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삶/사설 노트'에 해당되는 글 715건

  1. 2013.04.05 [사설] '박근혜 敎育과 文化'가 다음 세대 나라 운명 결정한다
  2. 2013.04.05 [서소문 포럼] 일본제 사주기가 독도를 지킨다
  3. 2013.04.05 [조용헌 살롱] [875] 方外之士의 섬―제주도
  4. 2013.04.05 [강명구 칼럼] “그 사람 참 쿨하잖아”
  5. 2013.04.05 [@뉴스룸/김희균]10만원의 나비효과
  6. 2013.04.05 [고정애의 시시각각] 박근혜의 노란 봉투
  7. 2013.04.05 [야! 한국사회] 가난을 착각하다
  8. 2013.04.05 [야! 한국사회] 남자의 자존감과 연애
  9. 2013.04.05 마광수 "책장사라니… 수업교재도 안사는 요즘 대학생에 실망"
  10. 2013.04.05 [특파원 칼럼/배극인]나뭇잎 파는 마을
  11. 2013.04.05 [@뉴스룸/염희진]창조관광의 역할모델 온고푸드
  12. 2013.04.05 [횡설수설/김순덕]“노키아 몰락은 핀란드의 축복”
  13. 2013.04.05 [횡설수설/정성희]영국 무상의료의 그늘
  14. 2013.04.05 [기고/전택수]문화가 ‘창조경제’의 중심에 서야 한다
  15. 2013.04.05 [@뉴스룸/주성하]북한 언제까지 재입북 대우할까
  16. 2013.04.05 [2030미래전략 세계 석학에게 듣는다]<7·끝>오마에 겐이치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
  17. 2013.04.05 [2030미래전략 세계 석학에게 듣는다]<4>이오키베 마코토, 효고재해기념 21세기연구기구 이사장
  18. 2013.04.05 [전문기자 칼럼/유윤종]베르디의 길, 바그너의 길
  19. 2013.04.05 [기획시론 '창조경제' ②] "스웨덴의 지혜를 소개합니다"
  20. 2013.04.05 [만물상] 프랑스인의 수다
2013. 4. 5. 13:55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취임사에서 "자랑스러운 우리 국민과 함께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을 통해 희망의 새 시대,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창조 경제를 통해 경제 부흥을 이루겠다"면서 "창조 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의 상당 부분을 교육과 문화에 할애해 가며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교육과 문화 부문의 창달(暢達)에서 찾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박 대통령은 "어릴 때부터 모든 학생의 잠재력을 찾아내는 일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면서 "희망의 새 시대를 여는 일은 교육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21세기는 문화가 국력인 시대이며 국민 개개인의 상상력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인종과 언어, 이념과 관습을 넘어 세계가 하나 되는 문화, 인류 평화 발전에 기여하고 기쁨을 나누는 문화, 새 시대의 삶을 바꾸는 '문화 융성'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했다.

교육은 미래를 여는 열쇠다. 교육은 사람을 키우고, 사람은 그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는 주인이다. 세계 각국을 석유·석탄·철광석·희귀금속 등 천연자원의 부존량(賦存量) 순서대로 배치해보면 세계 각국의 선진화 서열과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비례(逆比例) 관계가 눈에 띈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일수록 국민 간에 부(富)가 불공평하게 분배되고 자유는 억압받는 경우가 더 많다는 말이다. 세계의 선진화 서열은 그 나라의 교육 수준, 그 교육이 배출한 국민의 역량(力量)과 비례관계에 있다. 오늘의 세계에서 진짜 강국(强國), 진짜 선진국은 교육이 앞선 나라라는 말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21세기 국가 전략은 교육 혁신으로 모이고 있다.

미국·영국 같은 나라는 경쟁 교육 체제 속에서 뒤처진 학생들의 학력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를 과제로 삼고 있고, 복지 선진국 북유럽국은 전인적(全人的) 교육 체제 아래서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를 어떻게 길러내느냐를 고심한다. 나라마다 처한 환경과 여건이 모두 달라 정답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지식 습득을 중시하는 한국 교육이 그동안 큰 성과를 냈고 세계 많은 나라가 한국 교육을 부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전쟁의 폐해를 딛고 성공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데는 교육의 힘이 컸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1949년 초등학교 의무교육 제도를 실시한 지 10년 만에 초등학교 취학률이 50%에서 95%로 사실상 완전 취학이 이뤄졌다. 같은 기간 문맹률이 80%에서 20%로 떨어졌고 대학생 숫자는 8000명에서 10만명으로 12배가량 늘었다. 이 대통령의 집권 기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문물을 배우고 돌아온 유학생이 4800여명, 단기 연수 기술 훈련생이 2300명, 군 장교와 하사관이 1만명이다. 이 대통령이 1950년대 구축한 교육 인프라를 통해 배출된 인재들이 1970년대의 고속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2010년대 대한민국 교육의 모습은 2030년대 이후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는 20년 후, 30년 후 나라 청사진에 맞춰 교육 철학과 목표, 방법론을 재정비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엔 중등교육의 대중화를 통해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국가 경제에 필요한 창의적 인재를 키우려면 학교에선 획일적인 교과 교육을 벗어나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찾아내는 교육을 하고 사회에선 학벌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풍토를 다져야 한다.

문화는 수원지(水源地)와 같다. 수원지가 풍요로워야 논밭이 기름지고 온갖 곡식이 무럭무럭 자란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된 것은 경제력이나 군사력 같은 하드 파워가 월등해서만은 아니다. 팝송·영화·청바지 등 문화라는 소프트 파워가 뒷받침해준 덕이다.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조선시대 세종 때나 영·정조 때처럼 문화가 약동하고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졌을 때 나라도 안정되고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은 경제 면에서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범생 국가가 됐다. 수출과 수입이 엇비슷한 규모를 이루며 교역량이 1조달러를 넘어선 세계 여덟째 무역 대국이다. 그러나 문화 면에선 여전히 발신(發信) 규모가 수신(受信) 규모에 턱없이 못 미치는 '역조(逆調)' 상태다. 백범 김구 선생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면서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나라의 교육 개혁과 문화 융성은 예산을 집중 지원하고 제도를 바꾼다고 대통령 임기 5년 안에 결실(結實)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기적인 성과를 위한 투자보다는 작은 묘목을 크고 튼튼한 나무로 키워낼 기름진 토양을 만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50년 후 장래를 결정지을 씨앗을 오늘 심는다는 마음으로 나라 교육과 문화의 토대를 다져나가야 한다.




Posted by 겟업
2013. 4. 5. 13:54

백년 전 일본 어부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의 강치(바다사자의 일종)잡이 실력이 신통치 않았던 건 한·일 관계에선 큰 불행이었다.

나카이는 1904년 독도의 일본 편입을 요청, 분쟁의 씨를 뿌린 장본인이다. 그는 조선엔 전기도 없던 1885년 배 위 공기통과 연결한 헬멧을 쓰고 바닷속 해산물을 잡던 첨단 벤처사업가였다. 다만 강치 잡는 솜씨는 별로였던 모양이다. 독도에 널린 강치 사냥에 나섰다 다른 어부들에 밀려 수확이 변변치 않았다. 결국 그는 강치 천국 독도를 독점하기로 결심한다. 나카이는 당초 이 섬을 한국 땅으로 믿은 듯 조선에 독점허가를 신청하려 했다. 하나 소속이 불확실하단 걸 알곤 생각을 바꾼다. 섬을 일본 영토에 편입시킨 뒤 독점하려 한 것이다. 그는 독도에 대한 영토편입 요청서를 일본 당국에 냈다. 일본 내각은 이를 승인한 뒤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관보에 싣는다. 다케시마의 날이 2월 22일이 된 사연이다. 나카이가 강치만 잘 잡았다면 독도 분쟁은 없었을지 모른다.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대통령 취임식은 늘 다케시마의 날 사흘 뒤에 열려야 한다. 한국 대통령의 임기 시작은 2월 25일. 일본이 계속 다케시마의 날을 부각시키면 취임 직전부터 양국 간 정면충돌을 피할 길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출범한 아베 정권은 여러모로 한국의 신경을 건드려 왔다. 지난 22일엔 시마네현에서 열린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차관급을 파견, 양국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과거 한국은 일본을 운명적인 적국으로 여겨 왔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즉 “먼 나라와는 친교를 맺되 인접국은 친다”는 전략은 외교 철칙으로 존중됐다. 신라가 당과 손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역사부터 여기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원칙대로면 일본은 결코 우방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 인식도 변하는 법. 일본의 이미지도 배울 건 배우면서 따라잡아야 할 경쟁자로 변했다. 비슷한 경제 여건으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으레 일본 기업이었다. 이 탓에 일본의 불운이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한 적도 많았다. 지진으로 일본의 반도체·자동차 공장이 타격을 입으면 그 덕을 국내 기업이 본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작금의 일본 침체는 과연 박수칠 일인가. 고소할진 몰라도 이문을 따지면 결코 환영할 일은 못 된다. 일본 경제의 부진이 한국의 수출에 나쁘다는 건 설명이 필요 없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일본이 건전한 ‘좋은 이웃(good neighbor)’으로 유지돼야 한국도 좋다는 거다. 중국산 생선에 치명적인 납덩이가 든 경우는 허다했다. 반면 일본산 식품에서 그런 문제가 있었단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철저한 위생을 중시하는 일본의 덕을 인접국인 한국도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이 경기침체로 병들면 그 해악은 한국에 미치게 된다. 제주평화연구원이 1990년부터 15년을 분석했다. 그랬더니 일본 국내총생산이 커지면 한·일 간 마찰은 줄고, 실업률이 늘면 양국 간 갈등은 격해지는 걸로 나왔다. 내부 불만이 쌓이면 외국과의 갈등을 일으켜 지지도를 올리는 ‘관심전환이론(diversionary theory)’의 교과서적 케이스다. 그러니 일본 경제가 허덕일수록 극우파들이 기승을 부려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 핏대를 올릴 게 자명하다. 거세진 일본 내 우경화 바람도 이 나라가 궁핍해졌단 방증이다.

이뿐 아니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조사 결과 한국의 이미지가 중국·일본과 함께 움직이는 걸로 나왔다 한다. 베네룩스 3국, 스칸디나비아 3국 식으로 해외에선 한·중·일 세 나라를 한 통속으로 본단 뜻이다. 이런 탓에 ‘메이드 인 재팬’이 시시해지면 덩달아 한국산에 대한 인식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요즘 일본의 침체와 한국의 도약이 맞물려 양국 관계가 중대한 변곡점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이런 판에 일본이 독도·위안부 문제로 도발한다고 단세포적으로 맞불을 놓고 흥분할 일이 아니다. 길게 보면 불매운동 아닌 일본제 사주기가 독도 수호에 도움이 된다는 대승적 안목을 가질 때도 됐다.


남 정 호 글로벌협력 담당·순회특파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773196&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4. 5. 13:53

도망갈 데가 있어야 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죽기 직전까지 갔던 사람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지리산에 들어가 생명을 보존하곤 하였다. 지리산은 인삼 빼고는 온갖 약초가 다 있는 산이다. 현재는 지리산 남쪽의 악양과 화개에 쪽에 귀촌(歸村)과 귀농(歸農) 인구가 모여든다. 하동군의 악양은 도시에서 살다가 들어오는 사람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리산에서 산나물을 뜯고 섬진강에서는 은어도 잡을 수 있고, 동네 앞에는 넓은 들판이 자리 잡고 있는 천혜의 동천복지(洞天福地)가 악양이다. 악양에는 외지에서 유입된 가구만 해도 대략 300~400가구나 된다.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의 해방구가 지리산인 줄만 알았더니, 최근에 보니까 바다 건너 제주도가 신세대 방외지사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지리산은 정년퇴직한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탈출구라고 한다면, 제주도는 청년 세대와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제주도는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해방감과 휴식을 주기 때문이다.

조천면 '선흘'이라는 오래된 마을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가 내려와 동네 가운데에 '세바'라는 카페를 차리면서 젊은이들의 명소가 되었다. 제주 시골의 토속과 클래식이 조화를 이룬다. 대안교육을 모색하는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빵집인 '선흘반못'도 기운이 좋다. 이 동네에는 동백나무 숲인 곶자왈도 있어서 산책하기도 좋다. 유달리 바다 색깔이 푸르게 보이는 김녕의 월정리는 서울 홍대 앞에서 활동하던 인디밴드 멤버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모래사장과 인접한 지점에 스산하게 자리 잡은 카페가 '아일랜드 조르바'와 '고래가 될'이다. 낯선 이국의 어느 해변가에 떠돌이로 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표선면 가시리에는 외국 작가들도 많이 와 있다. 조각, 페인팅, 사진작가 등 다양하다. 가시리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타시텔레'는 티베트·네팔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다. 현경면 저지리에는 화가, 연극, 디자인을 하는 예술인들이 많다.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기도 한 곳이다. 산방산 근처의 모슬포와 사계리도 글 쓰는 작가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도시에서 비전을 찾지 못한 젊은 세대와 예술가, 문화인, 명상가들이 제주로 '문화 이민 러시'를 이루고 있는 중이다.


조용헌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24/2013022401178.html



Posted by 겟업
2013. 4. 5. 13:52

21세기를 사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사회 청년들의 삶은 어떠할까. 그들은 어떤 희망과 고뇌를 안고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늘 마주하는 희망과 고뇌는 심리적 태도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21세기 청년세대들이 그리는 삶의 모습, 나란 주체의 모습은 근대화 초기와 달리 다양하고 다층적이다. 고도경제성장 이후 정체된 사회를 살고 있는 세대의 희망과 고뇌는 그들 부모 세대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지금 청년세대들이 처한 물질적 삶의 조건은, 현재도 힘들지만, 미래에는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일본 사회만 두고 볼 때 이들의 부모 세대인 50, 60대들은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게 많은 삶을 살았다(less to lose, much to win). 반면 청년들은 자신의 부모들보다 ‘더’ 풍족한 삶을 살 가능성이 희박하다(much to lose, less to win). 물론 그런 한국, 일본과 달리 현재 중국의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부모세대보다 더 유복한 생활을 누릴 것이다, 고도경제성장이 지속되는 한이라는 전제가 따르지만.(참고로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 이후 1980년 레이건 집권 때까지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잘살았다.)

고도성장이 끝나고 거품경제를 통과한 작금의 일본에서 청년세대는 활력을 잃었다. 도전하고 꿈꾸는 젊은이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일본 어른 세대의 우려는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런 일본과 달리 한국의 청년들은 중진국 문턱에서 ‘헉헉’ 숨을 쉬며 상승이동하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고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청년들은 어떠한가. 이들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는 않은 듯하다. 많은 젊은이가 오늘도 부자 되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활력이 부재한 일본,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한국, 부자 되는 것만이 살길이라 믿는 중국. 이런 현실 조건 위에서 세 나라의 청년들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일본, 한국, 중국, 세 나라 청년세대가 공통적으로 내릴 만한 답은 “쿨한 사람” 정도가 아닐까 싶다. 중국은 ‘쿠’(酷)라고 음차해서 쓴다. “그 사람 참 쿨하다”라고 하면 칭찬이다. 인간관계에서 우선 끈끈함과는 거리를 두고, 떠날 때는 질척거리거나 미련을 두지 않는다. 행동거지로 보면 세련되고 나름의 멋을 중요시하고 가식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다. 오히려 위악적일 때가 있다. “나를 해칠 권리는 나밖에 없다”라고 툭 내던지는 위악. 그건 특히 일본 젊은이들에게서 자주 보인다.

쿨하게 살려고 하는 젊은 세대는 성실, 열정, 도전 등 근대화 시기를 대표했던 상징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욕심 많고 탐욕스러운 육식남은 사절이다. 경쾌하지만 경박하지 않고자 하며, 허식과 위선을 미워하고 스스로에게 진실하고자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현실을 뛰어넘는 사랑과 같은 신파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 코믹 러브처럼 경쾌한 사랑이 좋다. 싫으면 떠나면 되니까. 부모세대가 가족주의 문화 안에서 살았다면, 이들은 무엇보다 ‘나’를 중심으로 살고자 한다. 그래서 이들은 “내 인생을 가족에게 바쳤다”라며 울먹이는 엄마에게 “엄마도 이젠 자기 삶을 살아~”라고 담담하게 위로한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쿨하게 살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혼자라서 외로워 보인다. 자신의 내면을 늘 들여다보면서 허위와 위선을 미워하고, 인간관계에서 깔끔하지만, 이들에게는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같다. 일본 영화에서 서늘할 정도로 외로운 주인공을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살면서 쿨하기는 어려운 걸까 싶다.

많은 것이 불확실하고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은 사회적 조건에서, 동아시아 청년세대의 선택으로서 ‘쿨한 사람’은 타당하고 나름 아름다운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큰 희망은 아니지만 절망하지 않기 위한 경쾌한 선택으로서. 가끔씩 부모에게 기대고, 활력이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비추어 진정성을 갖춘 삶의 태도로서.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75269.html



Posted by 겟업
2013. 4. 5. 13:51

여기 2010년에 태어난 아이 셋이 있다. 한국 나이로는 4세, 정부의 무상보육 기준에 따르면 만 2세다. 

3월부터 전면 무상보육이 시작되니 이 아이들의 부모는 경제력과 상관없이 보육료나 양육수당을 매달 받는다. 어린이집에 보낸다면 기관으로 28만6000원을 지원하고, 집에서 키우면 부모 통장으로 현금 10만 원을 주는 식이다. 연령별로 다르지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면 12만∼19만 원 정도 이득이라 대다수 부모는 자녀를 기관에 보내려 한다. 

부자 아빠를 둔 덕에 월 110만 원짜리 영어유치원에 갈 예정인 A는 지난주 괌 여행을 다녀왔다. A의 엄마와 일명 조리원 동기(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2∼3주 머무는 동안 인연을 맺은 엄마끼리 이렇게 부른다)들이 “몇 푼 안 되지만 공돈이 생길 테니 아이한테 바람이나 쐬어주자”고 의기투합한 결과다.

부모가 맞벌이라 어린이집이 절실한 B. 무상보육으로 어린이집 대기자가 넘치는 바람에 보육료 지원을 못 받는 사설 기관에 계속 다니게 됐다. B의 엄마는 “남들 다 받는 보육료 못 받고 생돈을 내려니 아깝다. 그나마 양육수당 10만 원이라도 받으니 도움이 된다”고 했다.

끼니 걱정을 할 처지가 아닌 이들에게 양육수당 10만 원이 미치는 영향은 그저 이 정도다. 그런데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저소득층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할머니, 엄마와 서울 변두리 월세방에 사는 C. 일주일 내내 같은 옷을 입을 정도로 집에서 돌보지 못한다. 할머니와 엄마 모두 돈을 버느라 생후 6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얼마 전 엄마가 알코올 중독 상태가 되면서 일을 접는 바람에 월세 내기 빠듯할 지경이 됐다. 10만 원이 아쉬운 C의 할머니는 3월부터 손자를 집에 두기로 했다. 늘 술에 취해 있는 딸과 함께.

C가 다니는 어린이집 교사의 말에 따르면 4세 반 17명 중 7명이 3월에 등록을 안 하기로 했다. 부모들이 대는 이유는 한결같이 “현금이 필요해서”라고 한다.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월 10만 원이 미치는 격차가 너무 커지는 순간이다.

정부는 3∼5세에게 표준화된 교육을 하기 위해 누리과정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영유아 단계부터 격차 없는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북유럽 국가들이 의무교육 연령을 낮추는 것도 영유아기의 작은 차이가 자랄수록 크게 벌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아직 우리나라는 무상보육 초창기라 지원 대상과 방식을 정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도 가정에 현금을 주는 방식은 안 된다거나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똑같이 줘야 한다는 등 전혀 다른 해법을 내놓는 상황이다.

전문가가 아닌 필자로서는 솔직히 어떤 방식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10만 원 때문에 영유아 단계부터 교육 양극화가 심해질까 두렵고 안타깝다. 10만 원 때문에 집에서도, 기관에서도 이중으로 방치될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절실하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30221/53183023/1

Posted by 겟업
2013. 4. 5. 13:50

2008년 1월 23일의 일이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 간 만남이 있었다. 박 당선인이 이 대통령의 특사로 중국을 다녀온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정작 현안은 공천 문제였다. 3개월 뒤가 총선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날 공정 공천 원칙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훗날 달리 전개됐지만 말이다.

여기까진 공개된 내용이다. 뒷얘기가 더 있다. 이른바 ‘노란 봉투’ 건이다. 박 당선인은 이날 이 대통령에게 노란 봉투를 내밀었다. 유력 대선 주자지만 여당 소수파 리더인 사람이 대통령에게 노란 봉투를 건넨 건 처음이 아니었다.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때 YS도 그랬다. 당시 봉투 안엔 YS의 ‘자질 부족’을 다룬 정보보고서가 담겨 있었다. YS는 그걸 근거로 “나를 고사시키려는 거냐”고 노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했었다.

박 당선인의 봉투엔 무엇이 있었을 것 같은가. 한 인사가 현 정부 말미까지 비보도를 전제로 전한 정황은 이랬다. “대통령이 곧바로 봉투를 참모들에게 넘겼다. 한 참모가 봉투를 뜯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거다. 다시 원상태로 해보더라. 도중에 누가 뜯어봤나 싶어서였다. 아니었다. 빈 봉투를 밀봉해서 준 거였다. 공천 명단이라도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대통령에게 빈 봉투를 들이민다? 쉽게 내기 어려운 계책이고 담력이었다. 이 대통령 쪽에선 박 당선인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고 어디까지인지 몰라 더 당황했었다.

박 당선인은 이렇듯 정치적 심리전에 강했다. 세밀한 부분까지 계산, 상대의 기를 통제하곤 했다. 한때 의원들과 ‘007 방식’으로 만난 것도 그중 한 예다. “어디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차가 대기 중이었고 그 차를 타고 가니 박 당선인이 기다리고 있더라고 했다. 의원들에게 보안을 중시한다는 걸 알리면서 동시에 “나를 신경 써서 만난다”는 인상을 줬다.

뭐니뭐니해도 박 당선인이 즐긴 방식은 일단 공언하면 꿈쩍을 안 했다는 거다. 이른바 ‘원칙’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박 당선인과 150분간 대화한 뒤 벽을 마주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 감정을 느낀 사람, 그 후에도 많았다. 박 당선인은 여느 정치인과 달리 절충과 타협을 추구하지 않았다. 상대가 질릴 때까지 밀어붙였고 그래서 이기곤 했다. 참모들이 “싸우면 다 이긴다. 싸움의 문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찬탄할 정도였다.

분명한 건 그게 야당 대표 또는 사실상 야당 대표였던 여당 2인자 시절에나 통하는 ‘문법’이란 거다. 정치적 약자(弱者) 말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약자는 지분 이상의 힘을 발휘하곤 했다. 게다가 박 당선인은 인생사까지 얽혀 더한 측은지심의 대상이었다. 겉보기론 을(乙)이었지만 실상은 갑(甲)이었다. 말만 해도 충분했다. 대통령들도 박 당선인의 눈치를 봤다.

이젠 다르다. 대통령은 절대 강자(强者)이자 갑으로 여겨진다. 말만이 아닌 행동으로, 결실로 이어갈 책무를 진다. 과정도, 결과물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다. 성에 차지 않는 결과물에 만족해야 할 때도, 자신이 절대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거래’해야 하고, 야당과 합의하에 “강행처리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한다. 실상 을의 자세가 되는 것, 그게 대통령 정치의 요체다.

박 당선인은 그러나 정부조직법의 원안 통과를 고수하고, 문제가 심한 장관 후보자도 그대로 안고 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옛 정치 방식이다. 정치를 안 한다고 내내 타박받았던 이 대통령도 정부 출범을 위해 두 개 부처를 되살려내고 후보자 3명을 하차시켜야 했다. 야당이 옳아서가 아니라 국정운영의 1차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야당 시절 박 당선인이 한 말이다. “소수당은 양보할 게 사실상 별로 없다.” “여당만의 안(案)이라고 본다.” 역지사지할 때다.


고정애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742520&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4. 5. 13:49

한동안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이웃 간의 언쟁을 목격했다. 원인은 항상 세탁기에 있었다. 스무명 정도의 세입자가 세탁기 한대를 공동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별도의 세탁실이 없이 복도 구석에 세탁기가 있다 보니 바로 그 앞에 사는 세입자가 늘 괴로움을 호소했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자기가 집에 없을 때만 사용해 달라고 했다.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세입자들은 집에 세탁기를 두고 빨래방에 가서 돈을 쓸 수는 없다고 또 따진다. 나는 싸우기 싫어 손빨래를 하다가 지쳤다. 아무도 틀리지 않으나 모두가 힘들다.

이렇게 피곤한 나의 주거환경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늘어놓다 보면 간혹 “없는 것들이 요구사항도 많고 성질도 더러워서 그래”라는 말이 돌아올 때가 있다. 계단 옆의 비좁은 공간에 세를 주기 위해 억지로 만든 그 방에서 날마다 세탁기 소리와 함께 사는 세입자는 소음피해를 호소했다는 이유로 졸지에 요구사항이 많고 성질 더러운 사람이 되었다. 이런 분쟁이 벌어지는 이유가 과연 세입자 개개인의 성격 때문일까. 결국 마당에 세탁실을 새로 지으면서 이웃들이 싸우는 풍경이 사라졌다. 문제는 집의 구조였던 것이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저소득층에 대한 이러한 편견은 사회의 빈곤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빈곤이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을 살피기보다 개인의 생활습관, 성격, 소비유형 등에 주목한다. 그래서 술, 게으름, 잦은 이직, 도박과 같은 개인의 탓으로 가난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나타난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개인과 가족의 가난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한 사회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산업화 이후 빈농의 자식들은 도시에 와서 도시빈민이 되었다. 대부분 육체노동으로 살아가지만 육체노동자일수록 일용직이며 잦은 부상으로 규칙적인 일자리를 갖기 어렵다. 규칙적인 수입을 갖기 어려울수록 소비행태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의 보호장치가 없을수록 빈곤은 자식에게서 또 그 자식에게로 이어진다.

이러한 빈곤의 고리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빈곤을 멸시하려는 감정이 사회에 일상적으로 퍼져 있다. 그리하여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를 못 하는 개인의 탓이 되고, 복지는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의 피 같은 세금으로 게으른 인간들에게 퍼붓는 시혜가 된다. 복지 수혜자들에 대한 무시의 감정은 그렇게 자라난다. 이는 한국에서만 목격되는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 복지 수혜자들을 향해 빈대라는 뜻을 가진 ‘무처’(moocher)라는 표현으로 비하하거나, 생산 없이 받아먹기만 하는 사람들이라며 ‘테이커’(taker)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감정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가난을 ‘구경’할 때는 그 비참함에 가슴 저려하는 이들도 막상 현실 속의 가난 앞에서는 더럽고, 시끄럽고, 무례하고, 무식하고, 게으른 인간들이란 타박을 서슴지 않는다.

나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말을 몹시 듣기 힘들어한다. 가난을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가난이 아니다. 삶의 태도다. 그러나 가난은 ‘무소유’를 선택하는 삶의 태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가난을 착각하는 모든 이들에게 사회학자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 “밑으로부터 사회학 하기”란 어떤 것인지 깊은 성찰을 보여준 연구였다. “이제 나는 한때의 도시빈민이 25년이 지난 뒤 빈곤의 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질문에 확답할 수 없는가에 대해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책은 한 가정을 25년간 연구하며 빈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속되는지 담아내었다. 개인의 빈곤은 철저히 사회적인 것이다.


이라영 집필노동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74780.html



Posted by 겟업
2013. 4. 5. 13:48

지난주 목요일, 학원에서 언론사 입사시험 준비생들을 상대로 글쓰기 강의를 했다. 그날따라 결석한 이가 절반이 넘었다. 강의 마치고 술 마시기로, 전부터 약속한 터라 맥줏집으로 향했다. 수강생의 4분의 3이 여자인데, 강의 마치고 술자리까지 온 건, 남자 셋에 여자 둘이었고, 여자 둘이 먼저 자리를 떴다.

나도 모르게 이런 질문이 나왔다. “너넨 연애 안 해?” 한 명이 답했다. “안 하니까 지금 여기 있죠.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세요?” 그랬다. 밸런타인데이였다. 남자 셋 다 20대 중·후반이었다. “젊을 때 연애 많이 하는 게 글 쓰는 데도 좋은데.” 다른 한 명이 말했다. “저희가 지금 자존감이 약할 때잖아요. 그러니 연애하기가….”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20대 남자들 딱히 호감 갖고 본 기억이 오래전인데, 이날은 달랐다. 안쓰러워 보였고, 동지애까지 생기는 듯했다.

청년실업률 높은 시대에 취직 준비하는 20대 후반 남자들! 강의하면서 보면 똑같은 취업준비생임에도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주눅들어 있었다. 가부장 문화가 주는 부담이 클 거고, 군대 갔다 와서 여자들보다 나이도 많고, 그래서 자존감이 약하고, 돈도 없고…. 그런데 자존감이 약해지면 연애를 못하나? 자존감과 연애를 곧바로 연결짓는 게 옛날 남자식 발상 아닌가.

외국은 어떨까. 지난해에 나온, 미국 여자가 쓴 <남자의 종말>이라는 책을 봤더니 거기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요즘 미국의 젊은 남자들은 과도기에 놓여 있다고 했다. 가부장적인 백인 남자가 이제는 웃음거리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권력과 영향력이 빠져나가는 게 두려워서 그런 걸 등지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여자들이 유능해져서 ‘가부장’ 사회에서 ‘가모장’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엔 몸집과 체력 때문에 여자가 남자에게 밀렸지만 후기 산업사회는 사회지능, 열린 의사소통, 유연함 같은 걸 중시하는데 이건 여자들이 더 잘한다. 이런 변화는 남녀의 연애에도 영향을 끼친다. 여자들이 공부하고 일하기에 바빠지다 보니 연애는 시간 빼앗기는 일이 됐다는 것이다.

한 조사 결과 미국의 여대생들이 ‘남자와 사귀려고 애쓰기보다 사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연구원의 말을 인용한다. “야심 찬 여자들은 관계를 맺는 게 4학점짜리 수업을 듣는 것과 같다고 계산하고, 차라리 훅업(일회성 성행위)을 택하는 겁니다.” ‘훅업’까지는 몰라도, 저자는 한국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본다. 요즘 한국 남자를 위협하는 건, ‘본인이 공부하느라 워낙 바빠서 남자를 꾀어내지 않는 여자, 몇 년 뒤 스스로 고급 핸드백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남자의 돈이 필요 없는 여자’라는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변화하는 여성과 변함없는 남성은 서로를 살펴보고는 상대가 인생의 동반자로 완전히 부적합하다고 여기는 바람에 아시아는 ‘짝 없는 외기러기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여성지배적인 사회라고 해서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유토피아로 변하라는 법은 없다”, “자연적 질서 따위는 없고, 오로지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이 책의 예측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옛날 남자식 자존감 같은 것 따지지 말고, 콤플렉스 느끼지 말고, 상대방이 자기보다 잘날 수도 있는 거고, 상대가 돈을 낼 수도 있는 거고, 그런 유연한 마음으로 연애해라, 그게 ‘남자의 종말’ 시대에 살아남을 미래형 남자이기도 하다, 그런 말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쉬울까.

아무튼 시대가 바뀌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이니, 멋지고 새로운 미래의 남자상을 만들어내는 것 역시 지금 찌질해 보이는 20대 남자들의 몫일 거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74381.html



Posted by 겟업
2013. 4. 5. 06:30

필화 사건도, 동료 교수들과의 불화도 아니다. 마광수 연세대 국문과 교수(62·사진)가 이번엔 엉뚱한 '책 장사'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학생들에게 수업 교재인 자신의 저서를 산 영수증을 의무적으로 제출하라고 요구해 문제가 됐다. 어길 경우 학점을 주지 않겠다고도 했다.

학생들은 반발했다. 사실상 강매란 것이다. 교재를 구입해 영수증을 얻은 뒤 환불하면 된다는 '대처 요령'까지 나왔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러자 마 교수는 더 강하게 나왔다. 학교 홈페이지(www.yonsei.ac.kr)에 직접 '학생들의 뻔뻔스런 수강 태도에 분노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질타했다. "5000원짜리 커피를 즐겨 마시면서 한 학기 2만 원 남짓 교재 값은 아까워한다"며 요즘 대학생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떠도는 말들 가운데 논란의 진실은 무엇일까. 당사자에게 직접 사건의 전말을 듣기 위해 26일 서울 동부이촌동 그의 집을 찾았다.

마 교수는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 내내 줄담배를 피워 물었다. "오죽 했으면 그랬겠나"라고 서두를 뗐다. 사회적 논란에 갇힐 때마다 그의 편이 돼줬던 학생들이 "2000년대 중반 들어서부터 변했다"고 했다. 그는 "수업 교재 구입은 배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니냐"며 "학생들이 해가 갈수록 얌체주의, 이기주의로 변하는 것 같아 슬프다"고 말했다.

- 책 장사 논란, 왜 나온 건가요.

"적반하장이에요. 수업 교재도 안 사고 버티는 학생이 많아요. 싸우러 가는데 총 안 갖고 가는 거랑 똑같아. 제가 수십 년 동안 가르쳤는데 예전 학생들은 당연히 교재는 사는 걸로 알았어요. 사실 의무적으로 영수증 제출하라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하도 화가 나서요. 지난 학기 수업을 600명 정도 들었는데 교재를 산 건 50여명밖에 안 된다고 하니까."

- 학생들에게 실망이 큰 것 같습니다.

"가짜 영수증 만드는 방법까지 올리는 것 보고. (한숨) 요즘 학생들 커피 값, 술값에 스마트폰 통신비는 안 아껴요. 홍대 앞에 춤추러 가고, 데이트 하면 적어도 10만 원은 깨진다고. 내 교재 얼마 해요? 9000원짜리, 1만3800원짜리 두 권 합쳐 2만 원 조금 넘어요. e-북도 인정해준다고 했어요. 1만3800원 종이책 비싸면 7000원짜리 e-북으로 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걸 아깝다 하면…"

- 한 학기 2만 원 내외인데, 이건 너무하다는 거네요.

"벼룩의 간을 빼먹는 거랑 똑같은 심보라고. 경제학 같은 수업은 10만 원짜리 두꺼운 원서 사게 해도 항의 안 해요. 거기서 시험 문제 내고 하거든요. 내 책은 교재 치고도 싼 편이에요. 이번에 학생들에게 너무 실망을 했어. 내가 주장하는 게 '자유를 주면 자율이 생긴다'인데. 수업도 억지로 출석 체크하고 앉혀놓는 게 치사한 거야. 그래서 방침을 자유를 주겠다, 전자출결로 학생증만 찍어라, 했다고. 그런데 학생증만 찍고 도망가는 거야. 제가 불러도 가버려요."

- 교수님 저서로 지정한 게 문제란 얘기도 있습니다.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는데, 그걸 몇 푼이나 번다고. 요새 9000원짜리 책이 어디 있어요. 출판사에도 얘기했어요, 값 올리지 말라고. 내 저서만 아니면 괜찮았다 그러기도 하는데… 아니, 선생이 자기가 연구한 걸로 가르치면 칭찬해야지. 저서 없이 강의하는 게 오히려 불성실한 교수지. 그걸 말이라고 해."

- 책 장사, 돈 문제로만 바라보는 게 서운하다?

"내가 인세 받아봐야 얼마나 받겠어. 학술 서적이라 1000~2000권 찍어요. 돈 벌겠다는 책이 아니지. 내 강의는 교재를 참고로 사라는 게 아니야. 내가 쓴 학술 서적 갖고 읽으면서 하는 강독식 수업이야. 그런데 수업 들어가면 앞에 책을 펴놓은 학생이 없어요. 어떨 때는 내가 읽어버려. 화가 나더라고."

- 등록금도 비싼데 책 사는 게 부담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정말 책값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딱한 사정 얘기했으면 봐줬을 거야. 항상 얘기하는 게 저는 학교 다닐 때 절대 도서관에서 책 빌려본 적 없어요. 수업 교재를 닷새 빌려서 내용을 소화시킬 수 없는 거야. 교재 사는 건 수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도서관에 있다고 하는데, 교재 3권 있어요. 600명이 어떻게 봐. 그걸로 본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 원래 학생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편으로 알고 있는데요.

"제가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는 교수에요. 맞담배 피라고 하고, 인사 나만큼 잘 받아주는 교수도 없어요. 학생들도 내가 힘들 때마다 힘이 돼줬고. 필화 사건 겪었을 때 나 지지한다고 데모도 하고. 강의 배정 안 돼서 '무학점 강의' 무대포로 할 때도 100명씩 와서 들었어. 그런데 2000년대 중반 넘어가면서 학생들이 바뀌었어."

- 어떻게 바뀌었다는 겁니까.

"해가 갈수록 얌체주의, 이기주의에 '너 죽고 나 살자' 주의야. 수업은 엉터리로 책도 안 사는데 스펙은 쌓아야 하니 학점은 잘 달라고 항의가 빗발치는 거야. 옛날 손으로 리포트 쓰던 세대와 인터넷 발달한 지금 리포트 수준 차가 엄청나요. 리포트 양심껏 써오라고 해도 소용없어. 인터넷에서 리포트 파는 사이트가 있어요. 마광수 검색해서 짜깁기해 낸다고.

게다가 이번엔 날 책 강매하는 인간으로 몰았잖아. 자유를 주니 악용하는 거지. 하버드대는 참고서적 한 주에 한 권씩 사고 리포트 제출하게 하고 그래요. 우리나라는 정말 편하게 학교 다니는 거야. 저조차도 반성해요. 이번 일 겪으면서 느낀 게 한 마디로 학생을 못 믿겠다는 거예요.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 '젊은 학생들 못 믿겠다'라. 조금 의외입니다.

"이젠 학생들 못 믿겠어. 사실 저는 옛날부터 앞날에 기대했어요. 신세대 문화에 기대한다, 이런 글을 많이 썼어. 그런데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이제 학생들이 교수 강의평가로 권력행사를 하려고 해. 저는 정년 보장받은 정교수니까 상관없는데, 교수가 학생 눈치보고 학생에게 종속되게 하는 거야. 학생들이 정확하게 평가하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학점 잘 주면 강의평가 점수 잘 주는 식이에요."

- 학생들이 어떻게 달라졌으면 좋겠습니까?

"지금 중학교, 고등학교부터 무너져 있어요. 학생들이 학원에서 열심히 배우고 학교에 와선 자고 떠들고 문자 주고받고 한대요. 선생이 야단치면 나가버리고, 학부모가 나서 난리 피우고. 그렇게 자란 애들이 대학까지 이어지는 거지. 토익 교재는 몇만 원씩 하는데 안 아까운 거야. 교권을 세워줘야 돼. 대학도 마찬가지에요. 교수를 학생 아래 두게 놔뒀어요. 교권이 지나치면 문제가 되겠지만 어느 정도는 지켜줘야 한다는 거죠."

- 결국 학생들의 교재 구입 방침은 유효하군요.

"오히려 학생들이 정보를 준 거지. 가짜 영수증 제출하는 방법까지 이번에 알았어요. 조교가 5명인데 그까짓 것 검사 못해요? 다 검사하고 아예 책을 샀는지 안 샀는지 실물을 확인할 생각도 있어요. 지독한 애들이야. 그런 요령까지 당연한 듯 얘기하고 있어. 아이고, 난 정말 끔찍해. (웃음) 아까 '너 죽고 나 살자'라 그랬죠? 순수한 경쟁의 논리가 아닌 승자독식, 약육강식에 원칙 없는 정글처럼 돼버렸어요."

- 산전수전 겪었는데, 이번 일이 더 충격인 것 같습니다.

"제가 풍파를 많이 겪었어요. 동료 교수들한테 왕따 당했고, 퇴임 후에 연금도 못 받아요. 사학연금공단 규정에 실형 이상 전과자는 박탈하게 돼 있어요. 다들 연금 문제 고소하라고 하는데, 난 재판에 이가 갈리는 사람이야. '즐거운 사라' 항소한 거 지금도 후회하거든요. 법정이 싫어요. 그것보다 더 슬픈 건 결론이 '학생을 눌러야 한다'로 가게 되는 겁니다.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3265829g



Posted by 겟업
2013. 4. 5. 06:27

가미카쓰(上勝) 마을은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개의 큰 섬 가운데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四國) 내륙의 산간 지역에 있다. 한국의 면에 해당하는 이곳은 현청 소재지인 도쿠시마(德島) 시에서 차로 1시간 거리. 주민 1800여 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이 절반이다. 마을 면적의 85.1%는 산림이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경지는 1.9%에 불과하다. 그나마 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과 밭이 많아 기계화도 곤란하다. 감귤 재배가 주민의 주요 수입원이었지만 1981년 이상 한파로 나무가 모두 고사했다. 이 정도면 절망이 지배할 땅 같지만 이곳은 활기와 웃음으로 넘친다. 비결은 지천에 널린 나뭇잎이다. 마을 할머니들은 나뭇잎을 팔아 연 2억 엔(약 23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나뭇잎을 판다고?

1986년 오사카(大阪) 시의 한 초밥집. 가미카쓰 마을 농협 직원이던 요코이시 도모지(橫石知二) 씨는 무심코 들려온 옆 테이블 여자아이의 탄성에 귀가 번쩍 뜨였다. “우아, 정말 예쁘다.” 여자아이는 생선회 요리 위에 얹어진 빨간 단풍잎을 컵에 띄우고 싱글벙글했다. 단풍잎 등 나뭇잎은 제철 생선을 많이 쓰는 일본 요리의 맛을 더하기 위해 장식하는 소품이다. 일명 쓰마모노(妻物). ‘나뭇잎이라면 가미카쓰에 얼마든지 있고, 노인들이 다루기에 무겁지도 않은데….’ 감귤 나무 고사 이후 새로운 수입원 발굴에 고심하고 있던 요코이시 씨는 즉시 시장 조사에 나섰다. 시골엔 흔한 나뭇잎이지만 도시에서는 돈이 될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요리점들은 대부분 문하생을 시켜 나뭇잎을 직접 따오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하는 종류의 색감 좋은 나뭇잎을 제때 조달하기 쉽지 않았고 문하생도 갈수록 줄고 있었다. 이만하면 틈새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문제는 다양한 상품개발과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제때 공급할 수 있는 생산체제 확립. 특히 고급 요리점들은 가을이 오기도 전에 가을을 연출할 수 있는 단풍잎을 원했고 겨울 요리에서 봄 향기를 풍기고 싶어 했다. 

요코이시 씨는 반신반의하는 마을 할머니들을 설득해 비닐하우스에서 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요리점들의 종류별 나뭇잎 공급 요청에 선착순으로 수주할 수 있는 경쟁 시스템도 도입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사용하기 간편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하자 처음엔 팩스만 고집하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며 선착순 입찰에 나서고 있다. 특히 마을 내에 매출액 순위 경쟁이 붙으면서 할머니들은 시스템이 제공하는 각종 판매 동향 정보를 참고해 출하 목표를 세우는 전략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경쟁은 상품의 품질 저하를 막았고 마을 전체에 건강한 긴장감과 활력, 공통의 화제를 늘렸다. 마을이 살아나자 국내외에서 견학 요청이 쏟아졌고 마을에 정착하겠다는 도시 젊은이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선진국 공통의 과제인 고령화와 인구의 급속한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갖은 지혜를 짜내고 있는 일본 자치단체들의 노력은 벤치마킹 대상이다. 해마다 정부 예산을 따내 다리와 도로를 만드는 데만 골몰하거나, 수도권에 있는 공장이나 기업 빼내기가 지역 발전의 전부라고 믿는 자치단체라면 더욱 그렇다. 일본에서는 자치단체들의 창의적인 노력을 지칭해 ‘마치 오코시(町おこし·지역 부흥)’라는 조어도 생겼다. 버전이 업그레이드된 ‘일본판 새마을운동’인 셈이다. 일본의 부정적인 뉴스에만 눈이 쏠려 있으면 일본의 진면목을 놓칠 수 있다.


배극인 도쿄 특파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30317/53773255/1



Posted by 겟업
2013. 4. 5. 06:24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MBA) 학생들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갈매기살 식당을 찾았다. 소주, 콜라, 맥주를 섞은 ‘고진감래주(苦盡甘來酒)’를 시음하며 쌈장을 찍은 고기를 상추에 싸먹었다. 이들이 체험한 것은 한국의 회식자리를 관광상품으로 만든 ‘나이트 다이닝투어’. 기획자는 외국인에게 한국음식을 소개하는 푸드 벤처기업 ‘온고푸드’다. 

관광상품이라고 하지만 특별한 건 없다. ‘1차’에서는 식당에서 고기에 술을 곁들이고 ‘2차’에서는 광장시장을 돌며 녹두빈대떡을 먹는 식이다. 우리에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인데 외국인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 투어를 체험한 관광객들은 “관광책자에서 볼 수 없는 한국의 진짜 민낯”이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입소문을 내고 있다. 광고나 홍보 한번 없이 온고푸드의 고객은 지난해 3000명을 넘었다.

‘미국 뉴요커가 한식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로 박사논문을 썼던 온고푸드의 최지아 대표(45)는 프랑스 와이너리투어와 스페인 타파스(전채요리)투어를 보고 나이트 다이닝투어를 기획했다. 단순히 맛집들을 묶어 소개하는 것과 달리 여러 개 콘텐츠를 선별해 하나의 스토리로 엮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온고푸드는 박물관 큐레이터처럼 외국인에게 한국의 식문화를 설명하는 ‘푸드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만들어 자격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의 관광산업은 양적인 성장을 일궜다. 하지만 여전히 고궁 박물관 쇼핑으로 이어지는 뻔한 코스가 관광객의 재방문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 5년간 여행업(―4.1%), 관광객이용시설업(―5.7%) 등에서 신규 일자리는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온고푸드처럼 기존 관광상품의 틀을 깨는 다양한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창조관광 프로젝트는 관광산업의 판을 넓힐 수 있는 좋은 본보기다. 외국인 여성 관광객에게 필요한 여행 준비 상품을 숙소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나 여행일과를 마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파티투어 등은 잘만 발전시키면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최 대표는 ‘배달민족’의 저력을 보여줄 다음 상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한강둔치에서 밤늦게 ‘치맥(치킨과 맥주)’을 시켜먹는 체험상품이다. 전화 한 통이면 어디로든 야식을 배달해주는 모습에 외국인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호텔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저기 구슬처럼 널린 관광아이템을 하나의 상품으로 꿰는 일도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명물이 된 올레길은 언론인 출신 서명숙 씨가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얻은 영감으로 만들어졌다. 대규모 자본이 든 것도, 정부 지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릴 적 걷던, 동네사람만 아는 옛길을 엮어 올레코스를 만들었다. 창조의 사전적 의미는 ‘무(無)에서 유(有)를 새로 만들다’지만 ‘기존의 것을 달리 보다’로 확장되면 관광상품은 이렇게 무궁무진할 수 있다. 



염희진 산업부 기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30319/53798716/1



Posted by 겟업
2013. 4. 5. 05:50

핀란드에선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노키아에 대해 한마디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삼성에 대해 누구나 한마디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구 540만 명의 작은 나라를 ‘휴대전화의 왕국’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채웠던 노키아는 날개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1998년 세계 1위의 휴대전화 회사로 등극한 이래 핀란드 경제의 3분의 1을 떠맡았던 ‘국민기업’이었다. 그러나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 노키아 주가는 전성기 때의 20분의 1로 줄었다. 1위의 저주, 변화를 외면한 오만, 합의에 의존하다 놓친 스피드 경영 등 노키아 몰락의 이유는 많다. 그러나 “그것이 이 나라에서 가장 잘된 일”이라는 말이 요즘 유행이라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전했다.

▷노키아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창업한 신생 기업이 300개가 넘었다. 노키아 같은 대기업에 취업을 원했던 대학생들은 이제 창업을 ‘쿨’하게 여긴다. 2003년 헬싱키기술대학 학생 셋이 창업해 2009년 앵그리버드 게임으로 히트 친 로비오는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역할 모델이 됐다. 노키아의 추락을 보며 핀란드 정부는 2008년 대학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개혁을 도입했다. 헬싱키기술대학, 헬싱키경제대학, 헬싱키 아트와 디자인대학을 합친 알토대학이 2010년 탄생했다. 대학 로고(A!)부터 참신한 이 대학 학생들은 ‘창업의 여름’ 행사와 ‘창업의 사우나’ 조직 등을 만들어 창업 열기를 확산시켰다. 정부는 기술혁신투자청(TEKES), 벤처캐피털펀드 핀베라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 일부터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네트워크 형성까지 구석구석 지원했다.

▷혁신의 주역인 핀란드 정부가 키우는 창업 문화가 ‘뉴 노르딕 모델’이다. 북유럽 모델을 선망하는 일부 수구좌파는 여전히 ‘큰 정부’를 강조하지만 북유럽에서는 정부가 요람부터 무덤까지 책임지기보다, 개개인이 자율성을 키워 성공할 수 있도록 시장 원리를 통해 지원한다. 1990년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복지 문제에서 ‘더 내고 더 받기’ 모델이 작동될 수 없음은 경험한 바다. 이번 글로벌 위기 때 유로존 국가에 비해 북유럽 지역의 타격이 적었던 것도 이런 ‘미리 개혁’ 덕분이었다.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1등도 추락할 수 있음을 노키아는 보여준다. 정부도, 복지 모델도 마찬가지다. 그 덕분에 핀란드는 반부패지수 1등, 글로벌 경쟁력 3위, 국민소득 4만5500달러의 선진국이다. 국가 부채가 유로존 평균의 절반일 만큼 재정이 탄탄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는 북유럽 국가 중에서도 제일 높다. 이런 나라라면 노키아도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을 것 같다. 믿을 만한 정부가 먼저냐, 국민이 믿어주는 게 먼저냐. 이게 문제일 듯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Posted by 겟업
2013. 4. 5. 05:39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감수성이 풍부한 어머니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롤링의 아버지는 공장 책임자로 일하는 블루칼라였지만 어머니 앤은 책과 전원생활을 사랑하는 여성이었다. 앤은 조앤이 13세가 되던 해 다발성경화증에 걸려 손을 심하게 떨고 종국엔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 결국 그는 딸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45세에 사망했다. 앤은 의사는커녕 방문 간호사의 돌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10년을 투병했다. 이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본 조앤은 2010년 다발성경화증 연구를 위한 기금으로 1000만 파운드를 에든버러대에 기부했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은 영국이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일 정도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제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한다는 베버리지 보고서에 따라 1948년 도입했다.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가 아니라 100% 세금으로 운영된다. 전 국민이 빈부(貧富)에 관계없이 아프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정말 이상적이다. 문제는 의료의 질(質)이다. 영국 병원들은 모두 국영이며 의사는 공무원이다. 환자들이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을 기다려야 한다. 조앤의 어머니도 이런 식으로 하다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영국 정부는 6일 스태퍼드셔에 있는 스태퍼드 병원에서 2005년부터 4년간 최소 400명, 최대 1200명의 환자가 제대로 진료 받지 못해 사망했다는 ‘스태퍼드 병원 진상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거동이 힘든 환자가 침대에서 소변을 보고 일부 환자들은 음식과 물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꽃병의 물을 마셨다.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일어난 일인지 귀가 의심스럽다. 2004년에도 영국에서 40대 간호사가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고령 환자에게 마취제를 투여하고 산소호흡기를 떼어내는 방식으로 죽음을 유도해 살인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이 간호사는 “병상을 빨리 비우기 위해 그랬다”고 말했다. 

▷스태퍼드 병원 사건은 무상의료 자체보다는 무상의료 개혁 과정에서 불거진 일이다. 병원은 재정지출 등에서 NHS가 요구하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정부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율운영을 할 수 있다.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2006∼2007년 병원 예산 1000만 파운드를 깎고 의료진 150명을 해고했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갔다. 스태퍼드 병원은 한계에 봉착한 영국 NHS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영국 의료제도의 끔찍한 실패에 사과한다”고 했으니 원죄가 무상의료에 있음을 시인한 셈이다. 선거 때만 되면 무상의료를 외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영국의 의료제도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Posted by 겟업
2013. 4. 5. 05:10

박근혜 차기정부는 ‘창조경제’를 경제정책의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고 출발점으로 상상력, 창의성 그리고 과학기술을 설정했다. 상상력과 창의성은 기존의 경제정책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이다. 그래서 경제정책을 할 때 인간만의 잠재력인 상상력과 창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이들 잠재력에 대한 원천을 고려하지 않은 경제정책은 지난 50년간의 경제정책 경험의 아류에 불과할 뿐이다. 

상상력과 창의성이 인간 고유의 잠재력이라는 것을 인식한 것은 불과 150년 전부터다. 미국의 국립과학원은 2003년에 발간한 ‘생산성을 넘어 창의성으로’에서 창의성의 원천을 과학, 기술, 경제 그리고 문화로 정리했다. 

그동안의 경제발전은 과학의 창의성과 경제의 창의성이 서로 결합한 결과다. 그 시작은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18세기 말의 산업혁명에서부터이고 한국의 경우는 1962년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문화예술의 창의성은 선진국들에서나 우리나라에서 별로 활용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국의 국립과학원은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예술로부터의 창의성을 각 산업에 활용하기를 권고했다.

1990년대 말부터 일부 서구 선진국들은 문화예술의 창의성을 경제정책의 중심에 두기 시작했다. 영국은 1997년에 창의산업 특별팀을 설립하여 문화산업이 포함된 창의산업을 연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5년에 창의경제계획을 확립했고, 2006년에는 산업계로부터, 2007년에는 정부의 타 부처로부터 동의를 얻어 2008년에 국가계획으로 공포했다. 영국 다음으로 네덜란드가 2005년에 창의산업 4개년 계획을 발표했고 호주 캐나다 등이 뒤를 이었다.

이에 우리의 ‘창조경제’도 장기 경제정책으로 성공하기 위해 다음 사항을 필히 고려해야 한다. 첫째, 임기 5년간의 정책내용은 향후 20년 이후를 내다보고 초석을 다진다는 생각으로 수립돼야 한다. 개인의 창의성이 단기간에 증진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창의경제는 수십 년 후까지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본 정책은 통합적 다학제 간 접근법(holistic multidisciplinary approach)으로 수립돼야 한다. 본 정책에는 개인의 창의성 증진 방안, 창의산업 육성 방안, 창의산업의 수출산업화 방안, 농업 제조업 등에 혁신을 제공하는 창의산업의 역할 방안, 필요한 재원의 조달 방안 등이 포함돼야 한다. 이를 위해 경제학, 과학, 문화 등의 이론이 통합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그리고 개인의 끼와 소질을 조기에 발굴하도록 지원하는 교육 방향은 창의경제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정책은 문화예술의 창의성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칸트는 예술가를 천재라 했고, 듀이는 예술작품이 예술가의 상상력의 결과이고 일반인에게는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했다. 이러한 상상력과 창의성이 농어촌이나 대도시에 사는 모두에게 현재보다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한다는 것이 ‘창조경제’의 출발점이 아닌가.

이상의 발전계획은 거대자본 중심이 아니라 개인과 중소형 기업에 친화적인 인간중심의 발전이 될 것이다. 50년 전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현재 한국의 초석이 되었듯 ‘창조경제’가 올바르게 수립돼 20년 후의 일류선진 한국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전택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경제학 교수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30129/52654333/1



Posted by 겟업
2013. 4. 5. 05:09

일요일에 혼자 몰래 골프 치는 목사에게 하나님이 내린 벌이 홀인원이란 말이 있다. 봐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평생의 자랑거리가 평생의 아쉬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 혈연단신 입국한 탈북자들도 봐줄 사람이 없어 불행하다. 일반적 관점에서 볼 때 탈북자들은 취직도 어렵고 사회적 편견과 냉대에 시달리는 집단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한번 보자. 입국한 지 몇 년 안 된 탈북자라도 임대아파트 보증금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을 합치면 최소한 수천만 원의 재산은 있다. 이 돈이면 북한에서 평생 먹고살 수 있다. 먹고살기 어려워 북한을 떠났는데 불과 몇 년 만에 북한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재산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니 혈육과 떨어져 이 땅에서 빈곤계층으로 살기보단 북한에 돌아가 가족친지들 앞에서 부자로 살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욕망이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어떤 탈북자는 몇 달 전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서 수백만 원짜리 중고 벤츠를 찜해놓고 꼭 사겠다고 별렀다. 그렇게 낡은 차는 타지 못한다고 설명했는데도 “내일이라도 북한 체제가 무너지면 단 한 번만 타도 좋으니 벤츠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고 이유를 댄다. 북한에서 벤츠는 최고위급만 타는 가장 좋은 차로 인식된다.

대다수 탈북자에게 탈북의 가장 큰 동기는 생활고이다. 고향에서 이집 저집 먹을 것을 꾸러 다니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을 과거 정도는 누구나 있다. 이들에겐 고향에 ‘금의환향’해 부자로 대접받는 일은 매우 중요한 삶의 동기이다. 지금은 갈 수 없어 못 갈 뿐이다.

그런데 북한이 최근 다시 돌아온 탈북자는 용서해 준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 선전을 믿고 지난해 6월 박정숙 씨를 시작으로 이달 24일까지 갓난아기 2명을 포함한 8명의 탈북자가 재입북했다. 북으로 돌아가기 전 이들이 돈부터 챙겼을 것은 당연한 일. 미리 북한에 밀반입시켰을 수도 있고 중국에 숨겨두었을 수도 있다.

임대주택 보증금을 포함해 1인당 2000만 원 가까운 정착금을 의무적으로 주었더니 그걸 홀랑 들고 북한으로 넘어간 탈북자가 한국인으로선 큰 배신감이 들 것이다. “다시 돌려줘”라는 말이 나올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돈을 가장 빼앗고 싶은 사람은 누구보다도 김정은일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 다시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쌀 꾸러 다니던 아무개가 남쪽에서 몇 년 만에 평생 먹고살 돈을 갖고 돌아왔다는 소문만큼 북한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수조 원의 대북 지원도 이런 효과는 못 낸다.

북한은 지금 재입북 탈북자들을 탈북 방지 선전용으로 활용하고 대접도 잘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호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만약 김정은이 한국의 탈북자들을 정말로 돌아오게 만들고 싶다면 국제사회에 “재입북 탈북자의 신변은 나와 노동당, 공화국의 이름으로 보장한다”는 선언이라도 하면 어떨까. 얼마나 돌아갈진 모르겠지만….

주성하 국제부 기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30129/52654346/1


Posted by 겟업
2013. 4. 5. 05:08

“2030년쯤이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사회보장이나 연금을 둘러싸고 노인과 젊은층의 세대 간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신세대가 이른바 ‘젊은이의 봄’ 투쟁으로 노인을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세계적 경영 구루(스승)로 꼽히는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70)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현 사회보장 시스템을 지속하면 파탄을 피할 수 없다며 머지않아 각국에서 세대 간 투쟁이 첨예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노인들이 선거에서의 표를 무기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입도 낮고 집도 없으며 결혼도 못 하는 젊은층의 불만이 폭발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는 얘기다. 인터뷰는 지난해 말 도쿄(東京)에 있는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총장실에 딸린 응접실에서 2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e메일 추가 인터뷰도 했다.

―세대 간 투쟁이라니 우울한 전망인데….

“현재 시스템이 지속되면 젊은층의 사회보장 혁명은 불가피하다. 역사적 실례도 있다. 러시아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 초(超)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노인 연금을 그대로 뒀다. 젊은층이 노인을 챙기지 않고 버려 둔 것이다. 그러자 물가는 폭등하는데 연금 수령액이 그대로인 노인들의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젊은층은 택시를 타고 다녔지만 노인들은 10km 정도는 그냥 걸어 다녀야 했다. 그런 시대가 다시 올 것이다. 일본은 ‘어쩔 수 없다’라는 식의 운명론적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여서 젊은층이 복지제도를 다 없애도 노인이 반발조차 하지 않을 것이지만….”

―2030년 세계질서를 어떻게 예상하나.

“완전히 다극화돼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중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함께 주도하는 세계가 될 것이다. 중국은 한(漢)족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현재의 중국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2030년 즈음이면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도 끝날 것이다. 가난한 중국이라면 지속적인 경제 성과로 현 지배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과 같은 수준의 경제력을 갖게 되면 13억 인구가 자유 없는 상태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베이징(北京)을 맹주로 한 ‘중화 합중국’을 권하고 있다. 그러면 홍콩 대만 티베트가 모두 합류해 좀더 큰 중국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연임하게 되면 임기가 끝나는 2024년 전까지 EU에 합류할 개연성이 크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도 과거 ‘유럽 공동의 집(ECH·평화와 번영을 위한 정치안보협력을 포함한 지역공동체)’ 개념을 이야기한 바 있다. EU와 러시아가 합치면 세계 제일의 경제권이 될 것이다.

아세안은 지금보다 결속을 더 강화해 EU보다는 작지만 인구 5억∼6억 명의 경제블록을 만들 것이다. 맹주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될 것이다. 일본은 인구 구조로 보면 장기 쇠퇴가 불가피하다. 한국은 북한과 ‘그레이트 코리아(Great Korea)’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2030년이면 이미 그 과정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인구 등을 감안하면 매우 중요한 국가가 될 것으로 본다.”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드러날 리스크는 어떤 것인가.

“미국은 러시아가 합류하는 유럽의 대두에 불안해 할 것이다. ‘그레이트 유럽’과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미국이 ‘애틀랜틱 오션(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세계 경제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일 것이다. 중국 국민은 평균 소득이 크게 오르면서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자유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중국 지배구조의 불안정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가 세계 질서가 바뀌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는 가장 큰 불안 요인이다.”

―가까운 미래는 어떤가. 지난해 세계 주요국 지도자가 일제히 바뀌었는데….

“한동안 세상을 확 바꿀 리더가 나타나기 어렵다고 본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땐 나라를 크게 변화시켰다. 지금은 어떤 지도자라도 국가 체제를 크게 바꿀 여지가 거의 없다.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 국내총생산(GDP)을 4배 이상으로 크게 늘렸지만 앞으로는 무리다. 이제부터는 현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중국의 공공부문 채무 등을 감안하면 과거처럼 급성장할 재원도 부족하고 각종 모순을 해결하는 데에도 힘이 모자랄 것이다.

유럽도 유럽중앙은행(ECB)의 발권력을 동원해 경제적 파탄을 피하면서 27개국이 단합해 살아남을 것이다. 미국도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이미 무너진 상태로 20년간 표류한 일본은 앞으로 지지부진한 채로 살아남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나이지리아가 새로 성장 국가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과거 중국이나 브라질, 인도에 필적하는 큰 판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업도 국가도 야망에 불타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한동안 큰 변화가 없는 따분한 세계가 될 것이다.”

―저서인 ‘국가의 종말’에서 밝힌 ‘지역국가(Region State)’ 개념은 무엇인가.

“인터넷 시대에는 개인과 기업, 도시의 발언이 힘을 얻게 돼 있다. 예컨대 중국의 성장엔진인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다롄(大連) 시는 인구 700만∼2000만 명으로 웬만한 국가 수준이다. 이런 도시는 베이징의 의견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4000조 엔(약 4경8400조 원)에 이르는 세계의 유휴자금 유치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 더는 국민의 세금으로 번영하는 시대가 아니다.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사례다. 다른 나라의 돈과 회사, 부자를 불러들여 번영하고 있다. 도시 간 경쟁이 역동적인 경제 발전의 원천이다. 이런 도시 주도의 발전은 국가 모델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국민국가 개념은 이미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한다.”

―세계경제 침체가 이어지면서 국가주의가 다시 강해지고 있지 않나.

“물론 국가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부록 비슷한 존재에 불과하다. 일본인도 영토 문제로 주변국과 갈등을 겪을 때나 국가의식을 가진다. 못난 정치가는 그걸로 불놀이하며 표를 모으려 한다. 정치가가 국민의 애국심에 불을 붙이려고 한다는 것은 현실이 정반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잠깐 흥분했던 사람은 곧 식어 버린다. 섬 문제로 동북아시아 3개국이 싸우는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섬 영유권 문제는 실효지배 원칙에 따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가뿐 아니라 일본 국민도 우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20년간 밝은 얘깃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치무키(內向き·내향화)’, ‘우시로무키(後向き·퇴행화)나 다름없다. 못난 사람이 우경화하고 이웃나라를 탓한다. 열등감이 생겼지만 인정하기 싫으니 ‘한국은 뭐며, 중국은 뭐냐’라는 식으로 화풀이하는 것이다. 밖에서 보면 우경화이지만 안에서 보면 ‘초식화(草食化)’다. 야망이 사라져 나약해진 것이다. 과거에는 도전정신을 갖고 미국 등 어려운 시장을 개척했다. 지금은 중국이든 인도든 신흥 시장에서 조금만 나쁜 일이 터지면 짐을 싸서 돌아온다. 그러면서 ‘일본이 모두에게 이지메(집단 괴롭힘)를 당하고 있다. 더 강해져야 한다’라고 떠든다. 일본 잡지도 우경화해야 팔린다고 한다. 독자들이 ‘중국과 일본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등의 기사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일종의 게임 감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하지만 편집장들을 만나보면 우경화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미래는 어떨 것으로 보나.

“일본은 변화된 한국을 잘 모른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이겨 냈다. 특히 국제감각을 갖춘 뛰어난 인재가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한국 대학생 50명과 일본 대학생 50명을 섞어 한 반을 만들면 상위 50등은 모두 한국 학생이 차지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양국 간 인재 격차가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이 이렇게 변한 10년간 정체됐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뛰어난 글로벌 기업이 있지만 그 수가 부족하고 우수한 경영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다. 산업 기반이라 할 부품 소재 분야의 중소기업도 매우 취약한 게 현실이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한국의 산업구조를 볼 때 대만처럼 일본의 인프라를 잘 활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콜레스테롤이 쌓인 기업이 많다. 이런 기업을 한국이나 대만이 인수해 일본을 자극한다면 서로 ‘윈윈’하는 거다. 일본은 20년간 경제가 엉망이었지만 인프라와 기초기술이 있어 망하지는 않는다. 캐논 도요타자동차 등 여전히 강한 기업도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한국 젊은이의 지나친 미국 지향이다. 대만과 중국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인맥과 지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인화된 한국인은 큰 경쟁력이 없다. 비슷한 능력의 미국인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미국식 지식에 더해 중국 일본을 잘 알아야 미국 경영학석사(MBA)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한일관계를 낙관하나.

“양국 지도자가 서로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 바보 같은 행동을 피해야 한다. 그 바탕에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오마에 겐이치 총장은 ::

오마에 겐이치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은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의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을 맡아 글로벌 기업은 물론 지역 주요 국가와 도시의 자문역으로 오래 활동해 왔다. ‘국경 없는 경제학과 지역국가론’의 제창자로 미 월스트리트저널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경제 세계화에 따른 기업의 국제화 문제, 도시 발전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역 국가 개념과 관련한 글과 논문을 꾸준히 싣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1994년 그를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 등과 함께 세계 5대 경영 구루(스승)로 선정했다. ‘국가의 종말’, ‘지식의 쇠퇴’ 등 100권 이상을 저술한 그는 현재 인터넷으로 경영학석사(MBA) 교육을 하는 학교를 설립해 인재 발굴과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일본 와세다대 이공학부, 도쿄공업대 원자핵공학 석사,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원자력공학 박사 출신이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30125/52568881/1



Posted by 겟업
2013. 4. 5. 05:07

《‘감춰 놨던 칼을 칼집에서 꺼내기 시작하는 중국,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강화하는 미국, ‘강한 국가’를 내세우며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세계의 이목이 동아시아에 쏠리고 있다. 세계 중심축이 동아시아로 넘어오고 있지만 이곳엔 아직 협력의 씨앗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도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동아시아의 2030년을 조망하는 작업은 크나큰 통찰을 필요로 한다. 일본의 석학 이오키베 마코토(五百旗頭眞·70) 효고(兵庫)재해기념 21세기연구기구 이사장은 동아시아가 역사 갈등을 넘어 협력 관계로 나아가는 열쇠로 ‘상호 이익’이란 화두를 던졌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한일 간에는 문화 및 스포츠 협력, 중일 간에는 경제협력을 제시했다. 지난해 12월 25일 효고 현 고베(神戶) 시 21세기연구기구 사무실에서 이오키베 이사장을 만났고 새해에도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고베=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20년 후 동아시아의 미래를 그려 달라.

“변수가 너무 많다. 하지만 틀림없는 한 가지는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경제 강국이겠지만 유럽의 위치는 추락할 수 있다. 2030년엔 동아시아와 미국이 세계 경제를 리드할 것이다.”

―중국의 부상도 그때까지 이어질까.

“2030년 중국은 동아시아의 압도적인 중심 국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시련이 올 수 있다. 일당독재에 대한 불만이 해외뿐 아니라 중국 내부에서도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힘으로 국내 불만을 억누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중국 전통 방식에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중국식 발전’을 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될까.

“중국을 제외하면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국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소위 ‘중추적(pivotal)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양국이 협력하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지뢰가 많다. 양국이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상대방에 사안마다 화내지 말고 가능한 한 협력한다는 기본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정권교체가 향후 중동 불안보다 더 큰 국제사회의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경제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고노(河野)담화나 무라야마(村山)담화를 수정해 일본의 과거를 부정하면 ‘끝이다’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나를 포함해 매우 많다. 아베 총리는 ‘국방군을 만든다’, ‘센카쿠에 공무원을 상주시킨다’ 등 의미 없는 제스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시야가 좁은 강경파 주장대로 하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질 것이다.”

―고노담화 수정 움직임은 한국에 큰 파장을 미칠 텐데….

“아베 총리는 총선 실시 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국가 권력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겠다고 했다. 위안부 모집에 국가 권력이 개입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크게 보면 일본 군부가 관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 정부의 주장을 믿고 일본을 ‘명예로운 나라’로 여길 나라는 없다. 작은 의미에 집착해 과거 일본의 악행을 세계에 다시 알려서는 안 된다. 크게 보고 총리가 사과해야 한다. 한국 중국과 마찰을 빚을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도 해선 안 된다.”

―동아시아 협력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무엇인가.

“중국의 군사력 강조다. 1970년대 문화혁명을 끝낸 중국은 30년 이상 고도의 경제성장을 했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달리 20년 이상 군사력을 키울 정도로 군사력을 중시했다. 중국 정부 발표만 봐도 군사비 지출이 20년간 20배 이상으로 늘었다. 중국은 최근까지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라고 했지만 요즘 대국이 됐으니 힘을 떨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남중국해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등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도 힘을 바탕으로 아시아에 피해를 주지 않았나.

“맞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다르다. 일본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현재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의 1%를 군사비에 쓴다. 다른 국가들은 대체로 3%를 사용한다. 일본은 군사비를 줄이는 대신 국제협력에 집중하고자 했다. 일본은 전후 경제 중심의 평화적 발전을 선택했다.”

―요즘 아베 정권이 군사력 강화를 외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은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조금 먼저 근대화를 이뤘다. 근대적 군대로 주위 국가에 피해를 줬다. 이에 대해 솔직히 주변국에 ‘잘못했다’라고 깊이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위한 협력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아베 총리는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사과를 믿지 않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많은데….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게 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간 나오토(菅直人) 등 전 총리들은 국가를 대신해 공식적으로 한국에 대해 깊이 사죄했다. 하지만 한국인은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 일본이 잘한 것도 있지 않느냐’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총리의 사죄를 믿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여러 의견이 있는 만큼 일부 정치인의 발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

―동아시아에 신뢰를 심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상호 이익이 되는 테마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1980년대 모든 국가가 경제 발전을 중시하면서 ‘동아시아의 기적’이라는 경제 발전을 이뤘다. 경제 협력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것을 찾아 서로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전 총리는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했다. 그 후 문화를 개방했다. 특히 한국 문화가 일본에서 크게 히트를 쳤다. 한국 드라마가 유행하고 김연아 등 한국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다. 문화 스포츠 등 민간 레벨에서 협력할 게 많다.”

―중-일 간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테마는 뭐가 있나.

“역시 경제다. 하지만 중국에서 2005, 2010, 2012년 세 차례 반일 폭동이 일어났다. 2005년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였고 나머지 두 번은 센카쿠 영토 갈등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차이나 리스크’를 느끼고 공장을 다른 나라로 이전하려 한다. 이는 양국 모두에 마이너스다. ‘다시 협력하자’라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중국은 국제법을 지켜야 한다.”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할 일은 없을까.

“나는 현재 일러 역사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상대방 설득 목적은 아니다. 상대 주장을 듣고 상대방의 역사 인식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을 한 보고서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는 가운데 공통점을 넓힐 수 있다. 일본에 의한 역사적 상처로 한중일 공동연구가 쉽지 않겠지만 그런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2013년 현재 동아시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중일 3국의 리더가 모두 바뀌었다. 매우 보기 드문 우연의 일치다. 하지만 어느 국가에서도 ‘이번 정부에 기대할 만하다’라는 생각을 찾기 어렵다. 모두가 경제 발전과 정치 기반 구축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에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는데….

“박근혜 당선인은 국가와 국민 정치 경제 모두를 생각하는 종합적인 인물이다.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라고 말한다. 매우 기대된다. 과거엔 민주주의, 재분배 등 하나의 이념을 갖고 사회를 바꾸면 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러 노선을 잘 조합해 최적의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정권이 교체됐는데….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것은 역사적인 일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미일동맹이 깨졌다. 재건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 중국과 영토 문제도 있었다. 일본 외교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권 교체는 개선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강경 아베 정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없나.

“아베 씨가 총리가 된 데에는 한국과 중국 책임도 있다. 영토 분쟁이 일어나면 누구라도 내셔널리스트가 된다. 그런 가운데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등 온건파가 힘을 잃었다. 다만 아베 총리는 이젠 주변 국가와 냉정히 협력 관계를 만들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본다. 아베 총리는 ‘매파’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매파였지만 1972년 중국을 방문해 협력 관계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신중히 하자고 외치는 사람은 일본 보수 세력으로부터 ‘외교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불신을 받는다. 하지만 매파는 확고한 국내 지지를 배경으로 반대파를 제압함으로써 온건한 외교정책을 펼 여지가 많아진다. 아베 총리도 2006년 처음 총리가 됐을 때 중국과 전략적 협력 관계 만들었다.”

―동아시아 각국의 새 지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어떤 것인가.

“일본 측에서 보자면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은 부러울 정도로 약진했다. 중국도 거인이 됐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잃어버린 20년’을 맞았지만 앞서 1980년대 미국과 유럽을 능가하는 세계 톱이 돼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최근 양극화 안전망 미비로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지가 새 정권의 지도력을 측정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 이오키베 마코토는

일본 정치외교학계의 거물이자 대표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교토대에서 일본 외교사를 전공한 뒤 고베대 법학부 교수, 방위대 교장, 동일본 대지진 복구의 틀을 짠 부흥구상회의 의장을 지냈다. 현재 구마모토현립대 이사장 겸 효고재해기념 21세기연구기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오키베 이사장의 인물됨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사례 한 토막.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와 학연 지연이 전혀 없는 그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도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6년 뜻밖에도 이오키베 이사장에게 방위대(한국으로 보면 육해공 통합사관학교 정도에 해당) 교장을 제안했다. 극구 사양했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의 요청이 더 끈질겼다. 그해 고이즈미 전 총리는 내각 홍보용 e메일 잡지에 글을 써 달라고 이오키베 당시 방위대 교장에게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평소 신념대로 ‘한국 중국과 쌓은 신뢰가 총리의 야스쿠니참배로 크게 손상됐다’라고 썼을 정도로 강직했다. 당시 극우파는 이오키베 교장의 퇴진을 요구했지만 그는 2006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약 6년 동안 방위대 교장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일본정치외교사’ ‘일미전쟁과 전후 일본’ ‘아시아 리더십과 국가형성’ ‘또 하나의 일미 교류사’ 등이 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30122/52485162/1



Posted by 겟업
2013. 4. 5. 05:06

올해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거장 주세페 베르디(1813∼1901)와 독일 음악극(Musikdrama)을 정립한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탄생 200주년이다. 국내외에서 두 사람을 기리는 공연과 축제가 풍성하다. 비슷한 듯 대조를 보이는 두 사람의 삶이 새삼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각각 크고 작은 영방(領邦)으로 분열된 나라에서 태어나 통일 민족국가의 일원으로 삶을 마쳤다. 그러나 두 나라의 조건은 달랐다.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억압 아래 놓여 있었으며 독립의 열망이 강했다. 독일은 분열되어 있었지만 프로이센이라는 신흥 강국이 그 가운데 있었다. ‘남에게 속박을 받는다’는 서러움은 없었다.

베르디의 초기 성공에는 민족주의적 열정이 큰 몫을 했다. ‘나부코’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 ‘에르나니’ ‘잔다르크’ 등 숱한 작품이 독립을 향한 투쟁정신을 담아냈고 이는 이탈리아 민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지식인들은 살롱에서 ‘나부코’ 중 ‘노예들의 합창’에 나오는 “아름답고 잊혀진 나의 조국”을 “아름답고 잊혀진 나의 이탈리아”로 바꾸어 부르며 항쟁의 정신을 불태웠다. 민중은 “비바(만세) 베르디”라고 외쳤다. 베르디(Verdi)라는 이름에 ‘Vittorio Emmanuelle Re d'Italia(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이탈리아의 왕)’이라는 상징성을 담은 구호였다. 1861년 베르디는 통일 이탈리아의 상원의원이 됐다.

바그너의 생애는 이와 달랐다. 초기부터 그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연애담이나 스페인 전승전설 같은 다양한 소재를 담았다. 혁명에 가담해 수배를 받고 국외로 도주하기도 했으나 작품의 색깔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의 이름이 ‘독일’과 깊이 연관지어진 것은 게르만족의 원형설화를 소재로 4부작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를 쓰게 되면서였다. 설화 속의 신과 영웅, 난쟁이와 요정이 부딪치는 이 대작은 ‘가장 독일적인 거장’으로서 바그너의 이름을 역사에 뚜렷이 각인시켰다. 그러나 바그너는 그전에도 후에도 ‘국가’로서의 독일을 작품에 부각시키지 않았다.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지막 작품인 ‘파르지팔’을 비롯한 여러 작품이 스페인 벨기에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작품들에서 진한 ‘독일성’을 느끼고 무대를 독일로 착각하기까지 했다. 바그너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바그너적 ‘독일성’의 많은 부분은 그의 영향을 짙게 받은 후배 작곡가들에게서 비롯됐다. 바그너는 한 사람의 오페라 작곡가를 넘어 새로운 화음과 관현악법, 새로운 악기 개발을 통해 판을 뒤엎는 ‘신음악’을 창조했다. 그의 시도는 리스트에서 말러에 이르는 숱한 작곡가에게 넓고 큰 강처럼 영향을 미쳤다. 외국 작곡가들도 영향을 받았지만 가장 바그너적인 ‘핵심’을 승계한 독일 오스트리아의 후배들은 그로부터 받은 특성들을 통해 ‘독일성’을 표현했다.

오늘날 ‘가장 이탈리아적’ ‘가장 독일적’ 작곡가로 꼽히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사람의 자취를 되돌아보며 오늘날 한국 문화의 영향력을 생각한다. ‘한국적인 것’을 담아내겠다고 할 때 우리는 아직 소재의 측면에서만 그 의미를 찾는 경우가 많다. 춘향전과 심청전을 비롯한 고전의 재창작이 숱하게 이뤄지고,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DB)를 돌려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는 데 힘쓴다. 그러나 ‘한국적인 것’의 핵심을 이 시대에 어떻게 독창적인 형식미로 담아내면서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에 천착하는 이는 드물다. 베르디처럼 자신이 계승한 전통 자체로 세계인의 빠른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바그너처럼 새로운 예술 문법으로 시대를 장악해 보겠다는 자신감도 찾기 힘들다.

물론 ‘한류’로 요약되는 한국산 문화는 어느 때보다 넓고 깊게 세계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보다 발 빠르고 세련되게 이를 대체할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국가가 나타나는 순간, 한류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상존한다. “우리의 토양에서만 가능한, 독자적이고도 특징적인 문화양식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자신감이 빠져 있는 탓일 것이다. 탄생 200주년을 맞은 베르디도 위대했지만 오늘날 ‘한국의 바그너’를 더욱 기다리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유윤종 문화부 선임기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30122/52512608/1



Posted by 겟업
2013. 4. 5. 04:08

대한민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출범했다. 취임식에서 언급한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 등 세 가지가 새 정부의 중점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부흥과 관련해 스웨덴의 사례가 도움이 될 것 같아 몇 가지 제언을 드린다. 20세기 초만 해도 유럽의 가난한 나라였던 스웨덴이 강소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창조 경제'에 있었다.

스웨덴 창조 경제의 바탕은 '현대적 초등교육'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들도 영향을 줄 수 있다(Children can influence)'라 일컫는 교수법을 쓴다. 아이들은 과제를 개인이 아니라 그룹으로 해결한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창조하고 해결책을 만들어간다. 정답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점수를 준다. 혁신적이고, 과학을 사랑하며, 다른 문화를 포용하는 국제 감각을 갖춘 미래 세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초등교육부터 민주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려면 우리가 처한 현실을 파악해야 한다. '현실에서 진리를 깨달으라'는 말은 덩샤오핑의 지혜로운 격언이다. 과거 스웨덴은 경제 분야 통계 자료가 부족했다. 특히 성별(gender)을 기반으로 한 통계 자료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년에 걸쳐 성별 통계 체계를 갖춰나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발명을 주도하고 특허를 출원하는데 여성이 훨씬 저조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의 교수법을 그룹 중심으로 변화시켰다. 그 결과 여성이 취득하는 특허 숫자가 10년 전에 비해 50%나 증가했다.

셋째, 세금은 형태가 새로운 제조업을 양성하는 데 써야 한다. 한국처럼 스웨덴도 우수한 제조 기술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스웨덴에는 '혁신 익스프레스(Innovation Express)'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중소기업이 자사의 발명품을 세계시장에 소개할 때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분야의 새 일자리를 창출했다.

넷째, 기업가 정신 함양은 모든 분야에서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것은 대기업만의 역할이 아니다. 스웨덴의 대학은 음대·미대 학생들에게도 어떻게 회사를 창업하고, 시장에서 마케팅을 하며, 회계를 운용하는지를 가르친다.

다섯째, 좋고 나쁜 경험들을 공유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스웨덴 인터넷에는 새 기업을 만드는 과정의 시행착오를 공유하는 '경험은행(experience banks)'이 있다. 선배 기업인이 후배 기업인에게 경험을 전수하는 '멘토링' 시스템. 창업할 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정보를 제공한다.

여섯째, 아이디어를 실제 현장에서 활용하기 위한 '인큐베이터'가 필요하다. 신규 기업에 가장 어려운 시기는 아이디어를 처음 시장에 내놓는 초기 단계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카롤린스카대학의 '사이언스 파크'가 대표적이다. 생체의학과 생명과학 분야 등 초기 창업 단계에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에 정부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이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빈부 격차의 감소와 사회적 안전망 확충은 창조 경제의 달성과 뗄 수 없는 과제다. 실패하더라도 구제될 수 있는 시스템은 매우 중요하다. 스웨덴의 젊은 발명가들은 실패했을 때 그들을 구제할 안전망이 없었다면 창업을 시작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18/2013031802216.html



Posted by 겟업
2013. 4. 5. 04:01

프랑스인 친구에게 물었다. "프랑스인은 왜 그리 토론을 좋아하느냐." 그 친구는 "원래 그렇다"며 우스갯소리를 들려줬다. "옛날에 로마 군대가 프랑스를 점령하려고 국경 근처까지 왔다. 프랑스 여러 부족 대표가 천막에 모여 회의를 했다. 대표들이 내놓은 전술이 제각각이라 열띤 토론이 한 달 가까이 벌어졌다. 마침내 부족 대표들이 전술에 합의하곤 투지를 불태우며 천막 바깥으로 나왔다. 로마군이 프랑스를 다 집어삼킨 뒤였다." 

▶프랑스 사람은 말할 때 손가락을 꼽는 버릇이 있다. 한마디 하고는 "둘째로…, 셋째로…" 하면서 말을 이어 가는 게 몸에 뱄다. 대개 전화 통화도 길게 한다. 공무원은 일 보러 온 사람들이 줄 서 있어도 걸려 온 전화를 붙들고 좀처럼 놓질 않는다. 파리에 살 때 동네 우체국 창구에서 할머니 바로 뒤에 줄을 선 적이 있다. 할머니는 우편물을 부친 뒤에도 창구 직원을 놓아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잡담을 나눴다. 

▶뒤에 선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먼저 줄 선 사람이 충분히 말할 권리를 존중한다는 태도였다. 프랑스인의 '수다 문화'엔 톨레랑스, 관용의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빨리빨리' 사회에 길든 이방인은 너그럽게 넘기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에 있는 타이어 공장을 인수하려던 미국 기업인이 공장 근로자들의 수다에 질려 투자를 포기하면서 프랑스가 시끄럽다. 그는 "프랑스 근로자들이 점심 먹고 쉬면서 한 시간, 수다 떠는 데 세 시간을 보내고 하루에 단 세 시간만 일한다"고 했다. 

▶이 미국인이 노조에 따졌더니 노조 지도자는 심드렁하게 "프랑스에선 다 이래"라고 대꾸했다 한다. 화가 치민 미국인은 프랑스 산업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악담을 퍼부었다. '프랑스 타이어 산업은 미친 노조와 정부 때문에 곧 망할 것이다.' 성마른 산업장관도 답장을 보내 맞받았다. '당신의 미국 회사 규모는 우리 미쉐린 타이어의 5%밖에 안 된다. 당신이 프랑스에 투자하면 많이 배워 갈 수 있는데 그러느냐." 

▶프랑스 언론도 비난에 가세했지만 사실 프랑스는 큰소리칠 형편이 아니다. 경제는 성장을 멈췄고 재정 적자와 실업에 시달린다. 좌파 정부는 노조 눈치를 보며 최저임금을 올렸다. 프랑스는 그리스·스페인에 이어 유럽 경제의 시한폭탄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그래도 말하고 토론하기 좋아하는 것은 프랑스인들이 사는 방식이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회에 살면서 그들의 느긋한 삶을 가끔 느리게 되감아 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22/2013022202308.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