양적 증가만이 대수는 아닐 것이다. 문화는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생활에 녹아들어야 한다. 학술대회나 세미나 개최, 한국영화 상영, 한식홍보 등 일회성 행사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전에 볼리비아 중부의 수크레를 방문한 적이 있다. 스페인 식민지풍의 흰색 건물이 많이 남아있어 ‘하얀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헌법상 수도다. 유럽의 배낭여행 청소년들이 많이 찾아 거리는 언제나 붐빈다.

그곳의 독일문화원은 수도 라파스에 있는 괴테 인스티투트와 달리 큰 건물이 아니라 일반 가정집과 다름없는 아담한 건물이다. 현관 옆에 베를린 카페를 운영해 주민들이 언제라도 부담 없이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여행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서너 개의 객실이 있는 숙박시설도 갖췄다. 문화원은 독일명예영사가 운영하며 독일대사관으로부터 약간의 운영비만 지원받고 있다고 한다. 지역 커뮤니티 속에서 자연스럽게 독일의 문화를 심고 있는 모습에 감명받았다.

이제 세계 도처에 한국인이 진출하지 않은 곳은 없다. 이름 없는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도 우리 국민이 있다. 그들을 우리 문화 홍보의 첨병으로 참여하게 한다면 대도시에서 활동하는 문화원의 역할을 큰 재정적 부담 없이 지방 소도시에서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정 수준의 규격과 격식을 갖춘 교민의 가정집이나 가게, 또는 교민 시설의 한쪽을 한국 문화 홍보를 위한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면 현지인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을 주면서 한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교민을 우리 문화 홍보 활동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함으로써 자긍심 고취는 물론 관민이 함께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 외교활동의 한 전형을 이룰 수도 있다.

지난해 한국 영화·방송프로그램·음반 수출액이 7억9400만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세계 도처로 뻗어가고 있는 한류의 힘이 있다. 이러한 한류의 맥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김홍락 전 주 볼리비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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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5. 02:04

지난 설 연휴, 고향에 다녀들 오셨는지. 그렇다면 올해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분이 많을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야 원래 그렇다 치고, 국도변에 다닥다닥 자리잡은 음식점 간판들이 어찌 그리 다 한통속인지 말이다. 토종닭백숙·국밥·설렁탕·매운탕·장어구이…. 전국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원조’ 아니면 ‘할머니 손맛’을 내걸었다. 그 많은 할머니 명인이 돌아가시지도 않는다. TV 프로그램에 나왔다며 방송사 로고를 붙인 집이 너무 많아서 안 그런 집 찾기가 더 힘들 지경이다.

차를 세우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식사를 하면 십중팔구 실망이다. 조미료를 듬뿍 친, 그저 그런 맛이다. 반대로 유명하다는 맛집을 애써 찾아가면 줄을 길게 선 끝에 뒷손님 눈치 보며 후딱 먹어치워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그래서 대한민국 식당은 두 종류다. 소수의 ‘얻어먹는 집’과 다수의 ‘먹어주는 집’이다.

나를 포함해 절대다수 장·노년층은 질보다 양 위주의 식습관에 길들여져 있다.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인사말에 배고픈 역사가 숨어 있다. “먹는 게 남는 것”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외치며 미각보다 포만감, 혀보다 위장을 앞세웠다. 음식 취향은 개인사(史)를 정확히 반영하기 때문에 나중에 형편이 풀렸다 해서 입맛까지 고급으로 바뀌지 않는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시절 툭하면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 그 비싼 민어·어란과 쇠고기·조기젓·수수엿·호두·곶감을 보내달라고 어린애처럼 졸랐다. 권문세가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좋은 먹거리를 두루 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했다.

베이비부머 이상 세대야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러나 다음 세대까지 지금의 척박한 외식문화를 물려주어서야 되겠는가. 사실 우리에겐 1980년대까지 이렇다 할 외식문화가 없었다. 대다수가 집에서 만든 밥과 반찬으로 때웠다. 외국계 프랜차이즈 식당이 국내에 진출한 게 80년대 중반이었다. JTBC ‘미각 스캔들’에 출연 중인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우리에겐 향토음식을 상품화해 본 경험이 없다”고 말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지자 어릴 때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찾은 게 향토음식 개발의 계기였다. 농촌 아니라 도시의 요구로 시작됐다는 얘기다. 축적된 경험이 없으니 이웃 닭백숙집이 잘되면 닭백숙, 매운탕집이 잘되면 매운탕을 너도나도 차려내기 시작했다. 얼마 안 지나 그저 그런 비슷한 먹거리가 전국을 뒤덮었다.

천편일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황교익씨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식재료의 DB(데이터베이스)화를 꼽는다. 어느 고장에서 무슨 농수산물이 나고, 특성은 어떠하며, 어떤 경로로 구할 수 있는지 세세히 정리하는 게 먼저다. 유럽·일본에선 이미 20~30년 전에 끝낸 작업이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염대규 식품산업처장에 따르면 그나마 올해 최초로 식재료 DB 구축을 위한 실태조사 예산이 소액 배정됐다. 재작년 제정된 외식산업진흥법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식재료를 체계화해 놓지도 않고서 한식 세계화를 외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서울 이태원에 퓨전한식 레스토랑을 차려 주목받고 있는 젊은 셰프 권우중(33)씨는 “요리는 곧 문화인데, 한식이랍시고 만날 비빔밥·잡채·불고기만 돌려대면 앞으로 이삼십 년이 지나도 태국요리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프랑스·중국·일본·이탈리아 같은 요리대국 대접은 까마득하다는 말이다. 음식을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두었다가 꺼내 상을 차리는 시중의 한정식은 “최악의 요리”라고 권씨는 비판한다. 중국은 간단한 면 요리부터 만한전석(滿漢全席)까지, 일본은 덮밥에서 가이세키(會席)요리까지 대중성과 수월성을 골고루 구비했다. 요리의 생태계가 살아 있다. 한식은 어림도 없다. 권 셰프는 “더 심각한 문제는 프로 한식 요리사, 특히 젊은 요리사가 너무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세계화? 남들이 먹어주고 각국 요리사가 다투어 한국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세계화다. 민족주의 냄새가 풍기는 지금 방식으론 안 된다.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8개를 한국·스페인·터키·아르헨티나 등 8개국이 사이 좋게 나눠 가진 태권도가 올림픽 핵심 종목으로 살아남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 식당도 할머니 손맛과 이별할 때가 됐다. 주먹구구식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춰야 한다. 잔뜩 차려놓았는데 막상 먹을 건 없는 상차림은 과감히 엎어버리자. 음식을 즐기는 게 아니라 허겁지겁 ‘집어넣는’ 안쓰러운 모습을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유전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 재 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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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9

로마에 들른 김에 바티칸시티에 갔다가 눈여겨본 게 있다. 현금자동지급기 모니터에 뜬 사용 안내문이 라틴어로 돼 있었다. 그림 안내가 함께 떠서 얼추 불편하지는 않았다. 영국 어떤 도시는 지하철 금연 문구가 영어와 라틴어로 쓰여 있다. '노 스모킹/ 놀리 푸마레(Noli Fumare)'. 1파운드 동전엔 라틴어로 '엘리자베스, 데이 그라티아 레지나 피데이 데펜소르'라고 쓰여 있다. '신의 가호로 믿음을 지키는 여왕'을 기린다.

▶흔히 '죽은 언어'라고 하지만 라틴어는 그네들 일상에 살아 숨 쉬듯 스며 있다. EU의 좌우명은 '인 바리에타테 콘코르디아(다양함 속에 하나가 된)'다. 핀란드에는 라틴어 방송도 있다. '로빈슨 크루소' '보물섬' '어린 왕자' '해리포터' 같은 어린이 책도 꾸준히 라틴어로 번역한다. 라틴어로 시를 짓거나 산문도 쓴다. 예수를 그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는 모든 대사를 라틴어로 했다.

▶지난 11일 교황이 라틴어로 된 사임 발표문을 읽었다. 교황청 기자들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며 통역을 기다렸다. 라틴어에 능숙한 이탈리아 여기자 지오반나 치리의 눈이 빛났다. "너무 피곤하다. 그만두려 한다"는 교황 말씀을 알아듣고 곧바로 140자 남짓 1보(報)를 타전했다. 초를 다투는 보도 현장에서 터진 세계적 특종이다. 그녀가 교황청 취재를 잘해보려고 라틴어를 익혀 온 덕분이었다.

▶부활절에 교황이 성베드로 성전 발코니에서 라틴어로 하는 강복(降福)을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라고 한다. '로마 도시와 전 세계에'라는 뜻이다. 그러나 2000년부터 라틴어는 바티칸 공용어가 아니다. 라틴어를 모르는 젊은 사제가 많아진 탓이다. 그러다 전통을 중시하는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에 오른 2005년부터 라틴어 사용이 늘었다. 라틴어 문서와 발표문을 만드는 '라틴어 문서실'이 따로 있다.

▶미국 명문대 교훈은 대부분 라틴어다. 서울대 배지에도 '베리타스 룩스메아(진리는 나의 빛)'라고 쓰여 있다. 서양에서는 중·고교부터 라틴어를 가르친다. 대학에 가려면 라틴어 인증 시험을 치른다. 여러 학문과 문화의 뿌리를 이루는 공통분모가 라틴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법학·의학·신학·문학·사학·철학은 물론 자연과학도 중요 개념과 용어를 라틴어로 쓴다. 세상 언어는 7000개가 넘는다. 그 대부분은 지금 쓰지 않는 '불 꺼진 언어'가 됐다. 그러나 라틴어만은 정신문화의 꺼지지 않는 불로 빛나고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14/20130214029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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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8

KIST 텅 빈 건물 채워줄 두뇌 찾자 在美 한인 과학자 1000명 귀국 행렬
박 대통령 앞장서 연구 환경 만든 것 '미래' '창조' '과학' 元祖 생각할 때


미래창조과학부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창작'은 아니다. 47년 전 미래·창조·과학의 기치를 든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박 당선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지난 10일 창립 47주년을 맞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그것이다.

우리 근대화 역사를 보면 '국운(國運)'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병철이 전자, 정주영이 조선 산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나 박 전 대통령이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이 좋은 예다.

KIST가 생긴 유례는 더 드라마틱하다. 1965년 박 전 대통령은 미국에 갔다. 월남전 파병(派兵) 대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존슨 대통령이 뜻밖의 '선물'을 내놓았다. "종합 과학 연구소를 지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과학기술 인력이 1000명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은 그로부터 굉음(轟音)을 울리며 역사를 바꿨다. 홍릉(洪陵)에 KIST가 들어선 것은 그 1년 뒤였다.

문제는 텅 빈 건물을 채울 '과학 두뇌(頭腦)'였다. 초대 원장 최형섭은 미국 워싱턴으로 가서 한국인 과학자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했다. "가난한 조국은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1966년 처음 18명이 귀국했다. 귀국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1980년까지 영구 귀국한 과학자가 276명, 1990년까지 1000명이 넘는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놀란 험프리 미국 부통령이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KIST의 재미(在美) 한국인 과학자 유치는 세계 최초의 역(逆)두뇌 유출 프로젝트였다!" 과학자 1000명이 부(富)와 명예를 버리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조국으로 돌아온 것은 물론 애국심 때문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귀국한 과학자들은 당시 국립대 교수보다 세 배 높은 보수를 받았지만 미국에 있을 때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반발하고 대통령보다 더 높은 월급에 놀란 관리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박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과학자들의 급여 명세표를 훑어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이대로 시행하시오!" 편안하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자 과학자들은 몸을 던졌다.

서울 인사동의 한식집 선천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노(老)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KIST 초기 멤버 40여명이 만든 '4월회'라는 모임에서는 역사가 채 기록하지 못한 충격적인 증언을 접할 수 있다.

"처음 귀국한 과학자 20여명 중 5명이 4년 만에 사망했습니다. 간암·대장암이었지요. 모두 30대였어요. 허허벌판에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스트레스… 오늘날 번영은 그런 희생이 바탕이 된 겁니다."(안영모 박사)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22대 원장인 문길주 박사는 1991년 귀국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KIST가 '그랜드캐니언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며 세계환경학회에서 이름을 떨친 그를 주목한 것이다. 고교 때 캐나다로 간 그는 한국말을 못하는 브라질 교민 출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귀국했다. 연봉 2000만원으로 미국에서 받던 5만달러의 절반도 안 됐지만 그는 한국행 비행기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앞서 이 길을 택한 선배들이 있었기에 기꺼이 조국으로 돌아간다."

이들은 서독에서 청춘을 바친 광부·간호사, 월남전에서 피 흘려 달러를 번 월남전 용사들과 함께 우리 역사에 기록돼야 마땅할 것이다. 이런 사실(史實)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래창조과학부는 미래·창조·과학은 간데없이 권한과 이권으로 가득 찬 '괴물'이 될 태세다. 나는 김지하가 썼듯 신새벽, 박 당선인이 아버지의 숨결이 살아있는 KIST를 찾아 미래·창조·과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문갑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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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8

고향의 따뜻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명절이 곧 돌아온다. 평소에는 자주 만나지 못하던 친척들이 오랜만에 한지붕 아래에 모여 조상님께 같이 차례도 지내고 어른들께는 세배도 올리면서 밀렸던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런데 그 즐거워야 할 명절날이 안타깝게도 아이에겐 평생 남는 상처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별 생각 없이 툭툭 던진 고모나 삼촌, 할머니의 말들이 비수가 되어 시간이 지나도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따끔따끔 하면서 아픈 상처로 남는 것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많은 경우에 아이가 본인의 말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면 알아도 ‘뭐 그럴 수도 있지, 식구들끼리 무슨 상처냐? 다 너 잘되라고, 다 너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아이는 너무도 아픈데도 말이다.


이를 테면 이런 말들이다. 명절 때 밥 먹고 있는 여자 조카애를 보더니 고모가 대뜸 이렇게 말한다. “에휴, 너 살 좀 빼야겠다. 네가 평소에 그렇게 먹으니까 남자가 안 생기는 거야. 너 어렸을 때만 해도 진짜 예뻤는데.” 할머니의 이런 말들도 아프다. “네가 빨리 취직이 되어야 엄마가 덜 힘들 텐데. 부모 등골 좀 그만 빼먹고 얼른 돈 벌어 시집이나 가라.” 큰어머니의 결혼에 관한 말도 아프다. “결혼은 왜 안 하니? 돈은 좀 모았니? 올해는 국수 먹여줄래? 멀쩡한데 왜 결혼을 못해. 눈 좀 낮춰라. 공부만 잘했으면 뭐하니 결혼 잘 못하면 그거 다 헛똑똑이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애가 학교 몇 학년이냐고 물어 보시는 고모부는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재수를 결정한 아이를 보고 이렇게 묻는다. “너, 재수를 왜 하니?”

사실 명절 하면 기억이 나는 일이 하나 있다. 나에겐 자라면서 거의 친누나처럼 가까웠던 사촌 누나가 한 명 있다. 집이 가까워서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같이 누나와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누나 집은 우리 집과는 달리 좀 시끄러운 일이 많았는데 그 이유가 누나 부모님께서 부부 싸움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누나가 중학교 다닐 때 두 분은 이혼을 하셨고, 나는 옆에서 누나가 부모님의 이혼으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쭉 지켜봐야 했다. 그러다 한참 뒤 우리가 어른이 된 후 누나에게 드디어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연애가 무르익어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갈 때쯤 큰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된다.

명절이 되어 매형이 결혼하게 될 누나를 친지들에게 소개를 시켜주려고 집으로 누나를 초대했다. 누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곱게 차려 입고 매형 집에 가서 최선을 다해 좋은 인상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부엌에서 음식 하는 것을 열심히 돕다가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마루를 걸어가는데 저쪽 방 한쪽에서 매형 고모들이 하는 말이 들려 왔단다. “쟤네 부모가 일찍 이혼을 했다네. 아버지 없이 근본 모르고 자란 애야. 우리랑은 사실 격이 맞지 않는데 결혼하겠다고 저렇게 뻔뻔하게 집에까지 찾아온 것 좀 봐.” 이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된 누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나도 얼마나 누나가 아팠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다. 아니 세상에, 부모님 이혼한 것이 어떻게 애들 책임이란 말인가? 결국 누나는 매형과 헤어지려 했지만 매형의 끝없는 구애에 아슬아슬하게 둘은 결혼을 했다. 단, 친척들을 봐야 하는 결혼식은 하지 않고 결혼신고만 하고 말이다.

트위터로 한번 물어 보았다. 명절 때 친척들의 말 때문에 아팠던 적이 있었느냐고. 그랬더니 실시간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연이 올라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좋은 명절 때 모여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일까. 그냥 가족이니까 꼭 남들에게 하듯이 힘들게 말 가려가면서 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할 말들이 세상에는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애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아파한다면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사실 애는 뭐가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어른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차라리 애가 어떤 점 때문에 힘들어 할지 그 마음을 살펴서 응원의 말, 격려의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넌 이게 문제야’가 아니고, ‘나도 사실은 너처럼 그랬었어’라고 공감해 주고, ‘넌 분명 잘할 수 있어’라고 믿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멋있는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이번 설날만큼은 상처의 명절이 아니고 행복한 명절을 선물했으면 좋겠다.


혜민 스님 미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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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4. 4. 16:56

해마다 춘절(春節·설)이 가까워지면 베이징의 식당가는 종업원 구인난에 시달린다. 지난주부터 절반 이상의 종업원들이 새 얼굴로 바뀐 음식점이 허다하다.

올해는 특히 극심한 스모그 때문에 정이 더 떨어진 지방 출신들이 일찌감치 일을 접고 귀성길에 올라 구인난이 더 심하다고 한다.

눈에 차는 일손을 찾아 백방으로 헤맸다는 단골 식당 점주. 요즘은 지방에도 일자리가 늘어나 굳이 숨쉬기조차 어려운 베이징에서 일할 의욕이 안 생긴다는 종업원들.

날씨가 풀리면 다시 스모그에 시달릴 테고 곧 있을 황사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토로한다.

객지 생활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길게는 3~4년에 한 번 하는 귀성이니 며칠이 걸려도 고향으로 갈 테지만 요즘 소득 수준이 웬만한 중국인들은 굳이 춘절에 맞춰 고향을 찾지 않는다.

그렇다고 폐에 끔찍한 영향을 미친다는 초미세 먼지가 짙어지는 대도시에 머무를 리도 없다. 최대 2주나 낼 수 있는 춘절 연휴 때 아예 중국을 떠나 유럽·미국·동남아 등 해외 휴양지로 몰린다. 한국에도 6만3000명의 요우커(遊客·관광객)들이 들이닥친다고 한다. 명절을 맞아 한산했을 서울 도심의 쇼핑가와 관광지가 요우커들로 한바탕 들썩거릴 모양이다.

얼마 전 신년회 자리에서 한국을 자주 오가는 지인들이 터트린 불만을 들은 일이 있다. 한국에선 시끄럽고 덜 씻는다는 선입견으로 요우커들을 기피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집단문화의 영향에, 머리를 자주 감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생활 관습 때문에 생기는 불가피한 문화 충돌인데 냉대를 받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속이 뒤집어지더라는 것이다.

연휴 때 한국을 찾는 요우커들의 씀씀이가 워낙 커서 이들에 대한 첫인상이 돈과 결부돼 그렇지 따지고 보면 이들은 지역사회와 소속 직장에서 오피니언 리더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압축 성장으로 인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졌다지만 춘절에 해외 여행 정도 갈 수 있는 계층은 13억 중국인들 가운데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마침 인내의 한계를 시험 받는 맹독성 스모그에 시달리다 떠나는 춘절 여행인 만큼 한국의 녹색 환경과 청정 이미지를 각인시킬 기회다. 먹거리 안전 때문에 늘 심리적으로 쫓기고 오염된 공기를 깊이 마시며 정신적으로 지쳐 있을 요우커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자극하는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이다. 가족을 이끌고 베이징에 나와 살다 보면 환경은 경제성장의 브레이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신념이 생기게 된다. 질 높은 도시생활은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서비스이자 갖고 싶은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청정 산업 경쟁력과 원천기술, 관리 노하우를 앞세워 중국과 전방위에서 에코(Eco) 산업외교를 펴야 할 때다.



정 용 환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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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5

파리에서 테제베(TGV)를 타고 3시간쯤 가면 도착하는 인구 4만의 작은 도시 앙굴렘(Angoulme). 프랑스인들에게 이 도시의 이름을 대면, 바로 ‘만화(bande dessine)’라는 답이 튀어나온다. 지난 1974년 시작돼 올해로 40회를 맞는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때문이다.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열린 올해 행사에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돼 ‘한국만화특별전’을 열었다. 덕분에 좀처럼 찾기 힘든 유럽의 소도시 앙굴렘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가기 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어떤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는지 페스티벌 홈페이지를 검색해 봤지만 모든 내용이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어 당최 내용을 알기 어려웠다. 설마 현장에선 영어가 통하려니 했으나 이런, 공식 행사자료집은 물론 전시현장의 안내판도 모두 프랑스어뿐이었다. 행사 관계자들에게 이유를 물어봤지만 ‘미안한데 우리는 원래 그래’란 표정으로 바라볼 뿐, 시원한 답을 듣기 어려웠다. 행사 내내 휴대전화로 프랑스어 사전을 검색하며 투덜댔다. 이게 무슨 국제페스티벌이야?

제40회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포스터. 지난해 그랑프리 수상자인 장 클로드 드니의 그림이다.

사실 앙굴렘을 찾아오는 관객의 약 5%만이 비프랑스어권 국가에서 온 이들이라 한다. 최고의 만화에 시상하는 ‘앙굴렘 그랑프리’는 일본·한국 등 전 세계 만화를 대상으로 하지만, ‘프랑스어판이 출간된 작품’에 한정된다. 하지만 이런 실용적인 이유가 전부는 아닐 터다. (어렵게 한국말로 번역해 읽은) 자료집 내 프랑크 봉두 조직위원장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앙굴렘 페스티벌은 프랑스어권의 창작품을 널리 전파하며, 프랑스를 국제교류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행사다.”

실제 ‘아스테릭스’라는 세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낸 프랑스 사람들의 자국 만화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대륙별로 봤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만화시장은 유럽(45억7000만 달러·2010년 기준)이며, 그중 프랑스(9억2800만 달러)는 독일(9억5500만 달러)보다 조금 작다. 하지만 독일 만화시장이 최근 20년 새 일본만화에 거의 잠식된 것과 달리, 프랑스는 자국 만화의 비율을 약 60% 정도로 꾸준히 유지해 가고 있다.

나 같은 이들의 불만 때문에 앙굴렘페스티벌 조직위 내부에서도 행사의 ‘국제화’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한다. 하지만 40년간 지켜온 원칙을 단번에 바꿀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앙굴렘을 즐기려면 프랑스어를 공부해라?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얄미운 만화강국의 자신감이다.


이영희 문화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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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2

미국에서 가본 곳 중 미국의 힘을 가장 느낀 장소를 고르라면 항공우주국(NASA) 케네디 우주센터를 들고 싶다. 1960년대 아폴로 우주선을 쏘아 올려 달 탐사를 주도한 역사의 현장. 지금은 2025년을 목표로 인간의 화성 착륙을 지휘하는 꿈의 공장. 우주센터는 미국 우주개발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녹아 있는 곳이다. 이곳엔 실제 달을 다녀온 로켓이 전시돼 있고, 직접 로켓 발사대 위에 올라가 볼 수도 있다. 한 달 전 이곳을 방문했는데 나로호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있다. 우주개발은 속도전이나 벼락치기가 불가능한 영역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케네디 우주센터는 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로켓 발사 체험을 하는 시설도 있고, 실제 우주인과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우주 도전사를 그린 영화를 볼 땐 외국인인 기자도 절로 감격스러워질 정도였다. 옆을 보니 벅차오르는 애국심에 눈을 훔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직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육성이 귀에 아른거린다. “우린 10년 내에 달에 갈 겁니다. 그것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미국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매년 2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센터를 찾아 우주 비상의 꿈을 간직하고 간다. 이들은 대부분 열렬한 우주탐사 지지자가 된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아픔의 역사까지도 성공과 함께 취급된다는 점이다. 우주센터엔 실패와 시행착오의 기록도 숨기지 않고 전시돼 있다. 지난 1일 이곳에선 컬럼비아호 사고 10주년을 기억하는 행사가 성대히 열렸다.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는 2003년 지구 귀환 도중 폭발해 승무원 7명이 모두 사망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동료들은 “NASA 직원 모두 다시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며 “실패를 이기려는 도전이 우주 강국 미국의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런 우주센터지만 지난달 로켓 발사대 하나를 매물로 내놨다. 비행기 조립공장과 관제센터 일부도 팔겠다고 선언했다. 책상과 의자 등 집기까지 판매 리스트에 올렸다. 경제 위기에 따른 예산 감축 때문이다. 우주개발은 계속해야 하고 돈은 없으니 이렇게라도 벌충하려는 것이다. 막대한 돈이 드는 우주개발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어느 때보다 국민적 자긍심이 높아졌지만 앞으로 갈 길은 더 멀고 험난하다. 안타깝게도 마음이 급하다고 질러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우주기술은 그 나라 국가경쟁력과 과학기술의 총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우주산업이 창출하는 신기술과 경제 파급효과는 놓칠 수 없는 영역이다. 우주강국은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수많은 눈물과 실패의 역사를 딛고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이다. 힘든 여정을 이겨내기 위해선 모두가 꿈을 공유해야 한다. 미 우주센터는 그 진리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상 복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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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1

중소자영업자 600만 명. 우리나라 농업인구 300만 명의 두 배 규모다. 요즘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국민 세금 1조원 이상이 투입되고, 그 규모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정작 자영업자가 살 만해졌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1조원을 600만 명이 나눠 가진다고 해도 고작 17만원꼴이다. 예산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고,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 규제가 입법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자영업 장사가 갑자기 잘될 거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필자는 34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유통 분야에서만 30여 년 일했다. 또 신용카드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국내 220만 가맹점의 창업-폐업 실태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약자 보호를 위한 시장 합리화 정책이 필요하지만 현재와 같은 정부 주도의 지원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처방약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본질에서 답을 찾아보자. 어떻게 해야 장사로 잘살 수 있을까. 가장 밑바닥의 경쟁력은 바로 상인의 도(道)라고 본다. 전통적인 산업 구분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이다. 정통 경제관료로 칭할 수 있는 사는 경제 개발 초기는 물론 이후의 발전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농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통해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 기반을 갖췄다. 공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대기업이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성공의 바탕엔 모두 의식 개혁이 자리 잡고 있다. 사의 충성심, 농의 애향심, 공의 경쟁심이다.

이제 상이 남았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개발을 이룬 데엔 불같은 열정과 강철 같은 집념, 눈물겨운 희생이 큰 역할을 했다. 상도 이제 철저히 본연의 도를 찾아야 한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자식에게도 상인의 길을 걷도록 ‘강추’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상이 가맹점 수수료나 골목상권 살리기에 의존해서 생존 전략을 짜면 안 된다. 뼛속까지 상인이 돼야, ‘장사꾼’이 돼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도 자금 지원이나 대기업 진출 규제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상인의 의식 개혁을 전담하는 상인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가나안 농군학교 같은 상인학교 말이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상인이다’라는 자부심이 없이는 어떤 지원도 낭비가 될 소지가 크다. 자영업자 스스로 사농공상이 아니라 상공농사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인식이 바뀌어 절실해지면 제대로 장사하는 방법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손님이 왕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충실해야 한다. 고객이 누군지를 먼저 파악하고, 그 고객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아서 맞춰야 한다. 손님이 나를 좋아하고 믿어야 내 물건과 서비스를 살 것이다. 성공한 자영업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차별화된 맛과 서비스, 입소문 마케팅, 스토리텔링, 고객 분석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장사에도 열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변엔 아직도 천편일률적인 메뉴, 점심 시간이니 가급적 주문을 통일해 달라고 강요하는 종업원, 고객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 계산원이 눈에 자주 띈다. 절절해야 열정이 나오고, 열정에서 창의가 나온다. 장사해서 밥은 먹고산다는 식이라면 옆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면 금방 거덜 난다.

그 다음은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이다. 최근의 자영업 정책은 남의 것을 뺏어주는 측면이 강하다. 중대형 유통사의 골목상권 진입 금지,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점 제도 개선,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우대 등이다. 이런 방식으론 이해 당사자 간 대립이 불가피하고, 자발적인 상생 체계가 가동되기 힘들다. 밀어붙이기보다는 시장 원리가 작동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성공하는 자영업자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일에 대한 진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일에 대한 보다 과학적 인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의 시의적절한 지원이 더해진다면 자영업 의 성공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러 어려움에 빠져 있는 자영업자 모두 상인의 도에 기반을 둔 ‘제2의 상업 새마을 운동’을 해보면 어떨까.


이 강 태 BC카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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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49

정치쇄신을 원한다면 정치인들이 좋은 정치를 위해 경쟁하고, 또 좋은 인재들이 정치로 몰려들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인센티브를 높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에서 얘기하고 있는 정치쇄신안들은 정치를 하려는 인센티브를 오히려 줄이면서 좋은 정치를 위한 개혁을 하려고 한다. 모순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워낙 정치인들이 지탄을 받아와 뭔가 정치인들에게 징벌을 가해야 국민들이 만족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국민과 정당, 언론에 오늘날 정치의 책임이 있다. 우리 사회의 각계에서 성공한 인재들이 정계로 들어선 후에는 그곳에서 꽃피지 못하고 좌절해 나오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보았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나 정당 내에서 제공되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전반적 인센티브체계가 그들이 나쁜 정치를 하도록 왜곡되어 있지 않은지, 또한 훌륭하고 깨끗한 인재들을 더 많이 정치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지금의 인센티브체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모색해 봐야 한다. 열심히 발품 팔고 유권자들에게 귀 기울여 좋은 정책을 발의하면 언론과 국민은 별 주목을 하지 않는 반면 강경투쟁 벌이고, 근거 희박한 사실들을 폭로하며 장관과 공무원에게 호통치면 대문짝만 하게 보도되고 당내 입지와 차기 선거에 유리하게 된다면 누군들 후자의 행동을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는 경제발전 초기 막대한 금융,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산업화와 수출입국에 성공했다. 또한 올림픽 출전선수들에게도 일관되게 강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우리의 국력을 훨씬 뛰어넘는 올림픽 성적을 거둬왔다. 우리가 정치발전을 원한다면 정치에도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는 물질적 보상뿐만 아니라 명예, 징벌 등이 포함되는 광의의 인센티브체계를 말한다. 그러나 최근 여야 정당에서 거론되고 있는 쇄신안들은 인센티브를 줄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세비를 30% 깎고, 특혜를 줄이면 더 많은 좋은 인재들이 정치권으로 몰려들고 좋은 정치가 이뤄지는가? 그렇게 하면 얼마나 많은 국가예산이 절감되는가? 아마도 저축은행 하나 구제하는 것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정치를 만드는 것은 그 어떤 과제보다 국가의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일이다.

국민들을 일시적으로 시원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쇄신방안은 아니다. 좋은 인재들이 정치인의 삶을 지향하고 정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비를 깎고, 특권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비현실적 정치자금법을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어 주고 제대로 의정활동을 하도록 지원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돈 많은 사람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쁜 정치에 대한 징벌도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민과 정당이 담당해야 할 몫이 크다. 선거와 공천이 최대의 징벌 수단이다.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으면 그 지역에서는 묻지마 당선이 되는 한 정치발전은 이루기 어렵다. 공천방식, 당내 고위직을 위한 경쟁과정, 당 운영방식 등 정당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거 우리 사회는 투명한 사회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실질적 보상·유인체계도 투명하지 않았다. 공무원들의, 국회의원들의 보수가 월급봉투만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내려주는 금일봉, 상관들이나 계파 보스들이 내려주는 봉투, 친지나 아는 기업들이 나서는 스폰서그룹이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의 보상·유인체계를 구성했다. 그리고 그것이 인재를 쏠리게 하고 우리 사회를 움직여왔다. 그러나 이런 행위의 본질은 부패와 유착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선진화·투명화되려면 이러한 관행이 근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투명한 보상·유인체계를 재조정해 주어 실질적으로 투명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효율적이며 역동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나타났듯이 공무원의 보수체계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소득을 보조할 필요가 있으면 봉급을 올려주는 것이 옳다. 특정업무경비라는 모호한 항목을 만들어 공무원들에게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게 하며 그 돈을 사적 용도로 쓰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쁜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서는 제재와 징벌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 해서는 안 된다. 좋은 정치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단순히 정치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보상·유인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개혁이고 혁신이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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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45

복잡계 물리학의 산실인 미국 샌타페이연구소 고프리 웨스트 박사는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세상에 던진다. 도시의 인구수가 늘어날수록 그 도시의 창조적 역량도 함께 늘어날까? 인구가 늘어날수록 창의적인 사람이 등장할 확률도 높아지니 비례할 듯싶지만, 창작열이 왕성한 소도시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측정해 보지 않고 어찌 답할 수 있으랴. 그는 한 도시에서 창작되는 책의 수, 예술가들의 작품 수, 기업의 연구개발비, 특허, 혁신적인 발명품 수 등 온갖 창조적인 결과물들을 모두 합쳐 한 도시의 창조 역량을 수치화했다. 그리고 그것이 도시의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는지 전 세계 12개 나라에서 살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도시가 2배 더 크면 창조적 역량은 2.2배 더 컸다. 심지어 뉴욕이나 런던, 도쿄처럼 10배 더 큰 도시들은 그 창조적 역량이 17배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한 도시의 창조역량은 인구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얘기다.

고프리 웨스트 박사의 연구는 ‘아이를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우리 옛 속담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연구다. 그렇다면 왜 인구가 늘어날수록 도시의 창조적 역량은 급속도로 증가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세상과 고립된 개인의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소통’으로 얻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구수가 늘어날수록 소통의 경우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대도시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나 창의적인 생각은 비슷한 분야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지적 교류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버드대 경제학과 에드워드 글래저 교수는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실리콘 밸리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이곳엔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포함해 수많은 벤처기업이 자리한다. 날마다 새로운 혁신이 만들어지는 이곳에선 옆 회사의 혁신적인 발명이 내 회사에도 탁월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혁신의 실마리는 늘 엉뚱한 곳에 있다.

특히나 실리콘 밸리는 이질적인 지적 전통이 충돌하는 곳이다. 황금광 시대에는 미국 노동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됐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진보적이어서 아직도 히피 문화가 남아 있다. 예술가들이 넘쳐나는 예술 도시이자, 게이 문화가 만연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창업 젊은이들이 들어가니, 이질적인 문화와 충돌하고 때론 결합하면서 새로운 혁신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가정엔 ‘차고’가 하나씩 다들 있지만 차고에서 창업을 하는 문화가 발달한 곳은 실리콘 밸리가 시초다. 예술가들이 아틀리에에서 주변에 있는 잡동사니들로 작품을 만들었던 브리콜라주(Bricolage) 방식으로 과학기술자들이 이른바 ‘차고 혁신(Garage Innovation)’이란 걸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우리가 잠시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은 ‘나는 과연 혁신의 공간에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나는 과연 혁신의 실마리가 도처에 산재해 있는 공간에 살고 있는가? 새로운 생각들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다른 분야 사람들과 지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사건들을 모니터링할 안테나를 가지고 있는가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와 정치적인 세계관이 다른 사람, 경제적 계급이 다른 사람, 미적 취향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점점 불편해진다. 어렸을 땐 친구의 가정 형편이 우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젊은 시절엔 나와 전혀 다른 역사관을 가진 친구와 논쟁하는 걸 즐겼 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경제적 형편이 다른 친구와는 점점 속내를 털어놓기 불편하고, 정치적 세계관이 다르면 쉽게 대화가 싸움으로 번진다.

세계관, 경험, 지식의 범주, 관심사가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과의 지적인 대화는 내 삶을 더 풍성하게 하고,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 준다. 그러니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이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오늘 내가 고민하는 질문에 대한 혁신적인 답을 얻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각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세상에 갇히게 된다.

 나의 뇌에선 날마다 실리콘 밸리 같은 지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가? 도시에 살고 있지만 내 삶의 영역은 혹시 작은 마을 수준은 아닐까 내성해 볼 일이다. 오늘은 점심 같이 먹을 친구를 바꿔 보시길.


 ◆필자는 KAIST 물리학 박사로 예일대 의대 정신과 박사후연구원과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조교수, 다보스포럼 2009 차세대 글로벌 리더였다. 『과학콘서트』등의 저서가 있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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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4. 4. 16:44

어려운 시대입니다. 희망을 상실한 청년들의 삶에 대해 길을 묻는 당신의 편지를 읽으며 내내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취업 원서를 작성할 당신을 떠올리며 솔직히 고통스러웠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몽매하고 오만한 기성세대 모두에 대한 엄중한 비판인 동시에, 인간과 사회문제에 대해 해답을 모색해온 노력과 지식들에 대한 통렬한 분노였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무지와 탐욕에 대해 오늘의 세계현실보다 더 적나라한 고발장은 없다고 봅니다. 인간문제가 어느 한 시대인들 명쾌한 해답을 가진 적이 있었겠습니까만, 기술과 문명이 가장 발달하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최고 수준이라는 오늘날조차 이토록 심각할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저는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실업·불평등·빈부격차·특권고착·도덕해이·경제위기를 보며 인간문제에 대한 인간지혜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문제, 즉 나와 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정을 멈출 수도 없고, 멈춰서도 안 됩니다. 모든 인간문제는 보편적이며 일반적입니다. 즉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인간문제들은 모든 시대의 누구에게나 존재했었던 것들입니다. 동시에 모든 인간문제는 현재적이며 개별적입니다. 즉 오늘의 문제는 우리 시대, 특히 그 안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전체 개별문제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의 나 한 사람이 힘든 것입니다. 그 많은 ‘나’의 문제가 모여 ‘사회’문제가 되고 ‘전체’문제가 되고 ‘세계’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일반성과 보편성은 곧 전체적 개별성입니다. 즉 한 시대의 보편성은 곧 그 시대 전체 한 시민 한 시민의 개별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 반대 논리 역시 진실입니다. 나의 문제, 나의 아픔은 앞선 모든 인간들도 누구나 겪었던 고통이라는 점입니다. 그 때문에 나만의 개별문제로 여기고 낙망하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전자에서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후자에서 인간으로서의 위로를 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자기문제와 인간문제의 희망을 찾아야 합니까? 저는 바로 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세계문제와 사회문제 해결의 출발을 이룰 것입니다. 오늘의 당신 문제야말로 세계문제이자 사회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인간문제의 총합이 곧 세계문제와 사회문제입니다. 개별 삶들은 시대적 보편성의 응축이며, 시대문제는 곧 그 시대 인간문제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때문에 당신은 무엇보다 당신 자신 문제의 해결을 위해 좌절하고 낙망해 있을 틈이 없습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 문제를 버려둔다면 아무도 당신 문제를 위해 먼저 나서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일어선다면, 또 다른 당신도 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어설 것이고, 그 두 당신은 점점 퍼져나가 마침내 더 많은 당신들과 우리들로 확산되어 사회와 나라를 바꿀 것입니다. 세계인들로 확산되어 간다면 끝내는 세계를 바꿀 것입니다.

당신의 편지를 받은 이후 저는 수십 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는 파리에서 일부러 팡테옹을 찾았습니다. 그러고는 제가 좋아하는 볼테르, 루소, 빅토르 위고의 삶을 만났습니다. 거기에서 저는 자기 나라는 물론 전체 인류의 사상과 제도, 학문과 문학, 영혼과 역사, 교육과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들의 궤적이 과연 조실부모, 방랑, 가난, 고독, 자녀사망, 배신, 금서조치, 수배, 탄압, 추방, 망명, 투옥, 은둔, 반정부투쟁, 살해 위협…과 같은 극한적인 개인적 고난과 시대적 상황에의 정면 맞섬 없이도 가능했었을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의 삶·사상·영향은 개인적 고난과 사회적 부조리, 둘 모두와의 결연한 맞섬을 위한 자기결단과 투쟁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팡테옹에서 저는 당신과 저를 위한 위안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이 고통스럽기에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남을 위한 희망의 징표가 되기 위해,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내 영혼과 정신의 혁명이 필수적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어떤 것도 불가능합니다. 인간혁명과 사회혁명과 세계혁명에 앞선 정신혁명과 영혼혁명을 말합니다.

처음 우리는 자기문제의 해결을 위한 꿈을 꿉니다. 그것은 작은 밀알처럼 가슴속에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자라납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마침내 내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이 나를 이끌어갑니다. 정신과 영혼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지요. 저는 당신과 제가 자신과 사회와 세계문제의 해결을 향한 꿈, 그 뜨거운 불꽃을 갖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위로가 되었기를 소망하며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562990&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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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29

가장 미국적인 사상가로 꼽히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설립한 펜실베이니아대는 실용주의와 순수 학문의 만남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 대학 부설 연구소인 '싱크탱크와 시민사회프로그램'은 지난 2006년부터 세계 각국 싱크탱크들의 글로벌 순위를 매년 발표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13년 순위는 한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각각 55위와 58위를 기록하였다.

'싱크탱크(think-tank)'는 그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구성원의 생각을 모아서 공동체적인 부가가치를 덧붙여 정책과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 기관이다. 인간에게는 여러 유형의 지식이 필요하다. 이들 지식은 오랜 관찰과 연구를 필요로 하는 '기초 지식'과 국가 정책 등에 직접 투입이 가능한 '활용 지식'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싱크탱크는 이 중 활용 지식을 생산하는 대표적 주체인데, 특히 그 가운데서도 '정책 지식(policy knowledge)'를 생산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싱크탱크는 이념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 아래 놓일 수 있고, 때로는 정책 지식의 소비자인 국가·정당·국제기구 등의 필요에 따라 맞춤형 지식을 공급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정보와 지식의 흐름에 국경이 사라진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싱크탱크가 세계적 수준의 지식을 생산하는 유력 행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주요 싱크탱크는 글로벌 지식 표준(標準)을 선도한다. 특히 환경·인권·국제금융·테러 등과 같이 특정 국가만의 대처가 어려운 경우 싱크탱크의 글로벌 영향력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보한 싱크탱크는 바로 21세기 버전의 국력(國力)인 셈이다.

이번 발표에서 일본국제문제연구소는 세계 16위, 중국 사회과학원은 세계 17위의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로 기록됐다. 일본은 장기간의 경기 침체와 정치적 보수화로 대외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국력을 키워가고 있다. 중국은 사회과학원을 비롯하여 상해국제문제연구소, 중국과학기술협회 등을 통해 중국식 싱크탱크 외교가 서서히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평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싱크탱크가 세계 50위권 밖이라는 수치는 경제력·민주주의·군사력·인권 등 한국이 다양한 영역에서 갖고 있는 경쟁력을 생각할 때 매우 낮은 것이다.

복잡하고 난해해 보이는 싱크탱크의 역할은 사실 단순하다. 세계 테러리즘 현황이 궁금할 때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미국 브루킹스나 헤리티지 같은 유력 싱크탱크의 사이트를 방문한다. 동북아 지역의 경제 의존과 군비 경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세계 시민은 일본국제문제연구소의 사이트를 방문한다.

우리나라 싱크탱크의 저발전을 분석하면서 재원을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거나 정치권에서 정책 개발의 중요성을 무시한다는 설명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정책 지식을 공급하려고 다양하고 전문화된 정책들이 서로 경쟁하는 정책 간 경쟁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개발의 주체인 행정부·정당·이익집단·NGO 등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 갈등구조인 지역·이념·세대·양극화 등의 문제들을 경쟁적 정책 개발 차원에서 접근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책 개발은 일종의 거대한 환류(還流) 시스템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 지식의 투입과 정책의 산출이라는 정책 지식 생태계의 선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고 세계 시민에게 비전을 가져다줄 정책을 개발하는 지식 공급원으로서 우리의 싱크탱크들이 역할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29/20130129026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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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28

일본의 한 경제학자가 전후(戰後)에 일본이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자원이 없었다는 점'을 드는 것을 보았다. 이 말은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만일 우리나라에 석유가 풍부하게 나서 거액의 석유 수출 대금이 유입되었다면 많은 석유 수출국이 그러하듯 소박한 소득수준에 만족하고 그 이상으로 올라서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사회 전체가 불로소득에 의지하는 지대수취인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만성적인 불경기 상태에서 국제 원자재 가격의 등락에 따라 국가 경제가 널뛰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지 않았던 큰 유산을 받았을 때 자칫 삶이 망가지는 것처럼 천연자원 개발의 수익이 생겨날 때 오히려 국가 경제가 혼란에 빠지는 현상을 두고 '자원 저주(resource curse)'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많은 빈곤 국가가 이 저주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 논리가 원조에도 적용된다. 이 경우에도 역시 갑자기 생겨난 돈이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원조가 원래 의도대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정반대 효과를 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정치가 불안정한 후진국에 거액의 원조가 들어가면 부패한 정치인과 관리가 원조 재원에서 거액을 빼돌리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과거 차드의 재무부가 지역 보건소를 지원하기 위해 집행한 예산 가운데 실제로 최종 목표 지점에 도달한 예산은 채 1%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2005년에 EU가 차드의 위생 개선에 사용하라고 지원한 2000만 유로의 금액이 원래 목적에 맞게 제대로 쓰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이 하루 평균 1달러 정도로 살아가는 나라를 극빈국으로 보는데, 전문가들은 이런 나라들이 나쁜 통치와 빈약한 경제 정책의 덫에서 벗어나는 데 걸리는 예상 기간을 60년 정도로 추산한다. 그나마 실제 극빈국 상태에서 벗어날 확률은 2%가 채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되돌아보건대 아마 우리나라가 바로 그 2%에 속하는 희귀한 사례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의 역사 경험은 이제 우리에게만 소중한 게 아니라 세계 시민이 주목하는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후진국에 물질적 원조를 제공할 뿐 아니라 우리의 경험을 알려주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30/20130130028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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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26

통상 업무 산업자원부 이관 등 제조업 중시 정부 조직 개편안
달라진 우리 경제와 동떨어져… 
제조업 비중 선진국보다 높은 한국은 서비스산업 더 키워야 
비제조업·금융업 홀대는 금물


120여년 전 일본 메이지(明治) 왕이 오사카를 방문했다. 오사카는 '검은 연기에 뒤덮인 우중충한 마을'이었다. 섬유 공장 등에서 내뿜는 매연이 하늘을 덮었다. 메이지 왕은 "일본도 드디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만족스러운 소감을 내놓았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선 산업혁명이 한창이었다. 전기·엔진·전화가 발명됐고 석유화학산업이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공장 굴뚝에서 코끝이 따가운 검은 연기가 치솟고 '시속 10㎞로 달리는 괴물(자동차)'이 마차와 충돌해 사망 사고를 내던 시절이었다. 일본의 왕에게 퀴퀴한 검은 연기와 선진국은 동일어였다.

세월이 흘러 작년 가을, 미국 경제학계의 논쟁거리 중 하나는 정보통신기술(ICT)을 둘러싼 것이었다. 컴퓨터·인터넷·휴대폰 같은 정보화 혁명의 발명품들이 과연 미국의 성장을 얼마나 이끌어 갈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번 논쟁을 촉발한 첫 질문자인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페이스북과 휴대폰은 있지만 상수도가 없는 생활'과 '상수도는 있지만 페이스북과 휴대폰이 없는 생활'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거냐." 그는 산업혁명 시절 탄생한 상수도가 정보화 시대의 산물인 휴대폰·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보다 인류의 생활에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성장에 ICT 산업이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방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정보통신산업은 지난 40여년간 성장의 불쏘시개 역할을 잘했을망정 나라 경제를 앞에서 끌고 가는 주력(主力) 엔진은 되지 못했다는 것을 많은 통계가 증명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정부 조직 개편안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 경제의 현 위치를 다시 짚어봐야 한다. 우리는 산업혁명 시대에 살고 있는가. 정보통신 혁명에 나라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할 것인가.

인수위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했다. 신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정보통신 혁명의 물결을 확산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행정부 내 부처 간 서열도 기획재정부 다음으로 2번 좌석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산업통상자원부다.

인수위는 통상 협상 교섭권을 오랜 세월 제조업을 관장해온 부서에 붙였다. 제조업을 중시하는 시각에서 보면 국산 공산품의 수출 시장을 열어줄 통상 협상 업무는 제조업 담당 관청이 맡아야 한다. 2008년 위기 이후 미국·프랑스에 이어 일본까지 제조업 중시 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니 얼핏 보기엔 새 정권의 제조업 챙기기는 선진국의 흐름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은 19.2%(2011년)이다. 프랑스는 18.7%, 일본은 27.3%다.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면적은 39.2%로 훨씬 높다. 선진국들이 꺼져가는 제조업 엔진에 불을 다시 지펴보겠다고 할 때 우리는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달려갈 필요가 없는 나라다. 우리 제조업은 그런대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관심과 투자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한국 경제는 한쪽 날개에선 제조업 엔진을 완전 가동한 채 반대쪽 날개에서는 서비스 산업의 엔진에 불을 하나 더 댕겨야 할 시점이다. 갤럭시 휴대폰을 수출하는 것과 동시에 싸이·소녀시대를 키운 연예 기획사를 디즈니처럼 세계적인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키워야 한다. 10조원짜리 해양 플랜트를 생산하면서도 심장 수술을 받으려고 전 세계 심장병 환자가 몰려드는 일류 병원을 운영해야 한다. 우리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두 날개로 비상(飛上)해야 하는 것이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서비스업의 날개를 펼치려는 노력이 부족해 저성장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명박 정부 5년의 평균 성장률은 고작 2.9%에 머물렀다. 역대 대통령 중 최악의 성적표다. 큰 우물을 하나 더 팔 생각은 하지 않고 수출 기업과 제조업, 대기업을 우선하는 정책을 펴면서 과거 정권이 파놓은 우물에서 물을 퍼내 쓰기만 했다.

새 정권의 인수위도 낯익은 우물물에 친근감이 가는 모양이다. 우리 경제가 과거와는 딴판으로 달라진 줄도 모르는 것 같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통상 협상은 공산품의 관세(關稅)를 다투는 줄다리기가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지금은 고용 노동 분야부터 문화, 교육, 의료 건강, 환경 등 비(非)제조업을 둘러싼 개방 협상이 중요해졌다.

제조업 등쌀에 금융산업도 밀려난 듯하다. 우리나라 금융의 자금 중개 기능이 허약해 벤처기업이 탄생하기 힘든 현실을 외면한 채 금융 행정 조직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까지 굴뚝 연기를 '선진국 아지랑이'로 여기고 ICT만이 번영으로 가는 직행 티켓인 줄 착각하고 살아야 하는가.

송희영 논설주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25/20130125009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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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22

'국가 요리사' 선발하는 美 국무부 자국 이미지 높이는 역할 맡겨…
19세기 佛, 유명 셰프로 회의 주도… 日 재외공관, 日食 세계화에 기여
음식과 외교가 서로 도와준 셈… 韓食도 한국 외교 히든카드 돼야



요리사들이 외교관으로 활동하게 됐다. 미국의 일이다. 미 국무부는 유명 요리사 80여명을 '국가 요리사(State Chef)'로 선정했다. 국가 요리사로 임명된 이들은 미국 국기와 국무부 문장이 수놓인 감청색 요리복을 입고 국가 행사 때 내놓을 음식을 만들거나 해외에 파견돼 미국 문화를 알리고 미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역할을 맡게 된다. 전세계적으로 '요리 외교'를 펼치겠다는 말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임 미 국무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열린 국가 요리사 임명장 수여 행사에서 "요리는 가장 오래된 외교 수단"이라고 말했다. "국무장관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상대국 관계자들과 나눈 가장 의미 있는 대화는 식사하면서 나눈 것이었다. 음식을 나눔으로써 우리는 장벽을 뛰어넘어 서로 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 또 힐러리 장관은 워싱턴포스트에 "다른 이들의 입맛과 격식과 가치를 고려하는 것은 간과되고 있지만 외교의 강력한 일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인도 외교사절이 찾아왔을 때 그들에게 익숙한 향신료인 카르다몸(cardamom)이 들어간 차(茶)를 내놓는 등의 배려가 대화를 더욱 부드럽게 진행되도록 이끌었다는 것이다.

클린턴 장관이 요리를 가장 오래된 외교 수단이라고 말했을 때, 1814년 9월부터 1815년 6월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회의(Congress of Vienna)를 떠올린 건 아닐까. 세계사를 조금만 배웠다면 알겠지만, 빈 회의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을 수습하기 위해 열린 국제회의였다. 회의를 주도한 건 연합을 결성해 나폴레옹을 격파한 오스트리아·영국·러시아·프로이센 등 4대국과 프랑스였다. 어떻게 패전국인 프랑스가 승전국들과 함께 회의를 주도할 수 있었을까. 프랑스 대표이자 외무장관이었던 샤를 모리스 탈레랑-페리고르가 탁월한 외교 수완을 발휘해 4대국과 똑같은 지위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강대국에 의해 쪼개지는 비운을 막고 승전국들과 동등한 지위에서 협상하도록 만든 탈레랑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당시 유럽 최고 요리사였던 마리-앙투안 카렘이었다. 카렘은 '세계 최초의 스타 셰프'로 불린다. 나폴레옹은 물론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등 유럽 왕실과 지도자들을 위해 요리했고, 지금 우리가 아는 프랑스 요리는 물론 서양 요리의 맛과 모양을 확립한 인물이다. 카렘은 다양한 프랑스 소스를 큰 범주 4개로 분류했는데, 그가 정한 소스 체계는 여전히 서양 요리의 기본이다. 요리사의 상징인 토크(toque·높고 흰 모자)와 흰색 유니폼도 권위와 위생을 강조한 카렘이 처음 주방에 도입했다.

노회한 외교관이자 까다로운 미식가였던 탈레랑은 매일 아침 한 시간씩 그날 먹을 음식들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는 음식과 접대가 얼마나 외교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프랑스의 운명이 달린 빈 회의에 그는 카렘을 데려갔다. 빈으로 떠나기 전, 프랑스 왕 루이 18세가 이런저런 주문으로 탈레랑을 귀찮게 했던 모양이다. 탈레랑은 왕에게 "전하, 저에게는 지시보다 냄비가 더 필요합니다. 제가 저의 일을 하게 하옵시고, 카렘을 믿으시옵소서" 하고 말했다.

빈 회의는 정식 총회가 열리지 않았다. 강대국 대표끼리 비공식적인 1대1 회담을 통해 사안 대부분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오늘날의 비즈니스 미팅도 그렇지만, 이런 회담에서는 어떤 음식과 술로 어떻게 대접하느냐가 특히 중요했을 것이다. 패전국인 프랑스로서는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감동시킬 필요가 있었다. 카렘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도 유명 요리사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데, 당시 유럽에서 가장 이름난 카렘의 요리가 나오는 탈레랑의 초대를 어떤 외교관이 거부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음식이 외교에 기여해 왔지만, 외교가 음식에 기여하기도 한다. 일본 음식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일본 외교부의 노력이 컸다. 일본 정부는 일식(日食) 교육을 받은 요리사를 재외공관에 전속 요리사로 파견했다. 일본 대사관에서는 그 국가의 상류층 인사들을 초대해 일본 고유의 식재료를 이용한 음식을 대접했다. 이를 통해서 일식을 그 국가에 알리고 친숙해지게 했다. 일식 세계화를 위해 해외 각국의 일본 대사관을 전진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한식 세계화에 활용하고 있다. 요리사들에게 한식을 교육해 해외 공관에 파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유명 한식당의 요리사를 보내 한식을 홍보하는 행사를 열기도 한다. 탈레랑이 카렘이 만든 프랑스 요리로 프랑스를 구한 것처럼, 미국이 자국 요리사들을 외국에 파견해 미국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있는 것처럼, 한식이 한국의 외교를 돕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한국 대중음악과 영화·드라마에 이어 한식(韓食)이 해외에서 인기를 빠르게 얻고 있으니 아마 곧 그렇게 될 듯싶다.


김성윤 대중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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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21

1980년대 중반 네덜란드는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고용 실패를 한 곳'이자 동시에 '노동 없는 복지'의 전형적인 사례로 지목되었다. 소위 '네덜란드 병'의 발생지였던 이 나라는 그로부터 10년 뒤 이번에는 '네덜란드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성공적인 경제 회복을 이룩했다. 1984년 14%에 달했던 실업률이 1997년엔 6%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11%에 달하는 EU 평균 실업률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 경제가 거의 붕괴될 뻔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결국 노사 간 합의였다. 1982년의 바세나르 협약이 그것이다.

이 조약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 활성화를 위해 노조가 임금 인상 억제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노동시장 회복을 위해서는 산업의 수익성 제고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노동시간 단축에 합의하는 것으로 화답했고, 정부는 노사간에 도출된 타협안을 존중하여 정치적 추인 절차를 밟는 한편, 공무원 임금과 사회보장 수당을 삭감하는 등의 재정 절감 정책을 추진했다. 이후 네덜란드 경제는 활력을 되찾았고, 무엇보다도 일자리 창출에 크게 성공했다.

사실 이 나라의 일자리 창출 실상을 보면 결코 완벽한 것이 아니다. 시간제 근로와 탄력 근로가 고용 증가의 4분의 3을 차지하며, 또한 시간제 근로의 4분의 3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사·정 3자 간의 대타협은 결국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임금 억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여성 파트타임 노동자가 증가한 노동력 재배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네덜란드인들 자신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비정규직 취업자 중 '풀타임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서'라는 답이 4.3%에 불과한 반면 '풀타임 일자리를 원하지 않아서'라는 답이 72%라는 조사가 이를 말해 준다. 이는 가족 중 한 사람의 풀타임과 한 사람의 파트타임(소위 '1+0.5')을 통해 일과 가정을 함께 지키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는 가족의 가치를 대단히 높이 여기는 이 나라의 문화에서 나온 결과이다.

네덜란드 방식은 분명 참고할 만한 사례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도입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니다. 결국은 우리 사회·문화에 맞는 자체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23/2013012302577.html



Posted by 겟업
2013. 4. 4. 16:20

# 1990년대 초였다. 프랑스 중부 소도시 앙부아즈에서 프랑스어 회화를 익히며 혼자 하숙을 했다. 내가 자는 곳은 계단을 올라 이층 첫 방이었는데 독일 회사원 토마스와 함께 썼다. 하숙을 치는 60대 프랑스 아줌마가 어느 날 부엌에서 잠깐 보자고 했다. "쾅일 킴, 미안하다. 독일인과 한방을 쓰게 해서." 아무리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동양인의 겸양쯤으로 알아들었는지 한사코 '독일인과 한방을 쓰게 해 미안하다'고 했다. 아줌마는 대신 와이셔츠를 자기가 다려주겠다고 했다. 평범한 프랑스인의 마음자리에 놓인 독일인에 대한 불편한 이미지는 그랬다.

# 1970년 12월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에 갔다. 그는 유대인 거주지였던 게토의 봉기(蜂起) 전몰자 묘지에 헌화하다 갑자기 차가운 돌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현장에 있던 수행원들이 당황했다. 한 나라의 총리가 무릎을 꿇는 일은 '사고(事故)'였다. 누군가 쉰일곱 살 총리가 현기증 때문에 쓰러졌다고 수군댔다. 하지만 브란트는 고개를 숙여 오랫동안 묵념했다. 잔뜩 흐린 날씨에 바람이 매서웠다. 브란트는 무릎 밑에 아무것도 깔지 않아 양복바지가 젖었다. 브란트는 "역사의 무게에 눌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세계 언론은 "그날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했다. 독일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독일인의 41%는 "적절했다"고 했지만, 48%는 "너무 심했다"고 했다.

#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은 1994년 8월 바르샤바 게토 봉기 기념비 앞에서 또 잘못을 빌었다. "독일 사람이 폴란드 사람들에게 저지른 행위에 대해 용서를 빈다"고 했다. 헤어초크는 '독일' 혹은 '독일 정부'라고 하지 않았다. 24년 전 회의적 반응을 보였던 '48% 독일인'을 재우치듯 '독일 사람'이 저지른 행위를 사죄한다고 말했다. 훨씬 개별적이면서 포괄적이고 통세대(通世代)적인 언급이었다. '독일 정부'가 아닌 '독일 사람'이라고 하는 순간, 반성의 의무는 다음 세대로 대물림됐다. 프랑스 하숙집 아줌마의 마음까지 읽은 듯했다.

# 1984년 9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콜 독일 총리가 베르됭 국립묘지에 나란히 섰다. 1차 대전 때 두 나라 젊은이 80만명이 몰살됐던 격전지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른편에 선 미테랑이 왼손을 내밀었고, 콜이 오른손을 뻗어 맞잡았다. 덩치가 산(山)만 한 두 정상은 행사 내내 팔짱을 끼고 다녔다. 1962년 7월 아데나워 독일 총리가 프랑스 랭스를 방문하고, 1963년 1월 아데나워·드골 두 정상이 엘리제 조약으로 화해했던 역사가 이미 쌓여 있었다. 2005년 독일·프랑스·폴란드 세 나라 젊은이 100여명이 3000㎞에 이르는 역사·문화 탐방 행사를 마쳤을 때 슈뢰더 독일 총리가 "우리 독일인은 이제 다시 유럽 대륙의 일원으로 돌아오는 행운을 잡았다"고 말하기까지 독일인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졌다. 그런 바탕이 있었기에 2006년부터 우리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독일 김나지움, 프랑스 리세 학생들이 독·불 공동 역사 교과서로 공부할 수 있었다.

# 메르켈 독일 총리가 엊그제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 추념일을 맞아 자기 웹사이트에 사죄의 글을 또 올렸다. 메르켈은 두 가지를 말했다. 첫째 "인종차별과 반(反)유대주의가 다시 발붙일 수 없도록 '모든 개인'이 용기를 갖고 기여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 "우리는 이 점을 '세대를 이어가며'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했다. 메르켈은 '모든 개인'이 '세대를 이어가며' 반성하겠다는, 영원한 책임의 짐을 스스로 어깨에 얹었다.



김광일 논설위원




Posted by 겟업
2013. 4. 4. 16:17

지난 연말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선정·발표한 '2012년 10대 히트 상품'에서는 여느 해와 다른 특징이 눈에 띈다. 유튜브 조회 수 신기록을 여전히 갈아치우고 있는 '강남스타일'과 스마트폰 사용 연령을 획기적으로 높여준 국민 게임 '애니팡'이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여기에 '관객 1억명 시대의 한국 영화'를 더하면 10개 히트 상품 중 문화 상품이 세 개나 된다. '문화가 대세'인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문화는 인간의 감성과 창의적 상상력을 모태로 탄생해 오랜 시간 인간의 가슴에 영혼을 불어넣어 주는 기능을 담당해 왔다. 문화는 또 인간의 열정, 장인 정신과 만나 문화 예술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지식재산권이란 개념과 결합하며 고유의 생태계를 갖는 콘텐츠 산업으로 재탄생했다. 창의적 상상력이 스토리텔링으로 승화돼 문학 작품으로 태어나 영화·게임·캐릭터·테마관광으로까지 발전하며 막대한 수익을 내는 '해리 포터'가 좋은 예다.

곧 출범할 새 정부는 '창조경제'의 구현을 정책 기조로 천명했다. 이 창조경제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토론토 대학의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창조적 변화를 위해서는 재능(Talent)·기술(Technology)·관용(Tolerance), 즉 3T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창조적 인재, 이들이 가져올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개방적 태도, 그리고 이들의 창의력 발휘를 도와줄 기술 발전이 결합하여야 창조경제가 성공한다는 것이다. '강남스타일'도 싸이의 끼(재능)와 이를 문화적으로 수용하는 포용력(관용)이 유튜브(기술)와 결합해 탄생한 창조경제의 성과물로 풀이할 수 있다. 창조경제의 핵심에 창조산업이 있고, 창조산업은 바로 콘텐츠 산업이다. 그리고 콘텐츠 산업은 문화적 다양성과 소통,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인간의 문화적 창조물을 기반으로 한다. 콘텐츠 산업은 문화가 국력인 소프트파워 시대의 진정한 무기이기도 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창조경제와 문화가 직접적으로 만난다.

새 정부 조직의 큰 그림이 발표됐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전담 조직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두기로 했다. 이제 기능 배분 문제가 본격 논의, 추진되고 있다. 어떤 형태이든 문화에 기반을 둔 콘텐츠 산업의 독자성과 타 산업의 성장 촉매제 역할을 수행하는 콘텐츠 산업의 본령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홍상표 한국콘텐츠 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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