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서는 동아시아 미래 질서에 대한 각종 전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 때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외교 가정교사’로 불리는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 전 태국 주재 일본 대사는 ‘21세기를 어떻게 살아남을까’라는 책에서 중국의 미래에 대해 5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①일본처럼 장기침체에 빠지거나 ②옛 소련 식으로 해체되거나 ③군국주의에 나섰다가 일본처럼 패망하거나 ④미국 진영과 신냉전을 시작하거나 ⑤미국과 세계를 나눠 가져 아시아를 고스란히 영향권에 편입한다는 가정들이다. 조공과 책봉에 의한 과거 중화질서를 의미하는 마지막 시나리오를 일본이 ‘악몽’으로 여긴다는 점은 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작년 말 내놓은 2030년 미래전략 보고서도 해를 넘겨 주목받고 있다. NIC는 보고서에서 2020년대면 ‘팍스 아메리카’는 끝나고 중국이 경제적으로 세계 1위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어 동아시아 질서를 예측한 4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중국을 정점으로 상의하달식 폐쇄적인 세력권이 형성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해외의 일부 아시아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과 ‘경제적 공존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미일 안보동맹을 걸림돌로 여길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경제 위기에 처한 미국의 아시아 회귀가 중국 봉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내 반전 여론이 강하다는 분석까지 겹치면서 ‘유사시 미국이 일본을 위해 중국과 싸워 주겠느냐’는 회의론마저 일본에서 나오고 있다.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일본총합연구소 전략연구센터 이사장은 최근 한 일본 언론에 “미국은 점점 내향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어느 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인 일본 위기감의 근원은 중국의 패권주의 성향이나 인권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과거사에 대한 부채 의식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자식들을 위해 군대 보유에 반대했던 일본의 어머니들이 최근 자식들을 위해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은 그런 위기감의 한 단면이다.
대조적으로 한국은 요즘 보라는 듯이 중국과 부쩍 가까워지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일본의 심사는 복잡하다. 현재 일본의 상황을 고소하다고 여길 한국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국 패권주의에 대한 우려는 사실 ‘남의 일’만은 아니다. 고구려와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동북공정이나 이어도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의 억지 주장은 한국에도 악몽의 전조일 수 있다. 동아시아 힘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중국의 패권주의는 노골화할 가능성도 있다. 그때 한국은 누구와 손을 잡고 맞설 것인가. 한중 관계가 강화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일본을 따돌리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곤란한 이유다.
지난해 여름 이후 촉발된 동아시아 긴장 국면을 이제는 냉정하고 중층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감정적인 반일(反日)로 잠깐 속이 후련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국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 사이에서는 ‘습관적 대일 회의(懷疑)의식’이라는 표현이 최근 유행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이 어떤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표현이 생긴 데는 일본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한일 우호’라는 한국 외교의 중요한 카드 하나를 스스로 버릴 필요는 없다. 과거사를 잊어선 안 되지만 일본을 활용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지금이야말로 국익을 위한 균형 감각이 필요한 시기다.
다음 달 출범하는 새 정부는 지난해 여름 이후 묻어둔 양국 간 현안을 서랍에서 꺼내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멀리 보고 크게 보라.’ 요즘 한일 관계에 필요한 말이다.
배극인 도쿄 특파원
http://news.donga.com/3/all/20130113/522740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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