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중국, 시진핑 시대 개막] ‘원바오’ 넘어 문화적 생활도 할 만한 ‘샤오캉 사회’ 실현 약속한 시진핑 시대…현재의 ‘중국식 풍요’에 회의하는 사람들 많은 가운데 개혁 없는 개혁 체제 막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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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행복’에 관한 넘쳐나는 유머
“니 싱푸마?”(행복하세요?)
최근 중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질문이다. 지난 9월 말, 10월 초 중추절과 국경절 연휴를 전후해 중국 관영방송 11월8일 개막된 제18차 당대회 보고의 마지막 문장은 “중국 인민과 중화민족의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공동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분투하자”라는 내용이었다. 1978년 문화대혁명이라는 참극을 수습하고 ‘개혁·개방’이라는 기치를 들고 재건한 중국은 30년 넘게 흐른 지금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경제대국이 됐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이른바 ‘원바오’ 단계를 넘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문화적 생활도 할 만한 ‘샤오캉 사회’ 달성을 바라보는 수준이 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베이징·상하이 등 주요 대도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천달러를 넘어섰다. ‘과학적 발전관’과 ‘조화사회’를 모토로 내세우며 지난 10년간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뤄낸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지도부가 출범한 지금, 그들은 묻고 있다. “니 싱푸마?”
올해 43살의 양타오는 후베이의 소도시에서 제법 규모가 있는 여러 개의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 졸업과 함께 시작된 그의 직장 생활과 창업, 그리고 성공 등은 중국의 초고속 경제성장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양타오가 창업에 뛰어든 건 19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이 부동산·경제 붐을 타기 시작할 무렵이다. 그의 수입이면 중국에서 중·상류층 생활을 누릴 수 있고, 아내도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보장된 ‘철밥통’ 직장에 다니고 있다. 이대로만 산다 해도 지극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중국에서 사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2년 전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시작된 고민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워졌지만, 아들이 받는 교육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상류 생활, 그러나 “중국에 사는 건 의미 없다”
여전히 권위적이고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는 교육 방식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갈수록 서열화되고 경쟁이 심해지는 입시교육이다. 유명한 과외 선생의 지도를 받거나, 적어도 방과 후 학원식 과외를 받지 않으면 중점 중·고등학교(지역 내 명문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벌써부터 중학교 입시를 걱정하며 밤늦게까지 숙제와 과외에 시달린다. 학교생활과 과외 시간을 제외하고 틈만 나면 인터넷 게임과 아이패드에 빠져든다. 아들에겐 그것이 유일한 위안과 즐거움이라는 걸 알기에 강압적으로 제지하지도 못한다. 주말에 가족여행이라도 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의 고민은 이렇게 시작됐다.
생활수준과 여건은 남부럽지 않은데, 왜 학교 교육 방식은 예전 그대로일까? 왜 학업 경쟁은 갈수록 심해져, 모두들 ‘늑대 아빠’ ‘호랑이 엄마’가 돼 자식을 쥐어짜야 하는 걸까? 맘 편히 가족 여행 한번 갈 수 없는 지금의 ‘중국식 풍요’에 대한 그의 회의는 점점 깊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미국으로 이민간 동창을 만나게 됐고,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게 됐다. 그동안 이민은 먼 나라, 남의 일로만 여겼다. 그런데 “생각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고, 지금의 경제력이라면 투자이민도 쉽게 갈 수 있다”는 동창의 말이 계속 귀에 남았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흔든 건 “주말이나 방학 때면 캠핑카를 몰고 여행을 다니고, 아이들도 학업 스트레스 없이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는 중국에선 돈이 있어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행복한 삶의 질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민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열어주고 아들에게도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과 기회를 부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올여름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생각만큼 적응이 힘들 것 같지도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볼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지금 한창 미국 투자이민 수속을 밟는 중이다.
45살의 남성 차이웨는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된 도시 선전에 산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 하나를 둔 그는 아내와 함께 선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민도시’ 선전은 토박이들보다 외부에서 유입된 인구가 더 많고, 개혁·개방의 창구 역할을 해온 터라 다른 대도시에 비해 정책적으로 훨씬 유연하고 민주적 측면이 많다. 홍콩과 마카오에 인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도 선전의 ‘자유로운 공기’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다.
차이웨가 근무하는 학교는 예술특성화 학교인데다, 새로 부임한 교장의 개혁·개방적 교육 방침에 힘입어 여러 가지 민주적 실험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일반 학교와 달리 국어와 수학 교육을 1학년부터 강도 높게 하지 않고 아이들이 적당히 흥미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만 진행하고 있다. 1학년 1학기에는 아예 수학 수업이 없다. 대신 놀이와 게임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수학의 원리를 터득하는 교육 방법을 도입했다.
“민주는 어느 날 갑자기 실현되는 게 아닌데”
전 학년, 모든 반마다 학부모위원회도 구성했다. 학부모위원회는 각 반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경비 지출부터 시작해 토론이 필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모여 의논한다. 학교의 모든 지출은 학부모위원회에서 수납·감독한다. 이 때문에 재무회계상의 부정과 비리가 일어날 수 없는 구조가 됐다. 또 이 학교는 모든 학생이 각자 좋아하는 악기를 하나씩 배워야 하는 ‘의무’가 있다. 차이웨의 아들도 1학년 때부터 대나무 피리를 배우고 있는데, 지금은 제법 많은 곡을 불 줄 안단다. 매년 한 차례 학교에서 연주회를 열어 학생들에게 실전 무대 공연의 맛을 느끼게도 해준단다.
가끔 베이징에 출장을 간다는 차이웨는 “베이징의 학교 교육 방침과 운영 구조를 볼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했다. 선전에서는 보편화돼가는 학부모위원회마저 베이징에서는 아직 제대로 운영되는 학교가 거의 없다. 입학금과 각종 공과금을 둘러싼 부정과 비리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에 대한 교사의 태도 역시 과거처럼 고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그는 “베이징의 학부모들은 왜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교육 방침에 대해 항의하거나, 자신들의 권익보호위원회를 만들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민주’는 “어느 날 갑자기 명령처럼 실시되는 것이 아니라, 셈을 익히듯 하나씩 단계를 밟아야 하고, 하면 할수록 더 좋은 방식을 찾게 되는 것”이다. 15년 이상 근무한 자신의 학교에서도 처음에는 모든 것이 베이징의 학교들처럼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구조였지만, 지금은 더 적합한 민주적 운영 방식을 찾았거나 모색하는 중이다. 이제는 과거의 틀을 도저히 끼워맞출 수 없는 구조가 됐다. 이 때문에 그는 “최소한 선전의 시민들은 중국이 모든 방면에서 조금씩 ‘민주화’해야 하고, ‘민주’는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만에 이뤄진 중국 최대의 정치 잔치인 제18차 당대회가 막을 내렸다. 시진핑·리커창을 쌍두마차로 하는 7인의 새로운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출범했다. 후진타오 주석이 한 제18차 당대회 보고에서는, 2020년까지 GDP와 1인당 국민소득을 지금의 두 배로 올리고 ‘샤오캉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새 주석이 된 시진핑 역시 “부패 척결과 빈부 격차 해소 등 각종 민생 현안 해결에 주력할 것이며,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에 힘쓰겠다”고 했다. 10년 전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가 출범할 당시와 비슷한 얘기들이다.
정치체제 개혁 없이 “서구식 안 따르겠다”만
후진타오 체제 출범 때도 기대를 모았던 ‘정치체제 개혁’은, 시진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지도부에서도 거의 새로운 언급이 없었다. “결코 서구식의 민주를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마오쩌둥 사상’은 죽지 않고 더욱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으며, “중국은 결코 깃발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사방에 천명했다. 제18차 당대회 보고서 그 어디에서도 부동산업자 양타오가 고민했던 인민들의 ‘행복’ 증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나, 초등교사 차이웨가 말한 ‘민주’는 들어 있지 않았다.
다시 한번, 개혁 없는 개혁체제가 막을 올렸다. 10년 뒤에도
베이징(중국)=박현숙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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