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연구비와 인력이 동원되고 10년이 넘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진행되는 거대 과학기술 프로젝트는 ‘양날의 칼’이다. 이런 프로젝트는 언론의 주목을 받고 국민적 관심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추진하는 전문가 그룹과 연구소, 프로젝트를 기획한 관료, 그리고 이를 지원한 정치인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3차 발사도 실패땐 책임추궁 예상
이명박 대통령은 제1차 발사가 실패한 후에 나로우주센터를 방문해서 연구원을 격려했고, 2차 발사 때에는 정운찬 전 총리가 나로우주센터에서 관계자들과 함께 발사를 지켜보았다. 최근에 두 번 연기가 됐고 향후 일정도 불투명하지만, 만약에 3차 발사가 성공한다면 그동안의 실패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프로젝트의 주역들은 국가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다.
양지가 밝으면 음지는 더 어둡다. 거대 과학기술 프로젝트는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을 때에 받는 비판과 비난이 상대적으로 더 심하다. 지금까지 5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사용한 나로호도 이번 마지막 발사마저 실패한다면 국민들의 실망이 극에 달할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 추궁이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더 나아가서 2021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한국형발사체 개발 계획에도 적신호가 켜질 공산이 크다. 얼마 전에 항공우주연구원의 연구원들이 머리도 감지 않고 손톱도 자르지 않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는데, 아마도 실패에 대한 부담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로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적’이다. 로켓 기술은 미사일 협정 등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이유 때문에 미국이 우리나라에 이전하기를 극도로 꺼리는 기술이다. 게다가 2002년에 본격적으로 우주개발에 뛰어든 우리는 몇 년 내에 발사체를 만든다는 계획을 서둘러 세웠다. 이를 위해서 러시아와 기술개발 협정을 맺었고, 러시아에서 로켓 추진체의 핵심인 하단(제1단) 로켓을 통째로 들여왔다. 우리는 상단(제2단) 로켓을 만들었다. 분리되어 개발된 두 기술이 무리하게 합쳐지다 보니 예기치 못한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했다. 발사가 실패한 뒤에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나로호의 성공이 2조 원의 경제효과를 가진다는 분석은 꼭 황우석 사태 때 줄기세포 연구가 30조 원의 경제효과를 가진다는 얘기를 다시 보는 듯하다. 언론은 하나같이 우주개발의 경제적 효과를 과장해서 선전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한국적’이다.
우주개발 경제적 효과 과장
우주개발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정치적 의미가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지금 로켓을 쏘아올린 ‘스페이스 클럽’ 9개국에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일본 영국 중국만이 아니라 인도 이스라엘 이란이 있다. 나라의 면면을 보면 그저 잘사는 나라만도 아니고, 또 우리보다 과학기술이 뛰어난 나라만 가입한 것도 아니다. 로켓의 종주국이며 과학기술 선진국인 독일이 빠져 있고, 이란과 인도가 들어 있다. 북한도 이에 들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핵무기 보유국을 보자.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도 핵보유국임을 감안하면 스페이스 클럽은 핵무기를 가진 나라와 그 명단이 상당히 겹친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은 국제적으로 의혹의 대상이다. 우리는 지금 북한과 10번째 스페이스 클럽 가입을 두고 경쟁을 하고 있는데, 북한은 올 4월에 광명성 3호 발사에 실패함으로써 선점할 기회를 놓쳤다. 북한의 실패에 대해서도 미국과의 교류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일부러 실패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었을 정도였다.
우리보다 잘살고 과학기술 수준도 높은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스페이스 클럽에 안 들어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만하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자적으로 로켓을 발사해서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켰는데, 그 이후 독자 로켓 개발을 중단하고 유럽 10개국이 출자해서 설립한 아리안스페이스사의 상업용 로켓을 이용해서 위성을 발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독자 발사체를 만들기 위해 2조 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하려는 이유는 더 많은 위성을 궤도에 올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훨씬 더 많은 위성을 사용하는 유럽 각국이 상업용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대 과학기술 프로젝트 하나에는 매년 1000억∼20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대학의 실험실에서는 1000만∼2000만 원의 연구비가 없어서 하던 연구가 중단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정치적인 거대 과학도 나름대로의 중요성이 있겠지만, 과학 연구의 꽃은 실험실에서 연구자의 손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벤치 과학(bench science)이다. 이번에 나로호 발사가 조속히 확정되어 성공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염원한다. 그렇지만 그 뒤에 한국형 거대 과학기술 프로젝트의 미래에 대해 더 활발한 공론장이 만들어져 우리의 미래를 위해 우주 로켓이 꼭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토론해 봐야 할 것이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http://news.donga.com/3/all/20121204/512867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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