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년 전 외국 공항에서 ‘끄덕 인형’ 한 쌍을 샀다. 작은 투명 플라스틱 상자 안에서 꼬마 닌자(忍者)가 쉼 없이 머리를 끄덕인다. 신기하게도 건전지나 전기 공급 없이 작동하는데 그 비밀은 태양전지에 있다. 집광판이 빛에너지를 동작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녀석은 일본에서 탄생해 전 세계로 퍼진 ‘노호혼’ 인형이다. 일본말 노호혼, 유유자적이나 빈둥빈둥 정도로 해석된다. 우울증 해소용 인형이라는데 ‘괜찮아, 괜찮아…’ 하며 끄덕이는 것 같다.
인간을 빛으로 조종할 수 있을까. 그리스·로마 시대의 철학자들은 시각을 눈총의 산물로 봤다. 눈에서 광선이 나가 상대를 판별하고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생각은 로봇영화에나 남아 있다. 눈은 빛의 발사기관이 아니라 수용기관이며, 눈총 염력 같은 건 없다는 명제는 상식에 가깝다. 그런데 상식이 새 정부에서 뒤집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대통령이 레이저눈총으로 끄덕맨을 양산한다는 괴담이설(怪談異說)이다.
대통령의 레이저발사 설은 과거 출입기자 사이에서 종종 제기됐다. 한 종합지 기자의 증언이다. “2011년 1월, 국회 ‘근혜천사’ 바자회. 대통령(당시 전 대표)은 격려사에서 ‘복지 논의가 많은데 왜 모든 것을 돈으로만 보는지 안타깝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심’이라고 언급했다. 복지 논쟁이 증세로 비화하는 데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행사장을 나온 대통령에게 ‘복지에 돈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 어떤 맥락인가요’라고 물었다가 레이저눈총을 맞았다. 대통령은 민첩한 속도로 돌아서서 ‘한국말 모르세요’라고 했다. ‘I don’t know Korean.’ 이렇게 대응할까 했는데, 눈총에 당황해 실기했다.”
요즘 정부 개편과 공직 인선 등을 두고 레이저눈총 설이 다시 부상했다. 대통령의 모습은 평소 단아하다. “가끔 입으로 웃지만 눈으로 쏘아보는 표정을 할 때, 정말 살벌하다”(여당 당직자)는 경험담처럼 대통령 앞에 가면 주눅이 들어 지시만 받아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야당은 불통(不通) 이미지를 눈빛으로 형상화하려 한다. 몇몇 신문도 눈빛이 강하게 나온 대통령 사진을 골라 1면에 배치한다.
레이저는 단색 파장에 강한 직진성을 갖는다. 레이저눈총은 지시형 리더십의 비유인 것이다. 리더십 유형 중 어느 것도 좋고 나쁜 것은 없다. 구성원이나 환경에 따라 스타일을 달리한다. 계획대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할 때, 리더와 부하의 능력 차이가 클 때 지시형 리더십은 힘을 발휘한다. 반면에 부하의 자발성과 조직의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는 약점이 있다. 새 정부처럼 창조경제·미래창조사회를 국정 화두로 삼았을 때 더욱 우려되는 지도 유형이다.
창조의 정의는 백인백색이다. 변이·적응·지속에 근거한 가치지향적 변화라고 정의한다면 그 리더는 새 판을 벌일 줄 아는 상상력, 판을 잘 유지해가는 조정능력, 저항을 무릅쓰고 새 판의 변이를 택하는 결단력을 보여줘야 한다. 상상과 조정, 결단은 혼자 고뇌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지시와 위임, 이성과 감성, 용기와 배려가 씨줄·날줄로 짜여야 가능하다.
창조형 리더십이 복합유형이라면 그 리더는 문화의 교차로에 서 있는 게 좋다. 대통령은 그 조건을 갖춘 인물이다. 남성·문과 중심 정치판의 이공계 여성, 보수당의 복지·행복 주창자였다. 숫자·돈·현실보다 인간 의지를 더 믿던 정치인이다. 당선 이후에는 지시형 리더십만 부각된다. 장점을 못 살리고 있다. 진실과 상관없이 대통령이 레이저눈총을 자주 쏜다고 믿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대통령의 직진 광선이 가슴에 꽂힐수록 고위 공직자는 끄덕 인형, 유유자적 인형, 빈둥빈둥 인형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것이 지시형 리더십이 오래 유지됐을 때의 운명이다. 혹시 대통령이 눈총을 가졌다면 빨리 이를 여러 파장을 받아들이는 렌즈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공직자, 자체발광 정책이 나온다.
이규연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820554&ct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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