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장과 복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느냐?”
얼마 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한·미 재계회의에서 만난 외국 기업인들이 필자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일본형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그들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한국으로서는 유럽형 복지를 추구하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필자는 일단 “문제없다(No problem)”고 답했다. 경제민주화는 시장의 공정성을 확립하고 동반 성장을 추진하면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붙여서다. 하지만 복지 문제는 자신 있게 대답하기 힘들었다. 복지재원 마련이 걱정인 데다 복지를 추구하다 좌초한 외국 선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연 성장 신화에 이어 복지 신화까지 완성할 수 있을까.
복지 사회는 힘든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시작도 않고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성장과 복지의 두 마리 말이 쌍두마차를 잘 끌도록 조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여기서 순서와 역할을 잘 정해 줘야 하는데 성장의 말이 먼저 힘차게 달리게 하고, 이 힘으로 복지를 펼쳐야 한다. 그 역순은 곤란하다.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고용 의무나 복지 부담을 기업에 강요하면 본업인 성장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세계적 불황이 되풀이되는 상황에선 현재의 성장 기조를 유지하는 일도 벅차다. 새 정부가 출범해 부양책을 펴면 경기가 호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고, 복지 재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이 절실하다. 성장 신화의 원동력이었던 기업가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 전반에 안정 추구 성향이 만연하면서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고, 경제의 역동성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위기가 진행형인지라 기업도 살아남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새 도전에 나서는 것 자체가 무모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정한 공식에 따라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던 뉴턴의 유클리드 기하 체계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과거처럼 정해진 경영 기법에 따라 투자한다고 적정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구촌 곳곳에서 시장 파괴형 혁신이 상시화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보물찾기 게임처럼 남보다 먼저 발굴하지 못하면 탈락하는 시대가 됐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적극적으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애컬로프 미 버클리대 교수는 경제를 움직이는 3대 핵심 요인으로 야성적 충동과 자신감, 그리고 이야기를 꼽았다. 이것들이 잘 발현될 때 기업가 정신이 꽃핀다고도 했다. 정주영 회장이나 이병철 회장같이 자신감을 갖고 야성적 충동을 발휘해 성공 스토리를 써주실 분들이 절실하다. 시장의 절대 강자가 두려운가. 그러나 넘을 수 없는 절대 장벽은 없다. 삼성의 반도체나 현대의 자동차 역시 첫 출발은 매우 무모했고 미약했다. 기술력이 미약하고 자본도 부족한가. 그러나 문제없다. 시장에 울림을 주는 아이디어가 있고, 비즈니스 모델만 좋으면 정부가 지원하고 각종 펀드에서 앞다퉈 투자하기 때문이다.
기업가 정신만으론 부족한 2%도 채워야 한다. 성공하려면 달라야 한다. 시베리아 내륙의 강에서 운항할 호화 요트를 판매하는 식으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미국에선 창조와 혁신의 대부분이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난세에 영웅 난다’는 말이 있다. 급변하는 환경과 반복되는 위기는 기업 성장의 호기일 수 있다. 장기 불황으로 힘들겠지만 더욱 많은 중소기업이 삼성과 현대를 넘어서려는 용기를 갖고 도전해 주었으면 한다.
때가 되면 봄이 오듯 경기가 호전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 봄을 어떻게 맞이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불황이 풀릴 날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창조적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불황 극복의 주역으로 나서는 기업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다행히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창조 경제 활성화를 중요한 국정 과제로 삼고 있다. 아무쪼록 창조와 혁신의 분위기가 만들어져 기업가 정신의 르네상스가 꽃피길 기대한다. 국민도 월드컵 대표팀과 김연아 선수에게 보냈던 격려의 박수를 기업인에게 보내 주었으면 좋겠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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