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은 말할 때 손가락을 꼽는 버릇이 있다. 한마디 하고는 "둘째로…, 셋째로…" 하면서 말을 이어 가는 게 몸에 뱄다. 대개 전화 통화도 길게 한다. 공무원은 일 보러 온 사람들이 줄 서 있어도 걸려 온 전화를 붙들고 좀처럼 놓질 않는다. 파리에 살 때 동네 우체국 창구에서 할머니 바로 뒤에 줄을 선 적이 있다. 할머니는 우편물을 부친 뒤에도 창구 직원을 놓아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잡담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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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선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먼저 줄 선 사람이 충분히 말할 권리를 존중한다는 태도였다. 프랑스인의 '수다 문화'엔 톨레랑스, 관용의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빨리빨리' 사회에 길든 이방인은 너그럽게 넘기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에 있는 타이어 공장을 인수하려던 미국 기업인이 공장 근로자들의 수다에 질려 투자를 포기하면서 프랑스가 시끄럽다. 그는 "프랑스 근로자들이 점심 먹고 쉬면서 한 시간, 수다 떠는 데 세 시간을 보내고 하루에 단 세 시간만 일한다"고 했다.
▶이 미국인이 노조에 따졌더니 노조 지도자는 심드렁하게 "프랑스에선 다 이래"라고 대꾸했다 한다. 화가 치민 미국인은 프랑스 산업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악담을 퍼부었다. '프랑스 타이어 산업은 미친 노조와 정부 때문에 곧 망할 것이다.' 성마른 산업장관도 답장을 보내 맞받았다. '당신의 미국 회사 규모는 우리 미쉐린 타이어의 5%밖에 안 된다. 당신이 프랑스에 투자하면 많이 배워 갈 수 있는데 그러느냐."
▶프랑스 언론도 비난에 가세했지만 사실 프랑스는 큰소리칠 형편이 아니다. 경제는 성장을 멈췄고 재정 적자와 실업에 시달린다. 좌파 정부는 노조 눈치를 보며 최저임금을 올렸다. 프랑스는 그리스·스페인에 이어 유럽 경제의 시한폭탄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그래도 말하고 토론하기 좋아하는 것은 프랑스인들이 사는 방식이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회에 살면서 그들의 느긋한 삶을 가끔 느리게 되감아 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22/20130222023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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