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죠. 그래도 잘해야죠. 결국 잘하게 될 거고요."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한국 탁구의 여왕' 현정화 감독과 통화를 하다 그녀의 말투 때문에 그만 웃고 말았다. 현역 시절 말투와 너무나 닮아서였다. 서울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단식·복식·혼합복식·단체전 등 그랜드슬램을 이룬 지독한 승부사인 현정화는 "힘들죠. 그래도 이겨야죠. 결국 이기게 될 거고요"라는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자기 세뇌하듯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대여섯 점 차로 뒤지던 경기를 뒤집곤 했다.
현정화 감독은 지금 영어 공부에서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해 8월 그녀는 미국으로 떠났다. 탁구 여자 대표팀 총감독으로 런던올림픽을 마치자마자 남편, 두 아이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다섯 시간씩 랭귀지스쿨에 다니고 있다. "왜 이리 숙제도 많고 테스트도 많은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면서도 이제 마흔네 살인 현 감독은 "처음엔 1년을 생각하고 왔는데 1년 가지고는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힘든 훈련 중에도 틈틈이 영어 책을 읽을 정도로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고, 외국 선수들과 토막 영어로 대화를 나눈 경험도 많았다. 이런 그녀가 영어의 벽을 느낀 것은 2년 전이었다. 대한탁구협회 전무를 맡았던 그녀는 국제탁구연맹 총회에서 미디어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다. 현정화는 "탁구 실력은 중국과 한국이 훨씬 낫지만 영어에 능숙하고 공부를 제대로 한 선수가 많은 유럽 출신들이 연맹을 주도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탁구 국제 행정가의 길을 걷겠다는 큰 꿈을 갖게 됐다. 그러려면 우선 말이 통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네 차례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국 썰매 종목의 개척자 강광배 한국체육대 교수는 "성적만 확인되면 서둘러 짐을 싸서 대회장을 떠나는 한국 선수단과 달리 유럽과 미국 선수들은 각종 회의나 모임에 참석해 의견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게 바로 가장 효율적인 스포츠 외교라고 그는 강조했다. 세계적인 탁구 스타였던 현정화가 젊은 시절 이런 국제회의에 참석했다면 일찌감치 국제무대에 대한 꿈을 키우고 말이 통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을 것이다. 학창 시절 조금만 더 공부할 시간이 주어졌어도 더 높은 단계에서 영어를 익히고 있을 것이다.
학교 수업을 듣는 학생 선수들이 늘고 있지만 그들은 다른 엄두를 내기 힘들 만큼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해야 한다. 공부는 여전히 뒷전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야구 선수가 일반 학생들과 경쟁해서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한 게 뉴스가 된다.
현정화 감독은 훗날 탁구 아카데미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선수에게는 하루에 훈련 4시간, 공부 4시간, 여가활동 4시간씩 배정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으로 볼 때 4시간 이상 훈련해도 효과를 거두기 힘들고, 하루에 4시간만 필요한 공부를 하면 큰 밑천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듣고 보니 이 '4·4·4 시간표'가 어린 시절부터 운동 부담이 너무나 큰 학생 선수들에게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학수 스포츠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21/20130121024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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