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장발장'과 '레미제라블'이 같은 작품임을 아는 데 한참이 걸렸다. '장발장'이 한국 이름이 아니라 프랑스 이름 '장(Jean)'에 성이 '발장(Valjean)'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레미 제라블'이 아니라 '레 미제라블이란 것도 후에 알았다. 그리고 이 책이 완역하면 23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라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
'독자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치고 억울하게 19년간이나 옥살이를 했다'. 이 문장에는 오류가 있을까, 없을까.
막노동으로 살아가던 장발장이 빵을 훔친 것은 누이의 일곱 아이에게 먹일 빵이 없어서였다. 그는 총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이게 불리하게 작용해 '야간에 가택에 침입해 절도 행위를 한 혐의'로 5년형을 받았다. 죄수번호 '24601번'장발장은 수감 4년째 탈옥했고 이틀 만에 잡혔다. 이걸로 3년이 추가됐다. 6년째 또 탈옥했고 잡히면서 강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5년이 더 추가됐다. 10년째 또 탈옥하다가 3년 추가, 13년째 또 탈옥해 3년을 추가했다. 이렇게 해서 도합 19년이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죄에 비해 징벌이 과도했기 때문에 '범죄자의 잘못을 억압으로 바꾸고, 죄인을 희생자로, 채무자를 채권자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썼다.
여기까지 읽으면 "그깟 빵 한 덩이 훔친 죄는 그냥 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면, 한밤중에 총 든 남자가 자기 집 유리를 깨는 걸 목격한 빵집 주인의 불안은 누가 해소해줄까. 탈옥 누범에게 형을 추가하지 않으면 누가 얌전히 감옥에서 형기를 채울까.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썼다. '장발장은 자기가 받은 징벌은 사실 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불공정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부분 '장발장의 죄는 빵 한 조각을 훔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우리 편' 장발장이 무고할수록 저쪽 권력의 폭압성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성을 잠재워놔야 피가 빨리 끓는다.
이런 사고 패턴은 흔하다. 얼마 전 인터넷에 '4만원 훔쳐 징역 1년 6개월, 현대판 장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예상대로 '있는 자들은 몇억을 해먹어도 집행유예로 나온다' '법이 썩었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9년 전 그의 첫 절도는 70만원 벌금형에 불과했다. 그러나 집행유예 기간 중 또 절도를 했고, 경찰 행세를 하며 돈을 뺏는 등 범죄 두 번에 이어, 이번에도 잠자는 이의 찜질방 열쇠를 빼내 옷장에서 돈을 훔쳤다는 구체적인 범죄 사실과 이에 대한 징벌의 균형 여부를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직도 관련자들의 농성이 이어지는 용산 참사, 쌍용차 문제를 대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한쪽은 '우리는 완전한 약자'라고 주장하면서 '명예 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위법·불법성과 타인에 대한 공격은 언급하지 않는다. 여기에 '약자 마케팅' 전문 정치인들이 끼어든다. 다른 쪽도 오직 상대의 '불법성'에 주목할 뿐 '사람'을 보려 하지 않는다. 두 주장이 평행을 이루며 국민도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려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용산과 쌍용차 사건의 발단부터 현재까지 '팩트'를 챙겨본 장관과 정치인·경찰은 몇이나 될까. '레미제라블' 완역본보다 더 필요한 건 '구호'만 남은 사건에 관한 객관적 백서다.
박은주 문화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18/20130118023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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